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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구의 문인기행 - 글로써 벗을 모으다
이문구 지음 / 에르디아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나름 책 좀 읽는다고 자부하는데, 이문구 선생이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본다. 어쩌면 국내문학보다는 해외문학 읽기에 치중하는 독서 탓이리라. 이 분이 쓰셨다는 대표작 <관촌수필>도 이름은 들어 보았는데 아직 읽어본 적이 없다. 부랴부랴 이문구 선생의 행적을 살펴 보니 문인으로서 참으로 바지런한 삶을 사셨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지난 2003년에 작고하셨다고 하는데, 돌아가신지 8년이나 지난 후에 선생의 글을 처음 읽어 보게 되었다.
아무래도 작가의 글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어서 책 소개란을 자세히 읽어보니 사회풍자소설에 능하셨고, 토속어 사용에도 일가를 이루셨다고 한다. 안그래도 책을 읽으면서 곳곳에서 선생의 특기에 사전 찾는 손이 바빴다. 우리 문학을 주름잡은 21명의 문인에 대한 글 중에서 첫 번째 주자는 김동리 선생이었다. 해방후 좌우간의 이데올로기 투쟁이 치열하던 시기에 좌파 진영에 맞서 자신의 지론인 순수문학 옹호에 나섰다고 한다. 이문구 선생은 언제나 문객과 식객이 들끓던 김동리 선생에 대한 감상도 조근조근하게 들려준다. 이렇게 사람 좋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어 신인들의 작품을 심사할 적에는 또 원리원칙주의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단다. 다만, 친일문학에 대한 김동리 선생의 단상은 좀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부분이었다. 그나마 춘원이 마음 놓고 한 친일 행각은 인정하니 다행이라고나 할까.
신경림 선생과의 일화도 재밌는 부분이 많다. 21세기 컴퓨터로 글을 쓰는 세대에도 이런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술도 마다하지 않는 문인들의 비화가 생소하게 다가왔다. 시인의 노모에게 아들의 행적에 대해 이문구 선생이 묻자 구수한 사투리를 쏟아내는 어머니의 입담도 인상적이다. 우리나라에서 노벨문학상 후보로 적극 밀고 있는 고은 시인의 이야기는 더 풍성하다. 그리고 보니 아직 제대로 고은 시인의 글을 읽어본 적이 없구나, 아쉽다 아쉬워.
이문구 선생의 문인 행장기에는 참으로 다양한 인물군이 등장한다. 인도 갠지즈 강에서 뱃사공을 마다하지 않는 이가 있는가 하면, 날마다 두주불사를 마다하지 않고 그 다음날에는 금주선언을 사업으로 삼는 시인이 있는가 하면, 기별 없이 상경해서 낮술을 해도 반가운 이가 있다. 작금의 문단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 시절에는 참 술들을 많이도 마셨는가 보다, 만 잔을 함께 했을 정도라니. 마치 시를 짓는데 술이 빠지면 시흥이 떠오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 문우 사이에 쌓이는 그런 흥취가 아직도 남아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목차에 나온 인물 중에 가장 눈길을 끄는 이가 두 명 있었다. 한 명은 아직도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황석영과 지금은 고인이 된 서정주였다. 이문구 선생은 전자를 “실수 없는 1970년대 작가”이자 노동운동가 못지않은 실력을 갖춘 “의리의 사나이”라고 평가했는데, 그런 평가가 새로운 밀레니엄에는 좀 들어맞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기대(?)가 되는 인물은 바로 맨 마지막에 실린 미당편이었다. 이문구 선생이 스승으로 모셨다는 미당의 친일시를 실천문학사에서 발간된 <친일문학선집>에 넣었다는 이유로 송구스러워 했다는 글로 21명의 문인에 대한 행장기를 마무리 짓는다.
예전에 랜덤하우스에서 이문구 전집 26권 중의 하나로 나왔다가 조용히 절판된 책을 개정증보해서 다시 나온 책이 바로 <이문구의 문인기행>이란다. 선생이 문인으로 혹은 기자로 만난 21명의 한국 문단을 주름 잡았던 인사들에 대한 생생한 육성 기록이 인상적이다. 한 가지 흠이라면, 개인의 친분 관계에 따라 냉정한 비판이 결여된 점이 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