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리딩데이트 : 2015531일 오전 1022

 

책을 읽다 보면, 읽기도 전에 재밌겠다는 감이 오는 책이 있다. 최근 내게 그런 책이 별로 없었는데, 오늘 막 읽은 프레드릭 배크만의 <오베라는 남자>는 읽기 전에 바로 그런 감이 왔다. 문제는 워낙에 할 일이 많아서, 신입직원 구직공고도 내야하고 인터뷰 일정도 잡아야 하고 또 월말 결산까지 겹쳐서 단박에 다 읽으려던 나의 계획은 일찌감치 물건너 가고 한가한 주말 새벽을 이용해서야 비로소 다 읽을 수가 있었다. 나의 감대로 59살 먹은 오베의 이야기는 정말 최고였다.

 

이야기의 시작은 스웨덴의 어느 아이패드 매장에서 시작된다. 책의 말미에 도착하면 최신 문명의 이기를 배척하는 우리의 오베가 외계의 암호 같은 아이패드 기기와 관련된 3G128기가바이트니 하는 사양 설명을 들으며 매장직원과 전투를 벌였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프레드릭 배크만 작가는 초짜 작가답지 않게, 아주 정교한 이야기 틀을 이용해서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한 남자의 인생을 조심스럽게 독자에게 전달하는데 성공했다.

 

우리의 오베는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기묘한 행동으로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우선 마을의 방범대원처럼 순찰을 돌며 평소와 다른 점들을 하나하나 체크한다. 그리고 자신의 집에 세상에서 가장 튼튼한 고리를 만들겠노라고 선언한다. 문제는 그 이유다. 얼마 전 암으로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내 소냐를 잃은 이 남자는 그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 학교 교사로 말썽쟁이 아이들에게 셰익스피어 읽는 법을 가르쳤다는 소냐는 까칠하고 퉁명스러운 오베의 세상의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추 같은 존재였다는 것이 소설의 전개와 더불어 양파껍질 벗기듯 하나씩 들어난다. 소냐 없이 살 수 없다고 판단한 오베라는 남자는 결국 스스로 삶을 마감할 것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그것이 바로 오베가 세상에서 가장 튼튼한 고리를 만들겠다고 결심한 이유다.

 

문제는 스웨덴 국민차라고 할 수 있는 사브 차만 타고,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스스로 해야한다는 자수성가를 원칙으로 삼은 오베에게 난데없이 등장한 이웃 멀대 패트릭과 이란 출신의 그의 아내 파르바네 가족의 출현이다. 어디 그 뿐인가, IT 기술자라는 이웃의 지미라는 청년부터 시작해서 우편배달 일을 하는 아드리안, 길고양이, 아드리안의 친구 동성애자 미리사드 그리고 지역신문 기자 레나까지 총동원되서 오베의 죽음을 방해하기에 나선다. 물론 그들이 오베의 결심을 알고 그의 행동을 저지하려는 것은 아니고 하나 같이 우연에 바탕한 필연으로 오베의 삶 속에 풍덩 뛰어든 것이다.

 

소설에서 아주 유용한 플래시백 기법으로 배크만 작가는 오베라는 남자가 어떻게 해서 자신에게 과분하기만 한 소냐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지를 그리고 40년 지기 루네와 무슨 이유 때문에 철천지원수 사이가 되었는지에 대해 마치 신문연재소설 아니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에서 궁금하면 다음주를 기대하시라는 기법으로 독자를 홀리기 시작한다. 물론, 그렇게 유혹된 독자는 오베라는 남자의 이야기에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술술 책장을 넘기게 된다. 도대체 이 작품이 작가의 데뷔작이 맞는 걸까? 책을 다 읽고 나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베라는 남자는 타고난 사랑꾼이었다. 아내 소냐를 위해서라면, 그녀가 좋아하는 카페에 앉아 신문을 몇 시간이 읽을 수 있고 스페인 여행에서 당한 불의의 사고 때문에 휠체어를 타게 된 소냐의 출근을 위해 직접 휠체어 전용 레일을 깔 수 있는 그런 남자다. 소설은 중반에서 소냐와 오베의 과거사를 헤집으면서 온갖 다양한 캐릭터들이 연출하는 코믹한 상황에서 벗어나 감성을 자극하는 오베라는 남자의 진면모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다. 당연히 오베는 그런 남자라는 사실에 독자를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렇게 독자의 공감대를 얻는데 성공한 배크만 작가는 이제 마지막 고지에 기다리고 있는 피날레를 향해 감동이 전제된 마지막 플롯을 진군시킨다.

 

작가는 우리 사회에서 점차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캐릭터들을 <오베라는 남자>에 대거 등장시키면서 다양성을 받아들이라고 조용한 목소리로 주장한다. 동성애자나 비만이 우리가 가진 편견처럼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니라고, 가치중립적인 점에서 바라보면 오베가 선택한 것처럼 공존가능하다는 증명해 보인다. 다문화 가족인 파르바네/패트릭 패밀리도 마찬가지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성장배경이 전혀 다르지만, 보편적 인류애는 어디에서고 통하기 마련이다. 아드리안이 대표하는 젊은 세대와의 소통도 불가능한 주제는 아니다. 사브만을 고집하던 오베가 아드리안이 도요타를 사는 것을 허용하는 장면은 세대 간의 타협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그렇게 진중한 주제만으로 소설을 이끌어 가는 것만은 아니다. 퉁명스러운 오베라는 캐릭터를 이용해서 아드리안에게 블랙커피를 주문한 오베에게 우유를 넣느냐고 아드리안이 묻자, “우유를 넣으면 그게 블랙커피냐?”고 심퉁맞게 대꾸하는 장면으로 대변되는 유머는 정말 최고였다. 그렇게 프레드릭 배크만 작가는 비빔국수처럼 쉽게 구할 수 있는 소재를 이용해서 감칠맛나는 <오베라는 남자>라는 멋진 이야기를 완성해냈다. 그가 발표한 다른 두 권의 책도 곧 소개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이 정도 실력의 작가의 책이라면 기대가 된다.

 

무엇이든 새로운 것이 좋고, 정의와 페어플레이, 근면한 노동 같은 전통적 가치들이 날로 퇴색해가고 있는 21세기에 19세기 스타일의 남자 오베는 어쩌면 돌도끼를 든 크로마뇽인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곁에 이렇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우직스럽게 고집하는 멋쟁이 사랑꾼 한 명 정도는 있어도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겉으로 보기에 까칠하고 퉁명스럽기 이를 데 없지만, 오베 같은 남자야말로 흔히 만나기 쉽지 않은 사랑을 제대로 아는 그런 멋진 남자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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