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에 목숨을 건 조선의 아웃사이더
노대환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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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은 소신대로 살다간 12명의 인물이야기다. 그들의 '소신'이 진정한 소신인지, 한낱 '아집'에 지나지 않는지 의문도 들었지만, 알지 못하던 다양한 인물들을 알게 된 것은 흥미로웠다. 문제제기 형식으로 당시 사회상, 인물상, 문제되는 것을 언급하는 초반부, 해당인물과 관련되는 내용을 추가적으로 논하는 끝부분 '더 읽어보기'는 인상적이다.

[이옥] 이옥은 정조의 문체반정때문에 젊음을 허비해 버린 인물이다. 정조는 당시 문체가 크게 타락해 있다고 보고, 중국의 패관소품이 유입되는 것을 철저히 막았으며 타락한 문체를 사용한 선비들에게 자송문(반성문)을 쓰게 했다. 그런데 정조는 "엊그제 유생 이옥의 응제 글귀들은 순전히 소설체를 사용하고 있었으니 선비들의 습성에 매우 놀랐다."(p.22)라며 이옥을 직접거명한다.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다.

이옥은 문체때문에 과거응시를 제한당하기도 하고, 군대에 끌려가기도 하고, 합격했음에도 꼴찌로 밀려나기도 한다. 30대 창창한 시절을 문체때문에 날려버린 것이다. 그는 왜 문체를 바꾸지 않았을까? '타락한 문체'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겨서? 정조의 문체반정에 반발해서? 아닌 것 같다. 제목에는 '주상, 당신이 틀렸소'라느니, '정조의 문체반정에 반기를 들었다'라느니 나오지만, 그의 행동을 보면 저런 적극적인 의지를 찾을 수 없다. 그가 만약 적극적으로 반발했다면, 더이상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학문에 매진하는 모습이 합당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옥은 하나의 '희생양내지 본보기로 철저하게 당한 거'라고. 정조가 문체를 망치는 선비로 그를 주목한 순간, 그의 운명은 이미 결정된 것이라고. 내가 생각하기엔 임금의 지적을 받고 나름대로 충분히 문체를 바꾸어 모범적인 글을 지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정조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 그는 문체를 망치는 '대표적' 유생이므로. 다른이 였더라도 그랬을까?

[심노숭] 심노숭은 성격이 괄괄하고 정치현실에 비판적이어서 권력자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정적들의 공격이 집중되었고 삭직되거나 유배에 처해지는 등 파란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p.47) 이런 심노숭이 '소신을 가진 아웃사이더'로 언급되는 것은 죽은 아내에 대한 애절한 사랑때문이다. 그는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는 글을 수십 편 남겼다는데, 이는 당대에 보기 드문 일이라 한다.

심노숭이 아내를 저리도 그리워한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의 아내는 그야말로 '현모양처'였던 것이다. '조리있게 말도 잘하고 겸손한데다, 다른 이의 영달을 보고도 시기하거나 부러워하는 뜻이 없었다(p.52)고 한다. 이런 일화가 있다고 한다. 하도 가난해 젖이 나오지 않자 아이를 따뜻하게 해주고 밝게 웃으며 "훗날 이런 일을 추억으로 함께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라며 오히려 심노숭을 위로했다고 한다. 그러니, 심노숭이 아내를 그리워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문건] 손자의 육아일기인 '양아록'을 남긴 이문건 이야기가 소개된다. 하지만 육아일기를 남겼다고 '소신의 아웃사이더'로 볼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또한 소개된 인물중 김만중, 윤휴, 김치진등은 좀 더 엄밀한 평가가 필요할 듯 하다. 특히 김치진의 경우, 그가 '척사론'을 지어 천주교를 연구하고 비판한 것은 분명하나, 밀무역 단속과정에 체포된 그가 주장하는 내용('중국인들에게 척사론을 전달하여 서양 오랑캐를 섬멸하려 했다' p.281)은 의구심이 든다. 하나의 변명에 불과하지 않을까?

다시 이문건 이야기로 돌아오자. 이문건의 자녀(그리고 손자) 양육과정은 충격적이다.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한 부분을 보자. '아침에 온이 시를 해석하지 못한 데 화가 치밀어 긴 나무로 대려 나무가 부러졌다.' '아침 일찍 온이(이문건의 아들)의 빰을 발로 밟았다. 또 머리카락도 한 움큼 뽑아버렸다. 몹시 화가 났는데 묻는 말에 즉시 대답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p.102) 대단하다. 저자는 제목을 '구타일기'로 바꿔야 할거 같다(p.103)며 농담섞인 평을 하기까지 한다.

아무튼 저런 아들은 일찍 죽는데, 다행이 후사를 남겨 놓았다. 이문건은 손자의 이름을 숙길, 준숙, 수봉등으로 개명하며 신경쓰고 유모까지 가려 뽑는등 온갖 정성을 다한다. '양아록'은 이런 연장선상에서 쓰여진 것이리라. 하지만, 수봉은 할아버지의 정성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혀 학문에 뜻을 보이지 않고, 이문건은 '노옹조노탄'(p.114)이란 탄식과 함께 더이상 양아록에 기록하지 않고 끝낸다. 아마 손주교육을 포기하려는 자포자기의 심경이었으리라.

<조선의 아웃사이더>는 지금까지 크게 주목받지 못한 소수자를 다루고 있다. 역사가 승리자에 의한, 그들의 역사임을 고려한다면 이 하나만으로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평생을 바쳐 지키고자 했던 가치, 소신. 많은 생각을 했다. 물론 아직 더 연구가 필요한 부분도 있고, 소신이라기 보다 아집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시각차일 것이다. 오랜만에 인상적인 역사서를 읽었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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