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의 탐정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9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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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 료의 유일한 단편집이다. 유일하다고 했지만 실제 그가 낸 책은 모두 여섯 권에 불과하다. 이 중 한 권은 에세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일본 하드보일드 작가 중 가장 좋아하는데 내놓은 작품이 너무 적다. 아주 불만이다. 이 여섯 권의 출간물 중에 번역된 것도 네 권뿐이다. 이 또한 불만이다. 한 편으로는 아직 읽지 않은 작품이 있다는 사실에 괜히 흐뭇해지기는 한다. 그래서 하라 료의 책이 나온다고 하면 눈이 평소보다 더 오랫동안 머문다. 하드보일드 소설에 그렇게 빠진 적이 없는데 이 작가는 나를 사로잡았다.

 

모두 여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이 책이 출간된 것도 1997년으로 나온다. 실제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80년대다. 이제는 아련한 기억 속의 시대다. 작가는 한국인을 등장시켜 한국 역사에 있었던 중요한 사건 하나를 소재로 사용한다. 바로 그 유명한 김대중 납치사건이다. 그리고 88 서울 올림픽도 나온다. 이 사건들이 이야기의 중심은 아니다. 단지 배경 이야기 중 하나일 뿐이다. 그 시대와 인물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라고 해야 할까. 내가 알고 있는 사건들이 나올 경우는 이처럼 흥미롭겠지만 모르는 사건이라면 그냥 지나갈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불친절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단편집엔 공통적인 부분이 하나 있다. 십대 소년 소녀들이다. 사와자키가 이들의 탐정이 되는 것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다. 의뢰가 들어오고, 조사를 하다 보니 그들과 이어진다. 그렇다고 이 십대들의 이야기를 사회문제와 깊숙하게 연관시켜 풀어내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시대의 모습 중 일부를 간결하면서 강렬하게 표현했을 뿐이다. 물론 나의 무지 때문인지 모르지만 첫 단편은 약간 의외의 내용이다. 은행 강도가 나오기 때문이다. 일본에 은행 강도가 많았다고 말하는데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작가가 그냥 적은 것인지 사실인지. 물론 아주 큰 은행 강도 사건들이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렇게 자주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부분이 어색하게 다가올 뿐이다.

 

<소년이 본 남자>는 한 초등학생의 의뢰가 예상하지 못한 사건으로 이어진다. 처음에는 하룻 동안의 보디가드 역할이었는데 은행 강도 사건으로 바뀐 것이다. 이 현장을 직접 경험한 사와자키는 이 사건의 뒤에 감추어져 있던 진실을 파헤친다. 간결하면서도 묵직하다. <자식을 잃은 남자>는 미스터리 요소보다 한국인이 등장하고 그와 연결된 사건들 때문에 시선을 끌었다. 앞에 적은 그 사건들 말이다. 한 뺑소니 사건이 과거를 불러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널어놓게 한다. <240호실의 남자>는 하나의 의뢰가 끝난 후 그 의뢰자의 죽음으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한다. 자신이 살인자라고 주장하는 속에 진실은 미묘하게 숨겨져 있다. 그가 말하는 징크스에 괜히 한 번 더 눈길을 준다.

 

<이니셜이 ‘M'인 남자>는 한 통의 잘못 걸려온 전화로 시작한다. 자살하겠다는 전화다. 보통 소녀가 아닌 여자 가수다. 아마 연예인이 아니었다면 제대로 알지도 못했을 사건이다. 자신이 하나의 알리바이가 된 사건이지만 사와자키의 촉은 그 뒤에 숨겨진 진실에 좀 더 다가간다. 십대의 불안과 충동은 예상하지 못한 결과로 이어진다. <육교의 남자>는 손자를 찾는 할머니 이야기다. 하지만 할머니도 손자도 이야기의 중심은 아니다. 이 조사를 한 탐정이 육교에서 굴러 떨어진 사건에서 의문이 생긴다. 범인은 누굴까 하고. 그런데 나의 호기심은 그 손자가 저지른 사건들이 무엇이기에 그렇게 숨길까 하는 의문으로 이어졌다. 잔혹한 십대 범죄의 총합 같다. 거대한 재산은 바쁜 소식과 불안 등과 엮이면서 다른 사건을 부른다.

 

<선택받은 남자>는 한 소년의 전화가 어머니를 불안하게 만들고, 이것이 사와자키의 의뢰로 이어진다. 재미난 점은 사와자키와 함께 소년의 찾는 시의원 출마자 구사나기다. 나의 삐딱한 시선은 구사나기의 반전을 끝없이 기대했다. 그러나 이것은 미스터리를 오랫동안 읽은 탓에 벌어진 나쁜 상상일 뿐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집중을 못했는데 권말에 나온 <탐정을 지망하는 남자>와 이어지면서 나를 즐겁게 만들었다. 이 간단한 단편은 사와자키가 어떻게 탐정이 되었는지, 십대들이 흔히 상상하는 세계가 얼마나 허황된 환상인지 적나라하게 말해준다. 책으로 엮지 않았다면 나오지 않았을 단편이라 더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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