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인 까닭에 - 21년차 인권활동가 12년차 식당 노동자 불혹을 넘긴 은숙씨를 선동한 그이들의 낮은 외침
류은숙 지음 / 낮은산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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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참 힘든 단어다. 이 단어를 자주 사용한 것은 학교 선생인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다. 요즘 선생 노릇하기 힘들다고 그들이 말하면서 학생들의 문제를 말할 때 교권보다 인권이란 말은 했다. 이 책에서도 잠시 나오지만 선생들이 학생들에게 주인이라고 말할 때는 보통 일을 시킬 때다. 학교란 공간에서 가장 약자는 학생인데 자신들의 위치가 잠시 침해당했다고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았다는 옛 이야기를 갖다 붙이는 것을 보면 열불이 났다. 자신들의 책상 정리도 쓰레기통도 버리지 않는 그들을 비난하기도 했다.

 

그 당시 나에게 인권이란 피상적인 것이었다. 옛날 학창시절 선생들에게 받은 불합리하고 폭력적인 행동의 영향 아래 있었다. 선생들이란 존경의 대상이 아니었다. 최소한 내가 경험한 선생들은 그랬다. 그들이 뒤집어쓴 선생의 껍질을 벗어던질 때 그냥 보통의 폭력적이고 가학적인 성향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러니 선생이란 존재를 존경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제도 교육 아래 대부분 학생들은 선생을 존경하도록 강요받는다. 좀 확대해석하면 박정희를 찬양하는 그 시대 사람들과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저자는 인권을 ‘헤쳐 모여’라고 정의한다. 개인과 연대에 대한 이야기다. 사회는 ‘우리’를 강조한다. 어릴 때 ‘우리’라는 단어가 좋은 것이라고 배웠다. 이 ‘우리’라는 단어 속에 ‘나’라는 존재도 포함되어 있지만 일상적으로 우선되는 것은 늘 ‘우리’다. ‘나’를 앞세우면 이기적이라면서 비난한다. 이 ‘우리’를 위해 개인들은 억눌리고 억압당하고 소외된다. ‘나’로 있고자 하면 꼭 ‘우리’란 울타리 속에 집어넣고 자신들의 ‘우리’를 강요한다. 이때 ‘우리’는 개인들의 ‘나’가 모여 만든 ‘우리’가 아니다. 소수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욕망이나 바람을 담아낸 ‘우리’다. 그래서 ‘우리’가 싫다. 하지만 ‘나’가 함께 모여 ‘나’를 인정하고 함께 나간다면 어떨까?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많지 않은 분량이라 쉽게 읽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단숨에 읽으려고 했지만 읽으면서 몇 번 쉬어야 했다. 어려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무거워서 그랬다. 평등과 연대라는 단어가 피상적으로 먼저 다가왔고, 그녀가 경험한 현실들이 나의 가슴속으로 와 닿는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가 실천으로 옮기지 않고 입만 주절거린 것과 비슷한 거리다. 약간 위안을 삼는다면 인권활동가인 그녀조차 일상 속에서 완벽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뭐 비겁한 변명이지만. 하지만 그녀가 만난 사람들 이야기는 그냥 무심코 스쳐지나간 뉴스가 아닌 한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었다. 여기서 배우고 깨달은 것이 바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최소한 이런 사실도 모르고 사는 것보다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며칠 전 미국 학교 총기 사고가 났을 때 미 총기협회 회장이 한 말이 갑자기 떠오른다. 총을 가진 나쁜 사람을 막기 위해 총을 가진 좋은 사람을 학교에 두자는 말이다. 이때 바로 떠오른 것은 총을 없애면 되는데 하는 생각이다. 자신이 가진 권력이나 지위나 이익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가 내뱉은 그 말은 우리의 삶속에 너무 자주 등장한다. 그들에게 복지도 마찬가지다. 복지와 치안 문제로 넘어가면 권력자들이 어떻게 이 상황을 인식하고 풀려고 하는지 잘 드러난다. 성폭력자에 대한 대응으로 거세나 사형이란 극단적 방법을 내세우는 현실을 생각하면 된다. 여기에 우리도 공포나 혐오 등으로 이에 동조한다. 부끄러운 현실이다. 이런 감정과 느낌이 잘 지워지지 않는 것은 나 자신의 노력이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그 동안 받은 교육과 언론 매체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많은 이야기 속에 가슴 뜨끔한 것 하나 말하자. 우리 안의 투명인간이 보이지 않는가? 하는 장에서 ‘자기 인생에서 소중하게 만난 인연, 귀하게 여기는 사람 이름을 열 명만 써 보세요?’란 물음이다. 쉽게 떠오르는 이름이 많지 않다. 그런데 이 이름 속에 ‘장애를 가진 사람이 있습니까? 당신과 다른 수준의 학력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까?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사람, 성적 지향성이 다른 사람은요? 당신과 국적이 다르고 피부색이 다른 사람은 있나요?’라고 물었을 때 나의 삶의 한계와 인식이 얼마나 협소하고 편협했는지 그대로 드러났다. 이런 환경 속에서 행동과 실천과 인식이 넓혀지기는 쉽지 않다. 간접 경험을 통해 얻게 된다고 하지만 허상이거나 거짓일 경우가 더 많다. 이것은 인권활동가인 저자도 가끔 보여주지 않는가? 하물며 그냥 하루를 힘들게 살아가는 나라면? 부끄럽고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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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경제학 이타적 경제학
데이비드 보일 & 앤드류 심스 지음, 조군현 옮김 / 사군자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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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경제학’에 대한 책이다. 기존 정통경제학이나 마르크스 경제학이 아니다. 저자들은 “‘새로운 경제학’은 기본적으로는 불평등을 해소시키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는 목적도 있지만, 또한 경제학 자체를 넘어서 사상의 체계를 통째로 새롭게 바꾸는 거대한 담론을 담고 있다.”(8쪽)고 말한다. 도덕 철학, 경제학 관련 학문, 윤리학, 생물학, 심리학, 지구과학, 경제학이란 구분이 없을 정도로 거대하다. 이 경제학이 생긴 것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불과 수십 년에 불과하지만 현재 경제학이 풀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할 하나의 대안으로 공부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모두 열 장으로 나눠 이 ‘새로운 경제학’에 대해 설명한다. 이것은 동시 현재 경제학이 가지고 있는 모순과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기도 하다. 각 장은 하나의 경제 용어를 앞에 내세우고 이에 대한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다만 1장과 10장만이 의문이 아닌 정의로 시작한다. 그것은 이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기 때문이다. 현실에 대한 인식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전체 틀을 만들고, 그 속에 각각의 현실 문제를 해설하면서 새로운 경제학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1장이 ‘뿌리 : 경제학이 문제다’인데 현재 내가 느낀 우리 경제체제에 대한 의문을 풀어준다. “즉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은 구조적으로 힘 있는 부유층들의 잘못은 관대히 눈감아 주고, 그들이 겪는 고난의 시기에는 바람막이가 되어 주고, 그들의 꿈과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자금까지 대주지만, 세상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빈곤층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문제는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18쪽) 이 문장을 읽을 때 왜 그렇게 많은 경제나 경영 실패에도 불구하고 거액 연봉자나 재벌들은 살아남고, 노동자는 실직과 저임금 등으로 고생하며 생계를 위협받게 되는지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이어지는 각 장들은 경제용어를 현실과 연결시켜 질문하는 방식으로 하나씩 풀어낸다. 가치에 왜 태평양의 가난한 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할까? 의문을 품고 이에 대한 해답을 찾는 방식이다. GDP에 대한 환상을 산산조각내면서 왜 GDP가 증가하는데도 우리의 삶은 좋아지지 않는지 설명해준다. 국내총생산이 늘어났다고 해도 국민 개개인의 부가 증가하지 않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통계와 분석이 새롭게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려준다. 화폐에서는 왜 중국은 미국의 이라크전쟁에 돈을 쓰는가? 인데 <화폐전쟁 4>에서 읽은 내용이지만 간략하게 요약되어 복습하는 느낌도 들었다.

 

시장의 장에서 왜 런던 시내의 평균시속은 항상 12마일인가? 하고 물을 때 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고, 삶의 질에 내가 만족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공부가 더 필요하다. 삶의 장에서 왜 우리는 중세의 농부들보다 더 오래 일을 해야 하는가? 말할 때 안타까웠다. 더 많은 일을 하지만 삶이 결코 더 풍족해지지 않는 상황이 느껴졌고 또 한 번 삶의 질을 생각하게 되었다. 더 많은 소비가 만들어낸 더 많은 일이 과연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가 하는 의문도 강하게 들었다. 주당 근무시간을 줄이고 일자리를 늘이는 방법에 대한 좀더 현실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돈이 있어도 제대로 여행 한 번 떠나지 못하는 현실을 주변에서 볼 때가 자주 있다. 물론 반대가 더 많지만.

 

저자들은 이렇게 경제용어를 질문으로 연결하고 이에 대한 해답을 풀어준다. 몇몇 부분에서 나의 인식이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도 있고, 또 몇몇은 이런 방식이 과연 현실적으로 실현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생긴다. 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공감한다. 이기적이고 파괴적이면서 경쟁우선적인 현실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지만 삶의 질이나 미래를 생각할 때 이 ‘새로운 경제학’이 좀더 많은 학자들의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낀다. 이것은 저자가 “‘새로운 경제학’의 핵심은 경제학의 근본에 대한 비판 사상이다. 즉 물질적 부와 진정한 부 사이에 놓여 있는 거리를 좁히기 위해 좀 더 근본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하려는 것이다.”(30쪽)란 부분에서 그대로 알 수 있다. 그리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이 ‘새로운 경제학’이 널리 읽히고 연구되어 지구 문제를 좀더 잘 해결해줬으면 한다. 여기에 나 개인의 노력도 보태져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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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미라에게 장미를 황금펜 클럽 Goldpen Club Novel
노원 지음 / 청어람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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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노원의 소설을 읽었다. 90년대 중반에 읽고 처음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 사이 소설이 계속 나온 모양인데 한국 추리소설을 거의 읽지 않은 최근 사정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다. 다행이라면 요즘 한국 추리소설을 조금 더 읽으면서 신뢰를 회복하고 있다. 이 작품이 이 신뢰에 도움이 되었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아니라고 말하겠다. 세계적인 걸작이나 수작보다 떨어지는 것은 둘째로 하고라도 며칠 전에 읽은 <블랙>보다 못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늘 말하지만 이것은 나의 개인적 의견이다.

 

한국형 여형사 최선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시리즈 중 최근작이다. 이전 작품을 읽지 않아 최선실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모른다. 하지만 시작 부분에 그녀의 사랑과 삶의 일정이 간략하게 나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20대에 강력계 팀장이란 놀라운 실적을 쌓은 것에 그것이 가능한지 의문이 생긴다. 이것은 나중에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면 서장이 일계급 특진을 말하는 부분에 도달하면 더 심해진다. 작가가 나보다 더 많은 연구와 조사를 했을 테니 물론 가능할 것이다. 아니 소설이니 더 가능하다.

 

소설은 팔레스타인의 가장 전투적인 과격집단 ‘국제 이슬람 해방 전선’이 5개국의 공항을 테러하는 뉴스를 보도하면서다. 이중에서 파리 드골 공항의 격전은 프랑스 대테러기관 DST의 압승으로 끝난다. 대부분 테러리스트가 죽지만 라니아 살레라는 여성 테러리스트는 생포한다. 그런데 이 테러집단의 공격 대상 중 한 곳이 한국 인천공항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다행히 대상이 아니다. 이 공격을 통해 팔레스타인과 프랑스의 두 여자 수장이 등장한다. 이 둘은 이제 한 명은 반드시 죽어야 하는 상황에 돌입한다. 이런 상황에 프랑스 대통령과 영부인이자 DTS의 수장 시몬느 비올레가 한국을 방문한다.

 

국제 이슬람 해방 전선을 이끄는 인물은 여자인 사미라다. 그녀는 드골 공항에서 벌어진 DST의 참혹한 학살에 대한 보복을 맹세한 상태다. 그 첫 번째 대상은 시몬느다. 이런 테러리스트의 위협에 아랑곳하지 않고 프랑스 대통령과 시몬느는 한국으로 여행을 온 것이다. 일정을 보면 거의 신혼여행 수준이다. 방한한 시몬느의 이력에는 문학적 성공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 때문에 종로에 있는 한 여대를 방문할 예정이다. 이미 사미라가 죽음을 선고한 상태라 한국 경찰의 경호가 필요하다. 그런데 갑자기 시몬느가 일정을 변경한다. 다행스럽게 처음 예정인 곳과 멀지 않다. 평온한 환경 속에 그녀를 보기 위해 간 곳에서 시몬느를 향해 총탄이 날아온다. 첫 발은 다행히 실패다. 그 다음 총알은 그녀를 구하려고 한 최 형사의 몸에 박힌다. 다행히 방탄 조끼 때문에 생명을 구한다.

 

이 소설은 시몬느를 죽이려는 사미라의 계속된 시도를 다룬다. 이 시도를 막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최선실이다. 한 나라의 영부인이 죽을 수도 있는 급박한 상황인데도 이 소설에서는 그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종로 경찰서 내부의 알력과 질투는 감정의 폭발로 이어지고 유치함의 극치를 그대로 보여준다. 전문 암살자를 상대하는 긴장감이 종로경찰서를 휘감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농담과 여유가 너무 넘쳐 장르를 의심하게 만든다. 누군가 먼저 지적한 오타는 읽으면서 그렇게 심하게 느끼지 못했지만 대화투나 영화나 드라마에서 끌고 온 설명이나 상황이 이야기 속에 녹아들지 못하고 겉돈다.

 

형사에 대한 선입견인지 모르지만 최선실이란 여자가 보여주는 감정의 깊이는 너무 얕다. 상황에 대해 의문을 품고 용의자를 대범하게 지적하는 것은 좋은데 모두 실패다. 그런데 마지막에 가서 그녀가 보여주는 놀라운 추리력과 분석력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전개가 아니다. 전작에서 그녀가 보여준 활약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테러리스트가 보여준 인간적 관계나 정보 등은 너무 과하거나 가볍다. 설정을 만들어 놓았지만 이것이 하나씩 풀려나간다는 느낌보다 답을 내놓고 거기에 맞춘 듯한 느낌이 더 강하다.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와의 관계를 너무 간단하고 쉽게 다룬 것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추리작가들의 이 작품에 대한 주례사 비평은 왜 한국 추리소설이 독자에게 외면을 당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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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아 : 돈과 마음의 전쟁
우석훈 지음 / 김영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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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아란 단어가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은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이 단어가 알려진 뒤에 우리는 왜 경제부처와 관련 공기업 등에 회전문 인사가 그렇게 자주 일어나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물론 그 전에 나온 다른 책에서 회전문 인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그 전체적인 흐름과 힘을 몰랐었다. 이번에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이 모피아란 용어를 제목으로 내세운 소설을 내놓았다. 그가 방송하는 팟캐스트 <나는 꼽사리다>에서 소설을 쓴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이런 제목과 내용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소설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이런 종류의 소설을 썼다는 사실만으로 관심이 생겼다.

 

완성도는 사실 떨어진다. 그가 전문소설가도 아니고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쓴 소설이기 때문이다. 원래는 영화 시나리오였던 것을 소설로 내었기에 더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재미있다. 단순하기에 더 그렇다. 물론 이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것이 과장된 사실이기는 하다. 과장되었다는 표현이 정확하지 않다면 극단으로 몰고 간 설정이 더 맞을 것이다. 모피아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렇게까지 할까 하는 의문은 뒤로 하고, 과연 이런 작전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먼저 생기기 때문이다. 뭐 덕분에 모피아가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알게 되었지만.

 

소설은 그가 팟캐스트에서 한 말들을 곳곳에 녹여내었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주인공 오지환을 한국은행 직원으로 등장시킨 것이다. 그의 입을 통해 한국은행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말하기 때문이다. 물가안정이다. 법을 찾아보니 제1조(목적)에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다. 이 소설 덕분에 내가 한국은행법을 찾아볼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는 이 목적을 분명히 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좌천된다. 좌천된 그가 잠시 다녀오는 곳이 그 유명한 케이맨 제도다. 이 조세회피처에서 모피아의 수장과 한 여자를 만난다. 그 수장은 아마 현실의 이헌재를 모델로 하지 않았을까 추정해본다. 한 여자는 미국 펜타곤과 관련 있는 김수진이다. 오지환에게 찾아온 새로운 사랑.

 

설정 중 하나가 바로 정권교체가 된 후 모피아와의 전쟁이다. 이 소설을 다 읽을 때는 아직 선거 전이었다. 돈과 마음의 전쟁이란 부제처럼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선거는 새누리당의 승리로 끝났다. 경제민주화의 가능성이 사라진 것이다. 아마 그 때문에 이 글이 좀더 늦어졌는지 모르겠다. 다시 5년 뒤로 밀린 가능성을 되살려야 한다. 그 사이에 얼마나 시대 역행할지 걱정이 되지만 말이다. 이 설정을 따르면 모피아와 새로운 정부는 싸울 수밖에 없다. 이미 모피아의 존재가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진 상태고, 경제주권이나 경제민주화를 위해서는 그 옛날 군의 ‘하나회’가 사라졌듯이 모피아도 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기득권은 자신의 권리를 쉽게 내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기득권을 유지하거나 더 강화하기 위해 모피아들이 선택한 방법은 국공채 등이다. 이 회사채가 시장에 급속하게 풀릴 경우 한국경제는 위험 속으로 빠질 수 있다. 이 사실 때문에 정치와 경제의 수장이 나누어진다. 정치 부분은 새 대통령이 가지지만 경제는 모피아들의 손에 떨어진 것이다. 개인적으로 좀 극단적이고 과장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예전에 일본 대장성 관료가 얼마나 대단한 위세를 떨치면서 일본 경제를 휘둘렀나 생각하면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재미난 점은 이 위협을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이 모피아가 청와대로 파견된 오지환이란 것이다. 이 일로 그는 대통령에게 현실을 깨우쳐주는 동시에 이 문제를 해결해줘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 그리고 모피아와의 전쟁을 준비한다.

 

읽으면서 가장 먼저 느꼈던 감정은 분노였다. 이런 현실에 분노하지 않는다면 정상이 아닐 것이다. 소설 곳곳에 이미 팟캐스트를 통해 말한 내용들이 깔려 있다. 상황이나 설정이나 전쟁 준비 등이 바로 그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제처럼 마음이다. 약간 억지스러운 설정이지만 마지막 전쟁의 피날레는 97년 외환위기 당시 국민들의 마음과 현재 우리들의 바람이 뒤섞이면서 마음을 울린다. 요즘 더욱더 느끼는 것이지만 한 사람이 바뀐다고 세상이 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세상은 더욱 악화된다. 앞에서 각각 말한 한 사람은 다른 의미다. 지금 이 순간 앞으로 5년이 깜깜하다. 암흑 10년이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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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언어 아이들의 도전 - 이중언어 세대를 위한 언어교육 지침서
바바라 A. 바우어 지음, 박찬규 옮김 / 구름서재(다빈치기프트)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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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영어를 필요성을 그렇게 강하게 주장하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강하게 주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영어를 할 경우 얻게 되는 수많은 장점에 대해 말한다. 변했다면 변한 것일 수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영어가 필요한 환경이 내 주변에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영어가 짧아도 해외 여행하는데 지장이 없고, 일상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다. 다만 일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그리고 영어를 잘 했다면 아마도 나에게 더 많은 선택의 길이 열렸을 것이다. 지금 내가 영어의 아쉬움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런 부분 때문이다. 쉽게 해외로 나갈 수 있고 인터넷 정보 대부분이 영어인 것을 생각하면 내가 자랄 때보다 그 필요성이 더 커진 것은 분명하다.

 

이 책을 선택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과연 영어 조기 교육이 좋은가와 언제 영어 교육을 받아야 하는 가에 대한 의문이다. 아마 영어를 포함한 제2언어를 배워야 하는 아이들을 뒀거나 둬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 의문이다. 이 의문에 대한 답을 나는 가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고액의 영어 유치원 등을 배척하자는 주의다. 비용 대비 효과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주변에 영어로 인한 스트레스로 아이들이 병원에 다닌다는 이야기와 모국어를 기본으로 해야 한다는 외국 선생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교육에 대한 나의 반감도 어느 정도 합쳐졌다. 그렇다면 실제 그럴까? 어쩌면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구했는지 모른다.

 

책은 중요한 기본 전제 조건을 깔고 있다. 2개국 이상을 말하는 아이들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라는 사실을 먼저 인정하자. 연구 과정에 연구자 아이들이 대상인 경우가 많았음을 감안하자.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하나. 그것은 부모가 각각 다른 모국어를 사용하는 가정을 대부분 가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전제 조건을 말한 후 연령별 효과를 연구하고 분석했는데 결론만 말하면 3세 이하가 가장 좋다고 한다. 아마 조기 교육을 찬성하는 부모라면 이 결과에 박수를 치면서 좋아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앞에 나온 전제 조건을 대부분 부모들은 잊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자신들이 아이들에게 두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지속적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가 하는 점 말이다.

 

두 개의 언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한다는 것은 사실 굉장히 힘든 일이다. 저자는 이것을 인정한다. 이 격차를 조금 줄이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두 개의 언어를 집 안팎에서 사용하고 이것을 구분하는 것이다. 이 작업은 지속적이어야 하고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 어린 나이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국제결혼을 한 부부라면 이것이 상대적으로 쉬울지 모르지만 같은 모국어를 사용하는 부부라면 어떨까? 분명 쉽지 않다. 그 대안 중 하나가 영어 유치원이지만 이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후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이 책에서 한계 나이로 다루고 있는 6세 이하는 나의 고민을 더 깊게 만든다. 우리 나이로 말하면 초등학교 입학 바로 전이나 1학년 정도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 후반부에 가면 조기 교육의 실패도 말한다. 그 대안 중 하나가 캐나다의 몰입교육이다. 이 몰입교육 방식은 전체 혹은 일부 과목을 외국어로 수업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것은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모두 대상이 된다. 이 교육 방식이 상당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우리의 영어 교육을 다시 한 번 더 검토해봐야 할 부분이다. 물론 이것이 예산이나 상황 등의 문제로 쉽게 진행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도 특별히 영어를 공부하지 않으면 외국에서 영어 한 마디 못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의미있는 일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관심이 간 부분이다.

 

이제 국제화니 세계화니 하는 용어를 넘어 다른 나라의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이 기본처럼 변해가고 있다. 물론 이런 느낌이 드는 것은 내 주변 환경이 영어 등을 기본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나 자신의 불편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모국어가 중요하고 미래의 비즈니스 시장에선 분명 영어 외의 언어와 문화적 지식을 가진 사람이 앞서갈 것이라고. 그리고 조기 영어 교육을 시키거나 초등학생을 영어 학원에 보내려는 부모라면 나이가 아니라 환경과 지속성 등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머릿속에 담아둬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 하나를 덧붙이자면 우리가 어떻게 한국어를 배웠는지 되돌아보면 수많은 연습과 노력과 가족 등의 도움이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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