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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며칠 전, 친구들을 만났다. 넷이 만났는데 내게 한 친구가 물었다. 요즘도 블로그에 글을 쓰느냐고. 그렇다고 답했더니 무슨 글을 쓸 게 그리 많으냐고 물었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서재에 리뷰와 페이퍼를 합쳐 266편을 올렸는데 내가 생각해도 무슨 글을 쓸 게 그리 많았을까 싶었다.

 

 

어디에 있는 블로그냐고 다른 친구가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난 왜 그때 알라딘이라는 인터넷 서점에 대해 말하지 않았을까? 왜 블로그의 주소를 가르쳐 주지 않았을까? (참고로, 내 친구들의 반쯤은 이미 이곳 서재를 알고 있다. 이곳을 알지 못하는 나머지 친구들에게 가르쳐 주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다.)

 

 

집에 와 생각해 보니 이런 것 같다. 난 내가 쓴 글을 친구들이 보는 게 창피한 것이다. 당당하게 내 글을 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내 글에 자신이 없는 것이다. 친구들과 얘기를 나눈 일로 내가 내 글쓰기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인간은 그렇다.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모른다.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그 일을 계기로 자신에 대해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뻔뻔해져야겠다고 다짐했다. “저를 시장으로 뽑아 주세요. 제가 시장으로서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처럼 뻔뻔해져야겠다고 다짐했다. 뻔뻔함이 없다면 시장으로 출마할 수 없는 것처럼, 뻔뻔함이 없다면 글을 계속 쓸 수 없을 것 같아서다.

 

 

 

 

 

 

 

2. 아십니까?

 

 

독자 여러분은 위의 1번의 글에서 제가 가장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1) 글에 자신이 없다는 것.

2) 뻔뻔함이 필요하다는 것.

3) 인간은 자기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모르고 있다는 것. 어떤 일을 계기로 알게 될 뿐이라는 것.

 

 

어떤 문제이든 길게 쓴 것이 정답일 가능성이 높다. 정답이기 위해서 자세하게 설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도 3)번이 정답이다. 나는 독자들이 1)번과 2)번은 물론이고 3)번까지 알아주길 바라는 것이고 특히 3번을 강조하고 싶은 거였다. 하지만 독자들은 다 알지 못한다고 서머싯 몸은 말한다. 

  

 

작가는 책 한 권을 쓰느라 몇 달을 보내며 자신의 진심을 쏟아붓지만, 그 진심을 읽는 독자는 거의 없다.(윌리엄 서머싯 몸)

- 도러시아 브랜디 저, <작가 수업>, 111쪽.

 

 

서머싯 몸의 말에서 진심을 ‘성의’로 해석할 수도 있고 ‘진실’로 해석할 수도 있고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겠다. 나는 진심을 ‘진실’로 해석하였다.

 

 

‘글을 쓰는 이는 자신이 깨달은 진실을 담아 글을 쓰지만 그 진실을 읽는 독자는 거의 없다.’는 것.

 

 

나 역시 남들이 쓴 글의 진실을 알기가 쉽지 않다는 걸 느끼곤 한다. 책을 읽으며 또는 이웃 님들의 서재에서 글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제대로 읽은 걸까?’라고.

 

 

 

 

 

 

 

 

 

 

 

 

 

 

 

 

 

 

 

 

 

 

 

 

3. 왜 글의 진실을 말로 설명하지 않는가?

 

 

이렇게 글의 진실을 알기가 쉽지 않은데, 왜 작가들은 소설에서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진실을 말로 설명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어떤 소설을 읽으면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모를 때가 있어서다. 어째서 ‘해설’은 없고 ‘상황’만 있을까?

 

 

나중에 이것에 대한 답을 찾았다. (물론 내 개인적인 생각의 답일 뿐이다.) 작가는 전하고 싶은 것을 상황으로만 보여 주고 싶기 때문이라는 것. 그것을 말로 설명하는 순간 그 소설은 중요한 것 하나를 잃기 때문이라는 것. 바로 독자에게 ‘스스로 해석하는 능력’을 줄 기회를 잃기 때문이라는 것. 그것이 작가가 해설가로 나서지 않는 이유라는 것.

 

 

예를 들어 설명해 본다.

 

 

<안나 카레니나>라는 소설에서 안나는 기차 안에서 매력적인 브론스키를 알게 되고 나서 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을 때 마중 나온 남편을 보고 생각에 잠긴다.

 

 

페테르부르크에서 기차가 멈추자마자 그녀는 내렸다. 맨처음 그녀의 눈에 띈 것은 남편의 얼굴이었다. ‘세상에! 어째서 저이의 귀는 저렇게 생겼을까?’ (…) 특히 그녀를 놀라게 한 것은 남편을 보는 순간 일어났던 자신에 대한 불만의 감정이었다. 이것은 그녀가 남편과의 관계에서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던 익숙하고 위선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그녀는 이전에는 이 감정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뚜렷하고 가슴 아프게 그것을 의식한 것이었다.

- 톨스토이 저, <안나 카레니나>에서.

 

 

‘세상에! 어째서 저이의 귀는 저렇게 생겼을까?’의 문장은 남편의 귀가 못생겼음을 느꼈다는 걸 뜻한다.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박웅현 저, <책은 도끼다>에 나와 있다.)

 

 

<인생의 베일>이라는 소설에서 키티는 매력적인 타운센드를 알게 된 뒤 타운센드와 남편을 보고 생각에 잠긴다.

 

 

타운센드는 키가 컸다. 최소한 185센티미터는 될 거라고 키티는 생각했다. 게다가 외모도 아름다웠다. 첫눈에 봐도 아주 건강했고 군살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는 방 안에서 옷맵시가 가장 뛰어날 정도로 옷을 입는 감각도 좋았다. 게다가 그는 그녀가 좋아하는 똑똑한 남자이기도 했다. 그녀의 눈은 월터(남편)에게로 옮아갔다. 월터는 앞으로 좀 더 신경 써서 옷을 입어야 할 것이다.

- 서머싯 몸 저, <인생의 베일>, 61쪽.

 

 

‘월터는 앞으로 좀 더 신경 써서 옷을 입어야 할 것이다.’의 문장은 남편의 모습이 후졌음을 느꼈다는 걸 뜻한다.

 

 

이 두 가지의 소설에서 모두, 작가는 해설가의 역할을 하지 않고 등장인물들의 상황만 보여 준다. 만약 작가가 해설가의 역할까지 한다면 이렇게 썼으리라.

 

 

톨스토이는 이렇게 썼으리라. 

 

 

페테르부르크에 내린 안나는 남편을 보자마자 꼴보기 싫음을 느꼈다. 매력적인 남자인 브론스키을 만난 직후였기 때문이다. 기혼자가 배우자 아닌 누군가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되면 상대적으로 배우자가 볼품없는 사람으로 보이는 법이다.

 

 

서머싯 몸은 이렇게 썼으리라.

 

 

매력적인 타운센드를 알게 된 뒤 키티는 남편이 후져 보였다. 기혼자가 배우자 아닌 누군가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되면 상대적으로 배우자가 볼품없는 사람으로 보이는 법이다.

 

 

그런데 만약 이렇게 친절하게 해설해 주는 소설을 읽는다면 소설이 얼마나 재미없겠는가. 그건 마치 작가가 음식을 씹어서 독자에게 먹여 주는 것과 같다. 작가의 할 일은 맛있는 음식이 차려진 상을 독자에게 주는 것일 뿐이다. 그것을 맛보는 것은 독자의 몫이어야 한다.

 

 

 

 

 

 

 

 

 

 

 

 

 

 

 

 

 

 

 

 

 

 

 

 

 

4. 해설가는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앞의 1번에서 이렇게 쓴 글이 있다. 

 

 

집에 와 생각해 보니 이런 것 같다. 난 내가 쓴 글을 친구들이 보는 게 창피한 것이다. 당당하게 내 글을 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내 글에 자신이 없는 것이다. 친구들과 얘기를 나눈 일로 내가 내 글쓰기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인간은 그렇다.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모른다.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그 일을 계기로 자신에 대해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만약 내가 1번의 얘기로 소설을 쓴다면 위의 글에서 괄호 안에 있는 글을 빼야 할 것이다. 이것이 해설이기 때문이다. 이런 해설은 소설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소설은 현실의 삶을 겪으며 그것을 해석하는 우리의(독자의) 능력을 키워 줄 수 있는 소설이 될 때 가치 있는 소설이 된다. 그러므로 소설가는 해설가로 나설 것이 아니라 해설가의 역할을 독자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작가의 할 일은 ‘등장인물들의 상황을 읽고 무엇을 느끼고 생각해야 하는지’를 독자에게 과제로 내 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 과제를 독자 스스로 해결하도록 훈련을 시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런 훈련을 통해 독자는 현실의 삶을 읽어 내는 능력 즉 해석(해설)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것이다. 이 능력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의 현실의 삶은 상황만 있고 해설가가 없기 때문이다. 현실의 삶에서 해설가는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소설에서는 해설가가 없다. 소설을 읽는 사람이 해설해야 한다. 현실의 삶에서도 해설가가 없다. 현실의 삶을 사는 사람이 해설해야 한다.

 

 

이 글의 마지막은 다음의 글로 장식한다.

 

 

지혜란 누구한테 배울 수 있는 게 아니고, 다만 그 누구도 우리를 위해 대신 수행해주지는 않는 여행을 통해, 그 누구도 우리를 위해 면제해주지는 않는 노력을 통해 우리가 스스로 발견해야 하는 것일세.

- 알랭 드 보통 저,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94쪽.

 

 

지혜란 누구한테 배울 수 있는 게 아니고, (…) 우리가 스스로 발견해야 하는 것임을 기억하자는 뜻에서 이 글을 뽑아 옮겼다.

 

 

(참고 사항) : 옮긴 글에서 '여행'을 '정신적인 여행'이라고 읽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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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1>

 

이 글의 소제목으로 네 개를 썼다. 네 개의 소제목에 대해 설명하자면 이렇다. 1번과 2번이 서로 짝을 이루고, 3번과 4번이 서로 짝을 이룬다.

 

1.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2. 아십니까?

 

3. 왜 글의 진실을 말로 설명하지 않는가?

4. 해설가는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건 사족이다. 이렇게 일일이 설명하면 글의 가치를 떨어뜨리기 때문에 사족이다. 독자 스스로 알아차릴 기회를 필자가 빼앗았다는 얘기다. 독자의 상상력을 필자가 차단시켰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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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2>

 

나는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지 않고 글을 끝내면 답답하다. 독자가 모를까 봐 걱정이 된다. 그래서 나 같이 소심한 사람은 소설을 쓰면 안 되는 것이다.

 

소설을 읽는 것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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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4-06-15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제 블러그를 현실 세계에 있는 분들에게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습니다. 알라딘 블러그는 일종의 가면 하나를 벗은 장소인데, 이런 모습이 쑥스럽고 불편할 것 같아서요... ^^

각자의 해석이 다른 소설이 훌륭한 소설로 남는 것 같다는 생각을, 언니의 글을 읽으면서 했네요. 논점이 분명해야 하는 글이 있고, 아닌 글이 있네요. 하기사 지나치게 뻔한 글은 강요하는 것 같아서, 상상력이 없는 것 같아서, 과일의 액즙이 풍성하게 느껴지지 않아서 끌리지 않더라구요.

페크(pek0501) 2014-06-15 15:52   좋아요 0 | URL
마고 님, 안녕?

으음... 저는 이 서재를 갖게 되면서 신기해서 글 쓰는 친구들에게 이곳을 알려 줬어요. 저처럼 이런 블로그를 만들라는 말과 함께요.

그런데 제 글이 쌓이면서 언제부턴가 이곳에 제가 아는 이들이 들어온다는 게 부담스럽더군요. 아는 이들이 없다면 보다 편히 글 쓸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님은 이곳이 가면 하나를 벗은 장소라고 했는데 맞아요. 그런데 다른 측면에서 보면 가면을 하나 쓴 곳이기도 해요. 방문자들 대부분이 제 실명을 모르기 때문이죠.

각자의 해석의 다양성... 그래서 문학은 어려운 것 같아요. 다양한 시각을 유도할 수 있는 문학이 좋은 문학이라는 점에서요. 까뮈의 <이방인>처럼요.
저는 명료하고 명쾌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소설 창작과는 맞지 않다는 걸 깨달았어요. 좋아하는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은 별개인 거죠.
저는 소설 팬일 뿐인 거죠.

요즘 글쓰기 책을 보고 있는데 기초부터 다시 배우고 있단 생각이 들어요.
제가 새롭게 배운 것들을 중심으로 정리해서 조만간 글을 올릴 예정이에요.
그런데 그 몇 권을 언제 다 읽으려나...

또 봐요, 반가운 님!!!^^^

다크아이즈 2014-06-15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에서의 <말하기 기법(설명)>과 <보여주기 기법(묘사)>을 예시로 보여주시네요.
말하면 망하고, 보여주면 흥해요. ㅋ
이론처럼 쓰기가 쉽지 않다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할까요.
잘 쓰는 소설가가 넘쳐나면 우린 뭘 읽어야할지 심히 행복하게 혼란스러워해야하니까요. ㅋ


글에 자신이 없어서 친구에게 블러그를 알려주지 않게된다는 페크 언냐 의견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ㅋ 알려주고 싶지 않은 게 일반적인 생각 아닐까요. 아는 누군가가 내 블러그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쓴다는 자체가 부담이 되기도 하잖아요. 아무도 모르게 불특정다수를 향한 (진솔한)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는데, 현실에서는 그게 어렵지요? 자기 보호 본능 때문이지 글에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걸 인정해주시어요. 왜냐면 페크님 글은 참으로 당당하고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페크(pek0501) 2014-06-16 08:18   좋아요 0 | URL
"말하면 망하고, 보여주면 흥해요." - 이런 훌륭한 말을 남겨 주시다니 감사드려요.
이 말 한 방이면 되네요. 외워 놓겠어요. ㅋ

자기보호본능... 으음~ 그런 것도 같네요. 자신감 결여가 아니란 말이지요?
제 글에 자신감이 넘치면 저는 얼마든지 제 블로그 주소를 가르쳐 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착각이란 말이죠? 어쩌면 님의 말씀이 진실일지도 모르겠군요. 앞으로 시간을 갖고 분석해 보겠습니다.

제 글이 당당한지 저는 몰랐어요. 의식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그게 맞는 것도 같아요. 들킨 것 같은 느낌이 순간 들었거든요.
겉으로 보이는 당당함과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심리적 위축, 이 두 가지를 제가 다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떤 게 저의 참모습에 더 가까운지 모르겠어요. ㅋ
창피하다는 생각은 자주 합니다. 뻔뻔해져야겠단 생각도 자주 합니다. 뻔뻔하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아요...
오늘도 뻔뻔하기!!!!!!!!!!! 입니다. ^^(이런 댓글도 뻔뻔해야 쓸 수 있어요.)

맨 마지막 말씀은 호평이네요. 응원의 뜻으로 감사하게 접수합니다. ^^


잘잘라 2014-06-16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페크님은 더 자주, 더 찐하게, 뻔뻔하실 필요가 있구요!!

3) 자신을 알게 되는 계기.. 정말요. 제가 오늘 처음으로 빵을 만들었거든요. 잘 되서 맛있게 먹었는데요.. 아아, 빵 먹자마자 밥이랑 김치가 왜 그렇게 땡기든지요. 결국, 오이소박이 한 탕기 꺼내서 밥 한그릇 뚝딱- ㅋㅋㅋ 그리고는 '빵은 아니야.. ㅠㅠ' 이랬다니까요. 아이쿠. 잔뜩 사들인 제빵도구들을 우짤꼬.. 잠이 안 옵니다요. 이 일을 계기로 저는 '빵도 좋고 밥도 좋지만 밥이 백만 배는 더 좋다는 거'랑요, 빵 없이는 살아도 밥, 김치 없이는 못 산다는 것을 확실히 일게 되었습니다요. ㅎㅎ

페크(pek0501) 2014-06-16 08:2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재밌고 의미 있는 댓글을 남겨 주셨네요.
그러고 보니 저도 경험이 있네요. 어느 날 빵이 먹고 싶어서 사 왔는데(모카 로울 케익인가) 하루만에 질려서 그 다음날엔 그 남은 것을 먹기 싫은 거예요.
역시 밥과 김치과 최고죠. 매일 밥상에 올라와 있어도 싫증이 안 나잖아요.

어떤 일이 터져야만 알 수 있는 것? 인간의 마음...

님 덕분에 유쾌한 하루가 시작될 것 같아요. 감사드립니다. ^^

노이에자이트 2014-06-19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편으로는 사람이 하는 동작을 아주 세밀하게 묘사한 문장을 읽는 재미도 있더군요.요즘 작가들 중엔 하성란 씨가 그런 것에 능합니다.

스티븐 킹이나 딘 쿤츠의 소설 작법에도 대화 한 마디나 아주 짧은 문장으로 상황을 정리하는 기법을 익히라고 조언하죠.이거 못하면 직업작가가 될 수 없으니까요.

페크(pek0501) 2014-06-20 12:48   좋아요 0 | URL
그렇죠. 소설을 읽을 때 주제니 결말이니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작가의 세밀한 관찰력 덕분에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게 중요하죠.
그런 재미로 소설을 읽는 거죠.
드라마도 그래요. 불륜을 저지르다가 이혼하고 새 연인에게 가지만 조강지처가 그리워 돌아온다, 뭐 이런 이야기나 결말보다 그런 과정에서 보여 주는 인간의 모습들이 재밌어서 시청을 하는 거죠.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자신의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 주죠.
작가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


 

 

 

 

<인생의 베일>을 읽고 몇 가지를 생각하였다.

 

 

 

 

 

 

 

 

 

 

 

 

 

 

<인생의 베일>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를 두 번 읽고 광팬이 되어 그의 다른 작품을 읽었다. <인간의 굴레에서 1><인간의 굴레에서 2>를 읽었고 그 다음에 <인생의 베일>을 읽었다.

 

 

이 작품은 내가 인물보다 이야기를 소설의 출발점으로 삼아 쓴 유일한 소설이다.”라고 저자의 말에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인생의 베일>은 이야기 중심으로 전개되기에 가독성이 높은 편에 속할 소설이다. 게다가 내용은 흥미진진해서 속도를 내서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드라마틱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불륜의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방에 이상한 소리가 들린 것.

 

 

 

그녀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왜 그러지?”

그가 물었다.

덧창이 닫힌 어두운 방 안이었지만 그는 그녀의 얼굴이 갑자기 공포로 사색이 되는 것을 보았다.

방금 누가 문을 열려고 했어요.”

하녀나 하인 중 하나였겠지.”

하인들은 이 시간에 얼씬도 안 해요. 내가 점심 후에 꼭 낮잠 자는 걸 아니까.”

그럼 누구지?”

월터…….”

그녀가 속삭였다.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 서머싯 몸 저, <인생의 베일>, 15.

 

 

그녀의 집에 함께 있는 두 사람. 방금 방문을 열려고 했던 사람이 그녀의 남편(월터)이 아닐까 걱정하며 두 사람이 긴장하는 장면이 이 소설의 첫 장면이다. 두 사람은 그녀의 남편이 그들의 비밀스런 관계를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하며 불안해 한다.

 

 

 

 

 

 

1. 우리는 왜 가짜에 빠져드는가?

 

 

예술품 중에서 가짜 예술품인 도자기가 아름답게 보이는 것처럼, 가짜 예술품인 풍경화가 아름답게 보이는 것처럼 진실하지 않은 사람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인생의 함정이라 할 만하다. 여기, 인생의 함정에 빠져서 불행해진 여자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키티. 키티는 남편(월터)이 있지만 유부남인 찰스의 매력에 빠진다.

 

 

 

그는 그녀를 향해 특유의 매력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는 언제나 그 미소 앞에서 무기력했다. 그 미소는 그의 청명한 파란 눈에서 시작되어 맵시 있는 입가로 서서히 번져 가다가 마침내 정체를 드러냈다. 그는 작고 하얀 고른 치아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매우 관능적인 미소로 그녀의 심장을 몸 안에서 녹아들게 만들었다.

- 서머싯 몸 저, <인생의 베일>, 21.

 

 

각각 가정을 가지고 있는 키티와 찰스는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버린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를 알게 된 남편 월터.

 

 

당신은 남자도 아니에요. 내가 찰스와 함께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왜 방으로 뛰어 들어오지 않았죠? 최소한 그를 때려눕힐 수도 있었잖아요. 두려웠나요?”

하지만 그녀는 그 말을 내뱉은 순간 부끄러운 나머지 얼굴을 붉혔다. 창피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의 눈에서 얼음처럼 차가운 혐오감을 읽었다.

- 서머싯 몸 저, <인생의 베일>, 98.

 

 

이혼을 해 달라는 그녀(키티)에게 남편은 제안한다. 찰스의 아내가 찰스와 이혼하겠다는 확답을 자기에게 주고 찰스가 그녀(키티)와 결혼하겠다고 자기에게 서면 동의를 한다면 이혼을 해 주겠다는 것이다.

 

 

그녀는 사랑하는 찰스에게 곧장 달려가 그 사실을 말한다. 그러자 평화로웠던 그 둘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 ()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어떻게 여기서 빠져나가느냐 하는 거야. 당신도 나처럼 이혼을 원치 않을 거라 생각하는데.

순간 그녀는 놀라 숨이 턱 막혔다.

- 서머싯 몸 저, <인생의 베일>, 103.

 

 

그녀는 모든 게 탄로가 났으니 찰스가 아내와 이혼하고 자기와 결혼해 주리라고 믿었다. 찰스가 자기와 결혼하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혼을 원치 않는다고 말하는 찰스에게 놀랄 수밖에 없는 그녀. 게다가 찰스는 이 문제를 입막음하지 못하면 자신의 직장 생활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만을 걱정할 뿐, 그녀의 괴로운 마음을 헤아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결국 찰스의 배신으로 상처받은 그녀는 최악의 불행에 빠지고 만다.

 

 

워딩턴이라는 사람과 찰스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던 그녀는 찰스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본다. 찰스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되자 찰스를 제대로 보게 되었는지 모른다.

 

 

찰스가 멍청하고 허영심이 많으며 칭찬에 목말라한다는 것은 그녀가 봐도 분명했고 자신의 똑똑함을 증명하기 위해 일화들을 늘어놓을 때 그에게서 번뜩이던 자기 만족감이 떠올랐다. 그는 저급한 술수를 자랑스러워했다. 그런 남자에게 그토록 열과 성의를 다해 마음을 바쳤다니 자신이 한심스럽기 그지없었다. 단지 그가 멋진 눈과 훌륭한 몸을 가졌다는 이유로!

- 서머싯 몸 저, <인생의 베일>, 143~144.

 

 

뒤늦게 찰스에 대해 참모습을 보게 된 그녀.

 

 

바람둥이에 불과한, 진실하지 못한 연인을 매력 있는 사람으로 보고, 멋대가리 없고 투박하지만 진실한 남편을 매력 없는 사람으로 보던 그녀. 그녀는 찰스의 잘생긴 얼굴이 뿜어내는 매력에 눈이 멀어 그의 내면을 꿰뚫어 보지 못했다. 그의 잘생긴 얼굴은 고상한 생각을 품을 줄 모르는 그의 참모습을 가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녀의 불행은 찰스가 어떤 남자인지를 제대로 보지 못해 생긴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설득의 심리학>에는 호감의 법칙이 소개된다.

 

 

한 연구에 의하면, 우리는 잘 생긴 사람은 으레 능력있고 친절하고 정직하며 머리가 영리할 것으로 연상한다고 한다. 더군다나 우리는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 그들의 신체적 매력에 의해 우리의 평가가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조차도 인식하지 못한 채 그들을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 로버트 치알디니 저, <설득의 심리학>, 245.

 

 

 

 

 

 

 

 

 

 

 

 

 

<설득의 심리학>

 

 

 

 

이 책에 따르면 구인시장에서도 이런 일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모의 면접 상황을 설정하였을 때 구직자들의 깔끔한 외모가 직업적인 자질보다 더 호의적인 고용 결정을 받아냈다는 연구 결과가 나타났다.”(245)는 것이다.

 

 

우리는 상대의 외모가 상대의 내면이나 능력의 평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이것이 우리가 가짜에 빠져드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꼭 미남 미녀가 아니더라도 대체로 웃는 인상을 주는 사람은 성격이 좋아 보이고 마음씨가 착해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다를 수 있다.)

 

 

 

 

 

 

2. 키티가 사랑한 남자는 허상이었을까?

 

 

훗날 키티가 다시 만난 찰스는 예전의 모습과 많이 달라 보였다.

 

 

그의 얼굴은 너무 붉고 뺨에는 자줏빛 혈관이 비쳐 보이는 데다가 턱살은 몹시 거대했다. 그것을 숨기기 위해 그가 고개를 쳐들지 않으면 이중턱이 그대로 드러났다. 게다가 그 무성하고 희끗희끗한 눈썹이 어쩐지 원숭이 같아서 그녀의 비위를 살짝 거슬렀다. 그는 움직임도 무거웠다. 다이어트에 쏟아 붓는 그 모든 노력과 운동량도 비만을 쫓아내지 못한 것이다. 뼈를 덮은 살은 두툼해지고 관절들은 노인처럼 삐그덕거렸다. 이제 그의 멋쟁이 의복은 다소 끼어서 그가 입기엔 너무 젊은 남자의 것이 되어 버렸다.

- 서머싯 몸 저, <인생의 베일>, 293.

 

 

그녀는 찰스의 아름답지 않은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그래서 키티는 점심을 먹기 전 그가 응접실에 들어왔을 때 꽤 큰 충격을 받았다. 그녀의 상상력이 이상한 속임수를 부려 그녀를 속였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녀가 머릿속에 그린 모습과 조금도 비슷하지 않았다.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을 정도였다. () 무엇에 씌어서 그에게 빠졌던 것일까?(

- 서머싯 몸 저, <인생의 베일>, 293~294.

 

 

그녀가 사랑한 것은 그의 허상이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사랑한 남자는 누구였을까? 그 사랑하던 남자는 어디로 갔을까? 이 이야기를 통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느낄 때 그를 제대로 알고 사랑한 것이긴 할까 하는 것.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상대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네가 즐겨 마시는 커피의 종류를 알고, 네가 하루에 몇 시간을 자야 개운함을 느끼는지 알고, 네가 좋아하는 가수와 그의 디스코그래피를 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인가? 나는 네가 커피 향을 맡을 때 너를 천천히 물들이는 그 느낌을 모르고, 네가 일곱 시간을 자고 눈을 떴을 때 네 몸을 감싸는 그 느낌을 모르고, 네가 좋아하는 가수의 목소리가 네 귀에 가닿을 때의 그 느낌을 모른다. 일시적이고 희미한, 그러나 어쩌면 너의 가장 깊은 곳에서의 울림일 그것을 내가 모른다면 나는 너의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 것인가.

몰락의 에티카에서 뽑아 다듬어 옮기다

- 신형철 저, <느낌의 공동체>에서.

 

 

 

 

 

 

 

 

 

 

 

 

 

 

<느낌의 공동체>

 

 

 

 

여자인 당신이 광적으로 좋아하는 남자 가수가 있다고 치자. 당신은 그가 아침에 잠에서 깬 뒤 눈곱이 끼어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그가 밥을 먹고 난 뒤 트림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그가 방귀를 끼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혹시 당신은 그가 노래하는 멋진 모습만 보고 좋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혹시 당신은 그의 일 퍼센트에 해당할지 모를 모습만을 좋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냥 좋아하면 그만이지 이런 분석이 왜 필요하냐고요? 당신의 인생을 좌우하는 배우자 선택에 있어서도 실체와 허상의 구분은 필수이기 때문이지요.) 

 

 

내가 소설에 흥미를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인간에 대한 통찰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을 제대로 알기, 인간을 제대로 보기. 이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키티의 불행은 상대를 올바르게 이해했다면 피할 수 있는 불행이었다. 그녀는 베일에 가려 있는 인간(또는 인생)의 진실을 몰랐다. 허상에 속았다

 

 

 

 

 

 

3. 작가의 관찰력을 관찰하는 재미로도 읽을 수 있다

 

 

소설에서 줄거리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제나 결론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이런 게 중요하다면 소설의 긴 분량의 내용을 요약해 놓은 글이나 해설을 보면 된다.) 소설을 진정으로 즐길 줄 아는 독자라면 아마도 그런 것들을 뺀 나머지의 것들을 음미할 줄 아는 감각을 가졌으리라. 그중 하나가 인간에 대한 작가의 관찰력을 음미하는 것

 

 

예를 들면 이런 단순한 문장에서도 작가의 관찰력을 느낄 수 있어 흥미롭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는 그녀의 말이 교만하게 들리지 않도록 웃음을 터뜨렸다.

- 서머싯 몸 저, <인생의 베일>, 27.

 

 

우리도 한 번쯤 이런 적이 있었으리라. 상대가 들으면 기분이 나쁠 말을 해 놓고 상대의 눈치를 살피며 내가 심했나.’ 하면서 자신이 했던 말을 적당히 얼버무리기 위해 웃을 때가 있었으리라.

 

 

그녀의 명랑함 뒤에 숨겨진 책망을 그가 보았을까.

- 서머싯 몸 저, <인생의 베일>, 27

 

 

우리도 한 번쯤 이런 적이 있었으리라. 자신이 웃으면서 명랑한 척하며 말을 했지만 그 말 안에는 상대에 대한 책망이 담겨 있어서 그것을 상대가 느꼈을까 하고 걱정할 때가 있었으리라.

 

 

작가는 자신을 또는 타인을 관찰함으로써 이런 문장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알기론 소설을 쓰는 작가는 인간을 세세히 보는 가장 훌륭한 관찰자이다.

 

 

 

내가 소설을 읽는 것도 인간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는 것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소설엔 굉장한 것들이 들어 있다. 같은 소설을 읽고도 독자에 따라서 10프로만 흡수하는 독자가 있고 90프로 흡수하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건 몇 프로 흡수했느냐, 하는 게 아니다. 그 소설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느냐, 하는 게 중요하다. 나의 경우엔 인간의 모습을 보고 느끼는 그 무엇이 중요하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소설의 줄거리나 주제나 결론, 그것들은 어쩌면 소설의 껍데기일 수 있다. 내가 소설에서 알맹이라고 여기며 주목해 보는 것은 인간의 모습들이다. ‘, 저런 게 인간이구나또는 저런 게 인간의 본질이었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런 것에 흥미를 갖는 한, 나의 소설 읽기는 계속될 것이다.

 

 

 

 

 

.........................................................

불행에 빠진 키티는 다른 인생에서 행복을 찾게 됩니다. 어떤 인생이 이어질지 궁금하신 분들은 <인생의 베일>을 읽어 보세요. 스포일러가 되지 않기 위해 그 뒤의 이야기는 생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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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4-05-16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에는.....
월터의 마지막 선택을 이해할수 없었어요.
왜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을까..하고 말이죠.


페크(pek0501) 2014-05-17 12:1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월터도 키티도 이런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나처럼 살아 보지 않고선 그 누구든 나를 비난할 수 없다."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이 살아보지 않고선 누구든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밖에 나갔다 왔는데 봄 공기가 좋더군요. 푸른 나뭇잎들은 꽃보다 더 아름답고요.
우리 모두의 삶도 슬픈 일 없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면 좋겠어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

2014-05-16 1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17 1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17 0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17 1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14-05-18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명한 파란 눈에서 시작되어 맵시 있는 입가....흥, 잘생긴 것들은 다는 아니지만 바람둥이가 될 확률이 높다구요. 그래서 여자들은 저처럼 못생긴 사람을 좋아하는 게 더 이익이라고요. 안타까운 점은 여자들이 그걸 잘 모른다는 점이죠...

아무개 2014-05-19 08:52   좋아요 0 | URL
ㅎㅎ 책에도 그렇게 강조해서 써놓으시더니 여기도 ^^::::::

마태우스 2014-05-20 13:10   좋아요 0 | URL
앗 아무개님 들켰네요...^^

페크(pek0501) 2014-05-20 13:43   좋아요 0 | URL
ㅋㅋ 두 분이 주인 없는 서재에서 주거니 받거니 하고 계셨군요.
마태우스 님, 아무개 님, 안녕들 하십니까?
반갑습니다. ^^

외모와 관련해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해 올려 보겠습니다.
아, 봄이어요... 봄날을 즐기시길...

2014-05-20 1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20 1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14-05-22 10:30   좋아요 0 | URL
어...지금 보니깐 안보이네요. 한글로 작업한 뒤 옮기면 이상한 암호들이 떠서 보기가 불편하던데.... 죄송! 제 착각이었나봐요 앞으론 그런 거 보면 캡쳐한 뒤 님께 말씀드릴게요

2014-05-22 1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4-05-21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생의 베일은 안나 카레니나랑 느낌이 비슷할듯요^^
다른 인생에서 행복을 찾는 키티라니.......궁금해서 얼른 찾아봐야 겠습니다.
서머싯 몸을 참 좋아하시는 페크님^^

페크(pek0501) 2014-05-22 00:48   좋아요 0 | URL
맞아요. 유부녀인데다 사랑에 전부를 걸었던 두 여자라는 점에서 그러네요.
사랑말고도 재밌는 삶, 행복한 삶은 얼마든지 있지요.
세실 님과 나처럼 이렇게 책에 매료되어 사는 삶이 있듯이요. 히히~~
서머싯 몸의 광팬이랍니다. ^^

노이에자이트 2014-05-22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가진 정음사판 제목은 <거짓된 생활>입니다.<인생의 베일>보다 제목 번역이 더 잘 되었다고 봅니다.

페크(pek0501) 2014-05-23 22:17   좋아요 0 | URL
좋네요. 거짓된 생활...
원제는 The Painted Veil.
원제에 충실한 제목이었나 봐요.
 

 

 

1. 괴로울 땐 봉사를 해라

 

 

 

 

 

 

 

 

 

 

 

 

 

 

 

 

 

 

 

 

 

 

책을 읽다 보면 형식만 다를 뿐, 글의 의미가 어떤 책에 있는 글의 의미와 똑같다는 것을 발견할 때가 많다. 이렇게 중복되는 글을 읽으면서 ‘역시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구나.’ 하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이라는 책을 읽다가도 다른 책에서 봤던 글의 의미와 같은 글을 발견했다. <인생의 베일>이라는 책에서 봤던 것과 의미가 같았던 것. 그러나 전자는 도정일 저자의 산문집이고, 후자는 서머싯 몸의 소설이니 글의 형식은 엄연히 다른 것이고 글을 쓴 시대도 달랐다.

 

 

 

먼저 도정일 저,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에 있는 글을 소개한다.

 

 

 

긍정심리학 분야를 개척한 셀리그먼은 작년에 낸 책 『번성하라Flourish』에서 어떤 동료 교수의 소년 시절 추억담 하나를 소개하고 있다. 소년이 무슨 일인가로 잔뜩 기분이 상하고 풀이 죽어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을 때면 엄마가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는 것이다. “얘야, 너 오늘 영 기분이 안 좋은 모양이구나. 그럴 땐 어떻게 하는지 알지? 얼른 나가서 누구든 다른 사람을 좀 도와줘보렴.” (…) 한 엄마의 소박한 지혜가 긍정심리학이라는 새 학문 분야를 개척하는 데 어떻게 기여했는가를 보여주자는 것이 이 일화의 골자다.

소박한 지혜는 평범해 보이지만 위대한 데가 있다. 그것은 공부를 많이 해서 쌓은 지식도, 자랑할 만한 최첨단 정보도 아니다. 인생의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을 두루 지내온 사람들이 경험으로 알고 느낌으로 아는 직관적 진실, 그것이 지혜다. 이 지혜의 가장 값진 부분은 ‘인간의 진실에 대한 겸허한 이해’다. 위 일화에 나오는 엄마는 사람들이 어느 때 힘을 얻고 행복해지는가를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는 그 경험에서 터득한 행복의 비결 하나를 아들에게 말해준 것이다. 엄마가 한 말은 “우리 아들 기분이 영 말이 아니구나. 어디 가서 맛좋은 것 사줄까?”도 아니고 “우리 구경 갈까?”도 아니다. “나가서 누구든 다른 사람을 좀 도와주고 와보렴”이다. 타인에게 베푸는 도움과 친절은, 그게 아무리 작은 도움이고 친절이라 할지라도 도와주는 사람 그 자신을 들어올려 존재의 상승을 경험하게 한다.

- 도정일 저,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39~40쪽.

 

 

 

이 글은 남을 도움으로써 오히려 자신이 행복해진다는 진실을 산문으로 전하고 있다. 이런 진실을 그대로 보여 주는 소설이 있으니, 그게 바로 서머싯 몸 저, <인생의 베일>이라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유부녀와 유부남이 연애를 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두 사람은 불륜의 사랑을 하며 매우 행복해 한다. 그러나 이 일이 남편 월터에게 발각되자 그녀는 처음엔 걱정하다가 시간이 흐르자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남편 월터와 이혼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 찰스와 결혼해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찰스도 당연히 자신의 아내와 이혼하고 자기와 결혼할 수 있게 된 사실에 기뻐할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찰스는 자신의 아내와 이혼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이 문제가 자신의 직장 생활에 조금이라도 흠집을 내지 않고 조용히 해결되기만을 바랐던 것.

 

 

 

그의 태도에 그녀는 몹시 슬퍼하며 죽고 싶을 정도로 절망한다. 게다가 그녀의 남편 월터는 그녀가 바람을 피운 증거를 모두 갖고 있다며 그녀에게 중국인 오지인 메이탄푸에 함께 가서 살자고 협박한다. 그곳은 세균학자인 그가 근무지로 지원한 곳으로 ‘콜레라’라는 전염병이 창궐하여 사람의 목숨을 앗아 가고 있는 위험한 지역이었다.

 

 

 

“난 안 가요, 월터. 나한테 그런 걸 요구하다니 끔찍해요.”

“그럼 나도 안 가겠소. 즉시 고소장을 제출해야겠군.”

- 서머싯 몸 저, <인생의 베일>, 93쪽.

 

 

 

위험한 지역에 따라가든지, 자신으로 하여금 아내의 간통 고소장을 제출하게 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남편 월터. 그는 아내를 사랑하지만 바람피운 아내를 용서할 수 없어서 그런 제안을 한 것.

 

 

 

그녀는 남편 월터가 고소장을 제출하게 내버려 둘 수 없었으므로 결국 남편을 따라 위험한 지역을 가는 쪽을 선택한다. 그곳은 콜레라 때문에 생과일이나 샐러드 같이 익히지 않은 음식을 먹으면 위험한 곳이라 항상 긴장하며 살아야 했다. 미처 치우지 못한 시체를 거리에서 보기도 했다. 그녀는 남편 월터가 자신에 대한 복수심으로, 죽을지도 모를 위험한 지역으로 자신을 데려왔다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그녀는 자신이 최악의 상황에 빠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녀의 생각이 바뀐다. 어느 날 원장 수녀의 초대로 수녀원을 방문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고아가 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게 되면서부터다.

 

 

 

“키티는 봉사하는 일에서 영혼을 재충전하는 길을 발견했다.”

- 서머싯 몸 저, <인생의 베일>, 190쪽.

 

 

 

그녀는 아이들을 돌보면서 자신이 무가치하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있었다.

 

 

 

소녀들의 밝고 영리한 웃음과 그녀가 던지는 칭찬 한마디에 그들이 느끼는 기쁨이 그녀를 감동시켰다. 그들이 그녀를 좋아하고 찬미하고 자랑스러워한다는 걸 느끼면서 그녀도 보답으로 그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 서머싯 몸 저, <인생의 베일>, 192쪽.

 

 

 

그녀는 어느 날 문득 깨닫는다.

 

 

 

어느 날 문득, 그녀는 일주일 동안 한번도 찰스 타운센드에 대한 생각을 하거나 꿈을 꾸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갑자기 그녀의 심장이 쿵쿵 두방망이질했다. 그녀가 치료된 것이다. 이젠 찰스를 생각해도 아무렇지 않았다. 더 이상 그를 사랑하지 않아. 아, 이 평안과 자유스러움이여! 돌이켜 보니 이상했다. 그토록 열정적으로 그를 열망했다니. 그가 그녀를 버리면 죽어 버리겠다고 생각했는데. 그후의 삶은 절망일 뿐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지금 그녀가 웃고 있다. (…) 자유, 자유, 마침내 자유였다!

- 서머싯 몸 저, <인생의 베일>, 201쪽.

 

 

 

그녀는 남편에게 이젠 더 이상 찰스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었다.

 

 

 

어쨌든 그들이 그 모든 일을 극복하고 공포와 절망의 무대 한복판에서 살아 있는 마당에 간통 같은 어리석은 짓거리에 연연해한다는 것 자체가 터무니없어 보였다. 모퉁이 하나만 돌면 죽음이란 놈이 감자를 땅에서 캐내듯 인명을 앗아 가며 활개를 치는 이때에 누가 몸뚱이를 더럽혔네 어쩌네 하는 것에 신경을 쓰다니 바보 같은 짓이었다. 찰스가 그녀에게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그래서 그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일조차 얼마나 힘겨운지, 그에 대한 사랑이 그녀의 가슴에서 완전히 빠져나가 말라 버렸다는 걸 그에게 납득시킬 수만 있다면!

- 서머싯 몸 저, <인생의 베일>, 225쪽.

 

 

 

그녀는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봉사함으로써 자신의 모든 괴로움을 말끔히 지워 버렸을 뿐만 아니라 행복하기까지 했다.

 

 

 

“지금처럼 행복한 적은 내 생애에 없었어요.“

- 서머싯 몸 저, <인생의 베일>, 225쪽.

 

 

 

내가 여기까지 길게 쓴 것을 압축하면 다음의 두 개의 인용문으로 정리할 수 있다.

 

 

 

 

 

소년이 무슨 일인가로 잔뜩 기분이 상하고 풀이 죽어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을 때면 엄마가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는 것이다. “얘야, 너 오늘 영 기분이 안 좋은 모양이구나. 그럴 땐 어떻게 하는지 알지? 얼른 나가서 누구든 다른 사람을 좀 도와줘보렴.

- 도정일 저,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39쪽.

 

 

키티는(그녀는) 봉사하는 일에서 영혼을 재충전하는 길을 발견했다.”

- 서머싯 몸 저, <인생의 베일>, 190쪽.

 

 

 

 

 

또 두 개의 인용문을 더 압축하면 이렇게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괴로울 땐 봉사를 해라.’

 

 

 

나는 이 말이 괴로운 것에 대한 생각에서 봉사에 대한 생각으로 전환하라, 라는 말로 읽힌다. A라는 생각에서 (엉뚱하게도) B라는 생각으로 이동하면 좋은 어떤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2. 부자 친구가 돈을 꿔 달라는 가난한 친구보다 낫다고 생각해라

 

 

 

 

 

 

 

 

 

 

 

 

 

 

 

 

 

 

 

 

‘왜 부자 친구를 두면 불행해질까?’

 

 

 

이 물음은 친구가 부자라는 이유로 한 번쯤 기분이 상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물음이리라. 이에 대해 ‘이웃 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강준만 저, <감정독재>에 ‘이웃 효과’에 대한 글이 있다.

 

 

(이웃 효과는) 그 어떤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이웃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을 평가함으로써 발생하는 효과다.

- 강준만 저, <감정독재>, 142쪽.

 

 

마르크스가 말했다.

 

 

 

마르크스는 “집은 클 수도 작을 수도 있다. 주변의 집들이 똑같이 작다면 그것은 거주에 대한 모든 사회적 수요를 충족시킨다. 만약 작은 집 옆에 궁전이 솟아오르면 그 작은 집은 오두막으로 위축된다”고 했다.

- 강준만 저, <감정독재>, 141~142쪽.

 

 

 

아무리 궁전 같은 집에서 살더라도 그 옆에 더 큰 궁전이 지어진다면 그 집에 대한 만족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이웃 효과’다. 인간은 혼자서 사는 게 아니라 이웃과 더불어 사는 존재라서 ‘이웃 효과’가 발생한다.

 

 

행복은 이웃과의 비교에서 나온다. 이웃은 물리적 이웃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친척과 친구 등 늘 이웃처럼 소통하는 사람들도 포함한다. 그래서 이웃이 성공하면 “나는 뭔가?” 하는 자괴감에 빠져들기 십상이다.   

- 강준만 저, <감정독재>, 144쪽.

 

 

 

‘이웃 효과’에 관한 명언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우리는 우리보다 뒤처져 있는 사람들을 보고 행복해하기보다는 우리보다 앞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 불행해진다.” 프랑스 사상가 미셸 몽테뉴의 말이다.

“현실보다는 비교가 사람을 행복하거나 비참하게 만든다.” 영국의 성직자이자 작가인 토머스 풀러의 말이다.

“행복한 것만으론 충분치 않다. 다른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 프랑스 작가 쥘 르나르의 말이다.

“거지는 자신보다 많은 수입을 올린 다른 거지들을 시기할망정 백만장자를 시기하진 않는다.”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말이다.

- 강준만 저, <감정독재>, 142~143쪽. 

 

 

 

어머니가 친구에게 돈을 꿔 주었다가 떼인 적이 있다. 친구가 남편의 사업이 망해서 돈을 갚을 능력이 없다는 걸 알았지만 처지가 딱해져서 꿔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결국 그 돈을 받지 못해 포기해야 했다. 어머니의 친구가 빚쟁이들한테 몰려서 잠적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어머니에게만 돈을 빌린 것이 아니었던 것. 돈도 떼이고 친구도 잃어서 어머니는 많이 속상했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경험을 내 친구도 했다. 친구의 말에 따르면 삼천만 원을 빌려간 자기 친구가 빚쟁이들의 독촉으로 괴로워하다가 몇 년 전에 잠적했다고 한다. 그런데 다행히도 그 친구가 최근에 나타나 자기의 돈을 매월 조금씩 할부로 갚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내 친구의 마음고생이 그 동안 얼마나 심했는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런 게 바로 ‘가난한 친구로 인한 마음고생’이라는 것이다. 이런 걸 보면 부자 친구로 인해 배가 좀 아픈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부자 친구가 돈을 꿔 달라는 가난한 친구보다 낫다는 결론을 낸다.

 

 

 

이렇게 결론을 낼 수 있다면 부자 친구로 인해 불행해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이런 것도 A라는 생각에서 (엉뚱하게도) B라는 생각으로 이동하면 좋은 어떤 것을 얻을 수 있는 '생각의 전환‘이라고 본다.

 

 

 

 

 

 

 

 

3. 내 문제가 아니라 상대의 문제라고 생각해라

 

 

 

 

 

 

 

 

 

 

 

 

 

 

 

 

 

 

 

 

다음의 글을 읽고 멋진 생각이라고 여겼다.

 

 

 

얼마 전 나는 수영장에 갔다가 한 여자가 다른 여자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이 수영장에 입장권을 사지 않고 뒷문으로 몰래 들어온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고는 곁눈으로 힐끗 나를 쳐다보았다. 그 순간 그녀가 나를 지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순간적으로 마음이 상한 나는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고 따질지, 아니면 수영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갈지 고민했다. 그러나 거기에서 멈췄다. 나는 더 이상 아무 생각도 이어가지 않았고 화를 내지도 않았다. 나는 풀 안으로 들어가서 수영을 했고 건너편에서 그 여자가 헤엄을 치며 내 쪽으로 다가오자 친절하게 인사를 건넸다. 우리는 결코 친구가 될 수는 없었지만, 서로를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나는 마음이 상한 원인을 그녀의 잘못으로 돌려주었다. 근거도 없이 함부로 남을 의심하는 것은 그녀의 잘못이지 내 탓이 아니기 때문이다.

- 배르벨 바르데츠키 저,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230쪽.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는 태도를 갖는다면 아무도 자신에게 상처를 줄 수 없겠다. 상대에게 분노를 표출할 필요도 없겠다. 원망도 없겠다.

 

 

 

자신이 받을 스트레스를 상대가 받아야 할 스트레스로 전가하는 것. A라는 생각에서 B라는 생각으로의 전환! 자신의 행복을 위한 현명한 비결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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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03-24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부남 두명을 거치며 30 대를 다 보내버린 지인이 있었어요 ..
처녀였고 예뻤고 모자를것 하나 없는 ..

전 개인적으로 단단한 편견(?!)이 하나 있는데
유부남과 로멘스를 꿈꾸는건 여자들의 순진무구한 착각이라는 것

결국 이용만 당하고 버려진 언니가 그남자가 본부인과 이혼을 하고도 자기에게 오지 않았다고 투덜거리는걸 보고 한심했던 적이 있어요..유부남이 사랑해서 나와 사귈거라고 믿다니..


세가지 글이 그 주제는 아닌데 제가 최근에 읽은 책과 겹쳐서 인생의 베일 글에 울컥하네요.페크님 ..
정말 저 유부남 자식 ..ㅠ

글 전체를 정말 동감하며 읽었습니다..



페크(pek0501) 2014-03-25 14:26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ㅋㅋ 저도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 남자를 미워했어요. 뭐, 이런 남자가 다 있어? 그러면서요. 그런데 말이죠...
"유부남이 사랑해서 나와 사귈거라고 믿다니.." - 이 부분에 대해 코멘트 할게요.
유부남이 짜 사랑해서 사귈 수도 있고 그랬는데 변심하게 되는 수도 있고 처음부터 즐기기 위해서 사귈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그 어떤 경우에든 인간이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욕망은 아무도 말릴 수 없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서머싯 몸이 소설에서 강조하듯, 어쩔 수 없음, 이라는 거죠.
인간이 원래 그런 존재라서 말이죠. 즐기고 싶은 걸 어쩌겠어요. 그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는 나약한 사람으로 태어난 걸 어쩌겠어요.


또 제가 알기론
'변심은 무죄'입니다.

자신이 변하고 싶어서 변하는 게 아니라 자신도 어쩔 수 없는 마음이란 영역의 일이거든요.
설령 돈이 좋다는 이유로, 사귀던 여자를 버리고 돈 많은 집의 딸과 결혼하는 남자도 저는 이해하는 쪽이에요. 나쁜 남자인 건 맞지만....
어쩌겠어요. 사귀던 여자보다 돈이 더 좋은 것을요...
명품 백을 좋아하는 여자의 심리와 비슷한 거죠. 좋은 걸 어쩌겠어요.
사귀던 여자보다 부자인 여자에게 더 끌리면서 사귀던 여자와 억지로 결혼할 순 없잖아요.
제 생각은 그래요. (억지인가요?)ㅋ

물론 저도 그런 남자를 보면 확~ 욕해 주고 싶지요. 하지만 이 생각의 길에서 모퉁이를 돌면 그런 생각이 든답니다.
어쨌든 사랑으로 인해 아픈 여성분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하고 싶습니다.
저도 아파본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비로그인 2014-03-25 18:59   좋아요 0 | URL
pek님 긴 답글을 주셔서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이 부분은 아마도 말씀 하신 것처럼 어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 보편의 문제일 것 같아요.

또 단어 하나 하나에 정의에 따라 모두 다른 생각이 나올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편견이라는 단어까지 쓰면서>유부남이 사랑해서 날 사귈꺼라고 생각하다니 라고 썼던 부분은 이런 거였어요.


제게 사랑은 단순히 좋아서 죽는 감정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랑에는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감정을 일으키는 새로운 대상이 나타났다고 지금 옆에 있는 사랑에 대한 책임조차 쉽게 저버리는 사람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을 솔직히 저는 믿기어려웠습니다.~~^^


지난달 모 방송에 남자들이 대놓고 이 여자 저여자 혼외정사를 즐겼던 남자에게 부럽다는 말을 하더라구요. 남자들 사이에서는 그 분이 영웅으로 통한다고 치켜세우면서. 그러면서도 남자들끼리도 바람 (?) 때문에 제 가정을 버리는 놈은 미친놈이라고 하더라구요. <일종의 보험. 요즘엔 그것도 중도 해약추세지만은요 ^^>

그 상대 여자를 한 인간으로서 존중한다면 그런 말을 나올 수가 없지요.
그런데 상대를 존중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사랑을 할 수 있나 묻고 싶었어요.
그들의 놀이에 사랑이라 믿으며 상처받았던 여자들은 애당초 보이지 않는거죠.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고.. 아닌 사람도 있죠. 그리고 **저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여자들은 내 상대는 그 아닌 사람에게 속한다고 믿고 싶지요.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들이 무슨 의미가 있나싶어요
주신 말씀처럼 놀고 싶다는데 어쩌겠어요..
맞습니다..그게 인간인 것을요.. ㅠㅠ


제가 이래서 결혼을 못하나봐요.. ㅠㅠ
제 동갑인 남자 사촌이 제 나이에도 사랑이라는 단어를 운운하는건 덜떨어지는 거라고 하더라구요. ㅠㅠ
제 이야기가 길었습니다.. ㅠㅠ



pek님^^ ..다시한번 진심어린 답글 감사드립니다. ^^
오늘도 여전히 밖에서 두꺼운 옷 입고는 못다니겠더라구요..
봄이 오기도 전에 초여름이 오려나봐요~~ ^^

페크(pek0501) 2014-03-25 19:55   좋아요 0 | URL
아, 주신 말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썰렁했던 제 서재가 님 덕분에 꽉 찬 느낌이 드네요.

"그 상대 여자를 한 인간으로서 존중한다면 그런 말을 나올 수가 없지요.
그런데 상대를 존중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사랑을 할 수 있나 묻고 싶었어요. "
- 바로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동의해요. 그러니까 제 생각엔 제대로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대부분 가짜 사랑을 한다는 거죠.
이 소설 속의 남자도 그래요.
진정으로 상대를 사랑한다면 일단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부터 갖게 되지요.
내가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되겠다는...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는... 그런 생각부터 하게 되겠죠.
그리고 님의 말씀처럼 책임이 뒤따르겠지요. 책임 없는 사랑은 한낱 유희일 뿐 사랑이 아닌 것, 맞습니다. 신뢰할 수 없어요. 그래서 저는 사랑은 인격과 관련이 깊다고 봅니다. 인격 없는 사람은 사랑도 할 줄 모른다는 게 제 결론입니다.
그런 남자들을 순수하게 사랑을 했던 여자분들에 대해선 안타까워요.

그래도 님은 덜떨어지는 거란 소리를 듣더라도 사랑을 믿었으면 좋겠어요. ㅋ
분명히 제대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 인격이 훌륭한 사람은 있거든요...

님 덕분에 생각할 거리를 얻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늘 날씨가 더워서 집 오는 길에 스카프를 풀렀답니다. 변덕스런 봄 날씨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군요. 얇게 입으면 봄바람이 차고 말이죠.

또 봐요. 저보다 훨씬 젊으신 것 같은데, 얘기가 통해서 좋았습니다. 반가웠습니다. ^^


비로그인 2014-03-26 11:04   좋아요 0 | URL
잠깐의 답글이지만 배움이 많았습니다.

꼭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어요.. ^^

오늘은 정말 따뜻하네요. pek님.. ^^

페크(pek0501) 2014-03-26 15:39   좋아요 0 | URL
오히려 제가 감사... ㅋ

blanca 2014-03-24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맞아요. 러셀이 생각만큼 남들은 남의 일에 신경쓰지 않는다,고 얘기한 것은 우리나라에는 해당사항이 없는 이야기가 아닐런지요. 잘 읽고 갑니다.^^

페크(pek0501) 2014-03-25 14:31   좋아요 0 | URL
반가운 블랑카 님...
제가 아는 알라디너들 중에서 서재 활동을 중단한 분들이 다섯 분이나 되어서 제 서재가 썰렁한 것 같아요. (아, 핑계인가요? 글 탓을 하지 않고 말이죠... ㅋ)
그런데 이렇게 님이 댓글을 남겨 주시면 어떡합니까?

매우 반갑잖아요. ㅋㅋ
님의 말씀이 맞아요.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엄친아 현상 같은 건 우리 나라 특유의 문화라고 하더군요.
땅은 좁고 인구는 많다 보니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오밀조밀 붙어 살아서 그럴까요?

2014-03-30 1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30 15: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30 2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31 14: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30 2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31 14: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기 위해 그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묻는 경우가 있다. 그가 좋아하는 것들과 싫어하는 것들을 듣게 되면 그가 어떤 사람일 거라는 그림이 머릿속에서 대충 그려진다. 그 그림이 간혹 틀릴 때가 있긴 하지만 확실한 점은 좋아하는 것들과 싫어하는 것들엔 그 사람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기 마련이라는 점이다.

 

 

 

좋아하는 음식에 따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예상해 볼 수 있다. 된장찌개를 좋아하는 사람과 비프스테이크를 좋아하는 사람은 다를 것이니까. 좋아하는 음악에 따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예상해 볼 수도 있다. 트로트를 좋아하는 사람과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를 것이니까. 마찬가지로 좋아하는 책에 따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예상해 볼 수 있겠다.

 

 

 

요즘 내가 즐겨 읽는 책을 살펴보면 같은 계통으로 여겨질 책이 많다는 걸 알게 된다. 인터넷 서점에서 많이 본 것, ‘이 책을 구입하신 분들이 다음 책도 구입하셨습니다’라는 문구가 들어맞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다음의 세 권의 책들을 즐겨 읽는 나는 어떤 사람일까.

 

 

 

 

 

 

 

1. <관찰의 힘> 얀 칩체이스 ‧ 사이먼 슈타인하트 지음

 

 

 

 

 

 

 

 

 

 

 

 

 

 

 

 

 

 

어떤 사물에 대해 알고 싶다면 우선 그것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즉 관찰해야 한다. 이 관찰을 바탕으로 할 때에 통찰력이 생길 수 있다. 그러므로 관찰이란 중요한 것이다. 미래에 대한 예측도 현재의 세상에 대해 관찰함으로써 가능하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세상을 좀 더 다채롭고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사소한 것에서 진정한 현실을 찾아내서 그 저변을 파헤치는 것이 내 직업이자 바로 이 책의 내용이다.”(20쪽) “나는 이 책 전반에 걸쳐 평범한 인간 활동을 완전히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방법을 설명하고자 한다. 독자 여러분도 통찰력과 영감을 얻고 직업을 구하는 데 유용한 사회적 암호 해독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43쪽)

 

 

 

우리가 미래를 예측할 수 있기를 바란다면 그 이유가 비단 직업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직업에 관계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은 미래의 모습이다. <관찰의 힘>은 평범한 일상 속에 있는 것들을 관찰함으로써 미래를 읽을 수 있게 하는 책이다.

 

 

 

하나의 예로 소지품을 관찰해 보자.

 

 

 

“우리가 밖에 나갈 때 반드시 소지하는 물건을 관찰해보면 기본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필수적인 생존 수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 주제를 연구해본 결과 열쇠, 돈, 휴대전화 삼총사는 문화, 성별, 소득계층, 나이(청소년 이상)에 상관없이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이는 이 세 가지가 원시적 욕구를 충족하는 데 가장 필요한 물품이기 때문이다. 돈은 음식물을 얻을 수 있게 해 준다. 열쇠는 피난처를 제공하며 우리가 자리를 비운 동안 소유물을 안전하게 지켜준다. 휴대전화는 공간(전화와 인터넷 채팅)과 시간(문자와 이메일)을 가로질러 서로를 연결해준다.”(135쪽~136쪽)

 

 

 

“여러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누군가가 자랑하려는 뻔한 의도로 우연을 가장해 물건을 내보이는 모습”을 관찰해 보자.

 

 

 

“예를 들어 열쇠고리를 이용해서 대화의 주제를 새 자동차로 이끌어간다거나, 특정(특히 비싼) 브랜드의 상표를 눈에 띄게 놓는다거나, 문자를 확인하는 척하면서 보란 듯이 최신 고급 스마트폰을 꺼내는 일 등이다. (…) 이렇게 지위를 손에 잡히는 사물의 형태로 드러내는 능력은 사물의 가시성(최소한 일시적으로라도)에 달려 있다. 그러나 그 능력은 동시에 그 속에 내재하는 긴장을 강조하게 된다. 그 긴장은 바로 소유물을 자랑하고 싶은 욕구와 그것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싶은 욕구의 대립이다. 애플의 이어버드를 한순간에 인기 제품으로 만든 높은 가시성과 상징적 가치가 그것을 훔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는 말이다.”(141쪽)

 

 

 

소녀의 가짜 치아교정기를 보면서, 그리고 친구 집 화장실에 있는 읽을거리를 보면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치아교정기의 경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착용자나 착용자의 부모가 치아교정기 같은 사치품을 구입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된다는 것을 암시한다는 사실이다. 방콕의 가짜 치아교정기는 참 흥미로운 예다. 일단 치아교정기가 신분의 상징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누군가가 이런 종류의 물품을 위조할 생각을 했다는 것이 더 의외다. 왜 십대 여자아이가 가짜 구찌 티셔츠를 살 돈으로 가짜 교정기를 고르는 걸까? (…) 방콕처럼 어디를 가든 가짜 명품옷이 넘쳐나서 너나 할 것 없이 입고 다니는 곳에서는 가짜 교정기 같은 것이 훨씬 티가 덜 나고 따라서 더 그럴듯하게 보이는 책략이 된다.”(84쪽)

 

 

 

화장실에서도 집주인의 과시 욕망을 읽을 수 있다. “케이트 폭스는 자신의 저서 <영국인 발견>에서 화장실을 장시간 사용할 때에 대비해 갖다놓는 읽을거리가 흥미롭게도 사회적 계층에 따라 다르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최하층 노동자 계급에 속한 사람들은 가벼운 농담이 담긴 유머집이나 스포츠 잡지로 화장실을 채우는 경향이 있다. 중하층이나 중산층은 저속하게 보일까 싶어 읽을거리를 갖다놓는 것을 아예 싫어한다. 그와는 반대로 중상층은 종종 화장실에 작은 서재를 차리다시피 하는 경우가 많다. (…) 마지막으로 상류층을 보면, 그들의 취향은 최하층 계급과 놀랄 만치 비슷하다. 바로 유머와 스포츠다. (…) 그들의 목표는 웅장한 대저택 내에 소박한 집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다.”(87쪽~88쪽)

 

 

 

이처럼 사소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직접적으로 말로 표현된 것보다 말로 표현되지 않은 내용을 이해하는 새로운 눈을 갖게 된다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통찰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메시지이다.

 

 

 

 

 

 

 

2. <스마트한 선택들> 롤프 도벨리 지음

 

 

 

 

 

 

 

 

 

 

 

 

 

 

 

 

 

 

이 책은 ‘후회 없는 선택을 하기 위해 꼭 알아야 할 52가지 심리 법칙’을 소개하는 책으로, 저자의 다른 책 <스마트한 생각들>의 후편이라고 할 수 있다.

 

 

 

“지혜로운 자의 목표는 행복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불행을 피하는 것이다.”_아리스토텔레스(9쪽)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바와 같이 불행을 피하는 것이 지혜로운 자이듯이, 생각의 오류를 피하는 것이 지혜로운 자이다. 이 책에 실린 52가지 심리 법칙을 알아 둔다면, 일상적인 생활에서 생길 수 있는 생각의 오류들을 피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이다.

 

 

 

52가지 심리 법칙 중에서 인상 깊게 읽은 것을 뽑았다.

 

 

 

“왜냐하면‘ 효과(구차한 변명이라도 하는 게 나은 이유) ; 우리가 취하는 태도에 대해서 어떤 이유를 덧붙이면 다른 사람들에게 더 많은 이해와 호의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다.(17쪽) 그 내용이 합리적이든 아니든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행동에는 ’왜냐하면‘이 있어야 한다. 이 눈에 띄지 않는 한마디가 사람들 사이에서는 윤활제가 된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를 설득하고 싶거나 이해받고 싶다면 이 말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라.(20쪽)

 

 

 

(내가 예를 들어 보겠다.) 예를 들면 길에서 사람들에게 차비를 달라고 말할 때, “차비가 없는데 주실 수 있나요?”보다는 “차비가 없는데 주실 수 있나요? 왜냐하면 제가 오늘 지갑을 잃어 버려 돈이 하나도 없어서 그래요.”하는 게 더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겠다.

 

 

 

계획오류(왜 항상 계획보다 시간이 더 많이 걸릴까?) : 왜 우리는 제대로 된 계획을 세울 수 없는 것일까? 첫 번째 이유는 우리가 바라는 것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이 계획하는 모든 것을 다 달성하는 성공적인 인간이 되고 싶어 한다. 둘째로 우리는 지나치게 프로젝트에 집중하며 프로젝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낯선 사건들(예상치 못한 일들을 말함.)은 배제시켜 버린다. (…)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참고하는 것이 답이 될 수 있다.(57쪽~59쪽)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그 계획은 실천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자신이 바라는 것에만 치중해서 무리한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고,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서 그 계획을 망치는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과거에 실패했던 요인들이 무엇인지를 찾아내어 이번에도 실패하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점검하는 게 필요하겠다.

 

 

 

질투의 심리학(최고급 아파트를 사고도 불행한 사람들) : 우리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백만장자가 아니라 바로 가까이에 살고 있는 이웃을 질투한다. (…) 질투라는 감정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피할 수는 있다. 첫째, 당신은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일을 그만 두어라. 둘째, 당신의 ‘능력의 범위(Circle of competence)’를 찾아내어 그것을 혼자 차지하라, 당신이 지배자가 될 수 있는 자신만의 둥지를 만들어라. 당신이 스스로 대가(大家)가 될 수 있다면 그 영역이 얼마나 왜소하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는 당신이 왕이라는 사실이다.(63쪽~65쪽)

 

 

 

예를 들면 이렇게 될 것 같다. 30평의 아파트에 살다가 50평의 아파트에 이사를 가서 처음엔 만족스러웠는데, 친한 친구가 60평의 아파트에 산다는 것을 알게 되면 불만족스러워지고 그 친구를 질투하게 된다는 것. 모든 걸 비교하려 들지 말고 하나를 정해서 그 안에서는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게 답이라니까, “집은 네가 더 큰 집에서 살지만 영어는 내가 더 잘해.” 또는 “나처럼 테니스를 잘 치는 사람은 내 주위에 아무도 없어.”라고 생각하면 된다는 것이겠다. (나의 경우엔, 글을 쓰면서 글 잘 쓰는 작가들과 비교하려 들지 말고, 논술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논술의 영역에선 내가 최고의 강사야, 하고 생각하기’가 되겠네.ㅋ)

 

 

 

자이가르닉 효과(끝내지 못한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줄이는 법) : 자이가르닉은 사람들이 머릿속에서 과제를 지우려면 일단 그것을 끝내야먄 한다고 생각했는데, 반드시 끝낼 필요가 없었다. 좋은 계획을 갖고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이것은 놀라운 결과였다. 왜냐하면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들과 똑같은 정신 상태가 된다는 것은 인간이 진화해 온 측면에서 보면 증명이 안 되기 때문이다. (…) 이제 만약 오늘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면 왜 그런지 금세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숙면을 위해서 당신의 침대 근처에 메모장을 하나 놓아 두어라. 작은 계획을 적어 넣는 단순한 행위가 당신 내면의 목소리가 내는 불협화음을 침묵하게 할 수 있다.(111쪽~112쪽)

 

 

 

어떤 스트레스로 마음이 불안정하여 잠이 오지 않을 때가 있다면, 그 스트레스를 없애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메모지에 하나씩 적어 넣으라는 것. 그러면 마치 그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안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겠다.

 

 

 

노력 정당화 효과(초간편 인스턴트 케이크가 실패작이 된 이유) : 1950년대에 인스턴트 케이크를 손쉽게 만들 수 있도록 모든 재료가 혼합된 제품이 시장에 나왔다. 생산업자는 이 제품이 분명 엄청나게 판매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그의 계산은 완전히 빗나갔다. 오히려 가정주부들은 그 제품을 싫어했는데, 그 이유는 이 제품을 쓰면 케이크를 만들기가 너무 쉬웠기 때문이다. 노력을 전혀 들이지 않고 간단히 케이크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만족감을 주기는커녕 주부로서의 자존감을 건드린 것이다. 생산업자는 재료에 신선한 달걀을 하나 넣고 섞는 과정을 추가해서 조리법을 약간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비로소 가정주부들의 자존감이 상승했다. 그리고 만들기 편한 케이크에 대한 만족감도 함께 상승했다.(233쪽)

 

 

 

내가 만약 두 시간 만에 쓴 글이 있고 열 시간이나 걸려 쓴 글이 있다면, 나는 전자보다 후자를 더 가치가 있다고 여길 것이다. 전자보다 후자의 글이 더 낫다고 볼 수는 없는데도 말이다. 사람들은 많은 노력을 투자한 결과에 대해서 과잉 평가를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노력이 필요 없는 케이크가 주부들에게 인기가 없었던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이렇게 판단을 흐리게 할 ‘노력 정당화 효과’를 경계해야겠다.

 

 

 

우리는 삶 속에서 수많은 선택을 하게 된다.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일어날 것인가 더 잘 것인가를 선택한다. 아침 식사에선 밥을 얼마나 먹어야 할 것인가를 선택하고, 어떤 반찬에 젓가락을 댈 것인가를 선택한다. 외출할 땐 어떤 옷을 입을지를 선택하고, 어떤 신발을 신을지를 선택한다. 이런 작은 문제에서뿐만 아니라 큰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직업을 선택하고, 배우자를 선택하고, 집을 사고 싶을 땐 어디에 집을 사야 할지를 선택하고, 투자를 하고 싶을 땐 어디에 투자해야 할지를 선택한다. 만약 선택을 잘못할 경우엔 후회가 따른다. 그러므로 무엇을 선택할 때엔 후회가 따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현명한 새는 나무를 가려서 둥지를 튼다’는 명언이 있듯이, 현명하게 후회 없는 선택을 하기 위해선 좋은 선택과 나쁜 선택을 판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는 판별하는 게 어렵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어둠을 물리칠 빛을 선사할 것이다.

 

 

 

 

 

 

 

3. <의도적 눈감기> 마거릿 헤퍼넌 지음

 

 

 

 

 

 

 

 

 

 

 

 

 

 

 

 

 

 

 

이 책, 제목을 보자마자 끌렸다. 내가 읽고 싶은 게 바로 이런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뻔히 알면서도 인식하지 않고 그냥 지나쳐 놓치는 것들에 대해 탐색하는 책이다.

 

 

 

나도 ‘의도적 눈감기’를 하고 살 때가 많다. 예를 들면 외출 준비를 하면서 날씨가 흐려 비가 올 것 같은 걸 알면서도 ‘오늘 비 안 올 거야’하면서 우산을 챙기지 않고 그냥 나간다. 또 핸드폰에서 가끔 짧게 소리가 나서 고장인가 하다가, 별 일 아니겠지 하면서 방치한 적이 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수신함의 문자가 꽉 차서 누군가가 내게 문자를 보낼 때마다 문자가 들어오지 못해 났던 소리였던 것. 그렇다면 나는 왜 ‘의도적 눈감기’를 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우산을 갖고 다니는 게 싫어서 비가 오지 않을 거라고 믿어 버리고, 핸드폰에 문제가 생기는 게 싫어서 문제가 생기지 않은 거라고 믿어 버리기 때문이다. 즉 내가 믿고 싶은 대로 믿어 버리기 때문에 ‘의도적 눈감기’가 일어난 것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밝힌다.

 

 

 

“내가 관심을 갖는 부분은 우리 스스로 눈감기를 선택하는 이유다. 면전에서 우리를 응시하고 있는 커다란 위험을 부인하게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7쪽)

 

 

 

개인이든 집단이든 ‘의도적 눈감기’에 빠지는 원인은 한 가지가 아니며 ‘의도적 눈감기’는 우리 모두가 빠질 수밖에 없는 일종의 인간적인 현상이란다. 우리는 모든 것을 관찰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기에 뇌가 인식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 즉 우리는 입력된 정보를 편집하고 걸러야만 하기 때문. 따라서 무엇을 통과시키고 걸러낼 것이냐가 매우 중요한데, 우리 대부분은 연약한 자아와 중대한 신념을 뒤흔들어놓는 것들을 편리하게 걸러내고 우리를 기분 좋게 만들어줄 정보들만 통과시킨다는 것이다.

 

 

 

‘의도적 눈감기’가 늘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장점도 있다.

 

 

 

“실크 넥타이에 묻은 커피 얼룩, 여자 친구의 여드름, 이웃의 누추함을 못 본 체할 때 의도적 눈감기는 관계의 윤활유가 되기도 한다. 의견 차이를 눈감아버리면 사무실은 평온해질 것이다.”(8쪽)

 

 

 

터조에 대한 얘기는 재밌다.

 

 

 

“플리니우스는 타조에 대해 서술한 최초의 박물학자로 알려져 있다. <자연사(Historia Naturalis)>에서 그는 다소 무례할 정도로 새들이 어리석다고 깎아내리며 묘사했다. ‘새들은 머리와 목만 덤불 속에 파묻으면 몸 전체를 숨겼다고 착각한다.’ 오늘날 자연 과학자들은 새들이 머리와 목을 땅바닥에 대고 엎드리는 것은 포식자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노력이라고 말한다.”(134쪽~135쪽)

 

 

 

사람도 타조처럼 행동할 때가 있다.

 

 

 

“세금을 납부할 때나 나쁜 습관인 줄 뻔히 알면서 그 습관을 버리지 못할 때, 또는 자동차의 엔진 소리가 이상할 때도 우리는 모래 속에 머리를 묻고 싶다. 무시해버리면 사라질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하고 또 바란다. 단순히 생각에서 그치지도 않는다. 모래 속에 머리를 묻고서 우리는 위험 따위는 존재조차도 하지 않는 척, 그래서 변화할 필요도 없는 척 행동하려고 한다. 또한 갈등을 회피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다.”(135쪽)

 

 

 

이렇게 갈등을 회피함으로써 ‘위험이 없다면 싸울 필요도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맞닥트리기 싫은 문제와 갈등에 대해 눈을 감아버릴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의도적 눈감기’는 병원에서도, 기업에서도 일어나 막대한 손실이 생기게 한다. 상사의 명령에 대해 무조건 복종하는 분위기 때문에 ‘의도적 눈감기’가  일어난다. (병원과 기업에서 ‘의도적 눈감기’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목표를 이루기만 한다면 그 방법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복종의 힘이다.”(181쪽)

 

 

 

“복종을 하면서 우리는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생각을 믿는다. 아주 간단하고 쉽다. 특히 지치고 마음이 산란하며 싸우기 싫을 때는 더욱 그렇다. 또한 복종은 우리를 눈감게 만드는 다른 모든 힘들을 증폭시키며 공고하게 한다.”(188쪽)

 

 

 

그렇다면 ‘의도적 눈감기’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일까.

 

 

 

“알지 않겠다고 결정을 내릴 때 우리는 스스로를 무력하게 만든다. 그러나 보겠다고 주장할 때는 우리 스스로에게 희망이 생긴다. 의도적 눈감기가 의지에 의해 결정된 일이며 경험과 지식, 생각, 뉴런, 신경증 등이 한데 섞인 산물이라는 사실은 의도적 눈감기를 바꿀 능력이 우리에게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리어왕처럼, 우리는 더 잘 보는 기술을 배울 수 있다. 뇌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바꿔야 한다. 모든 지혜가 그렇듯, 보는 것은 단순한 질문으로 시작된다. 내가 알 수 있고, 알아야 함에도 알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가? 지금 여기서 내가 놓친 것이 무엇인가?” (381쪽)

 

 

 

 

******

이런 책들을 즐겨 읽는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내 대답 : 으음... 글쎄... 분석, 통찰, 미래 예측, 인간에 대한 탐구, 현명한 판단, 깨달음 등의 말과 연관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일 듯. 분석적인 사고를 하고 싶은 사람일 듯. 무엇보다도 인간의 심리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일 듯. 그 이상은 나도 모르겠다. (여러분에게 넘깁니다.) 여러분이 생각해 보시길... 또 나처럼 이런 책들을 좋아하는 분이 있다면 자신이 어떤 사람이어서 이런 책들을 좋아하는지 생각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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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3-07-31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권 모두 흥미로워 보입니다.
다만 저는 3권 모두 번역서라는 점이 마음에 걸려요.
비록 저 책들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경험상 이런 류의 책들 번역서 중에서 성공한 경험이 많지 않아서요.

맨 밑에 대답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말씀하신 부분들이 대채로 들어맞는 것 같아요.
저도 인간 심리와 행동과 말에 관심이 많습니다.

페크(pek0501) 2013-07-31 15:46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인간 심리에 관심이 많으시다니 저의 동족을 만난 것 같군요.

번역서, 맞아요. 좋은 책이 번역서일 때 좀 아쉽지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을 보면 꼭 번역이 잘못되어서 그런 것 같아 찜찜하고...또 외우고 싶은 싶을 정도로 문학적 표현이 많은 책이 번역서이면 아쉽죠.
(빠른) 첫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

마립간 2013-07-31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찾은 답변은 ... 저 마립간과 공통점을 갖고 계시군요.

페크(pek0501) 2013-07-31 15:59   좋아요 0 | URL
아, 그래요? 반갑습니다!!!!!!!!!!

마립간 님께 고백하자면, 님의 독서일기를 읽고 나서 제가 아는 분야가 아니라서
댓글로 뭘 써야 할지 몰라 그냥 온 적이 몇 번 있다는 것.ㅋㅋ

댓글 쓰기 참 어려워요. 댓글에 대한 답글은 이렇게 쉽게 쓸 수 있는데 말이죠.

yamoo 2013-07-31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째 권 제외하고 두권이 심리학 계열의 책이네요~ 세권 모두 관심가는 책입니다. 저는 요즘 베르그손 주저들과 현대미학에 대한 책을 주로 읽고 있어요. 특히 베르그손은 우리 주위의 사소한 물리법칙으로부터 실로 대단한 형이상학을 이끌어내고 있어요. 그래서 매번 경탄을 하며 읽고 있습니다! 올해 나머지 시간들은 여러 책을 못 볼거 같다는~

페크(pek0501) 2013-08-01 19:39   좋아요 0 | URL
야무님, 안녕하세요? 매우 오랜만이네요. 반갑습니다.
그동안 서재 활동이 없으셔서 무슨 일인가, 한 적이 있었는데...
다시 복귀하셔서 환영합니다.

심리학은 님이 잘 아실 것 같아요. 저는 그냥 체계적인 독서가 아니라 그저 눈에
띄는 대로 이것저것 읽고 있어요.
베르그손은 읽은 적이 없어 몰라요.ㅋㅋ 이름은 많이 들어봤네요.
앞으로 글 자주 볼 수 있는 거죠?
또 뵈요. ^()^ 고맙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3-08-03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리학자들은 일반인들이 심리학을 무슨 독심술이나 관상술 비슷하게 간주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더군요.사실 아무리 나이가 든 사람도 남의 속마음을 알 수는 없죠.

페크(pek0501) 2013-08-04 13:10   좋아요 0 | URL
노 님, 반갑습니다. 더운 날씨에 잘 지내시나요?

심리학 서적을 즐겨 읽고 있는데, 그렇다고 남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게 아닌 것 , 맞아요. 그저 인간의 일반적인 특성 정도를 알게 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설문이나 실험을 통해서 증명된 것들을 알 수 있을 뿐이죠. 어떤 상황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렇게 행동하더라, 하는 정도요. 하지만 인간을 이해하는 데엔 도움이 되긴 해요. 저는 인간의 비밀을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로 읽고 있어요. 이런 것 읽느라고 소설을 못 읽고 있어요. ㅋㅋ

노이에자이트 2013-08-04 14:00   좋아요 0 | URL
뛰어난 소설가는 심리묘사에도 능하니까 소설 속의 심리묘사를 정독하면 심리학 공부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페크(pek0501) 2013-08-04 14:56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소설은 인간학이니까요. ^()^

oren 2013-08-05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슷한 종류의 책들이 참 많군요. 자세한 사례까지 곁들인 글이어서 재미있네요. pek님의 글 덕분에 새삼 '관찰의 힘'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관찰'을 잘 했기 때문에 뛰어난 업적을 이룬 인물들 가운데 다윈이 한 말도 떠오릅니다.
* * *
'과학자로서의 나의 성공은, 그것이 어느 정도의 것인지는 별도로 하고 ······ 복잡한 갖가지 심적 소질과 조건에 의해 결정되어 왔다. 이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 과학에의 사랑 - 어떤 문제라도 오랫동안 끝까지 생각하는 무제한의 강한 인내심 - 관찰이나 사실 수집에서의 근면함 - 그리고 창안력과 상식이 함께 부여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 "
- 다윈,『자서전』 중에서

oren 2013-08-05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찰의 힘'과 관련해서는 철학자 하이데거가 ['봄'의 기이한 우위]에 대해 했던 말도 덧붙여 볼 수 있겠군요.
* * *
"봄"의 기이한 우위를 누구보다도 아우구스티누스가 욕망에 대한 해석과 관련하여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본디 눈에 딸린 것이 보는 것인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다른 감관으로 무엇을 알려고 할 때에도 "보다"라는 낱말을 사용한다. 예를 들면 우리는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 '들으라, 얼마나 번쩍이는지', '맡으라, 얼마나 빛나는지', '입을 대라, 얼마나 찬란한지', '만져라, 얼마나 눈부신지.' 그러지 않고 이 모든 것을 보라고 말하고 이 모든 것이 보인다고 말한다. 따라서 눈만이 감각할 수 있는 것을 '보라, 얼마나 빛나는지' 할 뿐 아니라, '소리를 들어보라', '냄새를 맡아보라', '맛을 보라', '얼마나 단단한지 만져보라' 하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일체의 감각적 경험을 '눈의 탐욕'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나머지 감관들도, 비슷한 점에서 인식함이 문제가 될 때면 눈이 윗자리를 차지하는 봄의 기능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 『존재와 시간』中에서

페크(pek0501) 2013-08-07 10:07   좋아요 0 | URL
오렌 님, 늘 좋은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이 책들은 여자들보단 남자들이 좋아하는 책인가 봐요.
지금 보니까 댓글을 쓴 사람들이 전부 남자네요. ^^

친정아버지가 편찮으셔서 병원에 입원하여 각종 검사를 받으시느라 많이 수척해지셨어요. 워낙 연로하셔서 힘들어 하세요.
제가 당분간 이곳에 들어오지 못할 것 같아요. 지금도 병원에 가 봐야 한답니다.

점점 무거워지는 삶의 무게를 느끼고 있답니다.

우리 건강합시다. 댓글, 고맙습니다. ^^

 

 

 

1.

바바라 크루거는 현대 사회에선 소비함으로써 인간의 정체성과 존재감을 표현한다는 뜻에서 “나는 쇼핑한다. 따라서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현대 사회는 ‘소비’가 중요한 삶의 방식이 되어 버렸다. 하루도 ‘소비’를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휴대전화 역시 마찬가지다.

 

 

내 휴대전화에 저장되어 있는 것들이 완전히 사라지는 날이 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할 때가 있다. 휴대전화가 수명이 다해 고장이 났거나 물에 빠져서 고장이 날 경우를 생각하게 된다. 내가 아는 사람들의 전화번호 명단이나 중요해서 메모해 둔 어떤 정보들을 재생할 수 없게 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그만큼 휴대전화에 의존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요즘 스마트폰 사용자가 많아졌다. 만약 외국에서 살게 된 사람이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국내의 친구에게, “스마트폰끼리는 무료로 전화 통화를 할 수 있으니까 너도 스마트폰으로 바꾸면 좋겠어.”라고 말해서, 또는 친구들이 “너만 카카오톡 사용자가 아니라서 불편하다. 너도 스마트폰으로 바꿔라.”라고 말해서, 스마트폰을 구입하게 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나는 이런 말을 들어 봤다.) 이렇게 주위의 압력으로 인해 스마트폰을 구입하게 되었다면 그건 자의적 결정이기보단 타인에 기대에 보조를 맞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에리히 프롬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우리 결정의 대부분은 실제로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우리에게 암시되는 어떤 것이다. 결정을 내린 것이 자기 자신이라고 믿을 수는 있어도, 실제로 인간의 결정 행위는 인간이 두려운 고립감이나 생명, 자유, 안락함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위협에 내몰렸을 때 타인의 기대에 보조를 맞추는 것에 불과하다."(에리히 프롬 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장 보드리야르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소비의 사회기능과 조직 구조가 개인적 레벨을 훨씬 넘어서는 무의식적인 사회적 강제가 되어 개인에게 강요된다.”(장 보드리야르 저, <소비의 사회>에서.)

 

 

위르겐 하버마스는 소비가 결국 인간의 자기 소외를 가져온다고 하였지만 요즘은 무언가를 소비하지 않으면 오히려 인간관계에서 소외되는 위험성이 생긴다는 걸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상품이 필요해서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의 고립을 막기 위해서라도 상품을 구입하여 ‘소비’하는 것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2.

스마트폰, 컴퓨터, 내비게이션 등의 디지털 기기의 사용은 인간의 뇌를 편하게 해 주는 대신에 ‘디지털 치매’라는 신조어를 등장하게 했다. ‘디지털 치매’란 디지털 기기의 지나친 사용으로 인해 뇌 기능이 손상되어 인지 기능을 상실하는 병이다. ‘디지털 치매’라는 병을 조심해야 할 만큼 지금의 세상은 디지털 기기에 의존하며 살고 있는 게 사실이다.

 

 

 

 

 

 

 

만프레드 슈피처 저, <디지털 치매>는 디지털 치매가 야기할 문제를 요약해 제시한다. 머리를 쓰지 않고 디지털 기기에만 의존하면 바보가 된다는 것을 경고하는 책이다. “우리의 뇌는 주요한 측면에서 볼 때 마치 근육과 같이 기능한다.”고 한다. 근육이 사용하면 발달하고 사용하지 않으면 쇠퇴하듯이, 두뇌도 마찬가지로 사용하면 발달하고 사용하지 않으면 쇠퇴한다는 것.

 

 

 

 

하지만 우리는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면서 두뇌를 사용할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

친척이나 친구, 지인들의 전화번호가 휴대전화기에 저장되어 있다. 이들과의 약속 장소로 가는 길은 내비게이션이 알려준다. 공적, 사적 일정도 마찬가지로 휴대전화기나 PDA에 저장되어 있다. 뭔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면 된다. 그러면 사진이나 편지, 메일, 책, 음악 등 원하는 정보가 뜬다. 스스로 생각하고, 저장하고, 고민하는 것은 ‘오류’처럼 보인다.

- 만프레드 슈피처 저, <디지털 치매>에서.

....................

 

 

이처럼 오류처럼 보이지만 스스로 생각하고, 저장하고, 고민하지 않으면 전문가가 될 수 없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

누군가가 자신을 산 정상에 올려놔주는 것으로 등산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 것처럼, 학생이 전문가의 생각을 묻는 것만으로 전문가가 될 수는 없다(어느 분야도 마찬가지다). 지식의 본질을 자기 것으로 하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의문을 제기하면서 파고들고, 퍼즐의 작은 조각들을 의미 있는 하나로 완성해 나가는 것, 이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직접 해봐야만 한다. (…) 한마디로 요약해, 실상은 반드시 ‘꿰뚫고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 만프레드 슈피처 저, <디지털 치매>에서.

....................

 

 

이 책에서 정리한 ‘디지털 치매를 예방하는 몇 가지 방법’ 중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

- 가장 효과적인 두뇌 조깅은 그냥 조깅이다.

- 가끔씩 일부러라도 음악을 들어라. 단 다른 일을 하면서 듣지 마라

- 아무런 이유 없이 웃더라도 웃음은 좋은 감정을 담당하는 뇌의 부위를 자극하게 된다.

- 친구 세 명과 함께하는 저녁은 페이스북에서 300명과 가상접촉을 하는 것보다 우리를 훨씬 행복하게 만든다.

- 아이들에게는 디지털 미디어 사용 시간을 제한하라. 이것만이 그나마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 만프레드 슈피처 저, <디지털 치매>에서.

....................

 

 

 

 

3.

지하철을 타면 예전엔 책을 읽고 앉아 있는 사람들이 쉽게 눈에 띄었는데, 요즘엔 그런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어디서든 친구와 함께 앉아 있으면서도 각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기 일쑤이다. 고등학생인 내 딸은 나와 얘기할 때도 스마트폰을 보고 있어서 내가 서로 눈을 마주치며 얘기하자고 말할 정도다. 우리, 스마트폰으로 뭔가 잃어버린 것들이 있지 않을까.

 

 

휴대전화가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되어 버린 현실에서, 휴대전화가 어떤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는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한 것 같다. 우리가 세상의 변화에 적응해 나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세상으로 휩쓸려 가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김찬호 저, <휴대폰이 말하다>는 ‘시작하며(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

우리에게 휴대전화는 과연 무엇인가. 이 자그마한 물건이 불러일으키는 생활의 혁명과 마음의 신화는 무엇인가. 언제든 누구든 접속할 수 있는 네트워크 속에서 우리의 자의식과 인간관계는 어떻게 변용되고 있는가. 몸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 거의 무한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는 정보 환경은 생각과 감정을 어떻게 빚어내고 있는가. 이 책은 그 물음을 가지고 출발한다.

- 김찬호 저, <휴대폰이 말하다>에서.

....................

 

 

 

 

이 책은 스마트폰이 상용하기 전인 2008년에 출간되어 스마트폰의 전 단계의 휴대전화(이땐 핸드폰이라는 말을 많이 썼다.)에 관한 책이지만 스마트폰에 관한 책으로 읽어도 무방한 책이다.

 

 

미래학자 존 나이스빗은 휴대전화 없이 산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나와 아내는 하루를 매우 조용하게 보냅니다. 이런 말 하면 놀라겠지만 나는 휴대전화가 없어요. 사람들은 항상 자기의 어젠다(agenda, 화제)를 가지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죠. 내가 휴대전화가 있다면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간에 전화를 받아야 합니다. 내가 왜 다른 사람의 어젠다에 휘둘려야 하죠? 때로는 교통 체증으로 심심해서 걸어온 전화도 받아야 합니다. 길을 걷다 보면 노천카페에서, 레스토랑에서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쓸데없는 전화를 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이러다 보면 중요한 일을 할 시간을 놓칠 수 있어요. 혼자 찬찬히 앉아 무언가를 생각할 시간이 없다는 거죠. 그래서 나는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고, 일정한 시간을 정해 이메일을 확인합니다.

- 김찬호 저, <휴대폰이 말하다>에서.

....................

 

 

휴대전화 사용이 대중화하면서 그 단점을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사람과의 만남의 횟수를 줄어들게 한다. 직접 만나지 않고도 휴대전화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둘째, 깊은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없게 한다. 아무 때나 전화나 문자가 수신되는 휴대전화의 특성으로 인해 조용한 시간을 갖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셋째, 사람을 건성으로 대한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누군가를 만날 때 상대의 얘기에 집중하지 않고 휴대전화로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 통화를 하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다음은 휴대전화의 무분별한 사용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게 하는 글이다.

 

 

....................

휴대폰을 꺼놓을 때

 

주소록을 없애 주세요

사랑하는 친구의 번호쯤은 외울 수 있도록

카메라를 없애 주세요

사랑하는 아이의 얼굴을 두 눈에 담도록

문자 기능을 없애 주세요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시 긴 연애편지를 쓰도록

기술은 언제나 사람에게 지고 맙니다

사람을 향합니다

(어느 이동통신사 광고 문구)

 

- 김찬호 저, <휴대폰이 말하다>에서.

...................

 

 

 

 

4.

강준만 저자는 우리가 휴대전화에 애착을 갖는 건 이 세상에서 고립되지 않기 위해서라고 강조한다.

 

....................

사람들이 휴대전화에 미치는 건 스스로 미치고 싶어서가 아니다. ‘셀룰러 이코노미’라는 동력에 의해 만들어진,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자 ‘삶의 문법’의 가공할 위력 앞에서 홀로 저항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휴대전화가 울리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홀로 무인도에 남는 기분을 어찌 견뎌낼 수 있겠는가. (…) 휴대전화 덕분에 우리는 소통의 풍요를 만끽하게 되었는가 하는 질문도 우문임에 틀림없다. 휴대전화는 소통을 위한 매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건 내가 이 세상과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는 판타지를 공급하는 나의 주인이다.

- 강준만 저, <대중매체 이론과 사상>, 573쪽.

....................

 

 

저자는 다른 책에서 우리의 삶은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

일부 학자들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형태가 통합된 ‘나노 기술nano technology'의 도래를 예측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나노 기술이 출현하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인간의 두뇌가 바로 아날로그 ’기술‘이라는 사실일 것이다. 디지털 기술만으론 파악할 수 없는 다른 큰 역량이 있다는 것이다. (…) 일상적 삶에서 사고방식의 디지털화도 경계할 일이다. 우리의 삶엔 이거냐 저거냐 하는 식의 양자택일식 답이 존재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세상이 아무리 단절적인 디지털 혁명으로 들끓어도 우리의 삶은 연속적인 아날로그라는 데에도 관심을 돌려야 할 것이다.

- 강준만 저, <한국인을 위한 교양사전>, 560쪽~561쪽.

....................

 

 

아직 나는 스마트폰을 구입하지 않았다. 언젠가 나도 지금 사용 중인 휴대전화를 스마트폰으로 바꾸게 될 것이다. 당장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새 상품의 소비가 빨라지고 있는 속도에 대한 내 나름의 저항일 수 있겠다. 유행에 꼭 따라가야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일 수도 있겠다. 또 어쩌면 이게 가장 중요한 이유일지 모르는데, 스마트폰을 작은 컴퓨터로 생각하여 들고 다니면서까지 컴퓨터를 사용해서 눈의 피로가 쌓이게 하고 싶지 않다는 고집일 수 있겠다.

 

 

하지만 나 역시 매일 휴대전화를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책들의 메시지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이런 글을 써 봤다. 우리가 옛 휴대전화를 사용하든 새 휴대전화인 스마트폰을 사용하든, 휴대전화에 의존하며 사는 삶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고 있는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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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 2013-04-08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화기도 멀리, 놋북도 멀리, 아 그런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일까요;;;;;;
그래도 노상 확인하고 들여다보던 페북이랑 트위터 스맛폰에서 어플 삭제하니까 마음이 화라락 편해지던걸요. 이참에 노상 들여다보는 알라딘 어플도 확 삭제할까 싶은 생각도 ^^;;;;

페크(pek0501) 2013-04-08 15:27   좋아요 0 | URL

어려운 일을 실천하셨네요.
어머, 그런데 알라딘 어플 삭제는 안 되지요. 책 이야기보다 더 매력적인 이야기가 어디에 있다고요.
우리는 트위터, 페이스북, 알라딘 중에서 하나만 선택해야 할 것 같아요. 셋 다 기웃거릴 수는 있지만 집중적으로 할 수 있는 건 한 가지뿐이라는 거죠. 할 일은 많고 인생은 짧으니까요.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빙카 2013-06-01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할수 없는세게 그레서 노아의 홍수가 필요 했을 까요??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홀로 꼬물 휴대폰을 가지고 견뎌보기가 ㅎ 친구가 하나도없습니다 그나마있는 친구들이 너무너무 저를한심 해 합니다 그들도떠날겁니다
그럼 나도 떠나고싶을 까요 ? 아니면 굴복 하고스마트폰을 사게될까요 ? 삐삐라는 호출기는 이제사라졌을까요? 참을 성이없어진 십대들
데이트 할때도 폰만 들여다본다는 이시대젋은이들
전자파에 두통에 시달려도 스마트폰 버리지못하게 된 세상 은 어떤 모습으로 병들어갈지 근심 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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