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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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격하게 말한다면, <다섯째 아이>는 공포소설이다. 특히 '다섯째 아이' 벤이 태어난 후 이야기(p.66이하)는 어린 시절에 읽었던 공포소설-제목은 기억나지 않음-과 유사해 놀랐다. 출산 직후 산모가 자기 아기에게 공포심을 느끼는 건 그리 드문일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이를 소재로 한 이야기가 많은 것은 아닐까? 물론 해리엇이 느낀 공포는 '일반적'인 그것과는 다른 것이었지만.

전체적인 느낌이 영화 '오멘'과 유사하다는 생각도 했다. '오멘'의 데미안, <다섯째 아이>의 벤, 오버랩 시켜도 어색하지 않다. 벤은 뱃속에서부터 어머니 해리엇을 괴롭히다, 체중 11파운드로 태어난 아이다. 외양묘사를 보자. '아기의 이마는 눈에서부터 정수리 쪽으로 경사져 있었다. 머리카락은 굵고 노르스름 했으며, 가마 두 개에서부터 삼각형 또는 쐐기 모양으로 이마까지 내려오는 이상한 모양으로 나 있었다.'(p.67) 해리엇은 직감으로 알아 차린다. 이 아기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이렇게까지 말한다. '이 아이는 도깨비나 거인 괴물 같아요'라고. 불행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후 이야기는 한 가정을 파괴하는 '벤'의 행각이다. 집안분위기를 어둡게 하고, 가족들을 두려움에 떨게하며, 애완동물까지 죽이는 벤. 보다 못한 해리엇과 데이비드는 아이를 요양소로 보낸다.(p.103) 벤이 사라지자, 집안은 일시적으로 평온을 되찾는다. 하지만, 해리엇은 놀라운 모성애를 발휘한다. 이 부분은 아기에 대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애정을 비교해 볼 수 있었다. 역시 자기 배로 낳은 어머니의 모성애는 대단했다. 데이비드가 아무 미련없이 골치덩이를 보내버린데 반해, 해리엇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고 공포에 떨면서도 말이다.

하지만, 해리엇이 나중에 이 선택을 후회한다는 것을 고려한다면-관점을 약간 달리한다면- 데이비드의 선택을 현실적이고 이성적이라고도 할 수도 있을 듯하다. 

읽기전엔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 했지만, 그렇지 않다. 흥미진진하고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소설 전체의 호러적 분위기는 정말 의외였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도리스 레싱의 작품하면, 왠지 어렵고 딱딱할 거 같은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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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2008-01-03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밌지요?^^흐흐...
저는 관습에 얽매인 편견에 대한 우회적인 이야기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서 참 씁쓸했던 책이었어요.
집에서는 그렇게 악마같은 취급(?)을 받던 벤도, 밖으로 나가니까 어떤 부류의 사람들한테는 나름대로의 칭송을 받는 존재가 되지 않나요.
오멘 읽는것같다가도, 마지막에 씁쓸한 기분이 들던 저에게도 아주 인상적인 책이었어요..^^

쥬베이 2008-01-03 08:39   좋아요 0 | URL
아 시즈님^^
시즈님 아니면 제 서재는 찾는 사람도 없어요ㅋㅋㅋ 고맙습니다^^
한번 벤을 악마의 화신으로 보고 나니까, 자꾸 공포물이 떠오르는거에요ㅋ
시즈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Apple 2008-01-03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쥬베이님도 복 많이 받으세요~~~~^^
저도 인기없는 서재이긴 마찬가지..^^;;푸핫...;;;

쥬베이 2008-01-03 17:38   좋아요 0 | URL
^^ 인기없는 서재지기끼리 뭉치는 건가요?^^

lazydevil 2008-02-02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혼란스러운 공포를 느끼게 하는 작품 정말 드물죠. 출간 당시 서점에서 빈둥거리다가 책 날개에 실린 사진 속 작가의 인상이 너무 좋아서 덜컥 사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충동구매 덕분에 운좋게 대작가들을 만난 경우죠.

쥬베이 2008-02-02 21:07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도리스 레싱 작품은 처음이었는데, 괜찮았어요^^
 
소신에 목숨을 건 조선의 아웃사이더
노대환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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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소신대로 살다간 12명의 인물이야기다. 그들의 '소신'이 진정한 소신인지, 한낱 '아집'에 지나지 않는지 의문도 들었지만, 알지 못하던 다양한 인물들을 알게 된 것은 흥미로웠다. 문제제기 형식으로 당시 사회상, 인물상, 문제되는 것을 언급하는 초반부, 해당인물과 관련되는 내용을 추가적으로 논하는 끝부분 '더 읽어보기'는 인상적이다.

[이옥] 이옥은 정조의 문체반정때문에 젊음을 허비해 버린 인물이다. 정조는 당시 문체가 크게 타락해 있다고 보고, 중국의 패관소품이 유입되는 것을 철저히 막았으며 타락한 문체를 사용한 선비들에게 자송문(반성문)을 쓰게 했다. 그런데 정조는 "엊그제 유생 이옥의 응제 글귀들은 순전히 소설체를 사용하고 있었으니 선비들의 습성에 매우 놀랐다."(p.22)라며 이옥을 직접거명한다.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다.

이옥은 문체때문에 과거응시를 제한당하기도 하고, 군대에 끌려가기도 하고, 합격했음에도 꼴찌로 밀려나기도 한다. 30대 창창한 시절을 문체때문에 날려버린 것이다. 그는 왜 문체를 바꾸지 않았을까? '타락한 문체'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겨서? 정조의 문체반정에 반발해서? 아닌 것 같다. 제목에는 '주상, 당신이 틀렸소'라느니, '정조의 문체반정에 반기를 들었다'라느니 나오지만, 그의 행동을 보면 저런 적극적인 의지를 찾을 수 없다. 그가 만약 적극적으로 반발했다면, 더이상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학문에 매진하는 모습이 합당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옥은 하나의 '희생양내지 본보기로 철저하게 당한 거'라고. 정조가 문체를 망치는 선비로 그를 주목한 순간, 그의 운명은 이미 결정된 것이라고. 내가 생각하기엔 임금의 지적을 받고 나름대로 충분히 문체를 바꾸어 모범적인 글을 지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정조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 그는 문체를 망치는 '대표적' 유생이므로. 다른이 였더라도 그랬을까?

[심노숭] 심노숭은 성격이 괄괄하고 정치현실에 비판적이어서 권력자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정적들의 공격이 집중되었고 삭직되거나 유배에 처해지는 등 파란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p.47) 이런 심노숭이 '소신을 가진 아웃사이더'로 언급되는 것은 죽은 아내에 대한 애절한 사랑때문이다. 그는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는 글을 수십 편 남겼다는데, 이는 당대에 보기 드문 일이라 한다.

심노숭이 아내를 저리도 그리워한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의 아내는 그야말로 '현모양처'였던 것이다. '조리있게 말도 잘하고 겸손한데다, 다른 이의 영달을 보고도 시기하거나 부러워하는 뜻이 없었다(p.52)고 한다. 이런 일화가 있다고 한다. 하도 가난해 젖이 나오지 않자 아이를 따뜻하게 해주고 밝게 웃으며 "훗날 이런 일을 추억으로 함께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라며 오히려 심노숭을 위로했다고 한다. 그러니, 심노숭이 아내를 그리워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문건] 손자의 육아일기인 '양아록'을 남긴 이문건 이야기가 소개된다. 하지만 육아일기를 남겼다고 '소신의 아웃사이더'로 볼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또한 소개된 인물중 김만중, 윤휴, 김치진등은 좀 더 엄밀한 평가가 필요할 듯 하다. 특히 김치진의 경우, 그가 '척사론'을 지어 천주교를 연구하고 비판한 것은 분명하나, 밀무역 단속과정에 체포된 그가 주장하는 내용('중국인들에게 척사론을 전달하여 서양 오랑캐를 섬멸하려 했다' p.281)은 의구심이 든다. 하나의 변명에 불과하지 않을까?

다시 이문건 이야기로 돌아오자. 이문건의 자녀(그리고 손자) 양육과정은 충격적이다.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한 부분을 보자. '아침에 온이 시를 해석하지 못한 데 화가 치밀어 긴 나무로 대려 나무가 부러졌다.' '아침 일찍 온이(이문건의 아들)의 빰을 발로 밟았다. 또 머리카락도 한 움큼 뽑아버렸다. 몹시 화가 났는데 묻는 말에 즉시 대답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p.102) 대단하다. 저자는 제목을 '구타일기'로 바꿔야 할거 같다(p.103)며 농담섞인 평을 하기까지 한다.

아무튼 저런 아들은 일찍 죽는데, 다행이 후사를 남겨 놓았다. 이문건은 손자의 이름을 숙길, 준숙, 수봉등으로 개명하며 신경쓰고 유모까지 가려 뽑는등 온갖 정성을 다한다. '양아록'은 이런 연장선상에서 쓰여진 것이리라. 하지만, 수봉은 할아버지의 정성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혀 학문에 뜻을 보이지 않고, 이문건은 '노옹조노탄'(p.114)이란 탄식과 함께 더이상 양아록에 기록하지 않고 끝낸다. 아마 손주교육을 포기하려는 자포자기의 심경이었으리라.

<조선의 아웃사이더>는 지금까지 크게 주목받지 못한 소수자를 다루고 있다. 역사가 승리자에 의한, 그들의 역사임을 고려한다면 이 하나만으로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평생을 바쳐 지키고자 했던 가치, 소신. 많은 생각을 했다. 물론 아직 더 연구가 필요한 부분도 있고, 소신이라기 보다 아집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시각차일 것이다. 오랜만에 인상적인 역사서를 읽었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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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주다
와타야 리사 지음, 양윤옥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7년 10월
절판


유코는 마치 무지개에서 이 세상에 뚝 떨어진 것처럼, 거의 비현실적일 만큼 예쁘고 완벽한 아기였다. 투명하게 흰 살결에 목이며 다리며 두 개의 팔이 모두 소시지처럼 톡 터질 듯 통통하고, 큼직한 눈에 동그스름한 얼굴은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이미 미소를 기억해서 침에 젖은 앙증맞은 입 사이로 늘 핑크빛 혀가 내보였다.-25쪽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유코는 다리가 굳어버렸다. 이토록 분노한 표정의 어머니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다. 새빨간 얼굴은 분노로 부풀었고, 눈썹과 눈이 지나치게 치켜 올라간 탓에 검은 눈동자의 초점이 맞지 않는 것도 아닌데 사팔뜨기처럼 허공을 노려보고 있었다. 목에서 턱 안쪽이 맞붙어버릴 만큼 한껏 치켜 올린 턱에는 몇 개나 되는 주름이 부드러워 보이는 층을 만들고 얼굴 윤곽이 짓눌려서 마치 두꺼비 같았다.-101쪽

"아까 그 얘기인데, 이를테면 앞으로 농사일을 할 사람이 '나는 사람들에게 쌀을 주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해요?"
"글쎄, 그런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렇죠? 맞아, '준다'라는 말이 결정적으로 이상한 거야. 쌀은 안 되는데 꿈이라는 건 당당하게 '준다'라는 식의 오만한 말투가 허락되다니, 뭔가 이상하잖아요? 애초에 이런 때의 '꿈'이란 게 무엇인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지금까지 어지간히도 많이 떠들어왔지만."-180쪽

유코는 자신도 그렇지만 인간이란 정말로 자신이 잘못했을 경우에는 결코 사과하지 않는 동물이란 것을 알았다. 사소한 일에도 미안하다는 한마디를 빠드리지 않던 점잖은 사람도 너무나 큰 실수로 책임이 온통 자신에게 쏠릴 듯한때는 모른 척 시치미를 떼곤 했다.-199쪽

어떻게든 이 세계에서 살아남으려고 필사적인 연예인들은 독특한 아우라를 뿜어내기 때문에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 환하게 웃는 얼굴에 '내일 당장 내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언뜻언뜻 내비치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인기를 얻고 잔뜩 흥분해서 주위 사람들이 도통 보이지 않는 사람도 금세 알아보았다. 일단 그런 종류의 열이 뻗치면 어느 누구도 나서서 말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탤런트와 아이돌 스타란 저마다 각양각색이기는 하지만 본인의 나르시시즘에 주위 사람들의 부추김까지 더해져서 잔뜩 왜곡된 내면이 겉으로 뚜렷하게 드러나곤 했다. 그런 이들의 주위에는 찬란한 조명의 거짓 거울이 빙 둘러처져 있어 그 세계에서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었다. -217쪽

배반했다. 나는 자연스러운 내 인생을 살았는데, 그것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배반한 것이다. 어머니의 말에 유코는 오랜 세월 찾아내지 못했던 진실을 이제야 발견한 듯한 마음이 들었다. '꿈을 준다'는 것의 꿈은 언제까지고 '타인의 꿈'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꿈을 주는 쪽에서는 꿈을 꾸어서는 안 된다. 사랑을 하고 꿈을 꾼 나는 처음으로 내 인생을 탐식했고 그것으로 텔레비전 너머의 사람들과 12년 동안 이어왔던 신뢰의 손을 놓아버렸다. 일단 떨어진 그 손은 이제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3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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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의 자서전
아멜리 노통브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5월
구판절판


배고픔, 나는 이것을 존재 전체의 끔찍한 결핍, 옥죄는 공허함이라 생각한다. 유토피아적 충만함에 대한 갈망이라기보다는 그저 단순한 현실, 아무 것도 없는데 뭔가 있었으면 하고 간절히 소망하는, 그런 현실에 대한 갈망이라고 말이다.-20쪽

까탈스러움, 그래, 바로 이거야. 양과 질을 대립시키는 고루한 방식은 참으로 어리석을 때가 많다. 초월적으로 배고픈 사람의 식욕은 더 왕성할 뿐 아니라 더 까탈스럽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의 가치 체계가 여기에도 통한다. 위대한 연인들은 알고, 편집증적인 예술가들도 알 것이다. 절정에 이른 섬세함의 이면에는 넘치는 풍요로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25쪽

교수들이 입에 달고 다니던 <이 작가의 문체를 분석하시오>라는 식의 이야기를, 나는 물론 기억하고 있다. <이 시는 아주 잘 쓴 시다, 이 모음의 경우 시 전체에서 네 번 나오거든>등등의 이야기들 말이다. 이런 식의 해부는 마치 사랑에 빠진 남자가 제3자에게 애인의 매력을 조목조목 따져 설명하는 것만큼이나 지겨운 일이다. 문학적 아름다움이 존재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문학적 아름다움을 경험한 일을 남에게 전달한다는 것이, 마치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에게 자기 애인의 매력을 전달하는 것만큼이나 힘들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혼자 저절로 그 아름다움에 도취하지 않고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러한 경험이다.-1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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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의 걸즈 라이프
요시카와 도리코 지음, 현정수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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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의 걸스라이프>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젊은 여성들의 좌충우돌 동거기다. 가치관도, 성격도, 생김새도 전혀 다른 4명의 여성, 그들이 펼쳐내는 포복절도 에피소드. 마냥 즐겁고 유쾌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요시자와 도리코는 마지막에 감동을 남겨두었다. <굿모에비앙>에서 가족의 가치, 사랑을 이야기했던 저자가 이 작품에선 갈등하던 이들이 진정한 우정을 알아가는 과정을 그려냈다.

줄거리를 보자. 같이 살던 언니가 결혼하고 떠나자 도모코는 도쿄의 넓은 아파트를 혼자 차지하게 된다. 장난처럼 연이어 불청객이 찾아온다. 고등학교 동창생인 기나코, 미후카, 유미. 도모코는 이들에게 휘둘리던 고교시절을 떠올리며, 힘들어 한다. 허나. 이들은 떠날 생각이 전혀 없다. 결국 도모코 : 기나코, 미후카, 유미의 1+3 동거체계는 반강제적으로 성립된다^^

이어지는 챕터에는 기나코, 미후카, 유미가 '왜 도모코에게 오게 되었는지'가 각각 이야기된다. 등장인물들 모두 개성 넘치기 때문에,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기나코' 유명모델을 꿈꾸는 모델지망생이다. 항상 들떠 있으며 발랄하다 못해 끼가 넘쳐 흐른다. 걱정도 없고, 조금 나쁘게 말하면 '머리가 비었다'고나 할까. '미후카' 호스티스다. 가녀리고 여성스러운데다, 남성을 홀리는 특유의 교태로 남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가정일을 도맡아 할 정도로 가정적이며, 특히 음식준비와 균형 있는 식단을 중시한다. 의외로 성에는 개방적. '유미' 네명 중 가장 빼어난 미모를 자랑한다. 코스프레 복장을 입는 비쥬얼 밴드 열혈팬.

뚜렷한 캐릭터성을 가진 기나코와 미후카가 사실상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기나코는 특유의 뻔뻔함, 정신없음으로 무장하고 온갖 사건을 일으킨다. 돈도 없이 음식점에서 음식을 시켜먹기도 하고, 모델 스카웃을 제의하는 남자를 따라갔다 이상한 비디오를 찍을 뻔하기도 한다. 못 말리는 기나코. 미후카는 호스티스라는 직업이 이상할 정도로 참하게 부엌일을 하며 조용하게 지낸다. 하지만, 사랑에 빠져, 최대사건이라 할 수 있는 '객체의 착오에 기인한 기나코 습격사건'의 원인을 제공한다.(이에 대해선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겠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넷중 여자친구 상대로 한 명을 꼽으라면 누굴 선택할 것이냐고. 유미는 예쁘지만 사귀면 꽉잡혀 머슴처럼 지내야 할 거 같고, 기나코는 발랄함이 마음에 들지만 도저히 감당이 안 될 듯, 다마코는 너무 평범해서 별로. 역시 미후카다!ㅋㅋ 애교넘치고 가정적이고 거기가 요리솜씨까지. ㅋㅋㅋ

다마코를 중심으로 그녀들의 관계양상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다마코는 처음 갑자기 들이닥친 그녀들에게 분노한다. 원하지 않는 동거는 갈등을 야기하지만, 곧 융합하고 친화된다. 그러다 기나코의 가해자를 복수하는 방법을 놓고 일시적으로 갈등한다. 하지만 결국 이들은 진정한 우정을 느낀다.' 이 정도. (분노-갈등-융합-친화-갈등-친화-우정) 다들 떠난 욕실에 남겨진 그녀들의 샴푸 냄새를 맡으며 다마코는 '그리움'을 느낀다. 다마코의 심경변화가 가장 극적으로 부각되는 부분. 욕실에서 나온 다마코는 '이제 자신의 인생 전부를 걸고 그녀들과 함게할 각오'(p.285)로 똘똘 뭉친다.

<전장의 걸스라이프>는 유쾌하고 즐거운 책이다. 엔돌핀이 마구 솟아난다. <굿모에비앙>이후 후속작을 손꼽아 기다리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역시 요시카와 도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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