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파친코 1~2 세트 - 전2권
이민진 지음, 이미정 옮김 / 문학사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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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파친코>의 중심은 선자다. 

선자는 파친코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 모든 역사를 겪어내며 살아나간 인물. 작가는 선자를 큰 줄기로 해서 여러 인물들의 삶을 가지로 뻗어 보여준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라는 이 소설의 첫 문장은 100여년을 관통해가는 이 소설이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인 듯하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다"는 자각, "그래도 상관없다"는 의지. 


역사는 어떻게 선자와 그 주변 인물들을 망쳐놓았는가. 

선자의 부모 훈이와 양진의 이야기부터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역사의 흐름에 속절없이 휩쓸려간다. 혹은 태생적인 운명에 의해, 혹은 딱히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선택에 의해. 

부산 근처 영도라는 작은 섬에 살면서 어머니와 함께 하숙집을 운영하는 선자는 어느날 장에 다녀오던 길에 일본인 남자애들에게 추행을 당한다. 그때 고한수가 나타나 그녀를 구해준다. 고한수가 없었다면 그놈들에게 더 몹쓸 짓을 당하여 그들의 아이를 가지게 되었을 지도 모를 일. 게다가 아버지의 장애 때문에 혼인에 어려움이 있는 선자는 솔직한 호감을 보이는 고한수에게 끌릴 수밖에 없다. 그의 아이를 가지게 된 선자는 일본에 아내와 딸들이 있어 결혼은 할 수 없지만 너와 아이를 잘 돌봐주겠다는 고한수의 제안을 거절한다. 고한수가 선자가 자신이 유부남인 걸 알아도 관계를 가질 거라고 믿었다면, 선자가 아이를 가질 때까지 그 사실을 숨겼을 리가 없다. 진짜 써글놈이다. 


선자의 하숙집에 머물고 있던 목사 백이삭이 그녀의 사정을 알게 되고, 결혼하여 함께 일본으로 가자고 청한다. 이때 백이삭을 따라간 것이 선자의 삶의 방향을 결정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어느 쪽이 더 나았을지는 결코 알 수 없지만. 일본에서 백이삭의 형 요셉과 그의 아내 경희와 함께 지내면서, 선자는 무사히 노아를 낳는다. 몇 년 후, 백이삭과 사이에서 생긴 아들 모자수도 낳는다. 그러나 백이삭은 그의 교회에서 일하는 소년이 일본 신사에서 천황을 위한 뭔가를 외우지 않았음이 발각되는 바람에 투옥되고,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만신창이가 되어 집에 돌아온다. 


이 모습을 처음으로 본 노아, 희미한 기억 속에 그리워했던 아버지가 고문으로 엉망이 된 모습으로 돌아온 걸 본 노아는 어땠을까? 원래도 영리한 노아였지만, 아마 이때부터 그는 완전한 일본인이 되어 멸시당하지 않고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을 것 같다. 이 작은 노아를 떠올리면 가슴이 아프다. 결국엔 선자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마는 노아.. 그건 저 뒤의 일이지만.


어려운 생활을 꾸려나가기 위해 선자와 경희는 김치장사를 시작하고, 그러던 중 큰 고깃집에서 전속으로 김치를 담가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전쟁이 터지고, 요셉이 크게 다치고, 고한수가 나타나고, 그의 도움으로 피신했다가 돌아오고, 노아는 일하며 열심히 공부해 와세다대학에 입학하고, 모자수는 파친코에서 일하게 된다. 

파친코. 드디어 나오네? 당시 일본인들이 보통의 직장에서는 조선인을 써주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조선인들이 파친코 사업에 관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와세다대학에 들어갔던 노아도 결국은 객지에서 파친코 직원이 되고,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은 콜롬비아대학에 가서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결국에는 일본에 돌아와 파친코에.. 참으로 씁쓸한 순환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제약을 뛰어넘고자 그저 열심히 달렸지만, 일본과 조선의 역사가 이들을 좌절시켰다. 


한국에 가면 일본인이라고 욕을 먹고, 일본에서는 아무리 일본에서 나고 자랐어도 3년마다 등록증을 받아 목에 걸어야 하며 조선인에 대한 혐오의 시선을 받아야 하는 이들. '디아스포라'라고 일컫는 그 정서는 인종혐오, 정치적박해, 빈곤 등 다양한 이유로 모국을 떠나 자리를 잡아야만 했던 전세계 많은 사람들의 마음까지 울린 모양이다. 


내게 가장 마음 아팠던 장면은 선자가 노아를 생각하며, 노아가 그렇게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내면 상황이 바뀔 거라는 희망을 갖게 해서는 안 됐던 게 아닐까, 후회하던 거였다. 그 믿음이 무너지고, 아슬아슬하게 쌓아올린 거짓된 삶조차도 무너질 위험에 처하자 노아는 목숨을 끊어버렸으니까. 하지만 어떻게 엄마가 그럴 수 있었겠는가. 아직 어린 아이에게, 앞날이 구만리 같은 아이에게, 희망을 가지지 말라고, 어차피 우리는 여기가 한계라고,, 그런 말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노아가 밉고 불쌍하다. 노아가 조선인임을 속이고 일본인인 척 하며 결혼한 일본인 여성은 그 아버지(?)가 자살했기 때문에 안 좋은 시선을 받으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남편마저 자살해버린 후 그녀가 아이들과 꾸려나갔어야 했을 삶은 얼마나 팍팍했을지. 고한수와 관계했다는 이유로 엄마를 비난한 노아는, 결국 그 결과물인 자기 자신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선자는 남편 백이삭의 무덤에 간다. 일본경찰의 고문에 죽어간 백이삭의 무덤에서 이야기를 끝내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비록 일본에서 자리를 잡아 풍족하게 생활하고 있지만 역사를 잊지 않겠다는, 잊지 말자는 작가의 외침일까.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다'는 것을 잊지 않은 채, 그러나 '그래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앞을 바라봐야 한다고. 혈연으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선자와 서로 의지하고 살아온 가족 경희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선자의 모습에는, 꿋꿋하게 세월을 견뎌내온 소나무 같은 기상이 있다.  


리뷰의 제목을 고민하다 문득 푸쉬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가 떠올랐다. 

부당한 상황에서 개인의 믿음으로 뚫고 지나가라는 식의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지만, 세상의 흐름에 휘둘리는 작은 인간에게는 존엄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삶이 나를 속일 때 마음껏 슬퍼하거나 노여워 하겠다. 그러고 나면 지나보낼 수 있을 것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 최선 옮김, 민음사, 1997 (네이버 지식백과 '세계의 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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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2-06-03 12: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좋았는데 독서괭님 리뷰 읽으니 여러 장면들이 겹쳐져서 참 좋네요. 전 이번에 3년에 한 번씩 재일한국인이 일본정부에 등록하는 일(지금은 어쩐지 모르겠네요)에 대해 읽으면서, 그렇게 생김새가 비슷한데도 심지어 일본에서 태어났고 자랐고 그런데도 ‘구별‘하고 싶어하는 일본인들의 마음은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한편으로는 우리도 외국에서 온 분들이 많아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들에 대한 편견이 맘 속 깊이 있는건 아닌가, 아니 대놓고 무시하고 임금을 착취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런 생각이 들어서 참 그렇더라구요. 집 떠나면 우리 모두 나그네인데 말입니다.

마지막 시도 참 좋네요. 저는 여기가 좋아요.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독서괭 2022-06-03 12:56   좋아요 2 | URL
네 ‘구별‘하고 싶어하는 일본인들의 마음.. 우리도 똑같은 것 같아서 씁쓸합니다ㅠㅠ 차라리 외국인이라고 다 똑같이 차별하면 나은데, 외국도 외국 나름으로 차등을 두어 대우하니까요.. 말만 글로벌 시대지 마음이 열리는 건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시 둘째 연은 낯설던데, 단발님이 좋다 하신 그 다음 행,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가 맘에 와닿아요^^
단발님 댓글에 좋아요 누르려다가 잘못 해서 제 글에 좋아요를 눌렀더니 ˝자신의 글을 좋아요 할 수 없습니다˝라는 알림이 떠서 부끄러웠네요 ㅋㅋ

단발머리 2022-06-03 13:05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 좋아요,는 저한테 맡기세요 ㅋㅋㅋㅋㅋ 독서괭님 댓글도 좋으니까요!!

거리의화가 2022-06-03 13:1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노아의 마지막을 생각하니 또 한번 가슴이 무너지고 마네요. 괭님 리뷰 잘 읽었습니다. 푸쉬킨의 시와 파친코의 내용이 잘 어우러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차별과 억압을 벗어나고자 했지만 결국 쳇바퀴처럼 돌아오고 만 여러 조선인들을 생각하게 만드네요~ㅜㅜ

독서괭 2022-06-03 22:35   좋아요 1 | URL
노아의 마지막에 읽다가 소리내서 헉! 했어요 ㅠㅠ 선자 얼마나 괴로웠을지..
결국 쳇바퀴처럼 돌아오고 말았다는 말씀이 딱 맞네요. 이 책이 그분들 마음에 많은 위로가 되었을까요?

scott 2022-06-03 15: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자이니치들은 여전히 일본 주류 사회 진입이 어렵습니다 요식업-유흥업-연예계로 진출하는 것 이외에는 좋은 학교를 나와도 일본에 뿌리 내리지 못하게 해놨어요 현재도 일본 파친계는 자이니치들이 꽉 잡고 있다고 ,,,

독서괭 2022-06-03 22:37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지금도 그렇군요 ㅠㅠ 일본 상황도 잘 아시는 스콧님!👍 파친코를 잡고 부유해졌지만 끊임없이 차별을 받는 것이.. 갑자기 유대인이 떠오르네요. ㅠ

새파랑 2022-06-03 16: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푸쉬킨과 연결되는 파친코네요~!! 전 개정판 나오면 꼭 읽어보겠습니다~!! 별 다섯이니 완전 기대되네요 ㅋ

독서괭 2022-06-03 22:37   좋아요 1 | URL
개정판 8월에 나온다니 얼마 안 남았네요! 8월엔 18권 읽으실 듯한데 그중 2권은 파친코로 ㅎㅎㅎ
 
돌이킬 수 있는
문목하 지음 / 아작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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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까지는 그럭저럭 재밌게 봤는데 후반부는 지루했다. 뭐랄까, 스토리랑 설정은 있는데 캐릭터가 없는 느낌? 캐릭터 입체감과 매력이 부족하다. 비장함도, 감동도 오히려 너무 공들인 설정에 묻힌 것 같다. 시간 관련 능력은 꽤 좋아하는 설정인데 아쉬움. 데뷔작인 걸 감안하면 시도는 좋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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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 진 시리즈 2권이다.

1권에서 라라 진은 피터와 야외온탕에서 로맨틱한 키스를 나눈다. 그러나 스키캠프에서 돌아오는 길, "라라진과 피터가 야외온탕에서 섹스했다"는 소문이 퍼졌고, 이로 인해 라라진과 피터는 크게 싸우게 된다. 

2권은 새해를 맞이하며 시작된다. 피터와 화해하고 싶은 라라진은 편지를 써서 언제 보낼까 궁리하며 하루를 보내고, 결국 피터와 만나 화해한다. 그러나 야외온탕의 시련은 끝나지 않았으니, 누군가 야외온탕 키스장면을 찍었고 그 동영상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문제는 그들은 키스만 했을 뿐인데 마치 섹스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였다. 이 동영상 문제로 인해 라라진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데, 이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은 '둘이서 벌이는 일'에 대해 여성에게만 처벌이 가해지는 부당함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 소설의 최고 장점은, 라라 진이 이 문제를 헤쳐나가는 데 피터 못지 않게 자매들과 여자친구, 다른 여성(요양원 할머니들)이 좋은 조언자와 지지자가 되어준다는 점이다. 


언니가 말했다. "사람들은 여자가 섹스하면 잡아먹을 듯 굴면서 남자가 섹스하면 격려해주잖아. 댓글만 봐도 그래. 다들 라라 진을 걸레니 뭐니 하면서 피터한텐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아. 피터도 동영상에 같이 찍혔는데 말이야. 정말 웃기는 이중잣대라니까."  - 79/515쪽(전자책 기준)

요런 언니 마고의 예리한 지적. 

그리고 아래의 이어지는 둘의 대화는 너무 귀엽다. 


나는 심호흡을 했다. "그래, 감당할 수 있어. 내 말은, 뜨거운 섹스 좀 하면 어때. 안 그래? 그건 인생의 한 부분이잖아. 안 그래? (...)"

언니는 깊이 감명받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빨리 슬픔의 다섯 단계를 통과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 믿기 힘들 정도로 놀라운 회복력이야."

"고마워." 나는 약간 뿌듯해졌다.  - 87/515쪽 

로맨스 비중 못지 않은 자매애의 비중. 이 시리즈를 좋아하는 내 첫번째 이유. 


피터와의 이별은 캐서린 송 커비가 열 살이 되는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 419/515쪽 


요양원 할머니의 현명한 조언. 

-삶이 성을 차별하잖니. 


할머니가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라라진, 명심해라. 관계를 어디까지 끌고 갈지는 여자가 결정하는 거야. 남자는 생각할 때 머리 대신 다른 걸 쓰거든. 네가 냉정을 유지하면서 너 자신을 보호해야 해."

"잘 모르겠어요, 할머니. 그건 좀 성차별적이지 않아요?"

"삶이 성을 차별하잖니. 임신하면 인생이 바뀌는 건 너라고. 남자한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사람들이 뒷말을 할 때도 너에 대해서만 뭐라고 할 거고. 그 <틴 맘>이란 프로그램 안 봤니? 남자들은 하나같이 쓸모가 없어. 전부 쓰레기야!"  - 201/515쪽

라라 진과 피터의 험난한 연애는 동영상 문제에 피터의 전여친 제너비브가 얽히면서 이별의 위기까지 간다. 그 와중에 라라 진이 '과거 좋아했던 남자들' 중 한 명인 존 매클래런이 다가온다. 존 매클래런.. 난 솔직히 이쪽이 더 마음에 들었는데. 피터도 괜찮은 녀석이긴 하지만, 내 옛 절친과 오랫동안 사귀고 전교생이 그 애와 피터가 깊은 관계라는 걸 아는 상황이라니. 게다가 피터랑 전 여자친구는 '친구'라면서 계속 고민상담인지 뭔지를 한다고 만나고 있다니! 정말 싫다. 피터가 바람을 피운 것도 아니고 여친이기 전에 친구인 사람을 저버리는 게 인간적으로 좋은 건 아니지만, 피터를 비난할 수 없는 것과 별개로 나는 그 상황을 용납하지 못할 것 같다. 순결을 유지하고 있는 존 매클래런 쪽이 맘도 편하고 좋지 않겠니..?(심지어 외모는 '젊은 시절 로버트 레드포드'라는데..) 온갖 로맨틱한 장면도 존과 펼쳐지는데 말이다. 


그래도 어쨌든 피터도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들 이상적인 10대 남자애다. 예를 들어 이런 장면. 


키스하던 중 피터가 갑자기 물었다. "잠깐, 그럼 너랑 나는 절대 안 하는 거야? 영원히?"

"절대 안 한다곤 안 했어. 지금은 안 한다는 얘기지. 내가 완전히 확신할 수 있을 때까지 말이야. 알았어?"

피터가 웃음을 터뜨렸다. "알았어. 그럼 이 버스를 운전하는 사람은 너구나. 하긴 처음 부터 그랬어. 나는 부지런히 따라갈 뿐이고."  - 260,261/515쪽

라라 진처럼 이렇게 확실하게 섹스에 대한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도록 아이를 키워야겠다고. 그리고 이걸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는 상대를 만나라고 말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라라 진은 피터와 진지하게 연애를 시작하면서 '관계의 지속', 그리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힘을 갖는 관계라는 게 어떤 것인지 깨달아 간다. 


관계를 지속해나가는 데 그리 큰 노력이 필요한 게 아니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그건 약간의 관심, 작은 노력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피터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는 힘과 그 상처를 낫게 해줄 수 있는 힘이 내게 어느 정도 있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다. 이런 사실을 깨닫고 나니 마음 한구석이 불안하고 이상했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불안한 건지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 297/515쪽 

피터도, 존도 모두 라라 진을 좋아하고 라라 진 역시 둘 모두를 좋아한다. 하지만 사랑은 공평하지 않은 것, 어느 한쪽에 무게가 쏠릴 수밖에 없다. 선택을 해야만 한다. 


남편은 나보다 일하는 시간이 길고 자유롭게 조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나에 비해 현저히 적다. 그렇다면 온전히 아이들과 보낼 수 있는 일요일만큼은 아이들과 더 열심히 함께해 주었으면 싶다. 아이들도 평소에 많이 놀지 못한 만큼 일요일에는 아빠와 충분히 놀면 좋겠다. - 이건 내 생각이고, 

토요일에도 하루종일 같이 있던 나에게, 아이들은 일요일에도 여전히 매달린다. 목욕도 엄마가, 간식 주는 것도 엄마가, 똥 치우는 것도 엄마가, 재우는 것도 엄마가. 내가 한명만 데리고 병원 등을 가야할 일이 생기니, 서로 "누나는 아빠 좋아하잖아" "네가 아빠를 더 좋아하잖아" 하며 아빠를 떠넘기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듣고 있는 아빠 생각도 해야지 얘들아... 


참으로 사랑은 공평하지 않은 것이다. 엄마랑 평소에 더 많이 놀았다고 남은 시간은 아빠랑 놀아야지, 하는 생각은 사랑에 걸맞지 않는다. 사랑에 논리와 계산은 통하지 않는다. 논리와 계산이 통하지 않는 그 사랑이 정말로 고맙지만, 사양하고 싶을 때도 가끔은 있다...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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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2-02-07 16: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올려주신 책의 문장들이 넘 좋고 용기를 얻어요. 사랑은 공평하지 않아요, 정말 그런것 같아요^^
지금은 아이들이 어려서 그런데 좀 더 크고 사춘기가 되면 그땐 아빠의 역할이 더 커질거예요~~그때까지 아자아자^^

독서괭 2022-02-07 23:47   좋아요 1 | URL
오오 페넬로페님 격려 감사합니다. 크면서 아빠랑 노는 시간이 늘어난다고는 하더라고요. 남편 업무시간이 좀 줄어야 할텐데 ㅠ 희망을 가져봅니다!

단발머리 2022-02-07 19:4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독서괭님!! 아침에는 로스 페이퍼 올려주시더니 라라진 페이퍼라니요!!! 이거 정말, 일거양득, 일석이조, 일타쌍피, 엎친데 덮친격이에요!!!
저는 이 시리즈 세 권 다 읽었구요. 이 작가의 다른 책 샀는데, 그건 다 못 읽고 보관만 하고 있어요.
중간 중간 인생의 진리 같은 명언이 속출해서 넘 좋았지만, 셀럼 포인트 역시 무시할 수 없겠네요.
너무 즐겁게 잘 읽고 갑니다^^

제가 생각해보니 사람은 역시나, 같은 책 읽는 사람을 좋아하는 거 같아요 ㅋㅋㅋㅋㅋㅋ 1) 같은 책을 사는 사람을 좋아하고 2) 같은 책을 읽는 사람을 좋아하고 3) 같은 책에 대해 리뷰 쓴 사람을 좋아하고 4) 같은 느낌을 갖게 된 사람을 좋아하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들 아빠 좋아하게 만드는 법.... 있기는 있는데 좀 아쉬운 포인트가 있어서요. 어떻게.... 알려 드려요?

독서괭 2022-02-07 23:50   좋아요 2 | URL
이야 단발머리님 1)에서 4)까지 정리해주신 거 완전 공감합니다😆 라라진 시리즈 저도 이제 3권 시작은 했는데 스트레스 심할 때 읽으려고 아껴뒀어요 ㅋ 이 작가 다른 책은 검색 안 해봤는데 있군요! 그냥 그런 틴에이저로맨스로 읽기에는 아까운 소설 같아요. 특히 가족-자매 이야기가 많아서 좋아요^^ 단발님과는 잭리처시리즈에서 시작해 착착 애정을 쌓아가는군요 히히
아빠 좋아하게 만드는 법에 아쉬운 포인트는 뭘까요.?? 궁금한데 알려주세요!

새파랑 2022-02-07 19: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줄거리만 보면 완전 재미있을거 같아요 ^^ 그런데 제가 이런 책을 읽으면 왠지 안될거 같은 기분이 듭니다 ㅎㅎ 사랑은 원래 공평한게 아닌가봐요~!!

독서괭 2022-02-07 23:51   좋아요 2 | URL
세계고전문학 마니아 새파랑님ㅎㅎ 이런 책을 읽으시면 아니될 건 없지만 섣불리 권하지는 못하겠네요^^ 혹 영어 공부 하실거면 원서 읽어보시는 건 좋을 듯요!

mini74 2022-02-07 19: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삶이 성을 차별하잖니. 버스를 운전하는 사람은 너잖니 ㅎㅎ 와닿는 문장들이네요. 저도 제가 일하면서 거의 혼자 아이를 카웠어요. 남편은 아이가 지가 알아서 큰 줄 알아요. 본인은 뭘 한 게 없으니 ㅎㅎㅎ

독서괭 2022-02-07 23:53   좋아요 1 | URL
미니님 혼자 거의 키우시다니 고생 많으셨네요 ㅠㅠㅠ 저희 아빠도 보면 신생아가 밤에 계속 깬다는 것도 모르시더라고요;; 남편은 그래도 살림육아에 많이 힘쓰는 편인데 한계가 있네요😓

책읽는나무 2022-02-07 21: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라라진 이야기 넷플 영화로 봤어요.
등장인물들 하는 행동들이 넘 귀여워서 시즌2 까지 봤었는데 아~~이게 책이랑 영화랑 확실히 느낌이 다르군요?
삻이 성을 차별한다!!!
이런 명언들 하나도 기억 안나네요!!
내가 자막을 놓친 걸 수도 있겠지만요^^
책을 읽게 된다면 시즌 2가 더 좋은 대사들을 많이 읽게 될 것같군요!!

아가들이 엄마를 더 많이 좋아하나 보군요??
저는 고 시기 때 넘 힘들어서 아빠한테 가보라고~맨날 맨날 애들 등을 밀어줬었어요.
무슨 일만 생기면 맨날 ˝어머! 아빠 어디 있어?˝
˝아빠 또 숨었나 보네? 아빠 찾으러 가자!˝
˝아빠 또 자는 척 하네? 간지럽히러 가자!˝
˝아빠한테 해달라고 해볼까?˝.....
메구짓 많이 했네요ㅋㅋㅋ
아주 그냥 아빠 소리를 달고 살았었어요^^

독서괭 2022-02-07 23:56   좋아요 0 | URL
저도 영화를 볼까 하다가 피터 얼굴 보고 실망할까봐? ㅋㅋㅋ 안 봤어요. 근데 영화도 재밌나보네요^^ 영화에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나올지는 모르겠네요. 아무래도 책이 더 자세하겠죠?
저도 아빠한테 가보라고 아빠한테 해달라고 하라고 많이 하는데 거부당할 때가 많아서^^;;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밀어봐야겠습니다..! 나무님은 안 그래도 종일 보는데 아빠 있을 때까지 매달리면 더 힘드셨겠죠 ㅠㅠ

기억의집 2022-02-07 22: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라라진이 내가 사랑했던 남자들인가 그 여주 아닌가요? 작품속 대화가 옳은 말만 하는데요!!! 책은 시리즈로 있나 보군요!!

독서괭 2022-02-07 23:58   좋아요 0 | URL
내가 사랑했던 남자들에게 맞습니다^^ 책은 3권까지 있더라고요. 라라진 캐릭터가 귀여워요. 로맨스보담.. 가족물/성장물인 게 좋아서 봅니당☺️
 
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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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소설은 주인공인 '그'의 장례식 장면에서 시작된다. 독자는 죽은 이를 애도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저마다 풀어놓는 추억과 감정들을 맛본 뒤, 이어지는 '그'의 생애를 보게 된다. 그는 이미 죽었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는 다른 사람이 아닌 그 자신의 목소리로 전해진다. 1인칭 시점은 아니고 '그'로 표현되지만 거의 1인칭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전환이 너무 자연스러운 나머지, 그가 죽었다는 걸 알고 시작되는 이 이야기를 읽어나가며 나는 그가 마지막 수술 뒤에 죽을까,를 궁금해 했다. 심지어 이 소설이 그의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시작되었다고 잠시 착각했다. 


(...) 다른 여느 장례식보다 더 흥미로울 것도 덜 흥미로울 것도 없었다. 그러나 가장 가슴 아린 것, 모든 것을 압도하는 죽음이라는 현실을 한 번 더 각인시킨 것은 바로 그것이 그렇게 흔해 빠졌다는 점이었다.
몇 분이 안 되어 모두 가버렸다. 지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우리 종(種)이 가장 좋아하지 않는 활동으로부터 떠나가 버렸다.
그리고 그는 뒤에 남았다. 물론 다른 누가 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비통해 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거나 자기도 모르게 안도했다. 또는 좋은 이유는 나쁜 이유는 진정으로 기뻐하기도 했다.
 - P23


이 얇은 책 속에는 수많은 죽음이 담겨 있다. 소년 시절 입원했던 병실에서 옆 침대에 누워 있던 다른 소년의 죽음, 전쟁으로 인한 이름 모를 선원의 죽음, 그림교실에 오던 학생의 죽음, 아버지의 죽음, 어머니의 죽음. 그 모든 죽음들 사이를 지나 계속 살아가는 그 역시 노화와 건강 악화로 수술, 입원을 반복하며 죽음을 향해 간다. 바로 옆에서 죽음이 벌어져도 내게 벌어질 줄은 몰랐던 젊은 시절을 지나, 이제 언제 그것이 닥쳐올지 몰라 벌벌 떠는 노년의 삶. 우리 모두에게 예정된 결말. 


"창피할 일 전혀 없습니다."

"있어요, 있어요." 그녀는 울었다. "자신을 돌볼 수 없다는 거, 궁상맞게 위로를 받아야 한다는 거..…"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그런 건 전혀 창피한 게 아니죠."
"그렇지 않아요. 선생님은 몰라요. 의존, 무력감, 고립, 두려움…… 그게 다 아주 무섭고 창피해요. 통증이 있으면 자신을 겁내게 돼요. 그 완전한 이질감이 정말 끔찍해요."
 - P96

무엇보다 그를 괴롭게 하는 것은 그의 욕망이다. 그는 첫 번째 결혼에서 실패하고 두 아들의 증오를 얻었으나, 두 번째 결혼에서는 헌신적인 아내와 상냥한 딸을 얻었다. 그러나 자제하지 못한 그의 욕망으로 두 번째 결혼도 파국을 맞는다. 그 욕망의 대상과 맺은 세 번째 결혼 생활은 완전히 실패였다. 결국 늙고 병든 그는 홀로 살게 되는데, 그 와중에도 젊은 여자를 향한 그의 욕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제 아무리 잘나갔던 그라도 일흔의 나이에 이삼십대 여성에게 수작을 거는 것은 무리수였다... 

그는 전 직장동료 중 한 명은 암투병 중이고 한 명은 정신병원에 입원한 사실을 알게 되어 전화를 건다. 그는 이제 노년이라는 "대학살"이 진행 중임을 실감한다.


그는 어머니와 아버지와 전화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어 자신의 에스프리를 소생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알게 된 것은 삶의 종말이라는 피할 수 없는 맹공격이 가져온 결과 전체와 비교하자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가 긴 직장생활 동안 사귄 모든 사람의 괴로운 사투를 알았다면, 각각의 사람들의 후회와 상실과 인내가 담긴, 공포와 공황과 고립과 두려움이 담긴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알았다면, 이제 그들이 떠나야 할 것, 한때 그들에게 생명과도 같았던 그 모든 것을 알았다면, 그들이 체계적으로 파괴되어가는 과정을 알았다면, 그는 하루 종일, 또 밤늦도록 계속 전화기를 붙들고, 전화를 적어도 수백 통은 해야 했을 것이다.
노년은 전투가 아니다. 노년은 대학살이다.
 - P162

리뷰를 쓰기 위해 다시 보니 볼수록 잘 쓴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에브리맨>이라는 제목처럼 모든 사람에게 닥쳐오는 노년의 삶 - 질병, 무직, 홀로살기, 체력감퇴, 성적매력감퇴(!!) - 을 '죽음'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압축적으로 엮어 낸 한 사람의 일생을 통해서 보여주는 방식이 영리하고, 무엇보다 재미있다. 죽음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보부아르의 <아주 편안한 죽음>과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 떠오르는데, 일단 재미 면에서는 가장 뛰어나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한 편의 우화같고 교훈적인 반면, <에브리맨>과 <편안한 죽음>은 훨씬 개별적이고 구체적이다. 두 작품 중에는 <편안한 죽음>이 더 읽기가 힘들었는데, 더 좋은 쪽도 <편안한 죽음>이다. 


뭘까? 분명 잘 썼고 재미도 있는데 왜 좋아지지 않을까? 

뭔가 그럴싸한 이유가 없나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이런 설명밖에 못 하겠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뭔가, 중/노년 아저씨들이 많이 하는, "내가 왕년에는 말이야~"의 냄새가 풍긴다.

자기 욕망을 좇아 거침없이 살던 남자가 힘 빠지고 곁에 사람 없으니 지난 리즈시절을 그리워하며 한탄하는 느낌? 

그게 다는 물론 아니고 노년과 죽음에 대한 인간의 절망과 공포를 잘 그려낸 건 맞는데, 아, 뭔가.. 뭔가가.. 이입이 안 돼!! 


마치 질식을 시키려는 듯이 그의 얼굴에 에테르 마스크를 씌우던 그 공포의 순간에 그 의사가, 그가 누구였건, 이렇게 소곤거렸다고 그는 맹세라도 할 수 있었다. "자, 이제 널 여자로 바꿔주마."  -P36


이런 대목 때문일까? 이건 예시일 뿐이지만, 이 책의 제목이 <에브리'맨'>이듯이, 물론 영어로는 이게 모든 사람이란 의미겠지만 어쨌든 '맨'이니까, 몹시 남성적이어서?


다양한 욕망을 품고 있었지만 그것을 참아 내기 위해 엄마는 온 힘을 쏟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분노를 느껴야만 했다. 엄마는 유년 시절 내내 규범과 금기라는 갑옷을 두른 채 몸과 마음, 정신을 억압당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끈으로 옭아매도록 교육받았다. 그런 엄마의 내면에는 끓어오르는 피와 불같은 정열을 지닌 한 여인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여인은 뒤틀리고 훼손된 끝에 자기 자신에게조차 낯선 존재가 되어 버린 모습이었다.  - <아주 편안한 죽음>, P58


보부아르의 어머니가 <에브리맨>의 '그'보다 훨씬 먼저 태어난 사람이고 둘다 나보다 과거 세대 사람들이지만, 결혼을 하고도 욕망에 좆아 사는 사람보다 억압당하며 산 어머니의 삶 쪽이 나 개인적으로 이입이 더 잘 되기 때문일까?


자연스러운 죽음은 없다. 인간에게 닥친 일 가운데 그 무엇도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 지금 이 순간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 이는 그 자체로 세상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하지만 각자에게 자신의 죽음은 하나의 사고다. 심지어 자신이 죽으리라는 걸 알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인간에게 죽음은 하나의 부당한 폭력에 해당한다.  - <아주 편안한 죽음>, 153쪽 


흠, 두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명제들, 

"노년은 대학살이다"와 "죽음은 하나의 부당한 폭력이다", 둘 중에 어느 쪽이 마음에 드시나요? 


그는 그들 모두를 너그럽게 대하려고 노력했다. 심지어 가망 없는 사람들에게도, 보통 그런 사람들이 수업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멋진 하루를 보냈습니다. 오늘은 영감을 받고 왔어요" 하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마침내 그 소리가 지겨워지자 그는 척 클로스가 어떤 인터뷰에서 한 말을 기억나는 대로 들려주었다.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 - P86

"(...) 하지만 거짓말이라니…… 거짓말은 정말 경멸스러운 방식으로 값싸게 다른 사람을 통제하려는 거야. 다른 사람이 불완전한 정보에 따라 행동하는 걸 지켜보는 거야. 다른 사람이 수모를 겪는 걸 지켜보는 거라고, 거짓말은 아주 흔하지만, 당하는 쪽이 되어보면, 그건 정말 경악스러운 거야. 당신 같은 거짓말쟁이들에게 배신을 당하는 사람들은 점점 많은 수모를 겪게 돼. 그러다 보면 마침내 당신도 그 사람들을 전보다 하찮게 여길 수밖에 없어, 안 그래? 당신처럼 능숙하고 집요하고 사악한 거짓말쟁이들은 언젠가는 틀림없이 자신에게 심각한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거짓말을 하는 상대한테 그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게 될 거야. (...)"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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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2-02-07 06: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필립 로스, 이 양반한테 열광했다가, 좋아했다가, 그저 그랬다가, 이젠 <유령 퇴장> 이후에 더 이상 안 읽습니다.
심지어 미국 문학판의 유대인 마피아가 밀어주기로 결심을 한 거 아냐, 라고 의심까지 하는 지경입니다.
저도 이런 제가 싫습니다. ㅠㅠㅠㅠㅠ

잠자냥 2022-02-07 09:57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 유대인 마피아 개입설 ㅋㅋㅋㅋㅋ

독서괭 2022-02-07 12:36   좋아요 3 | URL
ㅎㅎ 골드문트님이 <유령 퇴장> 이후 안 읽겠다고 하신 글 본 기억이 나요. 유대인 마피아 ㅎㅎ 그런데 한때는 열광하셨다니 필립 로스에게 매력이 있는 건 분명한가 봅니다.
그렇다고 왜 스스로를 싫어하시나요 ㅎㅎ

새파랑 2022-02-07 07: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골드문트님 처럼 계속 읽다보면 필립 로스가 싫어질까요? ㅜㅜ
전 소설은 편식을 안한다고 생각해서 이런 시원시원한 문체도 좋더라구요. 좀 마초적인 느낌이 있어서 호불호가 갈릴거 같긴 합니다.

전 <에브리맨>만 읽어봐서 <아주 편안한 죽음>과 비교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에브리맨> 좋았어요 ㅋ

독서괭 2022-02-07 12:37   좋아요 2 | URL
새파랑님 말씀처럼 정말 호불호가 갈리는 작가인가 봐요. 저는 한권 읽은 것 뿐이라 단정하긴 어렵지만 그동안 이래저래 들었던 평가들의 이유는 좀 알겠더라고요. 마초적인 느낌이라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래도 몇 권 더 읽어보려고요~^^

기억의집 2022-02-07 08: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은 안 읽었지만 그의 다른 작품들 몇 권 읽었는데,,., 딱히 매력적인 거 모르겠더라구요. 필립 로스의 책이 2010대 초반에 번역되어 나와 한참 리뷰어들 사이에 입이 올라 커다란 기대감을 갖고 읽어서인지…저는 그들의 삶에 공감 하기가 힘들었던 기억이 나요. 휴맨스테인과 미국의 목가 네메시스 읽었네요. 지금 잠깐 검색해 보니…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었던 것 같어요.

독서괭 2022-02-07 12:40   좋아요 1 | URL
<휴먼스테인>과 <네메시스>는 읽어볼 생각인데, 기억님께는 전부 별로였군요! 하도 호불호가 갈리니 궁금해서라도 읽어보긴 해야겠습니다 ㅎㅎ 미국, 백인, 남성이라는 입장이 너무 강하게 드러나는 걸까요. <에브리맨>만 읽은 저로서는 다른 건 모르겠지만 남성적이라는 느낌은 많이 받아서 이입이 안 됐던 것 같습니다.

단발머리 2022-02-07 09: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한 때 필립 로스의 책을 다 읽겠다는 각오로 사정없이 읽었구요. 비교적 최근에 나온 두세권 뺴고 다 읽었는데, 저에게는 무척 복잡한 감정을 남긴 작가라서요. 사랑하고 미워하는. 피하고 싶으면서도 원하는... 뭐, 그런 맘이에요.
<에브리맨>이랑 <아주 편안한 죽음>을 이렇게 비교 대조하면서 읽을 수 있다는 건 몰랐어요. 아침부터 크게 감탄하고 갑니다.
근데, 어쩌죠. 또 필립 로스 읽고 싶네요. (먼 산)

독서괭 2022-02-07 12:42   좋아요 1 | URL
사정없이..!! 제가 필립 로스에 대해 북플에서 받은 인상들이 단발머리님, 다락방님, 잠자냥님, 골드문트님 영향인 것 같아요. 되게 잘 쓰는데, 마초적이고, 이걸 읽어야돼 말아야돼.. 요런 느낌? ㅋㅋ
저는 읽은 책이 많지 않다보니 최근 읽은 <아주 편안한 죽음>이 많이 떠올랐습니다^^ 느낌이 많이 다르더라고요.
필립 로스 또 읽고 싶다고 하시는 걸 보니 단발머리님에게는 아직 사랑이 더 많이 남아있는 모양입니다. 단발머리님의 필립 로스 원픽이 궁금해요!

잠자냥 2022-02-07 09: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 괭님이 지적하신 그 부분 때문에 제가 필립 로스를 많이 읽지 못하게 된 것 같아요.....
특히 <포트노이의 불평> 읽고 급 싫어짐; ㅋㅋㅋㅋ

독서괭 2022-02-07 12:43   좋아요 2 | URL
오! 자냥님이 공감해 주시니 기쁘네요^^ 저는 이 느낌이 맞나 확인해보기 위해 몇권 더 읽어보려고요 ㅋ <네메시스>, <울분>, <휴먼스테인> 정도 생각하고 있어요. <포트노이의 불평>은 안 읽을래요 ㅋㅋ

mini74 2022-02-07 14: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이때까진 좋았어요. 그래봤자 몇 권 안되지만. 이 책도 읽으려고 찜해놔서 실눈 뜨고 본. ㅠㅠ 호불호가 갈리는군요. 마초적인 느낌 음. 뭔지 알것 같기도 합니다 ~~

독서괭 2022-02-07 23:45   좋아요 1 | URL
ㅎㅎ 이미 주인공이 죽으며 시작해서 사실 스포할 것도 딱히 없습니다^^ 미니님은 좋아하시는군요! 전 더 읽어봐야겠어요🤔
 
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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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던 대로)잘 쓴, (듣던 대로)야한, (듣던 대로)남성적인 소설. 필립 로스의 책은 처음인데 이 얇은 책만으로도 들리던 말들의 이유는 알 것 같다. <에브리맨>은 화자가 평범하다는 뜻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죽음은 닥쳐온다는 뜻에서 붙인 제목인 듯. 잘 썼지만 어쩐지 정은 안 가서 별 네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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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2-02 00:1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죽어가는 짐승> 읽으시면 더 놀랄수도 있습니다~! 호불호가 나뉠수 밖에 없는 작가인거 같아요 😅

독서괭 2022-02-03 22:18   좋아요 1 | URL
아, 그 책은 엄청나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ㅋㅋㅋ <에브리맨>은 야한 거 나올 거라고 생각도 못하고 읽다가 좀 놀랐어요. 사실 분량은 얼마 안 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