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인 까닭에 - 21년차 인권활동가 12년차 식당 노동자 불혹을 넘긴 은숙씨를 선동한 그이들의 낮은 외침
류은숙 지음 / 낮은산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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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참 힘든 단어다. 이 단어를 자주 사용한 것은 학교 선생인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다. 요즘 선생 노릇하기 힘들다고 그들이 말하면서 학생들의 문제를 말할 때 교권보다 인권이란 말은 했다. 이 책에서도 잠시 나오지만 선생들이 학생들에게 주인이라고 말할 때는 보통 일을 시킬 때다. 학교란 공간에서 가장 약자는 학생인데 자신들의 위치가 잠시 침해당했다고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았다는 옛 이야기를 갖다 붙이는 것을 보면 열불이 났다. 자신들의 책상 정리도 쓰레기통도 버리지 않는 그들을 비난하기도 했다.

 

그 당시 나에게 인권이란 피상적인 것이었다. 옛날 학창시절 선생들에게 받은 불합리하고 폭력적인 행동의 영향 아래 있었다. 선생들이란 존경의 대상이 아니었다. 최소한 내가 경험한 선생들은 그랬다. 그들이 뒤집어쓴 선생의 껍질을 벗어던질 때 그냥 보통의 폭력적이고 가학적인 성향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러니 선생이란 존재를 존경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제도 교육 아래 대부분 학생들은 선생을 존경하도록 강요받는다. 좀 확대해석하면 박정희를 찬양하는 그 시대 사람들과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저자는 인권을 ‘헤쳐 모여’라고 정의한다. 개인과 연대에 대한 이야기다. 사회는 ‘우리’를 강조한다. 어릴 때 ‘우리’라는 단어가 좋은 것이라고 배웠다. 이 ‘우리’라는 단어 속에 ‘나’라는 존재도 포함되어 있지만 일상적으로 우선되는 것은 늘 ‘우리’다. ‘나’를 앞세우면 이기적이라면서 비난한다. 이 ‘우리’를 위해 개인들은 억눌리고 억압당하고 소외된다. ‘나’로 있고자 하면 꼭 ‘우리’란 울타리 속에 집어넣고 자신들의 ‘우리’를 강요한다. 이때 ‘우리’는 개인들의 ‘나’가 모여 만든 ‘우리’가 아니다. 소수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욕망이나 바람을 담아낸 ‘우리’다. 그래서 ‘우리’가 싫다. 하지만 ‘나’가 함께 모여 ‘나’를 인정하고 함께 나간다면 어떨까?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많지 않은 분량이라 쉽게 읽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단숨에 읽으려고 했지만 읽으면서 몇 번 쉬어야 했다. 어려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무거워서 그랬다. 평등과 연대라는 단어가 피상적으로 먼저 다가왔고, 그녀가 경험한 현실들이 나의 가슴속으로 와 닿는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가 실천으로 옮기지 않고 입만 주절거린 것과 비슷한 거리다. 약간 위안을 삼는다면 인권활동가인 그녀조차 일상 속에서 완벽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뭐 비겁한 변명이지만. 하지만 그녀가 만난 사람들 이야기는 그냥 무심코 스쳐지나간 뉴스가 아닌 한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었다. 여기서 배우고 깨달은 것이 바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최소한 이런 사실도 모르고 사는 것보다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며칠 전 미국 학교 총기 사고가 났을 때 미 총기협회 회장이 한 말이 갑자기 떠오른다. 총을 가진 나쁜 사람을 막기 위해 총을 가진 좋은 사람을 학교에 두자는 말이다. 이때 바로 떠오른 것은 총을 없애면 되는데 하는 생각이다. 자신이 가진 권력이나 지위나 이익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가 내뱉은 그 말은 우리의 삶속에 너무 자주 등장한다. 그들에게 복지도 마찬가지다. 복지와 치안 문제로 넘어가면 권력자들이 어떻게 이 상황을 인식하고 풀려고 하는지 잘 드러난다. 성폭력자에 대한 대응으로 거세나 사형이란 극단적 방법을 내세우는 현실을 생각하면 된다. 여기에 우리도 공포나 혐오 등으로 이에 동조한다. 부끄러운 현실이다. 이런 감정과 느낌이 잘 지워지지 않는 것은 나 자신의 노력이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그 동안 받은 교육과 언론 매체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많은 이야기 속에 가슴 뜨끔한 것 하나 말하자. 우리 안의 투명인간이 보이지 않는가? 하는 장에서 ‘자기 인생에서 소중하게 만난 인연, 귀하게 여기는 사람 이름을 열 명만 써 보세요?’란 물음이다. 쉽게 떠오르는 이름이 많지 않다. 그런데 이 이름 속에 ‘장애를 가진 사람이 있습니까? 당신과 다른 수준의 학력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까?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사람, 성적 지향성이 다른 사람은요? 당신과 국적이 다르고 피부색이 다른 사람은 있나요?’라고 물었을 때 나의 삶의 한계와 인식이 얼마나 협소하고 편협했는지 그대로 드러났다. 이런 환경 속에서 행동과 실천과 인식이 넓혀지기는 쉽지 않다. 간접 경험을 통해 얻게 된다고 하지만 허상이거나 거짓일 경우가 더 많다. 이것은 인권활동가인 저자도 가끔 보여주지 않는가? 하물며 그냥 하루를 힘들게 살아가는 나라면? 부끄럽고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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