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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에게 글쓰기에 대한 책을 몇 권 뽑아 달라고 말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에게 권한 것 중 하나가 배상복 저, <문장기술>이란 책이다. 내가 예전에 공부했던 책이고, 또 학생들에게 문장을 고치는 요령에 대해 수업할 때 사용하던 책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뽑아 정리를 해 보았다. 복습한다는 생각으로 나를 위함이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을 위함이다. (내가 갖고 있는 것은 구판이라서 이 책에서 뽑았고, 현재 개정증보판이 나와 있음을 밝힌다.)

 

 

 

 

군더더기 없애기

 

 

글에서 군더더기란 없어도 되는 쓸데없는 표현을 말한다. 뱀을 다 그리고 나서 있지도 않은 발을 덧붙여 그려 넣는 것을 뜻하는 사족(蛇足)과 같은 것이다. ‘~이다’를 ‘~라 하지 않을 수 없다’로 하거나 ‘~하는 과정을 통해’라고 하는 등 아무 의미 없이 글을 늘어지게 함으로써 볼품없이 만들고 긴장감을 떨어뜨린다.(20쪽)

 

 

군더더기가 있느냐 없느냐는 글 쓰는 능력을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좋은 문장일수록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는 특징이 있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항상 간결하게 써야 한다는 생각을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21쪽)

 

 

 

 

모의고사를 통해 나타난 약점을 파악해 보강하는 과정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다시 공부하면 성적을 많이 끌어올릴 수 있다. - 고칠 문장.

 

모의고사에서 나타난 약점을 파악해 부족한 부분을 보강하면 성적을 많이 끌어올릴 수 있다. - 고친 문장.

 

- <문장기술>, 22쪽~23쪽.

 

 

 

 

 

수식어 절제하기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아주’ ‘상당히’ ‘많은’ 등 수식어를 마구 덧붙이는 경향이 있으나 수식어가 많으면 문장이 늘어지고 읽기가 불편해진다. 수식어를 지나치게 사용하면 글이 어설퍼 보기기도 한다. 문맥이나 글의 전체적 내용으로 자신의 의도를 전달해야지 수식어를 많이 붙인다고 의미가 뚜렷해지는 것은 아니다.(26~27쪽)

 

 

꼭 필요한 수식어만 남기고 나머지는 빼야 깔끔하고 부드러운 문장이 된다. 여러 개의 수식어가 한꺼번에 나열되거나 긴 수식어가 올 때는 따로 떼어 내 별도의 문장으로 만드는 것이 읽기 편하고 이해하기 쉽다.(27쪽)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는 그의 연인이 세상의 다른 어느 누구보다 멋있어 보이고 그가 하는 행동 ‧ 말 등 모든 것이 정말로 아름답게 느껴진다. - 고칠 문장.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는 그의 연인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 멋있어 보이고 그가 하는 행동 ‧ 말 등 모든 것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 고친 문장.

 

- <문장기술>, 27쪽.

 

 

 

 

 

단어 중복 피하기

 

 

글쓰기 훈련이 제대로 돼 있지 않은 사람의 글일수록 단어의 중복이 눈에 많이 띈다. “~어떤 경우에는 ~한 경우가 있으며, 이 경우 ~한다”는 식으로 같은 단어를 반복 사용함으로써 문장을 볼품없이 만든다. 요령을 부려 “어떤 경우에는 ~한 예가 있으며 이때는 ~한다”로 적당히 바꾸면 부드러운 문장이 된다.(37쪽)

 

 

이처럼 반복되는 단어를 의미상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다른 낱말로 바꾸어 주거나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은 생략하면 어느 정도 중복을 피할 수 있다. 무심코 글을 쓰다 보면 같은 단어가 겹쳐 나오기 쉬우므로 다 쓰고 난 다음에는 불필요하게 중복된 것이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37쪽)

 

 

 

 

아직은 고객이 많지 않지만 문의가 많아지고 찾아오는 손님도 많아지고 있어 전망이 밝다. - 고칠 문장.

 

아직은 고객이 많지 않지만 문의가 늘어나고 찾아오는 손님도 증가하고 있어 전망이 밝다. - 고친 문장.

 

- <문장기술>, 39쪽.

 

 

 

 

 

 

 

 

 

 

이 책은 재미를 추구하시는 분은 사 보지 마시길... 뭔가 공부가 되는 책을 읽고 싶은 분만 사 보시길... 글을 문법에 맞게 쓰고 싶은 욕구가 강한 분은 꼭 사 보시길...

 

 

         

 

          <개정증보판>                        <구판>

 

 

 

 

저자의 다른 책들도 있다. 배상복 저자는 신뢰할 만한 저자라서 다음의 책들도 함께 넣는다.

 

 

 

 

 

 

 

 

 

 

 

 

 

 

 

2.

한 친구가 내게 말했다.

 

 

“넌, 글을 아주 쉽게 쓰는 것 같아. 너의 장점이야.”

 

 

내 글을 보면 내가 아주 쉽게 쓰는 것처럼 보이나 보다. 내 대답은 이랬다.

 

 

“그건 니가 잘못 안 거야. 나, 글 되게 어렵게 써. 얼마나 고치는데. 그래서 글 한 편 쓰고 나면 탈진해.”

 

 

나도 내가 글을 쉽게 쓰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렇지 않다. 쉽게 쓰는 능력이 내겐 없다.

 

 

지난 4월 9일에 올린 단상(58)의 글은 간단한 글이다. 글이 길지 않고 구성도 복잡하지 않다. 하지만 이 글을 완성하기까지 고치고 또 고쳤다. 비교적 짧은 이 글을 완성하기까지 내가 무엇을 어떻게 고쳤는지를 보여 준다면, 비교적 긴 글은 말할 것도 없겠다.

 

 

그러면 내가 고친 부분이 있는 문장들을 공개한다. (괄호 안의 것이 고친 것을 뜻함.)

 

 

1) 얼마 전에 대학 동창인 친구가 불러내어 나간 자리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두 사람이 나와 있었다.

 

 

- ‘그’가 부자연스러웠다. ‘그’는 앞에서 이미 이야기한 대상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어서 첫 문장에 ‘그’를 넣는 것은 틀렸다고 본다. 그래서 ‘그’를 뺐다.

 

 

 

2) 그 두 명 중 한 사람이 고등학생 시절에 글을 잘 쓰는 사람으로(애로) 유명했다고 한다.

 

 

- 고등학생 시절이므로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글을 잘 쓰는 애’가 맞다. 그리고 친구가 한 말을 떠올려 보니 ‘글을 잘 쓰는 애’라고 했던 게 기억나서 ‘사람으로’를 ‘애로’로 고쳤다.

 

 

 

3) 친구가 내게 “네(니) 블로그 얘한테 말해 줘. 얘가 글을 잘 쓰는 애거든.”이라고 말했다.

 

 

- 처음엔 ‘네’라고 썼는데, 친구가 한 말을 현장감이 느껴지게 그대로 쓰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네’를 ‘니’로 고쳤다.

 

 

 

4) 얼마 전에 대학 동창인 친구가 불러내어 나간 자리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두 사람이 나와 있었다. (…) 지금은 직장에 다니느라 글 쓸 여유가 없을뿐더러 아예 글쓰기를 잊고 산다고 한다. 나는 그런 그에게 내 블로그의 주소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때 나는 왜 가르쳐 주지 않았을까.

 

 

- 밑줄을 친 부분을 둘째 문단의 첫 문장으로 썼다가 그것보다는 첫 문단의 마지막 문장으로 쓰는 게 낫다 싶어서 위처럼 위치를 옮겼다. 그 이유는 독자로 하여금 생각해 보게 하기 위해선 문단을 띄우는 게 좋을 것 같아서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이 바로 나오지 않게 여백을 두고 싶었던 것이다.

 

 

 

5) 괜히 실속 없는 글쓰기에 기웃거리지 말고.’하는 생각으로(마음으로) 내 블로그에 들어올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나중에 생각했다.(깨달았다.) ‘아, 나는 글쓰기를 실속 없이 에너지만 소모하는 일로 알고 있구나.’라고.

 

 

- 처음엔 ‘생각으로’와 ‘생각했다’로 썼는데, ‘생각’이란 낱말이 중복 사용되어 거슬렸다. 그래서 ‘생각으로’를 ‘마음으로’로 고쳤고, ‘생각했다’를 ‘깨달았다’로 고쳤다. 고치고 보니 더 적합한 것 같았다. ‘생각’이란 말이 다른 문단에서도 나오므로 이렇게 고치는 게 좋을 것 같다.

 

 

 

6) 작가가 되기보단 지금처럼 작가를 흠모하 글 쓰는 취미를 즐기 돈벌이 직업을 따로 갖고 사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 이번엔 고친 문장만 옮겼다. 문장을 이처럼 열거할 땐 고 - 며 - 다 의 순서로 쓰는 게 좋다.

 

 

 

7) 테니스 선수보다 테니스를 취미로 가진 사람이 낫고 골프 선수보다 골프를 취미로 가진 사람이 나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이유가 두 가지 있다.)

 

 

- ‘두 가지 이유가 있다.’보다 ‘이유가 두 가지 있다.’가 더 나은 것 같아 고쳤다.

 

 

 

8) 그것을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만 두고 싶을 땐(싫증이 나면) 언제든지 부담 없이 그만둘 수 있다는 것이다.

 

 

- ‘그만 두고 싶을 땐’보다 ‘싫증이 나면’이 더 구체적이라서 좋은 것 같아 고쳤다.

 

 

 

9) 이런 자세를 갖는다는 것은 공부의 결과를 떠나서 그 자체로도 기분 좋고 의미 있는 일이다.(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 ‘의미 있는 일이다’를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로 고쳤다. 의미 있는 일이라고 단정하기보다 내 개인적인 생각을 쓰는 듯한 표현이 더 알맞다고 보기 때문이다.

 

 

 

10) 요즘도 신문에서 좋은 칼럼을 발견하면 가위로 오려서 여러 번 읽어 보는 버릇(습관)이 있다.

 

 

- ‘버릇’이라는 말이 부정적으로 쓰일 때가 있어 거슬려서 ‘버릇’을 ‘습관’으로 고쳤다.

 

 

 

 

 

이상이 ‘단상(58) 글쓰기는 직업보다 취미로 좋아’에서 내가 고친 것들이다. 남들은 글을 어떻게 고쳐서 완성하는지 궁금한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많은 이들이 초고를 고치고 또 고치는 작업을 함으로써 한 편의 글을 완성할 것이다. 나도 그렇다. 한 번에 짠~하고 쉽게 써서 완성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마지막으로 나를 포함하여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글에 대해 혹독한 비평가가 되어야 한다. 자신의 글에서 장점을 찾기보다 결점을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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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3-04-15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언냐, 저 책 보니 넘흐 반갑네요.
저도 요즘 모 고등학교 글쓰기 특강 나가는 중인데 저 책 일부를 교재로 삼고 있거든요.
글쓰기 기법 교재들이 엇비슷한데 하나만 집중 파고 들어도 기본은 먹고 들어가요.
근데 사람들은 잘 쓰고 싶어 하면서도 정작 저런 교재를 안 파고 들어요.
제가 볼 땐 글 쓸 욕심이 있는 분들은 한 번씩 본인에게 맞는 교재를 탐독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속시원한 글쓰기 - 오도엽 것도 아해들한테 적용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어요.

저는 그래요. 제가 스스로 글쓰기에 좌절하는 건 제 글 자체라기 보다
언제나 잘쓴 사람들이 주변(알라딘 포함)에 넘쳐나기 때문이랍니다.
비교우위의 잘 된 글들이 저를 절망의 나락으로 끌어당깁니다. 그걸 극복하려면 역시 피나는 연습 밖에 없겠지요. 언니는 분명 제가 부러워하는 잘 쓰는 부류면서
그런 고민을 하니 더 존경스럽지 뭡니까!

파이팅을 외쳐봅니다. 앞서가는 페크님과 뒤따르는 저를 위해~~

페크(pek0501) 2013-04-15 17:33   좋아요 0 | URL
아, 누가 앞서간다고 그러세요??? 고무적인 댓글이에요, 감사하게도...
저도 님을 위해 파이팅을 외칩니다. 순전히 님을 위해서!!!!!
정말 주변에 글 잘 쓰는 분들이 넘쳐나서 기죽어요. 공감합니다. ^^

아, 피나는 연습... 또 연습.... 또 연습... 또 연습... 또 연습... 할꼬예요.
연습만이 제가 살 길 같아요. ^^ 물론 연습도 즐겨야지요.

테레사 2013-04-18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펙님, 정말 좋은 글입니다. 저 역시 항상 문장을 잘 쓰고 싶고,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인데, 늘 절망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 책,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글잘쓰는, 문장력 좋은 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많이 도와 주세요.

페크(pek0501) 2013-04-19 14:57   좋아요 0 | URL
아, 오렌만입니다. 반갑습니다. 우리 초면이 아니지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그런데 도와 달라니요. 저도 힘이 없답니다. ㅋㅋ
글 쓰는 취미가 특기가 된다면 정말 좋겠죠?
열심히 하는 사람을 이길 자가 없다는 말을 하고 싶네요.
좋은 봄날을 보내세요. ^()^
방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7월 29일에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란 글을 이곳에 올리고 나서 그 다음날 밤에 읽어 보니 기가 막혔습니다. 아주 엉터리였기 때문입니다. 여러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쳐서 다시 올렸습니다.

 

 

우선 첫 문단과 끝 문단의 연결성이 없고,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란 제목과 첫 문단의 연결성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문단에 “고위층의 ‘비리 소식’이 끊이지 않는 세상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라는 글을 넣어서 첫 문단과 끝 문단이 연결되게 하였고, 제목과 첫 문단도 연결되게 하였습니다.

 

 

문단의 구성을 다르게 한 부분도 있고, 없앤 문장도 있습니다.

 

 

제가 잘못 쓴 것을 눈치채고도 침묵해 주신 분들에게, 또 그걸 알면서도 추천을 눌러 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비교해 보시라는 뜻으로 이 글을 올립니다.

 

 

 

 

 

 

 1. 처음에 올린 글입니다................................

 

 

<책 속의 구절로 쓴 칼럼>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예나 지금이나, 정치인이나 지도층의 비리가 드러나서 신문이나 방송 뉴스를 통해 보도되는 일이 많다. 그들 대부분은 처음엔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다가 나중엔 혐의를 인정하는 태도를 보인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했던가.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런 보도를 접할 때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사는 그들이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기가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들곤 한다. 어쩌면 그런 비리를 저지르는 것은 이 사회에서 힘이 있는 자들만이 저지를 수 있는 특권일지도 모르겠다. 우리처럼 힘없이 사는 평범한 사람들에겐 밟고 살기 어려운 땅의 이야기 같다.

 

 

우리는 어떤 면에서든 나보다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 조금은 미안함을 느낄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런 말이 가능할 듯싶다. ‘권력 있는 사람은 권력 없는 사람에 대해서 미안함을 느껴야 한다. 재산이 많거나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에 대해서 미안함을 느껴야 한다. 외모가 빼어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에 대해서 미안함을 느껴야 한다.’ 그 이유는 그런 좋은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열등감과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더 나은 생활을 하며 살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명문 대학에 입학이 가능한 정원의 수처럼, 모든 좋은 자리는 한정되어 있는 법이다. 결국 어떤 분야에서든 좋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타인들과의 경쟁에서 이긴 것이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타인들에게 패배감을 안겨 준 것이다. 자신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독일의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했을 때, 같은 시대를 살았던 한 시인은 죽은 사람들에게 느끼는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 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저,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서.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보다 못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대신 우월감을 갖는다.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또 한 번의 패배감을 안겨 준다. 이런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런 슬픔을 안톤 슈낙은 이렇게 표현하였다.

 

 

 

 

 

옛 친구를 만났을 때. 학창시절의 친구 집을 방문했을 때. 그것도 이제는 그가 존경받을 만한 고관대작, 혹은 부유한 기업주의 몸이 되어, 몽롱하고 우울한 언어를 조종하는 한낱 시인밖에 될 수 없었던 우리를 보고 손을 내밀기는 하되, 이미 알아보려 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취할 때. (이런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 안톤 슈낙 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서.

 

 

 

 

 

 

 

 

 

2. 위의 글을 고쳐서 다시 올린 글입니다.............

 

 

<책 속의 구절로 쓴 칼럼>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예나 지금이나, 고위층의 비리가 드러나서 신문이나 방송 뉴스를 통해 보도되는 일이 많다. 그들 대부분은 처음엔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다가 나중엔 혐의를 인정하는 태도를 보인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했던가.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런 보도를 접할 때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사는 그들이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기가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들곤 한다. 어쩌면 그런 비리를 저지르는 것은 이 사회에서 힘이 있는 자들만이 저지를 수 있는 특권일지도 모르겠다. 우리처럼 힘없이 사는 평범한 사람들에겐 밟고 살기 어려운 땅의 이야기 같다.

 

 

명문 대학에 입학이 가능한 정원의 수처럼, 모든 좋은 자리는 한정되어 있는 법이다. 결국 어떤 분야에서든 좋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타인들과의 경쟁에서 이긴 것이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자신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타인들에게 패배감을 안겨 준 것이다. 또 나중엔, 그런 좋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열등감과 상처를 줄 수 있으며, 상대적으로 더 나은 생활을 하며 살 수 있다.

 

 

 

이런 점을 생각할 때, 우리는 어떤 면에서든 나보다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 조금은 미안함을 느낄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런 말이 가능할 듯싶다. ‘권력 있는 사람은 권력 없는 사람에 대해서 미안함을 느껴야 한다. 재산이 많거나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에 대해서 미안함을 느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보다 못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대신 우월감을 갖는다.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또 한 번의 패배감을 안겨 준다. 이런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런 슬픔을 안톤 슈낙은 이렇게 표현하였다.

 

 

 

 

 

옛 친구를 만났을 때. 학창시절의 친구 집을 방문했을 때. 그것도 이제는 그가 존경받을 만한 고관대작, 혹은 부유한 기업주의 몸이 되어, 몽롱하고 우울한 언어를 조종하는 한낱 시인밖에 될 수 없었던 우리를 보고 손을 내밀기는 하되, 이미 알아보려 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취할 때. (이런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 안톤 슈낙 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서.

 

 

 

 

 

독일의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했을 때, 같은 시대를 살았던 한 시인은 죽은 사람들에게 느끼는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 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저,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서.

 

 

 

 

 

고위층의 ‘비리 소식’이 끊이지 않는 세상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시인처럼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느낄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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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07-31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하는 사람은 살아갈 테고,
힘이 센 사람은 살아남겠지요

페크(pek0501) 2012-07-31 16:02   좋아요 0 | URL
첫 댓글에 감사합니다.
이 더운 여름날을 어떻게 보내시나요?
그곳은 산바람, 강바람이 불어서 시원할 것 같지만요. 피서가 따로 필요없을 것 같지만요.^^
건강한 여름 보내시길 바랍니다.

마태우스 2012-08-07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고치기 전 글을 못봤는데요 아래로 내려가서 글을 봐도 이상하단 느낌을 받지 못하겠어요. 역시 전 많이 모자란 것 같습니다 -.- 지난주부터 무섭게 더웠는데 오늘은 제법 바람이 부네요. 기다리면 더위는 간다,는 평범한 교훈을 느꼇습니다. 안톤 슈냑, 정말 오랜만에들어보는 이름이네요. 국어책에서 봤던 그 슈냑을 페이퍼에서 만나니 반갑습니다. 글구 전, 이건 제 자랑 같지만, 늘 미안함을 느끼고 있어요. 제 자리에 다른 누군가가 들어와 있다면 저보다 훨씬 더 많은 훌륭한 일을 했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페크(pek0501) 2012-08-08 14:53   좋아요 0 | URL

1. 남의 글을 분석적으로 보는 건 힘든 것 같아요. 저도 남의 글에서 잘못된 부분을 잘 못찾아 내요. 내 글은, 틀린 게 뭐 없나, 하면서 집중력 있게 보니까 가능한 것 같아요.

2. 저는 님이 일간지 연재를 어떻게 그렇게 잘할 수 있는지 그 능력에 감탄해요. 저라면 글감이 없는 날도 있을 것 같은데요. 경의를 표합니다. 님이 쓰신 글 중, 남의 글을 인용한 이 부분이 참 재밌어요. (왜 현실에 써먹지도 못할 어려운 수학을 배우는가?)에 대한 답변...

"호어스트라는 독일 작가는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라는 책에서 우리가 수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직장 상사가 왜 해야 하는지 모르는 쓸데없는 일을 시켰을 때, 우리는 수학도 배웠는데 뭐, 이러면서 그 하찮은 일을 묵묵히 해낼 수 있다고. 수학을 배우는 이유 중 가장 공감 가는 답변이 아닐까?"

아, 그래서 우리가 그 옛날 수학시간에 그 어려운 미적분을 배웠던 거군요. 멋진 인용이에요.

3. 저는 더위를 타는 편이 아니고 땀도 많이 흘리는 편이 아니라서 여름을 좋아하는데, 이번 여름은 35도가 넘는 무더운 날이 계속되면서, 여름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바꾸게 됐어요. '30도가 넘지 않는 여름날을 좋아한다'로...
그래서 곧 올 늦여름을 좋하합니다. 거의 다 왔어요. 조금 남은 더위, 잘 견디자고요. ^^

4. 반가웠습니다.ㅋㅋ
 

 

 

 

초고를 ‘완벽’하게 쓰는 사람은 분명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다. 여기서 ‘완벽’이란 자신이 볼 때 더 이상 고칠 게 없는 상태를 뜻한다. 이런 면에서 난 많이 부족하다. 한 번도 초고를 완벽하게 써 본 적이 없으니까. 항상 글을 쓰고 나면 두세 번 이상 읽어 보는데, 읽어볼 때마다 고칠 게 눈에 띈다. 고치면서 글이 완성된다.

 

 

며칠 전, ‘단상(30) 마음과 관련해 생각한 것들’이란 제목의 글을 서재에 올렸는데 이 글도 고친 게 많았다. 한두 군데가 아니라 여러 군데가 엉터리였다.

 

 

그럼 무엇을 어떻게 틀리게 써서 어떻게 고쳤는지를 공개한다. 첫째는 앞으로 틀리게 쓰지 말자는 뜻으로 나를 위함이요, 둘째는 글을 쓰는 우리 서재님들이 자신의 경우와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해 보라는 뜻으로 서재님들을 위함이다.

 

 

 

1. 자신 없는 표현은 삼가기

 

 

 

 

내 표현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겠다.1) 어쩌면 내 안의 감정과 이성의 충돌로 볼 수도 있고, 두 개의 마음의 분리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난 이런 경우 몸과 마음의 분리로 생각하곤 한다.

 

 

 

 

 

 

(고친 글)

이것에 대해 내 안의 감정과 이성의 충돌로 볼 수도 있고, 두 개의 마음의 분리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난 이런 경우 몸과 마음의 분리로 생각하곤 한다.

 

 

 

 

내 표현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겠다.1) - 이것을 뺐다. 이런 자신 없는 표현은 빼는 게 좋다. 독자는 자신감 없는 사람의 글을 읽는 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할 것이다. 독자는 아마추어 의식을 가진 필자보다 프로 의식을 가진 필자를 좋아한다. 그래야 얻을 게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자신 없는 부분이 있다면 아예 언급하지 않는 게 좋다.

 

 

 

2. 낱말을 통일하기

 

 

 

 

어쩌면 내 안의 감정과 이성의 충돌2)로 볼 수도 있고, 두 개의 마음의 분리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난 이런 경우 몸과 마음의 분리로 생각하곤 한다.

 

 

 

 

 

 

(고친 글)

어쩌면 내 안의 감정과 이성의 분리로 볼 수도 있고, 두 개의 마음의 분리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난 이런 경우 몸과 마음의 분리로 생각하곤 한다.

 

 

 

 

 

충돌2) - 를 ‘분리’로 고쳐서 낱말을 통일시켰다. 한 문단 안에서 ‘충돌’과 ‘분리’의 낱말이 섞여 있는 건 좋지 않아서다.

 

 

또 다음의 글에서도 마찬가지다.

 

 

 

 

가령 자신을 겨냥해서 모욕감을 주는 악성 댓글을 받았다고 하자. 이때 우리는 두 가지의 생각을 할 수 있다.3) 하나는 ‘당신의 악성 댓글 따윈 무섭지 않다. 나는 끄떡없다.’라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그의 악성 댓글의 위력이 없음을 증명하려는 태도. 즉 당신은 헛수고를 했다는 걸 보여 주는 태도다. 또 하나는 ‘당신의 악성 댓글로 인해 나는 정신적 타격이 심해 병원에 다닐 정도다. 그러니 당신은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해야 마땅하다.’라는 태도.

 

 

 

 

 

 

(고친 글)

가령 자신을 겨냥해서 모욕감을 주는 악성 댓글을 받았다고 하자. 이때 우리는 두 가지의 생각으로 태도를 취할 수 있다. 하나는 ‘당신의 악성 댓글 따윈 무섭지 않다. 나는 끄떡없다.’라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그의 악성 댓글의 위력이 없음을 증명하려는 태도. 즉 당신은 헛수고를 했다는 걸 보여 주는 태도다. 또 하나는 ‘당신의 악성 댓글로 인해 나는 정신적 타격이 심해 병원에 다닐 정도다. 그러니 당신은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해야 마땅하다.’라는 태도.

 

 

 

 

두 가지의 생각을 할 수 있다3) - 를 ‘두 가지의 생각으로 태도를 취할 수 있다.’로 고쳤다. 그래야 그 다음에 나오는 낱말인 ‘태도’와 맞아떨어지게 된다.

 

 

또 다음의 글을 보자.

 

 

 

 

상대방이 총을 빵, 하고 쏘면 총알을 맞지 않더라도 죽는 시늉을 해 주고 싶다. 상대방에게 우선 만족감을 주고 싶다. 그런데 그 다음에 그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통쾌함4)만을 누렸다면 어쩔 것인가. 그러면 이렇게 생각하겠다. 한 사람에게 만족감을 주었으니 내가 덕을 쌓은 거야, 라고. 좋은 일을 하면 복 받는다, 라고.

 

 

 

 

 

 

(고친 글)

상대방이 총을 빵, 하고 쏘면 총알을 맞지 않더라도 죽는 시늉을 해 주고 싶다. 상대방에게 우선 통쾌함을 주고 싶다. 그런데 그 다음에 그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통쾌한 만족감만을 누렸다면 어쩔 것인가. 그러면 이렇게 생각하겠다. 한 사람에게 만족감을 주었으니 내가 덕을 쌓은 거야, 라고. 좋은 일을 하면 복 받는다, 라고.

 

 

 

 

통쾌함4) - 를 보면 만족감과 통쾌함이 같은 의미로 쓰이면서 통일되지 않았다. 그래서 두 군데를 고쳐서 통쾌함, 통쾌한 만족감, 만족감 등으로 썼다.

 

 

 

3. 같은 방식으로 나열하기

 

 

 

 

한 사람에게 만족감을 주었으니 내가 덕을 쌓은 거야, 라고. 좋은 일을 하면 복 받는다, 라고.5)

 

 

 

 

 

 

(고친 글)

한 사람에게 만족감을 주었으니 덕을 쌓은 거야, 라고. 좋은 일을 했으니 복을 받을 거야, 라고.

 

 

 

 

5)는 같은 방식으로 나열해 쓰는 게 좋을 것 같아 ‘~ 거야’로 통일해 고쳤다. 또 ‘내가’를 뺐다.

 

 

 

4. 독자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게 쓰기

 

간혹 글의 내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독자가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필자의 입장에선 이런 것에 조심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내 경험으로 보면 몸과 마음은 두 개의 존재로 분리된다. 몸 따로, 마음 따로 반응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고친 글)

위대한 철학자들은 몸과 마음이 하나이기에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6) 하지만 내 경험으로 보면 몸과 마음은 두 개의 존재로 분리된다. 몸 따로, 마음 따로 반응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두 개의 존재로 분리된다고 쓰면, 혹시 다른 철학자들을 들먹이며 그렇지 않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독자가 생길지 모른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6)의 문장을 넣었다.

 

 

다음의 글을 보자.

 

 

 

 

백화점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 매장에서 맘에 드는 멋진 핸드백을 발견한다. 가격이 비싸다. 몸은 그것을 원하는데, 마음은 그것이 비싸니까 사지 말라고 한다. 그래서 사지 않기로 했는데, 내 몸은 이미 그 핸드백을 어깨에 메어 보더니 어느새 계산대에서 그 핸드백의 값을 치르고 있다.

 

난 이런 경우 몸과 마음의 분리로 생각하곤 한다.

 

 

 

 

 

 

(고친 글)

백화점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 매장에서 맘에 드는 멋진 핸드백을 발견한다. 가격이 비싸다. 몸은 그것을 원하는데, 마음은 그것이 비싸니까 사지 말라고 한다. 그래서 사지 않기로 했는데, 내 몸은 이미 그 핸드백을 어깨에 메어 보더니 어느새 계산대에서 그 핸드백의 값을 치르고 있다.

 

이것에 대해 내 안의 감정과 이성의 분리로 볼 수도 있고, 두 개의 마음의 분리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난 이런 경우 몸과 마음의 분리로 생각하곤 한다.7)

 

 

 

 

‘몸과 마음의 분리’라고만 단정적으로 쓰면, 이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독자가 생길지 모른다. 필자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감정과 이성의 분리라고 생각하는 독자도 있을 수 있고, 두 개의 마음의 분리라고 생각하는 독자도 있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7)의 문장을 넣었다.

 

 

이것은 내가 쓴 다른 글이다.

 

 

 

 

이처럼 마음이 늘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면, 자신의 마음이든 타인의 마음이든 마음을 움직이는 게 가능하겠다. 우울·불쾌·슬픔·분노 따위의 부정적인 감정 상태를 좋은 감정 상태로 돌리는 것도 가능하겠다. 의도적인 노력만 있다면 말이다.

 

 

 

 

 

 

(고친 글)

이처럼 마음이 늘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면, 자신의 마음이든 타인의 마음이든 마음을 움직이는 게 가능하겠다. 우울·불쾌·슬픔·분노 따위의 부정적인 감정 상태를 좋은 감정 상태로 돌리는 것도 가능하겠다. 의도적인 노력만 있다면 말이다. 물론 예외가 있겠지만.8)

 

 

 

 

의도적인 노력만 있다면 자신의 마음이든 타인의 마음이든 마음을 움직이는 게 가능하겠다, 라고 썼는데,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독자가 있을 수 있다. 의도적으로 노력했는데도 상대가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경우도 있을 테니까. 그래서 8)의 문장을 넣었다. 그러면 독자가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독자는 말로써 직접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으나, 마음속으로 이 글은 틀렸어, 라고 생각한다면 그 글은 완벽한 글이 될 수 없으니 주의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독자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쓰는 게 좋다.

 

 

5. 내가 최고로 치는 글은 이런 것

 

 

- 간결체의 문장이 좋다. 군더더기 없는 간결체가 최고의 문체라고 생각한다.

 

- 글은 경제성이 있어야 한다. 나의 경우, 글이 길어지면 그중에는 불필요한 문단이 있을 것이라고 보고 없애는 작업을 한다. 문장도 마찬가지여서 많이 쳐 낸다.

 

- 좋은 글일수록 상당히 수학적이라고 생각한다. 치밀한 계산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뜻에서 그렇다.

 

- 재미와 유익함(또는 감동)이란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글이 좋다. 유익함이 없다면 글을 읽을 필요가 없고, 재미가 없다면 읽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 가장 좋은 글은 쉽게 읽히고 그 글이 담고 있는 뜻은 깊은 글이다. 반대로 가장 좋지 않은 글은 어렵게 읽히고 그 글이 담고 있는 뜻은 깊지 않은 글이다. 뜻이 깊은 글을 쓰려면 사유가 깊고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와 같은 글이 쉽게 읽히고 뜻이 깊은 글로 본다.)

 

- 현학적인 글을 경계한다. 초보자가 현학적인 글을 쓰는 경우가 많다.

 

- 글을 읽자마자 빨려 들어가 딴 생각이 나지 않는 글이 좋은 글이다. 반대로 글을 읽다가 자꾸 딴 생각이 나서 여러 번 집중력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글은 좋지 않은 글이다. 흡인력이 중요하다.

 

(이렇게 썼지만, 이런 나도 좋은 글을 못 쓰고 있다.ㅋ)

 

 

 

....................................................................................................

 

* 이 글을 쓰고 나서

 

 

글을 잘 쓰려면 글을 많이 읽고 많이 쓰는 노력이 필요하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를 무려 400번이나 고쳐서 썼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그만큼 ‘노력’이 중요하다는 얘기겠다.

 

 

한때 문학이론서만 읽은 적이 있다. 또 한때 문장작법에 관한 책만 읽은 적도 있다. 아마 이런 부류의 책을 수십 권쯤 읽었을 것이다. 글을 잘 쓰고 싶어서 배우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그런 책들이 그 자체로 재미도 있어서 흥미롭게 읽었다.

 

 

이런 책들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여 추천한다.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길...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오는 외래어가 부끄러운 사람”들한테 반갑고 힘이 될 만한 책. 한 달에 백 권도 넘는 책을 읽을 만큼 대단한 독서가인 최종규는 책을 읽으면서 ‘살려 쓰면 좋을 아름다운 우리 말’을 발견하면 따로 갈무리해 두고, 마찬가지로 잘못된 글, 나쁜 글, 불필요한 외래어나 외국어를 만나도 따로 갈무리해 두는 일을 오랫동안 이어오고 있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뿌리 깊은 글쓰기: 우리 말로 끌어안는 영어>를 선보인다.(알라딘, 책소개)

 

최종규님의 책을 통해 글을 올바르게 쓸 줄 아는 능력부터 키우는 게 좋다.

 

      



 

 

 

 

 

 

 

 

 

 

  <문장강화>. 이 책을 읽지 않은 작가는 드물 것 같다. 좋은 문장의 예문이 많이 들어 있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을 모르고선 글을 잘 쓸 수 없다. 문학이 무엇인지 쉽게 설명해 준다.

 

 

 <유혹하는 글쓰기>. 글쟁이 친구가 꼭 보라고 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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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02-08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라면 어떻게 쓸까 하고 생각하며 이렇게 한번 적어 봅니다~


.. 이 일은 내 생각과 마음이 서로 다르다 볼 수도 있고, 두 생각과 마음이 갈라섰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난 이러한 때 몸과 마음이 나뉘었다고 생각하곤 한다 ..


감정과 이성은, 생각과 마음으로 나타낼 수 있지 않으랴 싶어요. 사지 않겠다는 생각과 마음은 벌써 가방 쪽으로 가서 손에 쥐고는 값을 치르고 만다는 모습.

'분리'틑 '나뉘다'와 '서로 다르다'와 '갈라서다'로 적어 보았어요~

페크(pek0501) 2012-02-09 11:31   좋아요 0 | URL
단상(30)을 쓰기 전에 생각과 마음을 각각 국어사전 찾아 보았는데, 두 낱말이 동의어로 쓰이는 예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 두 가지를 함께 쓰면 헷갈리겠다 싶어 그냥 감정과 이성의 분리라고 쓰게 되었어요.ㅋ

분리, 라는 한자어보다 우리말이 더 좋은데, 되도록 한자어 쓰지 말라고 배우긴 했는데, 저는 압축의 맛 때문에 한자어를 쓰게 되는 것 같아요. 다음엔 '나뉘다'로 써 보겠습니다, 선생님...ㅋㅋ

인식하다, 인지하다, 이런 낱말도 즐겨 써요. 그것보다 더 좋은 말이 있는데도 말이죠. 배운 대로 하기도 힘들어요.ㅋ

어쨌든 <뿌리 깊은 글쓰기>가 많이 팔렸으면 좋겠습니다. ㅋ


숲노래 2012-02-09 20:47   좋아요 0 | URL
국어사전 뜻풀이를 믿지 마셔요.
제대로 풀이한 낱말은 아주 드물어요.

내 가슴을 믿으면서 낱말 느낌을 헤아리셔요.

생각과 마음은 비슷하지도 같지도 않아요.
'마음'은 내가 받아들이는 무엇이고,
'생각'은 내가 스스로 짓는 무엇이에요.
그러니까, 마음과 생각은 아주 달라요.

그렇기 때문에, '이성'은 '생각'이 되고,
'감성'은 '마음'이 되지요.

마음으로는 무엇을 느끼고,
생각으로는 무엇이 어떠하구나 하고 스스로 갈무리하면서 지으니까요.

먼먼 옛날까지 아니더라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일본 한자말과 중국 한자말 없이 살아가며
'감성'과 '이성'을 어떻게 나타냈을까 하고
곰곰이 돌아보면 돼요.

인식하다 - 느끼다
인지하다 - 알아차리다

자리에 따라 달리 쓰기는 하지만, 밑바탕으로는 이렇게 헤아리며 쓰면,
스스로 좋은 말길을 찾을 수 있어요.

그리고, 잘 보면,
생각하다 - 헤아리다 - 여기다 - 살피다 - 돌아보다 -
톺아보다 - 가누다 - 가늠하다 - 살펴보다 - 짚다 - 되짚다 ...
'생각'을 일컫는 수많은 낱말은 자리에 따라 느낌이 달라요.

이 느낌을 홀로 곰곰이 따지면서 말씀씀이를 북돋아 보셔요~

페크(pek0501) 2012-02-10 10:27   좋아요 0 | URL
아, 된장님은 매우 높은 경지에 계신 것 같네요. 제가 오른 적 없는, 또 앞으로 오를 수도 없는 경지예요. ㅋ

님의 설명을 기억해 놓겠습니다.ㅋ

굿바이 2012-02-08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맛~!(이것은 부끄러워서 소심하게 지르는 비명입니다^^)

참으로 분하지만 저는 저런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아서
그냥 혼자 아무렇게나 끄적이고 잊어버립니다.
복기하면 쪽팔려서 성형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ㅋㅋㅋ

아참,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는 많은 분들이 좋다고 하더라구요. 실은 저도 아직 읽지 않았습니다. 이참에 읽을까 싶습니다.

페크(pek0501) 2012-02-09 11:35   좋아요 0 | URL
굿바이님, 잘 쓰시면서 왜 그러세요? 부끄러운 비명이라니요...ㅋ

읽을 책이 한두 권이라야 말이죠. 인생은 짧고 읽은 책은 많다, 고 생각되어요. 저도 감기로 아파서 누워 지낼 때도 책은 꼭 끼고 있어요. 책 보다가 낮잠 자려고요. 책이 수면제의 역할도 해요. 그래서 님처럼 아파도 할 건 다 한다는 것이죠. 그것 너무 웃겼어요. 소리내어 웃었다니까요.

노이에자이트 2012-02-08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선 읽어보고 무슨 뜻이지도 모를 글은 정말 짜증납니다.사람이 천재일 수는 없으니 쓰고 나서 더 다듬는 과정은 필수지요.Pek0501님의 글은 문장이 명료해서 이해하기 쉽습니다.머리에 든 것도 없는 인간들이 현학적인 글로 횡설수설하는 법이죠.

페크(pek0501) 2012-02-09 11:37   좋아요 0 | URL

예. 사람은 천재일 수 없고, 게다가 헤밍웨이 같은 대작가도 400번이나 고친다는데, 저 같은 범인은 더 말할 것도 없겠죠.
명료라는 호평은 감사하네요. 감사...

그런데 아직 사유가 깊은 글을 저도 써 보질 못했으니 만족의 경지란 얼마나 높은 곳인지를 헤아리게 되네요.

oren 2012-02-08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법'이나 '문장'을 제대로 구사하기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아요. '몸과 마음의 분리'와 관련된 '괴상한 문장' 이야기를 '어제' 우연히 발견한 적이 있었는데, 그 글을 읽고나니 올바른 문장을 쓰는 게 더욱 어렵게만 느껴지더군요. ㅎㅎ
* * *
예를 들어 비트겐슈타인은 ‘나는 내가 고통스럽다는 것을 안다’는 문장이 문법적으로는 옳지만 내용적으로는 틀리다고 생각한다. 누가 바늘로 나를 찌르면 나는 ‘아야!’하고 직접적으로 반응하지 ‘나는 내가 고통스럽다는 것을 안다’는 등의 ‘괴상한’ 문장을 말하지 않는다. 반면에 타인의 비명이나 찡그린 얼굴표정을 보고 나는 그가 고통스럽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안다. 바로 이런 이유로 비트겐슈타인은 위의 ‘토끼!’의 예에서 외침이 우리 몸에 대해 갖는 관계는 비명이 고통에 대해 갖는 관계와 흡사하다고 말한 것이다. 이때 외침과 몸, 비명과 고통은 실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전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외침의 경우 어떤 물체를 지각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패턴매칭), ‘토끼.’라고 발화하는 3단계의 인식행위가 아니라, 지각으로부터 외침까지 전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행위를 의미한다.

페크(pek0501) 2012-02-09 11:39   좋아요 0 | URL
오렌님, 저도 그런 글 본 전이 있어요. 같은 글은 아니고요, 우리가 평상시 하는 말도 틀린 게 많다는 걸 모아 놓은 글이었는데, 저도 깜짝 놀랐어요. 제가 쓴 문장에도 틀린 게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공부는 끝이 없고, 완벽함의 경지는 높고... 저는 그냥 하는 데까지 할래요. 욕심 부리지 않고요.ㅋㅋ 욕심 부리면 건강에 타격이 와요. 과로하면 안 되니까요.
언제나 좋은 말씀, 감사 드립니다. 요즘 오렌님께 배우는 게 많아요. 여러 가지로요. ㅋ

이진 2012-02-09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페크님.
저 지금 감동받아서 눈물이 주르륵 흐르려고 합니다.
어쩜 이리 좋은 글을 써주시다니.
오늘 이 글 읽으면서 반성많이 했씁니다. 저는 수정이라곤 귀찮다는 이유로 거의 안하거든요. 또 제대로된 글을 써본적도 없고 페크님께서 최고로 치는 글에 거의 속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많이 느꼈어요. 내가 쓸데없이 현학적은 아니었던가(솔직히 지식도 없지만) 일부러 글을 길게 보이려고 있는 말, 없는 말 다 쓰지는 않았나.
마침 또 글쓰기에 도움이 될만한 책도 찾고 있었는데 마지막의 책 소개는 정말 제게 뼈가 되고 살이 될 것 같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당.
안녕히 주무셔요 :)

페크(pek0501) 2012-02-09 11:41   좋아요 0 | URL
감동 받아 눈물이 주르륵이라... 이것 뻥이죠? 그러나 고마운 뻥이죠, 제겐...
그대에게 문학적 감수성을 발견할 수 있는 대목이어요.ㅋ
잘 하고 계십니다. 나날이 발전하시는 소이진님이세요.

쉽싸리 2012-02-09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자기 공부네요.
아무래도 자주 고쳐야 좋은 글이 될것 같아요.
잘 고쳐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겠지만, 아무래도 고칠려고 하면 어떤 틀을 기반으로 해야하니까 공부도 많이 되고 결국 올바른 쪽으로 가깝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페크(pek0501) 2012-02-09 11:45   좋아요 0 | URL
쉽싸리님, 반갑습니다. 환영합니다. ㅋ

글을 고치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물론 문장작법 같은 책을 보면 공부가 되기도 하지만, 문장을 이렇게 써 보고, 또 저렇게 써 보고 해서 어떤 것이 나은지는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게 아닌가 싶어요.

어떤 게 더 세련된 표현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면 답이 나와요. 그 공부가 끝이 없어서 문제지만요. 그래도 완성을 향해 가야 하는 미완성의 우리는 노력해야지요. 그 노력을 즐기며 살아요, 우리.
또 오세요.

stella.K 2012-02-09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대단하십니다!!!
솔직히 저의 글에 상처를 가장 많이 주는 데가 알라딘 글쓰기 공간 같아요.
저는 글쓰고 다시 한번 읽으면서 문장이나 오탈자 한번씩 훑고 그냥 올려버릴 때가
많거든요. 올리고 다시 안 보는데 부득이하게 다시 볼 때가 있어요.
그럼 어찌나 화끈거리는지.
이 댓글 쓰면서 언니한테 흠잡히지 않을까 오글오글 합니다.ㅋㅋ

책이 인류에 등장하면서 초고가 완고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거라고 봅니다.
안중근 일대기를 다룬 <영웅>도 2년 동안 20번을 고쳤다고 해서 식겁했는데요 뭐.
근데 헤밍웨이는 무려 400번!
정말 도 닦는 마음이 아니면 글을 올리지 않는 것이 날 것 같습니다.
일필휘지란 말은 아예 없었던 말 아닐까요?

문장강화는 모셔만 두고 있고, 스티븐 킹은 정말 재밌어요. 아메리칸 스딸로 정말 잘 쓴 것 같아요.
<문학이란 무엇인가>가 아직 팔리고 있군요. 품절이나 절판으로 나올만도 한데.^^


페크(pek0501) 2012-02-10 10:30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흠 안 잡아요. 걱정마세요. ㅋㅋ
저는 남의 글을 읽을 때엔 좋은 부분을 찾으려고 애써요. 그래서 그걸 댓글에다 쓰는 걸 좋아하죠. 이런 문장이 좋았습니다 라고요. 누구에게서든지 배울 점은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리고 남의 글을 꼼꼼히 분석적으로 보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읽을 글이 한두 개가 아닌데다가 또 가장 관심이 많은 건 자신이지 남이 아니니까요.

이런 저도 흠 많습니다. 예전에 썼던 글을 보면 확 지우고 싶다니까요.ㅋㅋ 요즘 쓴 글도 아마 시간이 흐르면 지우고 싶을지 몰라요. 옛날 흑백사진 보면 촌스럽듯이 말이에요.

<문학이란 무엇인가>가 요즘도 나오는 건 저도 신기해요. 사실 다른 책들도 추천하고 싶었는데, 제가 읽은 대부분의 책들이 품절이거나 절판이어서 소개 못 했어요. ㅋ

비로그인 2012-02-09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은 글이네요. 제가 자주 범하는 실수가 그대로 예시로 드러나있어요 ㅠ ㅠ

왜 소설에는 그런 문체가 많잖아요. 어쩌면... 이라든가, ...인지도 모른다. 그런 문체를 많이 접하다보니 허구한 글에다가 그 표현을 써먹는 것 같아요. 확신은 없는데 그럴싸하게 말하고 싶을 때 방어책으로요. 반성해야겠어요. 고쳐야되구요!

간결체가 가장 좋다는 건 저도 동감해요. 근데 막상 글 쓸때 잘 안 되요 ㅋㅋ 글쓰는 주제나 대상에 대해 '확실하게' 알지 못한 채로 글을 써서 그런거 아닐까요? 그러고 보면 쌩떽쥐베리 같은 작가들이 <어린왕자>를 썼을 때는, 정말로 순수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무언가를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단해요...

그나저나 페크님은 글쓰기 관련 일을 하시나요?
이 글 읽으면서 국어선생님이 쓰신 글을 보는 느낌이 들었네요 ㅎㅎ

페크(pek0501) 2012-02-10 10:33   좋아요 0 | URL
아, 님의 질문을 듣고 보니 제가 글쓰기 관련 일을 한 것 맞네요.
학교교사는 아니었고 중고등학생들에게 글쓰기와 논술을 가르치며 돈 벌었어요. 결혼 전에는 잡지사 기자로 일했고, 결혼 후 자유기고가로, 일간지 리포터로 일했네요. 지역신문에 칼럼을 연재한 적도 있는데, 무식하면 용감해서 할 수 있었던 일인 것 같아요. 지금 보면 형편없어요. 아이가 아주 어릴 때 빼곤 늘 무언가를 하며 살았는데, 그게 다 글쓰기와 관련된 일이었음을 님의 질문 때문에 새삼 알았어요. 또 봐요. ㅋ
 


논술은 생활 속에 있다


대입시험에서 논술이 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지 모르겠다는 학생들이 많다. 여느 과목과는 달리 정해진 답이 있는 것도 아닌 논술을 왜 공부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학생들도 있다. 이는 논술이 우리 생활과 얼마나 밀접한지를 잘 몰라서다. 우리는 어제도 오늘도 논술을 접했는지 모른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본다. 아이가 재밌다는 표정으로 텔레비전 시청에 빠져 있어서 어머니가 이렇게 묻는다. “그 방송 프로그램이 왜 재밌니?” 어머니의 이 질문을 논술문제로 생각할 수 있다. ‘그 방송 프로그램이 왜 재밌는지 그 이유를 논술하시오.’ 라고 고쳐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결혼 적령기의 딸이 결혼할 상대를 집에 데리고 왔을 때, 사윗감인 남자에게 아버지가 묻는다. “내 딸과 결혼하면 어떻게 살 건가? 그리고 자네의 직업관에 대해 말해보게.” 이를 논술문제로 표현하면 ‘결혼생활과 직업관에 대해 논술하시오.’와 같이 된다.


어디 이뿐인가. 제품을 만들어내는 대기업체에 취직한 회사원도 논술과 접하는 일이 많다. 신제품에 대한 아이디어회의 시간에 팀장이 회사원들에게 말한다. “어떤 신제품을 만들면 좋을지 발표해 보시오.” 또는 “그 제품의 장단점을 설명해 보시오.” 이 모두가 논술로 답변해야 되는 물음들이다.


이렇듯 논술은 우리 생활 속에 있다. 학생들이 논술을 공부해야 하는 것은 대입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만이 아니고, 문장력과 사고력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만도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실제 생활에서 논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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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블로그에 있는 글을 그대로 여기에 옮겼습니다. 물론 제가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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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6 17: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07 16: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떻게 써야 좋은 글이 될까



누구나 다 아는 일이지만 학급에서 한 번이라도 일등을 해본 경험은 하나의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길 뿐만 아니라 목표의 기준점이 뚜렷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 뒤로 또 일등을 해야지 하고 마음먹는 그 자체가 공부를 열심히 하는 동기가 된다. 이때 자신이 이룬 성과는 높을수록 좋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한때 초등 3학년인 딸애의 일기 지도를 한 적이 있다. 어느 날엔가 일기를 잘 써서 많이 칭찬을 해 주었다. 그러자 아이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학교 숙제라서 마지못해 일기를 쓰던 아이가 정성들여 쓰게 된 것이다. 자신감이 생겼는지 일기를 쓰고 나선 내게 자주 묻곤 하였다.


“엄마, 그때 칭찬한 일기처럼 이번에도 잘 썼어?”


아이는 자기 나름대로 잘 쓴 일기의 기준을 갖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 일기보다 못 쓴 것 같은 기분이 들면 더 잘 쓰려고 노력했다.


이런 심리를 이용하여 아이들에게 독후감 쓰기 훈련을 하라고 권하고 싶다. 우선 잘 쓴 독후감을 만들어주는 일부터 해야 할 것이다. 잘 쓰는 기법을 터득했다는 점에서도 좋지만 하나의 기준점이 생겨서 더 좋은 것이다. 독후감을 잘 쓰려면 우선 정독해야 한다. 책을 꼼꼼히 읽어 완전히 이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야 하며, 읽다가 모르는 낱말은 국어사전으로 찾아야 한다. 이 작업을 아이와 엄마가 함께 하면서 인터넷을 통해 잘 쓴 독후감을 찾아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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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조선일보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주제가 잘 드러나지 않아서 잘 쓴 글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이미 일간지에 실렸던 글이라 고치지 않고 그대로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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