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가득한 심장
알렉스 로비라 셀마.프란세스 미라예스 지음, 고인경 옮김 / 비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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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를 읽었다. 전후 부모님의 얼굴도 모른 채 고아원에서 구김살 없이 생활하는 미셸이 우리의 주인공이다. 이 아름다운 동화의 시공간적 배경은 1946년 전쟁의 상흔이 스치고 간 프랑스의 작은 마을 슬롱스빌이다. 이 작은 마을에 누군가가 옷을 훼손하는 사건이 잇따른다. 그것도 별 모양으로! 소문에 의하면 9살 먹은 “가위 소년”이 범인일거라는 추정이 난무한다.

아마 눈치 빠른 독자라면 바로 눈치를 챘을 것이다. 그렇다, 바로 마을에서 이런 옷을 자르는 망나니짓으로 분노와 공포를 불러일으킨 주범이 바로 미셸이다. 어떤 행동에는 반드시 원인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미셸은 왜 가위 소년이 되어야 했을까? 이유는 바로 미셸의 소울메이트 에리가 원인을 모르는 병으로 병원에 실려 가면서부터 시작된다. 심장병으로 사경을 헤매는 에리를 위해 미셸은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는 심정으로 나선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에르메니아 할머니로부터 에리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민간 치료법을 듣고 바로 행동에 착수한다.

수년간의 고아원 생활로 사랑결핍증 때문에 심장병을 앓게 된 에리를 위해 슬롱스빌 마을에서 서로 다른 9가지 사랑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 그이들 몰래 별 모양의 옷조각을 가져오면 별 심장을 만들어 주겠다고 에르메니아 할머니는 제안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동화는 전래의 신화의 법칙을 따른다. 주인공 영웅에게 시련이 닥치고, 그 시련을 극복해야만 영웅은 사랑이든 아니면 그가 원하는 성공을 얻게 된다는 기본 법칙 말이다. 물론 우리의 주인공 미셸이 그런 영웅급 주연은 아니지만 어쨌든, 9살짜리 꼬마 소년에겐 쉽지 않은 임무다.

어려운 일이라고 포기한다면 <별이 가득한 심장>의 존재 이유가 없겠지. 우리의 주인공 미셸은 바로 절친 에리를 구하기 위해 겁 없는 사랑의 항해를 개시한다. 미셸의 에리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그가 온갖 난국을 헤쳐가게 만드는 순수한 에너지의 근원이다. 아홉 가지 사랑의 비밀은 책을 읽어 보시면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단 한 가지도 말해주지 않으면 아쉬울 테니 가장 흥미롭게 읽은 “책에 대한 사랑”은 짚고 넘어가자.

도서관에서 일주일에 책 한권 읽기를 사람들에게 적절한 맞춤 처방을 해주는 메르시에 부인과 별 심장을 위한 옷조각 모으기에 절박한 미셸의 대화는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메르시에 부인의 잠언은 많은 독서가들이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다.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읽은 걸 사랑해야 한다고.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그 행위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란다. 그리고 부인은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창조하는 모든 아름다운 것에 접근”해야 한다는 말로 자신의 주장을 마무리한다. 참으로 멋지다 멋져!

고대 그리스 신화의 헤라클레스처럼 어려운 임무를 마친 미셸은 에르메니아 할머니의 도움으로 에리를 무사히 구해내고 행복하게 잘 살게 되었다는 그야말로 동화스러운 결말이다. 바로 뒤따르는 갖가지 사랑에 대한 명언과 바르셀로나 출신 작가 알렉스 로비라 셀마의 실제 체험기는 소설의 감동을 120%로 증폭시킨다. 소설 <별이 가득한 심장>은 그렇게 재미와 교훈이라는 이야기가 이룰 수 있는 두 가지 타깃을 모두 명중시킨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찾은 다음의 격언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나도 알렉스 로비라 셀마에게 한잔 사고 싶어졌다.

좋은 책이란, 다 읽고 나서 저자에게 한잔 사고 싶은 마음에 드는 그런 책이다.
- 마틴 에이미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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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왜 반복되는가 - 공황과 번영, 불황 그리고 제4의 시대
로버트 라이시 지음, 박슬라.안진환 옮김 / 김영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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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라는 표현이 있다면 바로 이 책 로버트 라이시 교수의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가 해당될 것 같다. 지난주에 읽은 김광기 씨가 쓴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를 통해 알게 된 책인데, 바로 주문해서 단박에 읽었다. 어느 국회의원이 주변에 적극적으로 일독을 권한다는 말도 들었는데, 과연 그럴만했다.

보통 경제 분야 서적은 읽지 않는 편인데, 나같이 편독이 심한 독자도 도저히 읽지 않고는 배길 도리가 없는 만드는 그런 마술 같은 책이라고 해야 할까. 지난 세기가 정치권력의 시대였다면, 현재와 미래는 경제권력의 시대가 아니던가. 그런 점에서 로버트 라이시 교수의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는 특별한 시선을 제공한다. 2008년에 전 세계를 경제공황의 위기에 몰아넣었던 대불황(the Great Recession)은 단순하게 월스트리트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나 주기적인 불황이 아닌 구조적 모순에 의한 것이라는 것이 로버트 라이시 교수의 주장이다.

미국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도덕률과 가치가 붕괴되고, 사회적 합의가 깨지면서 소수의 부자들에게 국가와 사회가 생산해낸 소득이 집중되면서 발생한 심각한 부작용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과 경쟁국의 사무자동화 그리고 아웃소싱을 바탕으로 한 고용 없는 성장시대는 실질임금의 삭감을 유발했다. 경제성장의 낙수효과가 일반 대중이 아닌 월스트리트의 투기꾼과 트레이더 그리고 대기업의 CEO에게만 집중되면서 미국 중산층이 예전에 대번영 시대처럼 소비하기 위해서는 빚을 내는 수밖에 없었다. 대불황 전까지 모기지 대출을 받아 마구잡이로 빚을 내던 중산층은 마침내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자산 가치의 하락과 실업이라는 위기에 처했다.

지난 세기 비참했던 대공황의 전야 같은 상황에서 로버트 라이시는 연준 위원장 매리너 에클스가 남긴 교훈을 들려준다. 심각한 소득 분배의 왜곡과 집중은 결국 국가 파산이라는 심판의 날을 초래할 것이라는 것이 로버트 라이시 교수가 이 책에서 말하는 핵심적인 주장이다. 근로자가 소비자라는 말은 새삼스럽지가 않다. 부자들의 비생산적인 소비가 아닌, 중산층의 생산적인 소비와 수요 발생을 위해 실질 임금의 상승과 일자리 창출이야말로 지금 미국에게 가장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정치자금 후원이라는 미끼로 정치권력을 좌지우지하게 된 경제권력의 주체들이 금융자산 소득에서 엄청난 세제 혜택을 받으면서 그들이 부담해야 했던 국가 재정의 부담이 중산층에게 돌려지게 된 사실도 저자는 빠트리지 않는다. 대불황의 위기에서 엄청난 긴급 구제 금융으로 월스트리트를 지원했지만, 서민과 중산층에게 돌아온 것이 무엇이었나? 위기에서 벗어난 월스트리트의 대주주와 트레이더 그리고 CEO의 어이없는 보너스 잔치에 시민들은 분노했다. 이런 분노의 상황에서 성공의 사다리로 올라갈 수 없게 된 시민들이 “이웃집 암소”를 죽이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로버트 라이시 교수는 경고한다. 히틀러의 등장 같은 극단적 국가주의 등장에 선행한 개혁이야말로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로버트 라이시 교수는 정확한 현상 진단을 바탕으로, 역사를 통해 입증된 사실들을 독자에게 들려준다. 그는 현실에 대한 비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한다. 연방 정부의 균형재정을 위한 역소득세와 탄소세 같은 세제 개혁을 비롯해서, 건전한 중산층 양성을 위한 사회보장제도의 강화, 의료개혁안, 실업자들을 위한 재고용 정책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기 위한 선거자금법의 ‘백지신탁제도’의 도입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사회적 기본 합의를 바로 세우는 이런 개혁이야말로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그는 말한다.

공교롭게도 2008년 대불황의 위기가 다시 재현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시장을 휩쓸고 있는 시점에 로버트 라이시 교수의 책을 읽게 됐다. 잠시 진정된 것처럼 보이던 국제 금융시장은 유럽발 금융위기로 요동치고 있는 중이다. 특히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주말 주가와 환율이 널뛰고, 각종 경제지표가 일제히 하향세로 돌아선 것을 보면 대불황의 그림자가 닥쳐오고 있다는 느낌이다. 모름지기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했다. 그런 차원에서 로버트 라이시 교수가 이 책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에서 제시한 경제 처방전은 사회 기득권층이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 같다.

역설적이지만 위기는 기회다. 차제에 무너진 사회적 기본 합의를 바로 세우는 개혁을 뒤로 미룬다면, 심판의 날에 맞이할 파국은 더 이상 우리의 결정을 기다려 주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인 유일한 선택을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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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구의 문인기행 - 글로써 벗을 모으다
이문구 지음 / 에르디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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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책 좀 읽는다고 자부하는데, 이문구 선생이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본다. 어쩌면 국내문학보다는 해외문학 읽기에 치중하는 독서 탓이리라. 이 분이 쓰셨다는 대표작 <관촌수필>도 이름은 들어 보았는데 아직 읽어본 적이 없다. 부랴부랴 이문구 선생의 행적을 살펴 보니 문인으로서 참으로 바지런한 삶을 사셨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지난 2003년에 작고하셨다고 하는데, 돌아가신지 8년이나 지난 후에 선생의 글을 처음 읽어 보게 되었다.

아무래도 작가의 글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어서 책 소개란을 자세히 읽어보니 사회풍자소설에 능하셨고, 토속어 사용에도 일가를 이루셨다고 한다. 안그래도 책을 읽으면서 곳곳에서 선생의 특기에 사전 찾는 손이 바빴다. 우리 문학을 주름잡은 21명의 문인에 대한 글 중에서 첫 번째 주자는 김동리 선생이었다. 해방후 좌우간의 이데올로기 투쟁이 치열하던 시기에 좌파 진영에 맞서 자신의 지론인 순수문학 옹호에 나섰다고 한다. 이문구 선생은 언제나 문객과 식객이 들끓던 김동리 선생에 대한 감상도 조근조근하게 들려준다. 이렇게 사람 좋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어 신인들의 작품을 심사할 적에는 또 원리원칙주의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단다. 다만, 친일문학에 대한 김동리 선생의 단상은 좀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부분이었다. 그나마 춘원이 마음 놓고 한 친일 행각은 인정하니 다행이라고나 할까.

신경림 선생과의 일화도 재밌는 부분이 많다. 21세기 컴퓨터로 글을 쓰는 세대에도 이런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술도 마다하지 않는 문인들의 비화가 생소하게 다가왔다. 시인의 노모에게 아들의 행적에 대해 이문구 선생이 묻자 구수한 사투리를 쏟아내는 어머니의 입담도 인상적이다. 우리나라에서 노벨문학상 후보로 적극 밀고 있는 고은 시인의 이야기는 더 풍성하다. 그리고 보니 아직 제대로 고은 시인의 글을 읽어본 적이 없구나, 아쉽다 아쉬워.

이문구 선생의 문인 행장기에는 참으로 다양한 인물군이 등장한다. 인도 갠지즈 강에서 뱃사공을 마다하지 않는 이가 있는가 하면, 날마다 두주불사를 마다하지 않고 그 다음날에는 금주선언을 사업으로 삼는 시인이 있는가 하면, 기별 없이 상경해서 낮술을 해도 반가운 이가 있다. 작금의 문단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 시절에는 참 술들을 많이도 마셨는가 보다, 만 잔을 함께 했을 정도라니. 마치 시를 짓는데 술이 빠지면 시흥이 떠오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 문우 사이에 쌓이는 그런 흥취가 아직도 남아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목차에 나온 인물 중에 가장 눈길을 끄는 이가 두 명 있었다. 한 명은 아직도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황석영과 지금은 고인이 된 서정주였다. 이문구 선생은 전자를 “실수 없는 1970년대 작가”이자 노동운동가 못지않은 실력을 갖춘 “의리의 사나이”라고 평가했는데, 그런 평가가 새로운 밀레니엄에는 좀 들어맞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기대(?)가 되는 인물은 바로 맨 마지막에 실린 미당편이었다. 이문구 선생이 스승으로 모셨다는 미당의 친일시를 실천문학사에서 발간된 <친일문학선집>에 넣었다는 이유로 송구스러워 했다는 글로 21명의 문인에 대한 행장기를 마무리 짓는다.

예전에 랜덤하우스에서 이문구 전집 26권 중의 하나로 나왔다가 조용히 절판된 책을 개정증보해서 다시 나온 책이 바로 <이문구의 문인기행>이란다. 선생이 문인으로 혹은 기자로 만난 21명의 한국 문단을 주름 잡았던 인사들에 대한 생생한 육성 기록이 인상적이다. 한 가지 흠이라면, 개인의 친분 관계에 따라 냉정한 비판이 결여된 점이 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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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녀를 위한 아르바이트 탐정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3
오사와 아리마사 지음, 손진성 옮김 / 비채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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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사메지마 형사가 등장하는 <신주쿠 상어>(제목 한 번 기가 막히게 뽑았다) 이전에 오사와 아리마사에게는 <왕녀를 위한 아르바이트 탐정>이 있었다. 주인공은 방년 17세의 사이키 류, 고3인 이 녀석은 공부해서 대학에 갈 생각은 하지 않고 무슨 요행수로 도쿄대에 입학할 궁리만 한다. 사이키 인베스티게이션의 사장이자 아버지 료스케는 이런 아들을 말릴 생각은 안하고 맞담배질도 마다하지 않고, 알바로 애용한다.

어쨌든 실력은 인정받았는지 이런 사이키 듀오에게 일감이 주어진다. 동남아 라일 왕국에서 일본으로 유학을 올 예정인 미오 왕녀를 호위하라는 주문이다. 어떻게 감을 잡았는가? 그렇다 17살 동갑내기 류와 미오의 달달한 로맨스가 이 탐정물을 이끌어 가는 원동력 중의 하나다. 미오 왕녀 아버지 국왕은 암에 걸려 임종이 다가오면서 왕위계승권 문제로 온 나라가 법석이다. 천연자원 부국인 라일 왕국의 유력한 왕위계승자를 노린 암살단이 그녀의 일본 입국과 동시에 활동을 개시한다.

아, 한 가지 깜빡했다. 미오 왕녀의 어머니는 일본 출신 하나코 여사로 미오 역시 어머니의 모국어에 능통하다. 그러면 그렇지, 그 정도 설정 없이 탐정물을 쓸까! 공항에서부터 불의의 독침 공격을 받은 미오 왕녀를 료스케는 의외의 장소로 피신시킨다. 바로 친구가 운영하는 러브호텔이다. 사이키 부자의 철통 보안에도 불구하고, 미오 왕녀를 노린 공격은 멈추지 않는다. 업계에서 인정받는 저격수 드릴과 폭발물 전문가 퓨즈까지 그녀의 목숨을 노리고, 라일 왕국 정글에 위치한 카마르 교단이라는 비밀종교집단까지 미오 왕녀에게 덤벼든다. 자, 이 철부지 탐정 알바는 어느새 사랑에 빠져 버린 미오 왕녀를 구해낼 것인가.

장르물 <왕녀를 위한 아르바이트 탐정>에는 일본 경제에서 버블이 터지기 직전의 자신감이 배어 있다. 1980년대 세계 경제를 주무르던 일본 기업의 엄청난 흑자 행진에 힘입어 쇼와시대 소위 ‘대동아전쟁’을 통해 무력으로 점령하려던 동남아 제국에 경제협력이라는 다른 방식으로 진출하던 일본의 모습이 읽혔다. 일부다처제 국가의 국왕이 일본이 왕비를 맞아, 왕녀를 낳고 그녀가 어머니의 나라 일본으로 유학을 온다는 설정이 이 점을 뒷받침한다. 영국이 자국의 식민지 국가였던 나라들을 영연방이라는 이름의 큰 테두리에 엮은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의 변종이라고나 할까.

면허도 없는 고등학생 사이키 류가 다양한 차종을 모는 것도 비현실적이지만, 고도로 훈련된 킬러들과 라일 왕국의 비밀경찰과 맞서 싸우는 장면은 영화 <다이 하드>에 나오는 브루스 윌리스 찜 쪄 먹을 만한 허풍이다. 게다가 당장 눈앞으로 다가온 입시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거의 첫눈에 반하다시피한 순진한 왕녀를 구하기 위해 말도 통하지 않는 라일 왕국의 정글로 뛰어드는 건 정말 현대판 돈키호테의 다름 아니다. 하긴 일본에서 라일 왕국으로 가기 전에 며칠 집중적으로 들은 미군 방송으로 영어 실력을 늘리는 걸 보면 사이키 류의 도쿄대 진학이 마냥 불가능할 것 같진 않다.

개인적으로 주인공 사이키 류보다 더 눈길을 끄는 캐릭터는 바로 그의 아버지 미스터 사이키 료스케였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도 어떤 수를 내어, 척척 문제를 해결하는 장면에선 정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원래 아들 류가 자신의 보조 역할이었는데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사이드킥 역할을 충실하게 해낸다. 역시 연륜이 주는 경험은 철부지 아들 류에게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작가 오사와 아리마사는 탐정물의 공식에 충실하면서 영화 <로마의 휴일>을 연상시키는 달달한 청소년들의 로맨스는 물론이고, 정글에서 대정부 투쟁을 벌이는 게릴라를 맛보기로 첨가하고 비밀종교집단까지 아우르는 스케일에 그만 반해 버렸다. 철부지 알바 탐정의 활약이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속도감 넘치는 전개 하나만큼은 인정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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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 - 지금 미국을 다시 읽어야 할 이유 52
김광기 지음 / 동아시아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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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에 앞서 제목을 한 번 분석해 보자. 우리가 아는 미국은 어떤 나라일까? 제목에서 시사하듯 아마도 풍요와 번영의 상징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김광기 씨는 당당하게 그런 미국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의 출발점은 바로 그런 인식의 변환에서 시작한다.

지난 세기 두 번의 세계대전을 통해 대영제국을 대신해서 세계의 헤게모니와 경찰국가로 군림해온 제국의 황혼, 아니 좀 더 신랄하게 표현하자면 제국의 몰락을 우리는 지금 눈으로 목격 중이다. 한 때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해온 미국이 과거의 영화를 뒤로 하고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지난 1980년대 이미 일본과의 무역경쟁에서 밀린 미국은 재정적자와 경상수지적자(무역적자)라는 쌍둥이 적자로 한 차례 홍역을 겪은 바 있다. 하지만, 클린턴 정부 시절 IT 산업과 금융시장의 대호황으로 제국의 위신을 다시 갖추는가 싶었다. 하지만 당당히 미국 역대 최악의 대통령이라 불릴 법한 조지 W. 부시가 재임 8년 동안 재정흑자 기조를 한 방에 날려 먹고, 임기 말인 2008년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미국의 재정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으로 치달았다.

어쩌면 후임자인 버락 오바마는 전임자였던 부시 행정부가 저질러 놓은 뒤처리를 하느라 임기 내내 고생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의 저자 김광기 씨는 거시적인 시각과 미시적 시각을 번갈아 사용하면서 무엇 때문에 오늘날 미국이 이 지경에 도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냉정한 분석을 보여준다. 우선 재정적자라는 측면에서 거의 파산에 도달한 주정부과 연방정부의 현실을 도마 위에 올린다. 세입과 세출의 균형이라는 지방정부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채, 지방채를 남발하면서 이미 빚으로 만신창이가 된 주정부는 세출 삭감을 위해 과감하게 메스를 들이댔다. 그 중에서 가장 손쉬운 먹잇감은 바로 교육비와 복지비용이었다. 그 결과, 우리네 학부모님들이 그렇게 유학 보내고 싶어 하는 미국 공교육의 현실은 참담하다. 재정 확보를 위해 교원을 마구잡이로 퇴출시키고, 캘리포니아 주지사인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디지털 북 도입을 주창하지만 학생들에게 제공할 종이책을 구입할 수가 없어 부린 꼼수에 지나지 않는단다.

어디 이것뿐인가? 교도소에 수감된 범죄자들을 먹고 입히는데 드는 비용은 학생들에게 들어가는 비용보다 훨씬 더 많다. 미미한 범죄의 재소자나 형기가 얼마 남지 않은 재소자들을 비용절감을 목표로 사회에 내던진다. 만성적인 경기 불황으로 실업 때문에 절대 빈곤계층으로 전락한 노숙자들을 타 주에 떠넘기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인들이 최고의 휴가지로 꼽는 하와이에서는 노숙자들을 다른 주에 보내려고 엄청난 예산을 책정했다고 한다. 기가 찰 노릇이다. 이것이 과연 우리가 아는 미국의 실체란 말인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연방정부의 재정적자에 비하면 지방정부의 재정문제는 정말 약과에 불과하다. 일례로 지난 여름 국제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 국가의 신용등급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촉발된 미국의 채무불이행(defalut) 위기는 이제 현실로 다가왔다. 미국 행정부가 “채무한도증액”을 늘리지 않는다면 국가 부도 선언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거의 모드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다룬 바 있다. 민주, 공화 양당의 마지막 협상으로 간신히 국가 부도 위기는 넘겼지만, 그동안 쌓인 천문학적 수준의 국가 부채의 이자 갚기에도 버거운 현실이다. 재정개혁과 증세를 통한 세입의 증가 도모 그리고 금리인상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지만, 국민들의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정치인들이 선뜻 자기 목을 걸고 그런 엄청난 개혁에 동의할지는 미지수다.

김광기 씨는 또 다른 문제로 미국 시민들의 전통적인 “가불경제”를 미국 파산의 주범으로 지적한다. 그동안 부동산을 보금자리로 인식해오던 미국인들이 더 많은 이윤의 창출이라는 미명 아래 만들어진 각종 파생상품과 낮아진 은행대출의 문턱 때문에 너도나도 빚을 내서 부동산 투기에 나섰다가 2008년 경제위기 때 직격탄을 맞아 경기불황, 실직, 부동산압류 그리고 빈곤층으로 전락하게 된 사이클을 분석한다. 그리고 보니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심심찮게 들리는 하우스 푸어(house poor)란 표현이 남의 일이 아니구나 싶다.

1부에서 미국의 여러 문제들을 냉정하게 진단했다면, 2부에서 김광기 씨는 자신의 전공인 사회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그에 의하면, 작금에 미국이 겪는 위기는 바로 도덕적 해이와 최고의 가치를 상실하면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이다. 몰락하는 제국에서 한 때 최고의 덕목이었던 도덕성이 날개 없이 추락하면서, 아메리칸 드림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명제로 전락했다. 한동안 전 세계를 휩쓸었던 미국식 글로벌 스탠더드(global standard)와 투명성(transparency)은 조롱거리가 된지 오래다. 부실금융으로 미국 시민의 세금을 강탈한 골드만삭스와 씨티그룹의 어이없는 보너스 잔치 앞에 할 말을 잃었다. 부정직, 부도덕, 한탕주의 그리고 승자독식으로 무장한 금융기관의 탐욕과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로 부패한 정경유착의 실상은 앞으로 도래할 무시무시한 생지옥의 예고편이라고 할까?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를 읽으면서, 김광기 씨의 비판이 우리 사회에도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복지 포퓰리즘 때문에 발생할 재정 적자에 대한 우려도 좀 더 들어 보고 싶고, 미국 교육시스템에서 양산해내는 ‘예스맨’이 우리에게는 해당하지 않는지, 우리나라 금융업의 현실은 또 미국하고 다를 게 무엇인지 또 보수 언론이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현실에 대해서 김광기 씨의 앞으로의 연구를 기대해 본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사회에 대해서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미국 정도만큼만 시원하게 해줬으면 더 바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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