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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 - 지금 미국을 다시 읽어야 할 이유 52
김광기 지음 / 동아시아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책 이야기에 앞서 제목을 한 번 분석해 보자. 우리가 아는 미국은 어떤 나라일까? 제목에서 시사하듯 아마도 풍요와 번영의 상징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김광기 씨는 당당하게 그런 미국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의 출발점은 바로 그런 인식의 변환에서 시작한다.
지난 세기 두 번의 세계대전을 통해 대영제국을 대신해서 세계의 헤게모니와 경찰국가로 군림해온 제국의 황혼, 아니 좀 더 신랄하게 표현하자면 제국의 몰락을 우리는 지금 눈으로 목격 중이다. 한 때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해온 미국이 과거의 영화를 뒤로 하고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지난 1980년대 이미 일본과의 무역경쟁에서 밀린 미국은 재정적자와 경상수지적자(무역적자)라는 쌍둥이 적자로 한 차례 홍역을 겪은 바 있다. 하지만, 클린턴 정부 시절 IT 산업과 금융시장의 대호황으로 제국의 위신을 다시 갖추는가 싶었다. 하지만 당당히 미국 역대 최악의 대통령이라 불릴 법한 조지 W. 부시가 재임 8년 동안 재정흑자 기조를 한 방에 날려 먹고, 임기 말인 2008년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미국의 재정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으로 치달았다.
어쩌면 후임자인 버락 오바마는 전임자였던 부시 행정부가 저질러 놓은 뒤처리를 하느라 임기 내내 고생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의 저자 김광기 씨는 거시적인 시각과 미시적 시각을 번갈아 사용하면서 무엇 때문에 오늘날 미국이 이 지경에 도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냉정한 분석을 보여준다. 우선 재정적자라는 측면에서 거의 파산에 도달한 주정부과 연방정부의 현실을 도마 위에 올린다. 세입과 세출의 균형이라는 지방정부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채, 지방채를 남발하면서 이미 빚으로 만신창이가 된 주정부는 세출 삭감을 위해 과감하게 메스를 들이댔다. 그 중에서 가장 손쉬운 먹잇감은 바로 교육비와 복지비용이었다. 그 결과, 우리네 학부모님들이 그렇게 유학 보내고 싶어 하는 미국 공교육의 현실은 참담하다. 재정 확보를 위해 교원을 마구잡이로 퇴출시키고, 캘리포니아 주지사인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디지털 북 도입을 주창하지만 학생들에게 제공할 종이책을 구입할 수가 없어 부린 꼼수에 지나지 않는단다.
어디 이것뿐인가? 교도소에 수감된 범죄자들을 먹고 입히는데 드는 비용은 학생들에게 들어가는 비용보다 훨씬 더 많다. 미미한 범죄의 재소자나 형기가 얼마 남지 않은 재소자들을 비용절감을 목표로 사회에 내던진다. 만성적인 경기 불황으로 실업 때문에 절대 빈곤계층으로 전락한 노숙자들을 타 주에 떠넘기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인들이 최고의 휴가지로 꼽는 하와이에서는 노숙자들을 다른 주에 보내려고 엄청난 예산을 책정했다고 한다. 기가 찰 노릇이다. 이것이 과연 우리가 아는 미국의 실체란 말인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연방정부의 재정적자에 비하면 지방정부의 재정문제는 정말 약과에 불과하다. 일례로 지난 여름 국제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 국가의 신용등급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촉발된 미국의 채무불이행(defalut) 위기는 이제 현실로 다가왔다. 미국 행정부가 “채무한도증액”을 늘리지 않는다면 국가 부도 선언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거의 모드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다룬 바 있다. 민주, 공화 양당의 마지막 협상으로 간신히 국가 부도 위기는 넘겼지만, 그동안 쌓인 천문학적 수준의 국가 부채의 이자 갚기에도 버거운 현실이다. 재정개혁과 증세를 통한 세입의 증가 도모 그리고 금리인상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지만, 국민들의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정치인들이 선뜻 자기 목을 걸고 그런 엄청난 개혁에 동의할지는 미지수다.
김광기 씨는 또 다른 문제로 미국 시민들의 전통적인 “가불경제”를 미국 파산의 주범으로 지적한다. 그동안 부동산을 보금자리로 인식해오던 미국인들이 더 많은 이윤의 창출이라는 미명 아래 만들어진 각종 파생상품과 낮아진 은행대출의 문턱 때문에 너도나도 빚을 내서 부동산 투기에 나섰다가 2008년 경제위기 때 직격탄을 맞아 경기불황, 실직, 부동산압류 그리고 빈곤층으로 전락하게 된 사이클을 분석한다. 그리고 보니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심심찮게 들리는 하우스 푸어(house poor)란 표현이 남의 일이 아니구나 싶다.
1부에서 미국의 여러 문제들을 냉정하게 진단했다면, 2부에서 김광기 씨는 자신의 전공인 사회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그에 의하면, 작금에 미국이 겪는 위기는 바로 도덕적 해이와 최고의 가치를 상실하면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이다. 몰락하는 제국에서 한 때 최고의 덕목이었던 도덕성이 날개 없이 추락하면서, 아메리칸 드림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명제로 전락했다. 한동안 전 세계를 휩쓸었던 미국식 글로벌 스탠더드(global standard)와 투명성(transparency)은 조롱거리가 된지 오래다. 부실금융으로 미국 시민의 세금을 강탈한 골드만삭스와 씨티그룹의 어이없는 보너스 잔치 앞에 할 말을 잃었다. 부정직, 부도덕, 한탕주의 그리고 승자독식으로 무장한 금융기관의 탐욕과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로 부패한 정경유착의 실상은 앞으로 도래할 무시무시한 생지옥의 예고편이라고 할까?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를 읽으면서, 김광기 씨의 비판이 우리 사회에도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복지 포퓰리즘 때문에 발생할 재정 적자에 대한 우려도 좀 더 들어 보고 싶고, 미국 교육시스템에서 양산해내는 ‘예스맨’이 우리에게는 해당하지 않는지, 우리나라 금융업의 현실은 또 미국하고 다를 게 무엇인지 또 보수 언론이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현실에 대해서 김광기 씨의 앞으로의 연구를 기대해 본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사회에 대해서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미국 정도만큼만 시원하게 해줬으면 더 바랄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