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무라야마 유카 지음, 김난주 옮김 / 예문사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한국에서만 자란 나에게 한국인이란 정체성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어릴 때 미국에서 자랐고, 아버지의 자살 이후 일본에서 자랐다면 어떨까? 일본에서 자라는 동안 다른 일본 사람들과 동화되지 못하고 있다면. 자신이 미국인이라고 생각하고 뉴욕에서 살지만 그녀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미국인이라기보다 오히려 일본인이다. 생김새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백인이 아닌 사람이 미국에서 살게 되면 늘 겪게 되는 이야기가 이 소설에 실려 있다. 미국에 대한 환상을 지우고,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면서 현실을 긍정하는 과정을 다룬다. 미국 국적의 일본인 마후유와 백인과 나바호 족의 혼혈인 브루스가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마후유는 불행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 공금횡령을 한 아빠가 총기 자살을 하는데 바로 죽지 않았다. 문제는 이 죽어가는 과정을 마후유가 본 것이다. 아빠의 죽음 후 일본에 돌아왔는데 엄마는 이상한 종교에 빠졌다. 그리고 아이를 학대한다. 사랑이라고 부르면서 폭력을 가하고, 아이의 존재가 주변 사람들에게 불행을 가져다준다고 말한다. 이 주문은 마후유가 평생 껴안고 살아야 하는 저주가 된다. 이 소설의 시작도 바로 이 과거를 정신과 의사에게 일부 말하면서다. 이 의사는 그녀의 남자 친구 랠리가 소개했다. 둘은 친구다. 이 상담을 통해 마후유의 과거를 알게 된다.

 

불행은 언제나 몰래 다가온다. 마후유에게 최악의 사건은 이제 랠리의 죽음이다. 그것도 결혼식 당일 마트 강도의 총을 맞고 죽었다. 이 죽음을 읽고 처음에는 뭐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당연히 랠리가 마후유를 돌봐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이때부터다.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승용차를 타고 루트 66을 달리면서 시작한다. 뉴욕의 이야기가 도입부라면 루트 66부터는 본격적으로 마후유와 브루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마후유와 랠리의 아들 팀이 랠리 가족들과 함께 머문다. 숨겨진 가족 이야기가 조금씩 나온다. 예상하지 못한 관계가 나오면서 복잡한 가족 관계와 감정이 뒤섞인다.

 

마후유는 자신을 머피로 불러달라고 한다. 마후유가 진짜 겨울을 의미하고, 이 이름 때문에 일본에서 많은 놀림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빠의 자살과 엄마의 학대는 그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막는다. 랠리의 사건은 이것을 더 심화시킨다. 이 기억은 랠리의 아들 팀이 아동 성애자에게 학대되는 것을 보고 더 강해진다. 하지만 자신과 팀은 다르다. 그는 방치되고 학대받았지만 팀은 머피를 비롯한 다른 가족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 팀은 백인인 랠리와 인디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다. 브루스처럼. 이 점은 둘이 쉽게 친해지는데 중요한 열쇠가 된다.

 

브루스의 나바호 족 이름은 이글하트다. 그의 인디언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다. 하지만 대외적으로 그는 브루스로 불린다. 인디언들이 아니면 이글하트로 불러주는 사람이 없다. 브루스는 냉담하고 냉소적인 것처럼 보이는데 여기에는 불행한 과거와 이유가 있다. 이 과거가 드러날 때 이야기는 또 바뀐다. 브루스를 통해 현재 인디언이 처해 있는 상황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본다. 관광 상품으로 변한 인디언들과 알코올 중독자가 된 인디언들 말이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머피와 동일한 고민을 가지고 있다. 비록 머피보다 훨씬 잘 벗어났지만 또 다른 굴레가 그를 덧씌우고 있다.

 

일본 작가가 썼지만 읽으면서 등장인물과 소재들 때문에 일본 소설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물론 중간에 이것을 되돌리는 단어나 표현이 등장하지만. 과거와 현재 이야기가 나오고, 서로의 이익이 엮이면서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빠르게 읽히면서도 묵직하다. 첫 장에서 정신과 의사가 등장하여 마후유의 과거를 보여준다면 그 다음부터는 인디언 영매가 이 과거에 매몰된 채 살아가고 있는 그녀를 일깨운다. 물론 이것이 쉽게 될 리가 없다. 현실을 그대로 본다는 것은 아주 힘들다. 그것이 무서워 도망했을 때는 더욱. 그런 점에서 마후유가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앞으로 한 발 나아가기로 한 결정은 이 소설이 보여주고자 한 부분이다. 마지막 장면들이 보여주는 현실은 그래서 더욱 강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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