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이야기 2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2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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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아민 말루프라는 레바논 출신의 작가가 쓴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이라는 책을 읽었다. 기존 서양 역사가들의 시점에서 저술된 책과 확실히 다른 관점을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책이었다. 그렇다면 계속해서 발간 중인 시오노 나나미 여사의 십자군 전쟁 이야기는 어떨까. 아예 삶의 터전을 일본에서 이탈리아로 옮겨 집필에 전념하고 있는 시오노 여사의 <십자군 이야기>는 정통 역사가들이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던 십자군 전쟁의 경제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중에서도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키워드는 바로 “이코노믹 애니멀”이었다.

1차 십자군 원정의 결과 중근동에 착근한 예루살렘 왕국을 비롯한 네 개의 십자군 국가는 11세기 후반부터 대략 1세기 동안 존속하기에 이른다. 수니파와 시아파 이슬람 세계의 고질적인 분쟁은 프랑크 침략자에 대한 통일전선을 통한 대항을 이루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예루살렘 회복 이후, 보에몽과 탕크레드 같이 걸출한 영웅과 리더십의 부재에 시달리던 십자군 국가의 행운이었다. 곧이어 알레포를 중심으로 한 장기, 누레딘 그리고 이슬람 세계에서 아직도 불세출의 영웅으로 칭송되는 살라딘의 등장에 이은 이슬람 세계의 통일은 가까스로 유지되고 있던 십자군 국가의 종언을 의미했다.

치열한 역사 전개의 무대에서 어느 한 쪽으로 대세가 기울게 되는 요인 중의 하나는 이런 뛰어난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가 계속해서 배출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그런 점에서 아버지 장기 이래 숙원이던 다마스쿠스를 정복하고 나서, 지진 복구와 병원과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 기관을 설립해서 내정에 힘쓴 누레딘의 노력 덕분에 지하드[聖戰]에 방점을 찍게 되는 살라딘의 등장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살라딘은 훗날 자신의 주군 누레딘에게 도전하게 되지만 말이다.


한편, 1144년 에데사의 함락으로 비로소 점증하는 이슬람 세력의 위협을 느낀 서방 세계는 시토회 소속 수도사 베르나두스의 주창으로 다시 한 번 십자군 원정에 나서게 된다. 제후가 주축이 되었던 1차 십자군 원정과 달리, 유럽 세계의 두 거물인 프랑스 왕 루이와 신성로마제국 황제 콘라트가 직접 나선 두 번째 원정은 다마스쿠스 공략을 앞두고 철군하면서 실패로 돌아간다.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이 원정으로 서방 세력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이슬람 세계는 비로소 대대적인 반격에 나서게 된다.


시오노 여사는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웠던 이 시기에 십자군 국가가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몇 가지 원인을 다음의 요인들로 설명한다. 첫 번째는 특수부대였던 템플 기사단과 성 요한 기사단의 존재로 꼽는다. 성지회복이라는 대전제를 완수한 후, 유럽으로 돌아갔던 1차 십자군 원정에 참가했던 대다수의 서유럽 기사들과는 달리 수도사이자 전사로 “이교도 박멸”의 최전선에서 광신적으로 싸우던 템플 기사단은 이슬람 쪽의 압도적인 병력을 그야말로 일당백의 전투력으로 막아낸 일등공신이었다. 귀족 자제들이 주를 이뤄 병자를 간호하던 성 요한 기사단(병원 기사단)과 달리 하층 기사가 주축이었다고 한다.

두 번째 요인으로는 만성적인 병력 부족 때문에 광대한 영지를 지킬 수 없었던 십자군 국가는 곳곳에 기사단을 주축으로 한 성채를 건설했다. 서구식 봉건제를 팔레스티나 지방에 그대로 이식한 십자군 국가는 서유럽에서 자신들의 근거였던 성채로 공성전에 익숙하지 못한 이슬람 군대를 상대로 유리한 방어전을 구사했다. 마지막으로 내륙의 거점을 지원하기 위해 해안에 포진한 항구도시를 지원하는 이탈리아에 포진했던 해양 도시국가 베네치아와 제노바, 피사 등의 해군력 지원을 들 수가 있다. 물론 이슬람 세계에도 이집트 파티마 왕조의 해군력이 존재하긴 했지만, 서방 세계의 압도적인 해군력에 상대되지 않았다.

그리스도교 이전에 상인이었던 해양 도시국가들은 십자군 국가의 생명선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까 싶다. 국시였던 경제 교역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이들 “이코노믹 애니멀”들은 민족과 종교 이데올로기를 초월해서 이익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1980년대 세계 경제를 주물렀던 작가의 동포들과 유사하다. 그래서 시오노 여사가 굳이 ‘경제 동물’이라는 표현을 이코노믹 애니멀이라는 말로 순화하지 않았나 싶다.

이슬람의 영웅 살라딘의 등장까지 좀 지루한 면이 있지만, 마침내 파티마 왕조의 이집트와 아바스 왕조의 이라크와 시리아를 통일한 살라딘이 등장하면서 십자군 국가의 몰락을 향한 역사의 시계추는 숨 가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살라딘이 지금까지도 아랍 세계의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지만, 살라딘이 아직도 소외당하는 쿠르드족 출신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살라딘은 주군 누레딘의 명을 받아 이집트 정복에 나서게 되면서 비로소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다. 파티마 왕조의 멸망과 누레딘의 죽음(1174년)으로 명실상부한 아랍 세계의 술탄으로 공식 임명된 살라딘은 바야흐로 그리스도교, 유대교 그리고 이슬람교의 공통 성지인 예루살렘 탈환이라는 지상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지하드에 나선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시오노 여사의 <십자군 이야기> 두 번째 인스톨은 2005년 할리우드에 제작된 대작 영화 <킹덤 오브 헤븐>과 조우한다. 어떻게 해서든 성도(聖都) 예루살렘 왕국을 지키려는 영민한 군주 보두앵 4세의 눈물겨운 분투기도 빠질 수 없다. 나병이라는 천형(天刑)으로 자신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보두앵 4세는 트리폴리 백작 레몽과 이벨린의 발리앙의 도움을 받아 성지 수호에 나선다. <십자군 이야기> 후반기에 등장하는 발리앙이 바로 영화에서 올랜도 블룸이 연기한 바로 그 캐릭터다. 영화에서 발리앙은 프랑스 대장장이 출신으로 각색돼서 등장하는데, 시오노 여사의 추적에 의하면 그의 가문은 이탈리아에 근거를 둔 기사 집안으로 중근동에서 나고 자란 발리앙은 여러 언어에 능통했고 십자군 국가의 운명을 가른 하틴 전투에 참가해서 용맹을 과시했으며, 특히 예루살렘 공방전에서는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살라딘과 함께 후세에 길이 남을 기사도의 원형을 보여준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엄청난 이슬람 대군의 공격 앞에 자력으로 예루살렘을 지켜낼 수 없었던 이벨린의 발리앙과 예루살렘 수비대는 살라딘을 상대로 영예로운 항복을 얻어내고 성도 예루살렘으로부터 철수한다. 백 년 전, 예루살렘을 정복했던 십자군이 성도를 피로 물들였다면 살라딘은 이슬람 종교지도자 이맘들의 격렬한 항의를 받으면서까지 자신의 관대함을 만방에 과시한다. 그는 그리스도교가 보여주지 못했던 용서와 관용을 실천한 이슬람 지도자였다.

시오노 여사는 십자군 국가의 방어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기사단의 유래와 활약에서부터 시작해서, 훗날 십자군의 대대적인 침공으로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점령되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서방제국과의 갈등, 예루살렘 공방전 같은 십자군 역사의 중요한 뼈대는 물론이고 ‘산의 노인’이 시작한 해시시를 피우는 암살단 아시시의 이야기는 물론이고 십자군 국가의 깡패이자 ‘고삐 풀린 개’라는 별명으로 불린 르노 드 샤티용의 만행 같은 깨알 같은 재미도 빠트리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시오노 여사가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거시사보다 최근에는 정사(正史)에서 다루지 않는 개인의 일상 같은 미시사의 재미에 흠뻑 빠져 있는데, 오래간만에 만난 통사적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다만,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시오노 여사의 여전한 ‘영웅 중심적 사관’은 불편하다. 어쩌면 살라딘에 앞서 이슬람 세계를 통일하고 예루살렘 탈환을 했을지도 모를 이마드 앗딘 장기가 어느 이름 모를 노예에게 암살당한 사실도 역사의 흐름을 뒤바꾼 무명인의 활약을 반증하는 역설이 아닐까. 이슬람 측 사료의 절대 부족이 한 원인이기도 하겠지만, 십자군 전쟁에 대한 서구 중심적 서술 역시 아쉽다. 그런 점에서 당시 시대상의 이슬람 측 증언인 우사마 이븐 문키드가 기록은 아주 중요하다. 문키드가 남긴 프랑크인의 의술 편은 김태권 작가가 알라딘에서 연재 중인 같은 제목의 만화에서도 다뤘는데 두 작품을 비교하면서 읽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시오노 여사의 베네치아에 대한 사랑은 <십자군 이야기>에서 유감없이 드러났다. 어쩌면 그동안에 나온 르네상스 시대를 배경으로 한 저술의 알파와 오메가가 <십자군 이야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내륙 거점을 모두 잃은 십자군 원정에서 앞으로 해양 도시국가의 대표 주자인 베네치아의 비중의 더욱 커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성도 예루살렘을 둘러싼 공방전으로 십자군 국가/서방 세계와 이슬람 세계가 장군, 멍군을 한 번씩 불렀다면 이제 <십자군 이야기> 세 번째 인스톨에서는 십자군 전쟁 최고의 영웅들이 격돌하는 세 번째 십자군 원정이 펼쳐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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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1 - 결의 형제
이두호 지음 / 자음과모음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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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도서관에 안보윤 작가의 <사소한 문제들>을 빌리러 갔다. 그런데 문득 눈에 띄는 만화 전집이 있었다. 자음과 모음 출판사에서 나온 32권 짜리 임꺽정 시리즈였다. 빌릴 수 있는 한도가 1인 하루 5권이라고 해서, <사소한 문제들>과 나머지 네 권은 모두 <만화 임꺽정>을 빌렸다. 그렇게 우리 만화를 줄기차게 그린다는 이두호 화백의 만화를 정말 오랜만에 만날 수가 있었다.

사실 내가 아는 임꺽정이라고는 벽초 홍명희 선생의 미완성 작품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읽기에 부담 없는 만화가 있어서 참 다행이지 싶었다. 헌책방에서 산 벽초 선생의 임꺽정과 이두호 화백의 만화 임꺽정은 많이 달랐다. 전자가 임꺽정과 함께 활동하게 되는 주면인물들의 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후자는 백정의 아들 임꺽정이 어떻게 해서 검술의 달인이 되는지 그 과정을 중점으로 그리고 있다.

만화 임꺽정에서 양주 사는 주인공 임꺽정은 고을의 지주 박 좌수의 아들을 골탕먹인 죄로 어쩔 수 없이 정든 마을을 떠나게 된다. 어려서부터 괴력을 소유한 영웅은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는 말을 그대로 보여준다. 아, 그전에 앞서 만화는 훗날 임꺽정을 토벌하게 되는 토포사 남치근과 임꺽정의 질긴 인연의 끈을 슬쩍 보여준다. 명종 10년(1555)에 일어난 을묘왜란에서 왜군에게 포위되었다가 임꺽정의 활약으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남치근은 뛰어난 무공을 보여준 백정 임꺽정을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다.

영웅서사에서 빠질 수 없는 주인공이 겪게 되는 고난과 역경은 만화 임꺽정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지주 박 좌수의 핍박을 피해 서울로 가는 길에 구공 스님을 만나, 일생의 스승인 전다비를 만나 절세 무공을 익히고 전가의 보도 <제민도>를 득템하기에 이른다. 훗날 의적 두목으로 신출귀몰하며 관군을 농락하게 될 기본 기술과 무기의 바탕에 대한 설명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스승을 떠난 임꺽정은 두 번째 스승 갖바치(양주봉)에게 글을 배우며 몰락한 양반의 후예 장학봉과 의지할 곳 없는 떠돌이 소년이자 돌팔매의 명수 조금맹과 의형제를 맺는다. 박 좌수 아들의 행패와 산 속에서 의형제 결의를 맺는 임꺽정과 장학봉 그리고 조금맹을 역모로 엮겠다는 포졸의 행태에서 부패한 관리의 실상을 엿볼 수가 있었다. 자, 이제 주인공의 바탕과 주인공을 도울 사이드킥이 준비되었으니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갈 차례다.

왕조국가 조선에서 사농공상이라는 성리학적 신분질서는 사회구성의 근간이었다. 이런 기본 사회 구성요소에도 들지 않는 백정은 천민으로 그야말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았다. 백정의 자식은 영원히 백정로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조선 사회 신분질서였다. 이런 계급적 질서를 인정할 수 없었던 임꺽정이 고를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는 반역이었을 게다. 아직 만화에서는 형상화되지 않았지만, 주인공 임꺽정이 사회의 모순과 불합리한 신분질서의 진실을 깨닫는 순간 그 폭발력은 어떨지 궁금하다. 당분간 열심히 도서관에 출입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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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 김경욱 소설집
김경욱 지음 / 창비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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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의 어느 자리에서 책을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을 생각해 보라는 말을 들었다. 보통 리뷰는 책을 읽고 나서 바로 쓰는 편인데 지난 주말에 이러저러한 일로 바빠서 리뷰 쓰는데 며칠이 걸렸다. 모두 9편의 이야기 중에서 마지막을 장식한 <아버지의 부엌>에 나오는 에피소드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어느 학생 꼬마처럼 시험 잘 보면 무엇이든 사주겠다고 약속한 아버지에게 턱도 없이 “미미의 부엌”을 사달라고 했다가 장난감 기관총을 받는다. 너무 “미미의 부엌”이 갖고 싶었던 나는 결국 동생의 돼지저금통에 손을 댔다가 전봇대에 호스로 묶인다. 정말 이 우스꽝스러운 장면에 대한 묘사는 내내 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몇 년 전에 <위험한 독서>로 김경욱 작가를 처음 만났다. 아마 처음으로 내가 읽은 책의 저자와 지근거리에서 그렇게 대화를 나누지 않았나 싶다. 서울의 어느 카페에서 진행된 <위험한 독서>에 대한 대담의 자리였지 싶다. 솔직히 김경욱 작가와 나눈 이야기보다 김경욱 작가가 우리를 위해 내준 커피 값의 추억이 더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나는 나중에 카메라맨과 PD의 요청으로 <위험한 독서>의 독서지도사 역할을 어느 대학생과 연출했었다. 그래서 더 개인적으로 작가에게 친근함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나서 한참이 지나 지난달 끄트머리에 김경욱 작가의 신작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를 만났다. 다 읽고 난 나의 소감은 한 마디로 다음과 같다. 명불허전(名不虛傳). 김경욱 작가의 단편 실력은 이미 알고 있기에, 장편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예상하지 못한 소설집을 만난 기분이라고나 할까. 다시 만난 지기 같은 기분에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분주해졌다.

도시의 수백 개의 계량기가 동파된 어느 추운 겨울날 벌어진 사건을 재구성한 타이틀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에서는 <도가니>의 잔향이 느껴지기도 했다. 사회에서 벌어지는 악행에 대한 심판은 온전하게 신에게 맡겨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일본만화 <내일은 조>를 연상시키는 <허리케인 조의 파란만장한 삶>에서는 타인의 삶을 반추하는 자서전을 대필하는 글쟁이의 시선으로 몰락한 권투선수를 바라본다. 한 때, 각광받는 스포츠였지만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우리네 관심에서 멀어져간 권투 경기와 계체량 통과라는 가히 살인적인 자신과의 투쟁이 오롯하게 그려진다.

<연애의 여왕>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작품이다. 내는 책마다 족족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는 은둔형 얼굴없는 작가 “연애소설의 여왕”을 찾아 나서는 사진작가의 밀착취재가 그 중심이다. 모두가 알고 싶어 하지만, 도대체 알 수 없었던 미지의 인물을 찾아가는 미스터리 형식의 구성이 인상적이다. 누가 봐도 빤한 상업소설이지만, 잘 팔린다는 이유로 궁금해 하는 설정은 문학의 소비가 과연 긍정적인가 하는 궁금증을 자아낸다. 연애의 여왕이 잘 팔리지 않는 작가였다면 그 누가 그녀에게 관심을 두었겠는가 말이다. 게임이 법칙이 지배하는 문학계에 대한 풍자를 슬쩍 내비치는 느낌이 들었다.

어머니가 가출하고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할아버지에, 야간경비 일을 하시는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희망 없는 88만원 세대의 초상을 그린 <태양이 뜨지 않는 나라>도 주목할 만하다. 누구나 꿈꾸는 행복이지만 또 어떤 이들에게는 절대 허락되지 않은 금기의 단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불쑥 떠오른다. 허구한 날 꽁치찌개를 끓이는 아버지에게는 담배를, 텔레비전을 끼고 사는 할아버지에게는 소주에 빨대를 꽂아 드리는 주유소 비정규직 알바 청년의 신산한 삶에 대한 초상이 마치 허상처럼 다가온다.

개인적으로 정답을 아주 좋아한다. 아니 꼭 정답이 아니더라도 정답에 가까운 근사치만으로도 만족한다. 그런데 김경욱 작가는 나 같은 독자에게 그런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정말 다양한 삶의 군상을 죽 나열해준다. 이런 삶도 있단 말인가 하는 질문은 스스로에게 삶의 방향타를 다른 방향으로 수정하라는 말로 다가선다. <위험한 독서>를 읽으면서도 느낀 점이지만, 그의 소설에는 정답이 없다. 하긴 변화무쌍한 삶의 여로에서 정답을 찾겠다는 생각 자체가 무의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에서 김경욱 작가가 들려주는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때로는 공감하고, 분노하고, 연민을 느끼고, 그땐 그랬지를 속으로 연발했다. 깊어가는 가을에 부담 없이 읽기에 참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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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11-18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 전에 김경욱 작가 만나고 왔어요! 낭독회였는데, 말도 조곤조곤 잘하고 훈남이더라구요. 특히 [아버지의 부엌]을 낭독할 때는 연기까지 하셨다는 ^^;;

[신에게는...] 단편 하나 하나가 재밌고 잘 짜여진 것 같아요. 해설을 보기 전까지 하나로 묶이는 해석을 내리기는 어려웠지만요. 늘 그런 것 같아요. 단편소설은 정답을 알려주기 보다는 다양한 삶의 군상들을 보여줘요.

김경욱 작가의 장편소설은 어떨지, 사뭇 궁금하네요 :)

레삭매냐 2011-11-25 09:00   좋아요 0 | URL
그동안 저도 만날 단편만 만나서 장편이 기대가 됩니다 :>

연기를 겸한 낭독회라, 상상만 해도 즐거워집니다.
물론 싸인도 받으셨겠죠? 부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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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거리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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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1년 만에 다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과 만났다. 작년 이맘때 읽은 <탐정클럽> 이후 1년 만에 신간 <새벽 거리에서>로 다시 다작으로 유명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르 세계에 뛰어 들었다. 한 가지 패착은 어젯밤에 잠들기 전에 아무 생각 없이 이 책을 집어 들었다는 점이다. 순식간에 200쪽을 넘어가는 책읽기 속도에 깜짝 놀랐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느라 아주 고생했다.

올해 원작을 바탕으로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는 <새벽 거리에서>는 불륜에 대한 어느 사내의 단상으로 시작된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이제는 단골 소재로 빠지지 않는 정해진 짝이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불륜은 타이밍의 문제인 것 같다. 나중에 오는 사랑을 막을 수 없다는, 지극히 통속적이다.

멀쩡하게 아내와 딸까지 있는 가장이 훨씬 나이 어린 직장 임시직 직원에 사랑에 빠지게 되는 설정, 정상적이지 않다. 아니 어쩌면 정상 궤도에서 그렇게 일탈해 있기 때문에 자극적이고 재미를 주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그 ‘관계’에 살인이라는 소재가 더해지면서 <새벽 거리에서>는 막장으로 치닫는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출중한 외모로 주변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는 그런 미녀를 등장시키지 않는다. 주인공 와타나베가 사랑하는 나카시니 아키하는 지극히 평범하다. 하지만, 평범하지 않는 매너리즘에 빠진 와타나베의 일상이 궤도에서 이탈한 로맨스의 단초를 제공한다. 친구들과 어울려 술 마시던 어느 날, 야구연습장에서 아키하를 만나고 만취한 그녀를 집에 바래다주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아니 그건 사건 축에도 끼지 못한다. 진짜 사건은 15년 전에 일어났다. 그리고 아키하가 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와타나베. 이제는 더 이상 남자라고 생각하지도 않던 중년 남자에게 다가온 사랑은 그래서 더더욱 치명적이다. 생판 모르는 타인 같이 되어 버린 아내와의 결혼생활, 그렇다고 아내와의 결혼을 끝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면서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이중생활을 하는 가장의 위선을 히가시노 게이고는 충실하게 벗겨낸다. 아주 천천히.

아키하와의 불륜과 어우러지는 그녀의 과거는 책을 읽는 독자를 한 순간에 중독시켜 버린다. 파멸적 사랑과 결합된 ‘메멘토 모리’는 도대체 책을 덮을 수 없게 만든다. 작가가 소설의 곳곳에 배치한 단서로 결말을 예상해 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추리는 하나는 맞았고, 다른 하나는 보기 좋게 틀렸다. 와타나베의 위험천만한 외도만큼이나 결말을 예상하는 스릴은 최고였다.

빈틈을 보이지 않는 구성을 뒷받침하는 건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대화 전개방식이다. 원죄 때문에 아키하에게 한 순간도 당당할 수 없었던 와타나베의 속마음이 속도감 넘치게 실시간으로 중계된다. 남녀간의 ‘사랑과 전쟁’에서 보다 적극적인 감정의 전개를 보여주는 여자 역의 아키하 역시 놀라울 정도로 스스로의 감정을 절제해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15년 공소시효가 끝난 뒤에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결말로 갈수록 아드레날린 때문에 책을 읽는 독자의 심장 박동은 최고조에 달한다. 결승점을 앞둔 경주마처럼 <새벽 거리에서>의 모든 글자들이 공소시효 만료인 3월 31일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한다.

누구나 그렇듯 두 가지 선택지 중에서 둘 다 고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둘 다를 취하고자 할 때 항상 말썽이 생긴다. 사랑이 빚어낸 전쟁을 마다하지 않는 와타나베를 멋지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배신자로 규정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뒤늦은 사랑과 안정을 모두 가지려고 위험한 줄타기를 한 남자에게 돌아가는 건 인과응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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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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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꼭 11년 전에 아드만 스튜디오에서 만든 <치킨 런>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봤다. 영화 <대탈주>를 패러디한 닭들의 대탈주를 그린 영화였다. <치킨 런>은 그때 이미 공장식 축산 농장의 효율적 산업 모델을 극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제시했다. 어떻게 해서 실리어 스틸과 찰스 밴트리스라는 낯선 이름의 주인공들이 오늘날 우리가 저렴한 비용으로 갈루스 도메티스쿠스(gallus domesticus:닭의 학명)를 즐길 수 있게 되었는가 그리고 그에 따른 도덕적 윤리 문제에 대한 아주 복잡한 셈법을 미국계 유대인 작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를 통해 들려준다.

개인적으로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모든 것이 밝혀졌다>라는 제목의 성장소설을 통해 처음 만났다. 자신의 뿌리를 찾는 어느 유대계 미국 청년의 우크라이나 여행기를 다룬 소설이었는데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다. 유럽 출신 유대인이었던 포어의 할머니는 홀로코스트와 기아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말 그 어떤 것도 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90세가 다 된 지금에도 언제나 사랑하는 자식과 손자들에게 풍족한 음식을 준비해주기 위해 지하실에 엄청난 양의 밀가루 부대를 쟁여 두고 있단다. 어쩌면 전쟁을 겪은 세대의 일반적 공통점이 아닌가 싶다.

아홉 살 때, 처음 베이비시터를 통해 채식주의를 접하게 된 작가는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고 또 첫 아이를 갖게 되면서 자신이, 앞으로 자신의 아이가 먹게 될 음식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됐다. 어쩌면 그게 이 책을 쓰게 된 결정적인 동기일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볼 때 그런 개인적인 이유로 이 책을 쓰기에 뒤에 달린 참고 문헌과 인용구를 보면 엄청난 작업이었다는 사실을 바로 알 수가 있을 것이다.

포어는 다양한 측면에서 ‘동물을 먹는다는 것’이라는 주제에 접근한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개를 식용으로 거리낌 없이 먹는다는 점에 주목한다. 많은 이들이 반려동물에게 많은 비용을 지출하고 있는데, 그의 주장대로라면 개를 식용으로 이용할 경우 상당한 비용 절감과 공장식 축산 때문에 생기는 환경오염 문제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문제는 어떤 동물은 절대로 보호해야 하는 종(種)이고 또 어떤 동물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그런 예에 적합한 예로 베를린 동물원의 슈퍼스타 북극곰 크누트를 작가는 등장시킨다. 동물의 입장에서 본다면 정말 불공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공장식 축산 농장에서 비좁은 공간 그리고 자연 조건을 임의대로 조작한 열악한 환경에서 생산되는 가축을 둘러보기 위해 열혈 동물 운동가 C와 함께 잠입 취재도 마다하지 않는다. 몇 년 전에 게일 아이스니츠의 육성 르포인 <도살장>을 통해 미국 현지의 도살장에서 벌어지는 동물에 대한 참상을 읽어서인진 몰라도 포어의 짧은 모험은 솔직히 그다지 인상적이진 못했던 것 같다. 물론 책상머리에서 쓰는 글이 아니라 직접 체험을 담고 싶다는 그의 노력에는 가산점을 주고 싶다.

하지만, 그의 모험보다 그 뒤에 등장하는 은퇴한 농부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작금의 공장식 축산 농장을 옹호하는 발언을 한 캐릭터의 인터뷰가 더 인상적이었다. 효과적인 가축의 생산을 위해 술파제와 항생제를 남발하고 동물 복지에는 눈감고 끔찍한 행위가 자행되는 현실에 쏟아지는 비난에 그는 이런 대답을 한다. 만약 그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값싼 가격으로 단백질 섭취는 불가능하다고 말이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또 다른 칠면조 농부는 자신이 기르는 동물을 잘 대우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어찌 되었던 간에 그가 기른 칠면조의 마지막 행선지는 도살장이 아니었던가? 한편으로 우리는 인간의 복지론 때문에 나라가 다 시끄러운 판에, 미국에서는 동물의 복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충격을 먹었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우리가 먹는 고기가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식탁으로 왔는지 알게 되었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진지하게 묻는다. 우리는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무엇이 정상적인 때가 있긴 했었나?) 본격적인 공장식 축산으로 생산된 고기를 먹게 될 세대의 징검다리 세대다. 그래서 우리의 결정이 변화의 단초가 될 것이라는 점에는 확실하다.

어느 유명한 셰프는 자신의 아들이 육식 포기 선언을 한다면 총으로 쏘겠다는 극언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나 역시 육식을 포기하지는 못할 것 같다. 과연 불편한 진실에 대한 인식이 행동과 변화에 대한 결정으로 이어질지에 대해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봐야할 것 같다. 문제는 동물을 위한 윤리적 소비를 하기 위해서 추가 비용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과연 누가 선뜻 지갑을 열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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