비밀의 라오스 - 순수의 땅에서 건져 올린 101가지 이야기
한명규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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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차이나 삼국하면 꼽는 나라는 베트남, 캄보디아 그리고 라오스다. 하지만 베트남과 캄보디아에 비해 내륙 오지에 위치한 라오스는 우리나라에 그렇게 널리 알려진 나라가 아니다. 하지만, 최근 힐링 여행지로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메콩 강을 배경으로 튜빙을 하면서 맥주를 마시는 관광정보를 보고, 또 승려들의 탁발하는 풍경을 보고 남들이 찾지 않는 여행지로 어떨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프랑스의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수도가 비엔티안을 그나라 말로는 위양짠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됐다. 그만큼 내가 라오스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은 피상적이었노라고 고백할 수 있겠다.

 

놀라운 건 인구 700만 정도의 라오스를 찾는 관광객 수가 자그마치 약 400만명(2014년 기준)이나 된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매력이 인도차이나 반도의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 작은 나라를 찾게 만드는 건지 궁금해졌다. 많은 수의 관광객들이 라오스의 천천히매력에 빠져 저렴한 게스트하우스에 장기간 머물며 과거로의 시간여행에 나선다고 한다. 또 한가지 몰랐던 점 중의 하나는 라오스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소수민족이 49, 비공식적으로는 100여개에 달한다고 한다. 그렇게 많은 소수민족을 어떻게 하나의 나라로 통일하고 있는지 그것도 궁금해졌다.

 

소위 라오스통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의 저자 한명규 씨에 의하면 어떤 의미에서 라오스는 신의 축복을 받을 나라라고 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따뜻한 기온 때문에, 추위 걱정할 필요가 없고 따로 경작하지 않아도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어쩌면 지상낙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서구식 자본주의의 세례로 빈부격차가 커지는 신자유주의의 폐해도 생겨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오토바이의 천국인 동남아시아에서 라오스도 예외는 아닌 모양이다. 연애를 하려면 오토바이가 필수라는 얘기도 흥미롭다. 도로를 달리는 오토바이 위에 올라탄 두 연인이 그렇게 밀착해서 다니다 보면 없던 정도 생기지 않을까 싶다. 집에 바래다 줄 때는 물론이고, 아이들의 등하교까지 책임지는 교통수단인 오토바이야말로 우리나라 자동차 같이 생활필수품이 된 것이다. 인도차이나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집안 어디서고 등장하는 도마뱀(찌끼암)을 징그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해충을 잡아먹는 유익한 동물이자 생활의 반려자로 받아들인다는 점도 쓰여 있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오래 전에 즐겨 읽던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이 책에서는 빠텟라오라고 표기한 파테트라오에 대한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났다. 프랑스 식민지배에 대항해서 독립운동을 벌인 펫사랏 사후, 왕당파와 파테트라오 간의 내전을 벌여 결국 후자가 승리하여 사회주의 정부가 수립되었다고 한다. 한편 외세를 몰아내고 마침내 독립을 쟁취한 라오스도 영어 광풍에서는 벗어날 수 없는 모양이다. 오래전 프랑스 식민지 경험 때문에 프랑스어가 더 인기를 끌지 않을까 싶지만, 현지 사정은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실질적인 이유로는 영어를 구사할 수 있으면 고급 직장에 취업해서 많은 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우리 역시 영어를 못하면 큰 일 날 것처럼 타령을 해대지만, 막상 취업하고 나서 현장에서 영어를 얼마나 써먹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인구의 65% 이상이 불교신자라는 라오스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의 하나가 승려들이 탁발하는 장면이다. 책의 초반에 저자가 라오스에 없는 세 가지 중의 하나로 죽은 사람을 위해 우는 사람이 없다는 점을 꼽았는데 역시 장례 의식도 전적으로 승려들이 주관하고 있다고 한다. 아마 불교 윤회 사상에 입각해서, 죽음이 또 다른 시작이라는 의미를 그들을 미리부터 알고 있기 때문에 이승의 이별에 대해 그렇게 아쉬워하지 않는 게 아닐까 하고 추정해 보기도 했다. 우리나라 남자들이 군대에 가듯, 라오스에서는 남자라면 평생에 한 번 승려가 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모양이다. 예전에는 3개월이 기본이었다고 하는데, 요즘엔 단기속성으로 1주에서 2주 정도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어디에서고 통한다는 우리나라의 빨리빨리 문화도 천천히가 일상화된 라오스에선 먹히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서둘러봐야 본인에게 고통과 번뇌만이 엄습할 따름이라고 한다. 어쩌면 라오스 뿐만 아니라 동남아 특유의 만만디 정신이라고 해야 할까. <비밀의 라오스> 후반에 등장하는 먹거리 이야기를 읽을수록 라오의 나라를 찾아 보리가 아닌 쌀로 빚은 맥주 비어라오를 한 잔 마시며, 구운 바나나나 대나무 밥 카오람을 먹고 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었다. 아마 본격적인 힐링에 들어가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고 해야 할까. 이웃 캄보디아의 앙코르왓은 세계적인 명성을 널리 떨치고 있지만, 그 전부터 존재한 라오스의 왓푸 사원이 있었다는 것은 미처 모르고 있었다. 또 한 가지 왓푸 근처의 낭 시다 사원 복원에 우리나라도 처음으로 세계문화유산 복원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했다.

 

농업국가이면서도 자급자족하지 못하는 라오스의 현실에 대해서도 저자는 놓치지 않는다. 국민의 75%가 농민이지만, 형편없는 생산력과 농업에 필수적인 관개수로의 부족으로 식량을 수입해야 하는 아이러니에 대해서도 빼놓지 않고 기술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몸담고 있는 코라오그룹에 대한 깨알홍보도 빠지지 않는다.

 

여느 국가에 대한 소개와 마찬가지로 <비밀의 라오스>를 읽으면서 한 나라에 대해 개인이 가지고 있는 정보와 인식이 피상적이고, 한계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힐링 여행이 천편일률적인 주마간산식 단체관광여행 스타일을 대신하게 되었는데, 그 첫 번째 기착지로 라오스를 삼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내가 언제나 라오스에 가보게 될진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어본 것이 그 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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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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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마스다 미리 작가의 책을 왕창 빌려 왔다. 긴 연휴 동안 읽을 책이 혹은 읽어야 할 책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의 일탈을 하고 싶다고나 할까. 왜 시험 기간에 시험 공부 하지 않고 만화 보는 그런 재미를 느끼고 있다. 망중한 가운데 난 그렇게 슬슬 마스다 미리 작가의 만화를 열심으로 접하고 있다. 그게 뭐 어때서?

 

이 제목을 보자마자 난 삶의 어느 순간에서 우리는 지금 이대로 괜찮을 걸까?라고 스스로에게 묻게 됐다. 그건 아마도 어떤 결정의 순간을 맞이할 때가 아닐까. 아니면, 지금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세상에 어느 순간 지고의 만족을 느끼며 살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질문이 툭툭 튀어나오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본다. 물론 이 질문에 대해 어떤 해결책이 없다는 것 또한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걸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질문 따위는 하지 않고 바로 해결에 매진할 테니까. 물론 나도 그런 스타일은 아니다.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선에서 타협하고 또 하루를 살게 되겠지. 간바떼 ~

 

이 만화의 주인공 역시 내가 읽은 전작 <주말엔 숲으로>처럼 삼십대 중반의 여성 모리모토 요시코, 여기서는 수짱으로 통한다. 싱글 여성에게 절친은 필수요건처럼 비친다. 수짱에게는 이쁘고 똑똑한 영업부 사원 마이코라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 그런데, 유부남과 교제 중인가 보다. 친구라면 다 털어 놓을 법도 한데, 선을 그어 놓고 서로에게 먼저 말하지 않은 사항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라는 불문율이 있는 모양이다. 알지만 아는 척하지 않기, 우리는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은근 생각보다 많다는 걸 몸으로 깨닫게 된다.

 

다시 수짱의 이야기로 돌아가 우리 수짱은 어느 날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친구나 친하다고 생각하는 직장 동료에게도 말하지 않는 은밀한 이야기들, 예를 들면 자신이 일하는 카페에 물건을 납품하는 나카다 매니저에게 반해 연정을 품기도 하지만 선뜻 용기를 내서 고백하는 일은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다. 여성의 자존심이라고 해야 하나. 남자들에게는 용감한 녀석이 미인을 얻는다 따위의 무용담이 있지만 여자들의 세계에서는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결국 그렇게 키워가던 연심은 직장 동료 이와이 씨가 나카다 매니저와 몰래 연애하다가 결혼한다는 발표를 듣고 산산조각이 난다. 남자친구가 없는 미혼여성에게 결혼이란 참.

 

본 이야기가 끝나고 끄트머리에 한 컷으로 실린 만화가 너무 마음에 든다. 보통 때 같으면 신호등을 무시하고 무단횡단을 감행했겠지만 바로 옆에 꼬맹이가 서 있어서 그렇지 못했다는 둥,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다가 누가 오는 걸 빤히 알면서 모른 척하고 슬며시 닫힘 버튼을 눌렀다던가, 귀찮아서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거나 혹은 연애비법 책을 몰래 샀다거나 하는 그녀들의 소심한 고백에 공감 한 표다. 누구나 다 한 번 정도는 해 보지만, 슬쩍 모른척하고 넘어가기 신공이라고 해야 할까.

 

만화의 모든 이야기들은 결국 처음에 했던 질문인 지금 이대로 살아도 괜찮을 걸까라는 자문에 도달한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하며 살아도 아무도 우리의 용감한 수짱에게 뭐라고 말할 사람은 없겠지만 현재에 도무지 만족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필연적으로 안정과 자존감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던가. 게다가 절친인 마이코 마저 유부남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다른 남자와 만나 결혼을 결심하기도 하지 않았던가. 물론 수짱도 카페의 점장으로 승진하긴 했지만, 쥐꼬리만큼 올라간 월급에 비해 하는 일은 많아 매일 같이 피로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자신만의 공간에서 타인에게 인정을 받으며 사는 것도 괜찮다 아니 나쁘지 않다며 수짱의 이야기는 일단 마무리된다.

 

확실히 여자들의 싱글 라이프는 남자들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이 책을 통해 받았다. 남자들이 어디 친구네 집에 놀러 가면서 맛있는 케이크나 사쿠라모찌 혹은 디저트 같은 걸 사가지고 갈까. 나만 행복하면 된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면서도, 어쩔 수 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는 나의 자아를 들여다보는 것만큼 섬뜩할 일도 없지 않을까. 수짱의 어느 일기 문구가 정말 가슴에 와 닿았다. 그만큼 자신의 자존감을 키우는 일도 쉽지 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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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15-05-04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를 봤는데, 너무 과하지도 않으면서 공감되는 장면들을 적절한 거리 감각으로 표현한 게 좋더라구요 ^^ 저도 쉬고 싶은 날 휴식처럼 읽었습니다
 
주말엔 숲으로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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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지상에 실리는 책에 대한 정보를 유심히 지켜 보는 편이다. 이번 긴 연휴 때에는 어떤 신문(개인적으로 신문으로 생각하지 않는)에 소개된 마스다 미리 그리고 제목도 잃어버린 만화(미메시스 출간)에 대해 알게 됐다. 보통 책을 사서 보는 편인데, 굳이 만화라면 사서 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 걸까. 게다가 때마침 장난감/도서관에 장난감과 책을 반납하러 갈 일이 있어서 마스다 미리의 <주말엔 숲으로>가 있는지 검색해 봤다. 다행히 책이 있었고, 아직 누가 빌려가지 않아 바로 빌려볼 수가 있었다. 만화는 아무래도 쉽게 볼 수 있으니 내친 김에 몇 권 더 빌렸다. 새로 생긴 도서관이라 그런지 책의 상태가 양호하다.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 책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애용해서 그런지 너무 낡고 상태가 좋지 않아 빌려다 보기가 좀 그렇더라.

 

서설이 길었다. 그렇게 어제 빌린 책을 오늘 오후에 읽었다. 전투육아에 지친 몸을 이끌고 드러누었지만 쉽게 잠은 오지 않았고, 이럴 순간이야말로 마스다 미리 작가의 만화를 만날 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지친 몸을 이끌고 어제 빌린 책가방을 찾아 나선다. , 여기 있구만. 책장이 휘리릭 넘어가기 시작한다.

 

일본 작가가 그린 만화이니 당연히 배경은 일본, 그리고 우연히 당첨된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세워둘 주차공간이 없어 시골로 가서 살기로 작정한 삼십대 중반의 싱글 하야카와 씨와 그녀의 친구들인 세스코와 마유미가 등장한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되게 솔직하다. 타인에게 절대 피해를 주면 안된다는 일본인들의 심리가 보이는가 하면(심지어 친구들 사이에서도), 친구 집에 가면서 항상 무언가 선물로 들고 가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보니 회사에서도 일본 손님들이 올 적에 양갱이니 화과자 같은 소소한 선물들을 사가지고 와서 직원들에게 돌린 기억이 난다. 그렇군.

 

주인공 하야카와 씨는 시골에 살면서 전혀 시골에 동화되지 않은 자신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한다. 굳이 시골에 왔다고 해서 채소며 먹거리들을 직접 재배하지 않고, 도시인의 생활 스타일을 그대로 고수한다. 맛난 것들은 택배로 시켜 먹고, 도쿄에서나 먹어볼 수 있는 디저트 따위는 세스코와 마유미 양이 차례로 공수해준다. 게다가 계속해서 주말마다 방문하니 외로울 짬도 없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에게 기모노 입는 법이나 중학생을 지도하는 과외도 하고 바쁘다 바빠. 주말에 들른 세스코, 마유미와 함께 산에 오르기도 하고 호수에서 카약(나도 카약을 좋아해서 그런지 정말 부러웠다)을 타기도 하니 그야말로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그렇게 유유자적한 시골 마을의 삶이 하야카와 씨의 일상이라면, 도시에서 부대끼며 사는 싱글 여성들의 이야기는 세스코와 마유미가 맡고 있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일상의 이야기 속에서 사소한 일로 타인에게 상처 받기도 하고, 또 친구에게 위로도 받으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여성 제위의 이야기가 담백하게 다가온다. 마스다 미리 만화의 핵심 중의 하나는 그녀들이 일상에서 겪은 하지만 차마 타인에게 절대 하지 않을 속마음을 조금씩 열어 보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묻는 것만 바로 대답해 주면 될 텐데 굳이 장황하게 모두 알려 주려는 직장동료에 대한 불평이라든지, 길에서 부딪힌 남자가 자신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아 앙심을 품고 복권을 모두 그 남자가 확 죽어버리라는 뜻에서 연달아 4자가 들어가는 소심한 복수를 하는 그런 일들 말이다. 그래 나도 그런 적이 있었지 하며 무릎을 탁 치게 하는 공감 포인트를 작가는 정확하게 알고 있다. 이 양반 아주 선술세 그래.

 

그녀의 그림체는 화려하거나 정교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대충 그린 것 같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녀의 만화/글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진짜 스토리가 진하게 배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이야기가 우리나라에서도 먹히는 게 아닐까. 이 책만 하더라도 2012년에 나왔는데 내가 본 판본까지 해서 무려 13쇄나 찍었다니 말이다.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사람들이 겪는 일상의 이야기들은 아마 비슷한 모양이다.

 

굳이 한 가지 흠을 잡자면, 하야카와 씨의 멘토 같은 역할이다. 물론 작가 마음대로 그리는 만화니 뭐라 할 순 없겠지만 네 페이지 정도 되는 만화의 전반부에서 먼저 산 속 혹은 시골마을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스코와 마유미 양이 버거운 도시생활을 하다가, 멘토 하야카와 씨의 말을 떠올린다는 설정 말이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그 부분이 나는 좀 불편하더라. 바쁘게 지나가는 삶 가운데 그렇게 심오(?)하게 사유하고 연관지을 수 있는 여유가 있나 하고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아마도 난 그렇지 않기 때문에 공감할 수 없었겠지.

 

이 책을 읽고 나서 바로 <지금 이대로 괜찮을 걸까?><치에코 씨의 소소한 행복>을 연달아 읽고 있다. 우주정복이나 떼돈을 벌어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거창한 이야기 대신 연애와 결혼 그리고 삶의 소소한 행복이라는 주제가 마음에 든다. 이렇게 계속해서 읽다간 어쩌면 나 그녀의 팬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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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된 해산 의도된 오판 -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변론기
이재화 지음 / 글과생각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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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통합진보당을 지지한 적이 있었다. 아마 지난 19대 총선 때였을 것이다. 하지만 총선 직전에 벌어진 관악을 경선조작 사태와 이후 킨텍스에서 생중계된 중앙위 폭력사태를 보면서 이 정당에 대한 오만정이 다 떨어져 버렸다. 소위 당권파라는 사람들은 폭력사태가 마치 없었던 사건인 것처럼 그렇게 넘어가 버렸다. 당시 아무도 해당 사건에 대해 사과하는 사람은 없었다(이정희 대표가 같은 해, 9월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이미 그 때는 늦었다). 그렇게 괴물과 싸우면서 괴물이 되어 버린 정치집단을 보는 나의 시선은 냉소적이 되어 버렸다. 또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통합진보당의 대표선수라고 할 수 있는 이석기 의원이 참석해서 문제가 된 5.12 회합이 언론에 알려지는 과정에서 이정희 대표의 일관되지 않고, 오락가락하는 주장을 들으면서 이젠 그들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믿지 못하게 되는 수준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41219,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을 해산시켜 버렸다.

 

<기획된 해산 의도된 해산>은 통합진보당의 변론을 맡은 이재화 변호사에 의해 기술된 책이다. 정봉주의 전국구 팟캐스트를 들으며 익숙해진 목소리의 주인공이 들려주는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의 핵심은 있어서는 안될 사상 초유의 국가폭력이었다는 점이다. 18대 대선 선거 과정에 이정희 전 대표의 발언에 대한 정치보복성 재판이라는 지적에서부터, 보수 언론에 의한 온갖 마타도어가 난무하고 설상가상으로 합정동 RO모임 사실까지 공개되면서 해산심판은 법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다툼이 아니라 정치행위 그 자체가 되어 버렸다. 헌법재판소는 경기의 심판이 아니라, 주전선수가 되어 버렸다. 이재화 변호사가 상세하게 들려준 재판 과정을 살펴보면, 통합진보당 해산은 판결 이전에 (정치적으로) 결정된 사항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산심판에 임한 헌재의 재판관들은 실체적 진실보다 이념을 중시했다는 것이 이재화 변호사의 주장이다. 재판 과정에서 다수의 전향자들과 간첩들의 근거 없는 추측과 추론을 참고하면서, 서로 어긋나는 주장에 대해서는 외면해 버리는 일들이 빈번했다고 한다. 엄청난 분량(175천쪽)에 달하는 정보들을 과연 재판관들이 숙지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실제로 나중에 판결이 내려진 뒤에 오류를 바로 잡는 일도 벌어지지 않았던가. 사실 법에 문외한인 일반인이 복잡한 법리를 다투는 과정을 제대로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왜 그렇게 정당해산이라는 중요한 과제를 서둘러서 진행했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불과 한 달 뒤에 있을 대법원 판결에서 이석기 전 의원에 대한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고, 지하혁명조직(RO)의 실체도 인정하지 않았다. 헌재와 대법원의 서로 배치되는 판결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대법원 판결을 예측하고, 무리하게 서둘러서 판결을 진행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정당해산심판에 대한 국제기구인 베니스 위원회의 권고 따위는 가볍게 무시되었고, 통합진보당은 그렇게 역사가 되었다.

 

헌재 판결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이석기 내란음모죄와 관련된 지하혁명조직으로 알려진 RO역시 서울고등법원과 대법원은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유령조직이라고 판단했지만, 헌재에서는 RO가 구체적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고 발표했다. 과연 우리나라가 고작 그런 엉터리 조직 하나에 휘둘릴 정도로 기초가 튼튼하지 않단 말인가. 구시대적 사고를 가진 두 명의 내란선동자(이석기와 김홍열)10만 명의 당원을 가진 조직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가. 또한 강령이 공개된 공개 정당에 불순한 숨은 목적이 있다고 판단한 점에 주목할 만하다. 일부 전향인사들의 추정과 개인의 과거 기록을 바탕으로 한 간접증거가 아니라 직접증거를 제시하지 않고 재판을 진행한 점에 대해서도 저자 이재화 변호사는 증거재판주의에 위배되는 사항이라고 일침을 놓는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당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에서의 부정행위는 일반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었는데 당신 온라인 투표 부정행위에 대한 검증을 맡은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가 최근 고 성완종 씨의 녹취록을 JTBC에 무단으로 유출하면서 논란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어느 라디오 방송에서는 이 전문가의 행위가 절취에 해당한다고까지 말했는데, 그가 여러 언론매체에서 그간 주장해왔던 부분들에 대해서도 진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비례대표 경선 부정행위와 관악을에서의 경선조작 이슈, 중앙위 폭력사태 등은 진보의 도덕성에 타격을 끼쳤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선거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직을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헌법재판소가 어떤 법리적 근거도 없이 박탈했다는 점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설사 위헌정당이라고 하더라도, 그 소속 국회의원이 의원직을 유지하는지 혹는 상실하는지에 대한 어떠한 헌법이나 법률 상의 명문화된 규정이 없다는 사실도 이재화 변호사는 예리하게 지적한다. 어쨌든 통합진보당의 해산결과 치러진 지난 4.29 재보선에서 입증되었듯, 기존의 통합진보당은 더 이상 정당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진중권 교수가 말했듯이, 그냥 놔두면 알아서 소멸될 정당을 굳이 해산심판이라는 무리수를 둔 이유가 과연 무엇이었는지 곰곰 생각해 보게 된다.

 

마르틴 니묄러 목사의 시 <그들이 처음 왔을 때>를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 사건에 대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침묵하지 않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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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의 분실물센터
브룩 데이비스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수첩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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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세를 타지 않은 새로운 작가의 글을 읽는다는 건, 즐거울 수밖에 없다. 보통의 경우 그 작가의 스타일이나 문체, 기법 등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상태에서 도전하기 때문에 신천지를 개척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그런 점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브룩 데이비스의 글은 나에게 매력적이었다. , 책을 읽기 전에 트위터로 그녀의 계정에 올라온 사진들을 검색해 봤는데 재밌는 사진들이 많았다. 책이 좋아 쓰는 것 말고도 서점에서 다른 사람의 글을 파는 일도 한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혹시 서점에서 자신의 책도 그렇게 적극적으로 홍보하는지 궁금하다.

 

<Lost & Found>라는 원제를 가진 브룩 데이비스의 <밀리의 분실물센터>의 주인공은 바로 7살 먹은 밀리 버드라는 꼬마 소녀다. 밀리의 삶은 기구하다는 레테르를 붙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아버지는 암으로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뜨시고, 홀로 남은 엄마는 밀리를 여성 속옷매장에 밀리를 버려두고 어디론가 떠나 버렸다. 소설의 초반에 밀리가 자신이 목격한 죽음을 기록하는 데스노트에 아버지의 이름을 올린 것을 보고, 한동안 고개가 갸웃거려졌었는데 소설이 진행되면서 바로 이해가 됐다. 아버지도 없고, 엄마도 없는 꼬마 소녀가 과연 이 험난한 세파를 어떻게 헤쳐 나갈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이 소설은 전형적인 로드 무비의 성격을 띠고 있다. 혹은 어려서 본 만화 <엄마찾아 삼만리>의 스토리라인라고나 할까. 소설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점이 왜 밀리의 엄마는 밀리에게 거짓말을 하고 떠났을까라는 점이었는데, 작가가 그 점은 끝까지 속이 후련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솔직히 꼬마 소녀가 혼자 힘으로 광대한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을 횡단한다는 건 누가 봐도 가당치 않은 일일 것이다. 그래서 브룩 데이비스 작가는 그녀의 사이드킥으로 각각 배우자를 잃은 홀아비 터치 타이피스트 칼(87)과 성격이 괴팍한 과부 애거서 팬서(82)를 배치했다. 밀리의 이웃에 사는 애거서의 동기유발이 더 설명이 가능한데, 아무래도 젊은 사람보다는 나이 든 캐릭터가 그리고 각자 누군가를 잃었다는 점에서 밀리를 도와야겠다는 개연성 성립에 그럴싸하지 않나 싶다. 그렇게 브룩 데비이스가 창조한 핍진성의 서사 구조는 나름대로 소설의 중반까지는 그런 대로 순기능을 발휘한다.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부터 너무 많은 우발적 요소들과 사건들이 개입하면서 급속하게 흥미를 떨어뜨린다.

 

소설을 차분하게 다 읽고 나서, 작가의 후기까지 다 읽은 다음에야 비로소 왜 그렇게 작가가 소설에서 죽음이라는 주제에 집착하는지 깨닫게 됐다. 브룩 데이비스는 밀리를 자신의 얼터 이고(alter ego)로 삼아,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사실에 대한 하나의 미안한 마음을 소설이라는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 겨우 일곱 살 먹은 꼬마 소녀가 끊임없이 모두가 죽을 거라고,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외치고 다니다니.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면서도, 어느 순간에라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현실을 각성시키는 밀리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싶지 않았을까.

 

저마다 극복해야 할 트라우마를 가진 밀리, 터치 타이피스트 칼 그리고 버럭쟁이 애거서 팬서 삼각 편대를 중심으로 한 소설의 기본구성은 흥미롭다. 어느 특정인의 시선이 아닌 균형 잡힌 시선으로 소설을 기술하겠다는 신진작가의 기백을 엿볼 수 있다. 문제는 주인공에 대한 집중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점인데, 칼이나 애거서의 그것에 비해 밀리의 이야기에 힘이 부치는 느낌이다. 어쩌면 밀리가 아이라는 점까지 고려한 작가의 의도였을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소설에서 가장 재밌으면서도,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은 밀리 일행의 중간기착지였던 캘굴리에서 주정뱅이 삼총사와 한판 붙은 액션 활극 파트가 아닐까 싶다. 어쩌면 이것 역시 작가가 구상한 생소하면서도 예측 불가능한 재미의 일부분일지도. 엔딩 부분도 너무 급하게 처리되면서, 영화 <Birdy>의 결말을 연상시킨다.

 

소설을 읽으면서 오래전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광대한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을 누비다가 우연히 들른 간이매점에서 불타오르는 석양을 보며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상에 젖어 끼니를 때우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남반구에서만 볼 수 있다던 밤하늘의 남십자성도. 젊음이 영원할 것처럼 생각되던 그 시절에, 꼬맹이 밀리처럼 세상의 모든 것이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했을지 문득 궁금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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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shvitz 2015-05-03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을까 하고 고민했었는데 읽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