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코는 마치 무지개에서 이 세상에 뚝 떨어진 것처럼, 거의 비현실적일 만큼 예쁘고 완벽한 아기였다. 투명하게 흰 살결에 목이며 다리며 두 개의 팔이 모두 소시지처럼 톡 터질 듯 통통하고, 큼직한 눈에 동그스름한 얼굴은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이미 미소를 기억해서 침에 젖은 앙증맞은 입 사이로 늘 핑크빛 혀가 내보였다.-25쪽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유코는 다리가 굳어버렸다. 이토록 분노한 표정의 어머니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다. 새빨간 얼굴은 분노로 부풀었고, 눈썹과 눈이 지나치게 치켜 올라간 탓에 검은 눈동자의 초점이 맞지 않는 것도 아닌데 사팔뜨기처럼 허공을 노려보고 있었다. 목에서 턱 안쪽이 맞붙어버릴 만큼 한껏 치켜 올린 턱에는 몇 개나 되는 주름이 부드러워 보이는 층을 만들고 얼굴 윤곽이 짓눌려서 마치 두꺼비 같았다.-101쪽
"아까 그 얘기인데, 이를테면 앞으로 농사일을 할 사람이 '나는 사람들에게 쌀을 주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해요?" "글쎄, 그런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렇죠? 맞아, '준다'라는 말이 결정적으로 이상한 거야. 쌀은 안 되는데 꿈이라는 건 당당하게 '준다'라는 식의 오만한 말투가 허락되다니, 뭔가 이상하잖아요? 애초에 이런 때의 '꿈'이란 게 무엇인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지금까지 어지간히도 많이 떠들어왔지만."-180쪽
유코는 자신도 그렇지만 인간이란 정말로 자신이 잘못했을 경우에는 결코 사과하지 않는 동물이란 것을 알았다. 사소한 일에도 미안하다는 한마디를 빠드리지 않던 점잖은 사람도 너무나 큰 실수로 책임이 온통 자신에게 쏠릴 듯한때는 모른 척 시치미를 떼곤 했다.-199쪽
어떻게든 이 세계에서 살아남으려고 필사적인 연예인들은 독특한 아우라를 뿜어내기 때문에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 환하게 웃는 얼굴에 '내일 당장 내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언뜻언뜻 내비치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인기를 얻고 잔뜩 흥분해서 주위 사람들이 도통 보이지 않는 사람도 금세 알아보았다. 일단 그런 종류의 열이 뻗치면 어느 누구도 나서서 말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탤런트와 아이돌 스타란 저마다 각양각색이기는 하지만 본인의 나르시시즘에 주위 사람들의 부추김까지 더해져서 잔뜩 왜곡된 내면이 겉으로 뚜렷하게 드러나곤 했다. 그런 이들의 주위에는 찬란한 조명의 거짓 거울이 빙 둘러처져 있어 그 세계에서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었다. -217쪽
배반했다. 나는 자연스러운 내 인생을 살았는데, 그것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배반한 것이다. 어머니의 말에 유코는 오랜 세월 찾아내지 못했던 진실을 이제야 발견한 듯한 마음이 들었다. '꿈을 준다'는 것의 꿈은 언제까지고 '타인의 꿈'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꿈을 주는 쪽에서는 꿈을 꾸어서는 안 된다. 사랑을 하고 꿈을 꾼 나는 처음으로 내 인생을 탐식했고 그것으로 텔레비전 너머의 사람들과 12년 동안 이어왔던 신뢰의 손을 놓아버렸다. 일단 떨어진 그 손은 이제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3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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