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15년 8월 XX일
어느 서재에 이런 댓글을 쓴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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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읽어서 뭐하나, 나아지는 게 없는데, 하고 생각했던, 그리고 지금도 의문을 품고 있는 1인으로서 한 말씀 드립니다.
제 친구가 하는 말. - 자기 친척 중에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있대요. 박학다식하대요.
그런데 문제는 타인을 이해할 줄도, 배려할 줄도 모르고 자기중심적으로만 생각하고 이기적이라는 거예요.
뿐만 아니라 자기가 제일 똑똑한 줄 알고 남을 무시한대요.
그렇다면 독서를 해서 무엇하고, 공부를 해서 무엇하나, 하는 의문이 생긴다는 거예요.
저도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책의 가치는 사람을 변화시켜야 한다, 라는 점에서 찾게 되더라고요.
바람직한 방향으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독서만이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사람을 변화시키지 않는 독서는 오히려 오만함만 갖게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독서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을 해 보게 만드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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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 필요하다는 건 알지만 가끔 그 가치를 의심하게 된다.
2. 2015년 8월 XX일
사랑이란 어떤 모습일까?
사람마다 그 모습을 다르게 그리겠지.
어머니와 단 둘이 있을 때, 친정에서 나는 설거지를 하지 않는다. 내가 설거지를 하는 걸 어머니가 싫어하시기 때문이다. 내가 설거지를 하려고 하면 한사코 말리고 당신이 설거지를 하신다. 이 나이가 되도록 나는 어머니에겐 어여쁜 자식이다. 설거지를 시키기 아까운 어여쁜 자식이다. 내가 친정에서 설거지를 할 수 있는 건 손님들이 많이 온 날뿐이고, 단둘이 있을 땐 절대로 내가 설거지를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라고 본다.
사랑이란 상대가 아까워서 설거지를 시키지 못하는 마음 같은 것.
사랑이란 상대방이 웃게 만들고 싶은 마음 같은 것.
사랑이란 상대방을 힘들지 않게 만들겠다는 마음 같은 것. (예를 들면 기혼 여자를 사랑했던 남자가, 여자가 이혼을 해야만 자기한테 돌아올 수 있는 상황인데도 ˝당신이 힘든 것은 싫으니 이혼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것.)
사랑이란 상대가 자기 옷에 흙탕물을 튀기게 해도 화나지 않는 것.
사랑이란 상대가 자기의 선글라스를 깨뜨려도 화나지 않고 그저 상대가 다치지 않았는지를 걱정하는 것.
사랑이란 상대가 약속 시간이 지나서도 나타나지 않을 때, 화가 나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아예 상대가 나오지 않을까 봐 걱정하며 기다리는 것.
내가 아는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으리라. “나를 위해 당신이 밥상을 차려 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는 게 사랑이 아니라 “당신을 위해 내가 밥상을 차리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게 사랑이라고.
“나를 위해 당신이 밥상을 차려 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는 것은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어느 서재에 댓글을 쓰고 나서 생각난 김에 정리해 쓴 것이다.)
3. 2015년 8월 XX일
집중하게 되는 걱정거리가 있을수록 진지하지 않아야 한다. 그저 걱정거리는 늘 우리의 생활에 따라다니는 그림자라고 여겨야 한다. 이 걱정이 끝나면 저 걱정이, 요 걱정이 끝나면 조 걱정이 생기는 게 인생이라고 여겨야 한다. 작은 걱정은 그것보다 큰 걱정으로 물리치고, 큰 걱정은 그것보다 더 큰 걱정으로 물리치면서 그렇게 걱정거리 하나를 잡고 살면 되는 것. 난 오히려 걱정거리가 없으면 불안해진다. 뭔가 큰일이 일어날 것 같아서.
4. 2015년 8월 XX일
지난 8월 5일에 올린 글 ‘시시한 일기 열 개’는 의외였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 글들은 정말 시시해서 제목까지 ‘시시한’이란 말을 넣었다. 이런 공적인 공간에 그런 사적인 글을 올리는 게 마음에 걸리기까지 해서 올릴까 말까, 망설이다 올린 것이다. 그러나 웬일이가? 그 글이 공감 18을 기록하는 것에 나, 놀랐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사람들은 시시해도 사적인 일기 같은 글을 좋아한다고 내 맘대로 해석해도 되나? 아니면 내가 시시하다고 써서 동점 점수를 받았던 것인가?
딴 사람들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나는 그렇다. 글을 올린 지가 일주일이 넘게 되면 새 글을 올려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것저것 써 보게 되는데 내 맘에 안 든다. 이럴 경우 ‘내일 생각하자.’ 하고는 미룬다. 하루 이틀 미루다가, 오늘은 꼭 올려야겠단 생각이 드는 날이 있다. 그런 날엔 글이 맘에 안 들어도 그냥 올린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이런 시시한 글도 올려 보는 거야. 공감 수가 낮아서 신기록을 세운다면 그건 그것대로 의미 있고 재밌잖아.’라고. 그런데 반전이 생긴다. 그런 글이 ‘공들여 써서 비교적 내 맘에 드는 글’보다 공감 수가 높을 때가 많다.
인생은 예측 불허.
5. 2015년 9월 4일
오늘 아침 눈을 뜨니 내가 이불을 덮고 있었다. 이불을 덮고 있는데도 이불이 얇아서인지 서늘함을 느꼈다. 여름이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9월이다.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아니하고 시간은 그렇게 제멋대로 흐른다. 여름이 떠나는 게 우리는 좋을까? 더위가 물러나는 건 좋지만,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오면 겨울이 오고 겨울이 오면 해가 바뀌고 나이 한 살 더 먹는 건데 여름이 떠나는 게 우리는 좋을까?
언제부턴가 밤이 되면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온다.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온다는 것은 여름이 가고 있다는 증거다.
오늘 아침에 뜨거운 커피를 맛있게 마셨다. 뜨거운 커피가 맛있다는 건 여름이 가고 있다는 증거다.
여름 방학이 끝났다. 여름 방학이 끝났다는 것은 여름이 가고 있다는 증거다.
해수욕장은 폐장했다. 해수욕장이 폐장했다는 것은 여름이 가고 있다는 증거다.
아무리 낮에 덥다고 해도 여름은 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