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왜 반복되는가 - 공황과 번영, 불황 그리고 제4의 시대
로버트 라이시 지음, 박슬라.안진환 옮김 / 김영사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라는 표현이 있다면 바로 이 책 로버트 라이시 교수의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가 해당될 것 같다. 지난주에 읽은 김광기 씨가 쓴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를 통해 알게 된 책인데, 바로 주문해서 단박에 읽었다. 어느 국회의원이 주변에 적극적으로 일독을 권한다는 말도 들었는데, 과연 그럴만했다.

보통 경제 분야 서적은 읽지 않는 편인데, 나같이 편독이 심한 독자도 도저히 읽지 않고는 배길 도리가 없는 만드는 그런 마술 같은 책이라고 해야 할까. 지난 세기가 정치권력의 시대였다면, 현재와 미래는 경제권력의 시대가 아니던가. 그런 점에서 로버트 라이시 교수의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는 특별한 시선을 제공한다. 2008년에 전 세계를 경제공황의 위기에 몰아넣었던 대불황(the Great Recession)은 단순하게 월스트리트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나 주기적인 불황이 아닌 구조적 모순에 의한 것이라는 것이 로버트 라이시 교수의 주장이다.

미국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도덕률과 가치가 붕괴되고, 사회적 합의가 깨지면서 소수의 부자들에게 국가와 사회가 생산해낸 소득이 집중되면서 발생한 심각한 부작용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과 경쟁국의 사무자동화 그리고 아웃소싱을 바탕으로 한 고용 없는 성장시대는 실질임금의 삭감을 유발했다. 경제성장의 낙수효과가 일반 대중이 아닌 월스트리트의 투기꾼과 트레이더 그리고 대기업의 CEO에게만 집중되면서 미국 중산층이 예전에 대번영 시대처럼 소비하기 위해서는 빚을 내는 수밖에 없었다. 대불황 전까지 모기지 대출을 받아 마구잡이로 빚을 내던 중산층은 마침내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자산 가치의 하락과 실업이라는 위기에 처했다.

지난 세기 비참했던 대공황의 전야 같은 상황에서 로버트 라이시는 연준 위원장 매리너 에클스가 남긴 교훈을 들려준다. 심각한 소득 분배의 왜곡과 집중은 결국 국가 파산이라는 심판의 날을 초래할 것이라는 것이 로버트 라이시 교수가 이 책에서 말하는 핵심적인 주장이다. 근로자가 소비자라는 말은 새삼스럽지가 않다. 부자들의 비생산적인 소비가 아닌, 중산층의 생산적인 소비와 수요 발생을 위해 실질 임금의 상승과 일자리 창출이야말로 지금 미국에게 가장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정치자금 후원이라는 미끼로 정치권력을 좌지우지하게 된 경제권력의 주체들이 금융자산 소득에서 엄청난 세제 혜택을 받으면서 그들이 부담해야 했던 국가 재정의 부담이 중산층에게 돌려지게 된 사실도 저자는 빠트리지 않는다. 대불황의 위기에서 엄청난 긴급 구제 금융으로 월스트리트를 지원했지만, 서민과 중산층에게 돌아온 것이 무엇이었나? 위기에서 벗어난 월스트리트의 대주주와 트레이더 그리고 CEO의 어이없는 보너스 잔치에 시민들은 분노했다. 이런 분노의 상황에서 성공의 사다리로 올라갈 수 없게 된 시민들이 “이웃집 암소”를 죽이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로버트 라이시 교수는 경고한다. 히틀러의 등장 같은 극단적 국가주의 등장에 선행한 개혁이야말로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로버트 라이시 교수는 정확한 현상 진단을 바탕으로, 역사를 통해 입증된 사실들을 독자에게 들려준다. 그는 현실에 대한 비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한다. 연방 정부의 균형재정을 위한 역소득세와 탄소세 같은 세제 개혁을 비롯해서, 건전한 중산층 양성을 위한 사회보장제도의 강화, 의료개혁안, 실업자들을 위한 재고용 정책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기 위한 선거자금법의 ‘백지신탁제도’의 도입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사회적 기본 합의를 바로 세우는 이런 개혁이야말로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그는 말한다.

공교롭게도 2008년 대불황의 위기가 다시 재현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시장을 휩쓸고 있는 시점에 로버트 라이시 교수의 책을 읽게 됐다. 잠시 진정된 것처럼 보이던 국제 금융시장은 유럽발 금융위기로 요동치고 있는 중이다. 특히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주말 주가와 환율이 널뛰고, 각종 경제지표가 일제히 하향세로 돌아선 것을 보면 대불황의 그림자가 닥쳐오고 있다는 느낌이다. 모름지기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했다. 그런 차원에서 로버트 라이시 교수가 이 책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에서 제시한 경제 처방전은 사회 기득권층이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 같다.

역설적이지만 위기는 기회다. 차제에 무너진 사회적 기본 합의를 바로 세우는 개혁을 뒤로 미룬다면, 심판의 날에 맞이할 파국은 더 이상 우리의 결정을 기다려 주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인 유일한 선택을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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