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을 만드는 여인들
카트린느 벨르 지음, 허지은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책장을 넘기기 전, 그 책에 대한 기대치를 가늠해 보곤한다. <초콜릿을 만드는 여인들>은 기대치와 상당히 어긋났다. 어떤 의미이냐, 기대에 200%이상으로 부응했다는 말이다. 기대 했지만, 이렇게 재미있을 줄은 몰랐다. 이렇게 대단한 작품인 줄은 몰랐다. <초콜릿을 만드는 여인들>은 초콜릿처럼 달콤하고, 향긋한 이야기다. 무척 재밌고, 흥미진진하며 뜨거운 감동까지 있다. 정말 완벽한 작품.

<초콜릿을 만드는 여인들>을 한 문장으로 말한다면, 카카오 콩을 구하려는 '생 줄리앙 뒤 바스트 몽드 수녀원'(이하 생 줄리앙 수녀원), 초콜릿 수녀들의 좌충우돌, 포복절도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읽는 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은 무조건 영화화 되어야 한다', '국내에서 영화화되면 좋을텐데…'라는 생각. 그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이토록 가독성 좋고 재미있는 프랑스 문학은 근래 본 적이 없다.

먼저 한 여인에 대해 말을 해야겠다. '마리아 막달레나 드 킵다'. 1871년, 프랑스를 여행중이던 콜롬비아 아가씨는 '생 줄리앙 수녀원'에서 여생을 보내기로 결정한다. 가족들은 너무 가슴 아파한 나머지 타협안을 생각해 낸다. 수확한 콩의 일정량을 수녀원에 대주는 대신, 일년에 한번은 수녀원을 떠나 집을 방문해야 한다는 것. 여기에 '마리아 막달레나 드 킵다'가 알고 있던 초콜릿 비법이 더해져, 생 줄리앙 수녀원의 초콜릿은 수녀원을 지탱해주는 수입원이자 명물이 된다.

그러나, '생 줄리앙 수녀원'의 영광은 사라지고 이젠 건물 수리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다. 교구청에서는 '생 줄리앙 수녀원'을 팔아버리려는 계획까지 세운다. 수녀원의 유일한 희망은 초콜릿, 오직 초콜릿이다. 다행스럽게 황금카카오 상을 수상해 한줄기 희망의 끈을 이어간 수녀원은 이를 기회로 초콜릿을 만들려 하지만 초콜릿 원료인 카카오 콩이 바닥난 상태. 수녀원은 마리아가家와의 계약조건-적어도 십년의 한번씩 카카오 콩 경매장을 찾아가야 한다(p.39)-을 떠올리며 두명의 수녀를 파견하기로 하는데…

그 두명은, 도도한 카리스마 '안느 수녀', 수녀원 최연소인 '수련 수녀 자스민'이다. 원래는 기예메트 수녀가 안느 수녀와 가기로 했지만, 불의의 사고로 최연소 자스민이 대타가 된 것. 이들은 과연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해 낼 수 있을까? 계약조건을 지키고 질좋은 카카오 콩을 가져 올 수 있을까?

이후 이야기는 이들 수녀가 콜롬비아 마리아家 농장을 찾아가는 좌충우돌 여정이다. 오랜시간 수녀원 안에서만 살아가던 이들에게 바깥세상은 카오스, 그 자체다. 특히 안느 수녀는 핸드폰, 핸드프리조차 모르고, 비행기 공포증에 힘겨워 한다. 명문가 출신으로 도도한 안느 수녀의 또다른 모습. 수녀들의 고난은 시작일 뿐이다. 길 안내자로 소개받은 '이그나시오 라 파즈'는 이미 사망했고(p.146), 옷가지를 도둑맞고(p.170), 구더기로 만든 음식을 먹는다. 또한 건너야 하는 강에는 끔찍한 피라니아떼가 우글거리고(p.176), 악어가 돌아다닌다.(p.192) 하지만 수녀들에게 가장 큰 위협은 거대 초콜릿 회사 MMG와 이들의 청부를 받은 청부업자들이다. 

이들은 '성 줄리앙 수녀원' 초콜릿의 비밀을 훔쳐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황금 카카오 대회를 위해 파견된 클로틸드 수녀를 습격하고, 수녀원에 잡입해 비밀을 훔쳐내고, 안느와 자스민을 방해한다. 하지만, 청부업자 중 한명인 제레미는 영화 '나홀로 집에'의 어리숙한 도둑처럼 고문서대신 행주를 훔치는 등 바보같은 행동을 한다. 과연 안느 수녀와 자스민 수련수녀는 카카오 콩을 찾아, 위기에 빠진 수녀원을 구할 수 있을까? 수많은 위험을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읽어 보시길.

<초콜릿을 만드는 여인들>, 대단히 흥미진진한 작품이다. 이런 작품을 '흥미진진'이라고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표현력이 아쉽기만 하다. 일단 읽어보시길, 정말 재미있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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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시커 1 - 별을 쫓는 아이
팀 보울러 지음, 김은경 옮김 / 놀(다산북스)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리버보이>의 폭발적인 반응에 '도대체 팀 보울러가 누구야?', '도대체 무엇이 그토록 사람들을 열광케 한걸까?'라고 생각했었다. 이 의문은 <스타시커>를 통해 풀 수 있었다. 청소년문학 작가다운 섬세한 묘사, 감동적인 성장기, 아름답고 흥미진진한 이야기까지, 역시 이유없는 열광은 없는 것이다. <스타시커> 앞부분에 실린, 저자의 한국어판 서문은 친근감과 연대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는 말한다. '다시 한 번 한국을 방문해 제 소설을 읽은 독자들을 만날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쁠 것입니다.'(p.6)라고. 

<스타시커>는 14살 '루크 스탠턴'의 감동적인 성장기다. 성장소설 특유의 분위기를 사랑하는 나로서는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 탁월한 음악적 재능을 가진 루크지만, 지금은 한없이 비뚤어져 있다.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ㆍ로저 질모어의 관계에 대한 불신, 사춘기 소년 루크에겐 힘겹기만 하다. 그는 '반항'을 선택한다. 어머니에게 반발하고, 불량소년 '스킨 패거리'(제이슨 스키너, 대런 피셔, 바비 스피드웰)와 어울리는 것이다.

이야기의 시작 역시 '스킨 패거리'에게 휘둘림 당하는 모습이다. 그들은 리틀 부인이 애지중지하는 상자를 훔치기 위해 계략을 짜고, 루크에게 침입할 것을 강요한다. 그들의 보복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담을 넘는 루크. 하지만, 누가 알았던가, 이것이 한소녀와의 운명적 만남의 시작임을. 혼자사는 것으로 알려진 리틀 부인의 저택에서 소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루크는 한 소녀를 보게된다. 이 소녀는 누구일까? 왜 울고 있는걸까? 리틀 부인과는 어떤 관계일까? 이후 이 소녀와 소녀의 울음소리는 루크의 마음을 뒤흔든다.

어머니와 로저 질모어의 관계를 못마땅해 하는 루크의 모습은 굉장히 사실적이고 공감이 갔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에 방황하던 루크에게 어머니의 행동은 '아버지에 대한 배신'으로 비춰질 수 있다. 부모를 의심하던 사춘기시절의 예민함이 제대로 부각되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이야기 곳곳에서 성장기 소년의 심리가 놀랍게 묘사되는데, 이는 팀 보울러의 교사경험등 다양한 경험이 반영된 게 아닐까 싶다.

'스킨 패거리'는 끊임없이 루크를 괴롭힌다. 결국, 루크를 리틀 부인 저택에 다시 침입하게 하는 일당들. 과연 루크는 어떻게 될까? 루크는 리틀 부인에게 딱 걸린다. 부인은 담을 넘는 루크의 모습을 전부 보고 있었던 것이다. 루크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부인, 이상한 이야기를 꺼낸다. '소녀는 눈이 보이지 않으며, 너(루크)가 소녀를 도울 수 있을 것'이라는. 도대체 리틀 부인의 말은 어떤 의미일까? 루크는 어떻게 소녀를 도울 수 있을까? 읽어 보시길.

<스타시커>는 잔잔하고 아름다운 성장기다. 그에게 쏟아진 수많은 찬사의 의미를 가슴 깊게 이해했다. 아이부터, 성인까지 모든 연령층이 감동할 수 있는 멋진 작품, <스타시커>. 꼭 읽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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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마지막 의식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엮음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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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언 맥큐언, 그의 이름은 어깨 넘어로 들어왔지만, 작품은 <첫사랑, 마지막 의식>이 처음이다. 사실, 제목만 듣고 연애소설내지 성장소설인 줄 알았다. 첫사랑의 애틋함과 상처, 성장을 다룬 그런 작품말이다. (이언 맥큐언의 작품세계에 대해 무지했던 나)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강간, 섹스, 살인, 아동추행등 충격적인 소재, 소설 전체를 지배하는 몽환적인 분위기, 페이지를 넘겨가며 내가 느낀 충격을 짐작할 수 있겠는가?

<첫사랑, 마지막 의식>은 8편에 단편이 수록된 단편집이다. 이언 맥큐언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입장이기에 장편보다는 단편집이 부담없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단편은 [입체기하학], [나비]이다.

[입체기하학] 화자는 증조부가 남긴 마흔 다섯권의 일기를 읽어가며 내용을 반추하는 인물이다. 이후 화자의 시각으로 제시되는 증조부와 친구 M의 이야기, 현실의 화자와 그의 부인 메이지 이야기가 뒤섞여 전개된다. 화자와 메이지의 관계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는데, 이들 부부사이가 무너지기 시작한 결정적 사건은 '캡틴 니콜스의 페니스'와 관련 있다. 증조부가 경매를 통해 얻은 특수처리된 '캡틴 니콜스의 페니스'를 메이지가 다툼끝에 깨버린 것.(p.22이하)

전체적으로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이는 스코틀랜드 수학자 데이비드 헌터의 '표면없는 평면'이론에서 절정에 달한다. 세미나에 참석했던 유력학자들은 그를 사기꾼 취급하지만, 데이비드 헌터는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증거로 사람들을 놀래킨다. 다시 현실의 화자, 그는 이 이론을 적용해 보기로 하고 부인과 거짓된 화해를 하는데…

[나비] 가장 인상적이었던 단편이다. 운하에서 시체로 발견된 소녀, 그녀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것은 바로 화자다. 그에게 쏟아지는 의심의 시선들, 하지만 그는 담담하다. 담담하게 무료한 내면을 드러낸다. 소녀와 그와의 관계는 의외로 그의 입을 통해 밝혀진다. "아저씨한테 꽃냄새가 나요."(p.103)라며 말을 거는 소녀, 발랄한 소녀에게 화자는 플라스틱 인형과 아이스크림을 사주고…이전엔 알 수 없던 감정을 느낀다. 나비를 보여준다며 소녀를 점점 으슥한 곳으로 데리고 가는 화자, 사건의 진실을 밝혀진다.

소녀에게 느끼는 화자의 이상한-변태적이라고 해야 할까?-감정이 너무나 담담하게 서술된다. 그렇기에 화자의 비도덕적인 행각보다, 소녀를 대하는 화자의 미묘한 감정변화에 집중하게 된다. 대단히 충격적인 작품.

<첫사랑, 마지막 의식>을 통해 이언 맥큐언의 놀라운 작품세계를 접했다. 충격적인 소재와 흥미진진함, 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처음 이언 맥큐언의 작품을 접하는 독자라면 이 작품부터 읽으시길 권한다. 한편 한편 뛰어난 완성도를 보장한다. '무시무시한 작가다'라는 평, 그에 대한 어떤 수식보다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정말 그는 '무시무시한 작가'다. 꼭 읽어 보시길.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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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2008-03-08 0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랄까..이언맥큐언 소설들은 묘하게 사실적인 부분이 있어서,(어디인지는 확실히 모르겠다는..충격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묘사해서인지...)읽으면서 섬뜩했더랬죠. 이건 아직 안읽어봤는데 부랴부랴 읽어봐야겠네요.+_+허허허

쥬베이 2008-03-08 14:4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섬찟한 내용인데, 아주 담담하게 사실적으로 묘사하더라고요
굉장히 독특했답니다^^

lazydevil 2008-03-08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 일단 찜합니다. 근데 증정용이라는 <밀리언달러 베이비>는 다시 보고 싶지 않은데...

쥬베이 2008-03-08 19:45   좋아요 0 | URL
이언 맥큐언 소설은 처음이었는데, 정말 멋진 작가더군요. 추천합니다^^

lazydevil 2008-04-15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얇은 소설집 끝까지 다 못읽고 중단 상탭니다. 아파요, 너무 아파서 힘겹네요.ㅠㅜ

쥬베이 2008-04-15 11:05   좋아요 0 | URL
음...좀 특이하긴 하죠.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지만, 돌아보면 섬찟한.
lazy devil님 찬찬히 다시 도전해 보세요^^
 
신의 침묵
질베르 시누에 지음, 이원복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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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프랑스작가의 스릴러 몇편을 읽으며 느낀 것이 있다. 그건 이들 작품이, '일반적인 스릴러'(주로 영미권 작품)과는 다른 독특한 분위기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고정관념일 수도 있고, 단순한 언어차이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 뭔가 다르다. 설명하기조차 어렵지만, 이런 '독특함'은 이들 작품의 강렬한 매력이다. <신의 침묵>역시 개성넘치는 인물과 배경, 종교적인 소재까지, 매력적인 분위기를 한껏 발산한다.

<신의 침묵>의 가장 큰 특징은 충격적인 설정이다. 연쇄살인의 피해자가 '천사'고, 피의자는 예수, 마호메트, 모세. '충격적 설정'이란 말이 제대로 들어 맞는다. 상상이나 했는가? 위대한 성인 예수, 마호메트, 모세가 연쇄살인범 혐의를 받는 소설을. 특히 클라리사 그레이 부인이 이들을 직접 심문하는 장면(p.245이하)은 충격적 설정의 정점이자, 소설의 가치를 한차원 높여준 도약대 같은 부분이다.

인기추리소설 작가인 클라리사 그레이 부인이 주인공이다. 그레이 부인이 여탐정처럼 직접 사건해결에 나서는 것은 아니지만, 탁월한 추리력으로 진실을 파헤치기에 여탐정이 주인공인듯한 느낌도 든다. 초반부터 강렬한 장면이 이어진다. 중상을 입은 남성이 문을 두드리고 힘겹게 뭔가를 전해준다. 하지만 저 정체불명의 남성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리고…그레이 부인은 충격에 빠진다. 그레이 부인은 절친한 사이인 글래스고 대학 언어학 교수이자 역사가인 '월리엄 매클린'에게 연락하고 이들은 함께 진실을 탐구해 간다.

등장인물을 살펴보자. 클라이사 그레이 부인과 월리엄 매클린을 외에,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글래스고 대학 종교사 교수 '바실레 바코비아', 린디스판 섬의 '새뮤얼 슐론스키', 애정행각을 벌이는 그레이 부인의 타입피스트 '캐슬린'과 월리엄교수의 손자 '모르카'가 등장한다. 또한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 '스튜어트', 윌리엄의 부인 '재니트'도 있다. 이들은 단서를 추적해가고, 사랑을 하고, 다투기도 하는 개성 넘치는 인물들이다. 점점 사건이 미궁에 빠지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들 중 누군가가 범인이 아닐까?'란 생각. (사실, 모든 추리 스릴러물을 읽으며 항상 하는 생각임.)

연쇄살인사건은 매클린 부인 재니트의 알 수 없는 중병과 연관을 가지며 점점 미궁에 빠진다. 그레이 부인과 친구들은 정체불명의 남성이 힘겹게 건낸 단서를 토대로 조금씩 해답을 찾아가고, 그녀 앞에 '천사 다니엘'이 나타나면서 이야기는 한층 힘을 받는다. 천사가 나타나다니,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연쇄살인사건과의 관련은? 

 

* 강렬한 표지는 인상적

* 한가지 아쉬운게 있다. 그건 바로 뒤쪽에 실려 있는 책소개, 줄거리다. 한마디로 너무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추리소설인데 저렇게 많은 것을 누설해 버리면 곤란하다. 특히 '예수, 마호메트, 모세'가 용의자란 것은 숨겨두면 더 좋았을 것을. (뭐 나도 리뷰에서 이야기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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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당나귀] 서평단 알림
황금당나귀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매직하우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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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솔직하게 말하면, <황금당나귀>가 부담스러웠다. '세계 고전문학의 신화', '죽기전 반드시 읽어야 할 책'등의 현란한 수식어에 완전히 기가 죽었고, 로마시대 작품이라 따분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하지만 저 모든 것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위 수식어는 절대 허황된 과장이 아니다. 혹시나 이 작품을 읽기전 나와 같은 '부담감'에 망설이는 분이 있다면, 앞 10페이지만 읽어 보시길.  내내 감탄하고 읽던 <황금당나귀>, '내 인생 최고의 책'중 하나라고 자신있게 말하겠다.

일단, 구성을 살펴보자. 총 11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은 독립된 단편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완성도가 대단하다. 이 책 소개에 이런 말이 있다. '액자소설의 전형으로 피라케스크소설이라는 문학 장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품'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지만 읽다보니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됐다. 제1장 '마녀 메로에의 이야기'는 아에기니움 출신 식품도매업자 '아리스토 메네스'가 화자인 루키우스에게 들려준 이야기다. 즉, 이야기 밖에 현재의 아리스토 메네스와 화자가 있고, 이야기속에 마녀 메로에, 소크라테스, 과거의 아리스토 메네스가 있는 것. 또한 제5장 '쿠피도와 푸쉬케의 사랑'이야기는 도적떼에게 납치당한 처녀(카리테)를 달래기 위해 노파가 들려준 것(p.136-204)이다. 따라서 쿠피도와 푸쉬케의 사랑이야기는 <황금당나귀>속에 숨어 있는 독립된 작품으로 볼 수도 있다. 이처럼 <황금당나귀>에는 다양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액자소설의 형식으로 숨어 있다. 마치 초호화 만찬을 즐기는 듯한 느낌.

그렇다면 '11개의 장이 따로따로 놀지는 않을까'라는 걱정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황금당나귀>의 놀라운 점 중 하나는 바로 저것이다. 화자 '루키우스'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탄탄하고 이를 중심으로 다양한 이야기가 꼬리를 문다. 이런 탁월한 이야기전개력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황금당나귀>의 핵심사건은 화자 '루키우스'가 당나귀로 변하는 것이다. 진행양상을 살펴보자. 다메아스의 편지를 가지고 '밀로'를 찾아가는 루키우스, 밀로가家는 밀로와 부인 '팜필레', 하녀 '포티스'로 구성되어 있으며 밀로는 대단한 수전노로 이름난 인물이다. 어쨌든 루키우스는 밀로가家에서 머문다. 시장을 거닐다 자기를 받아낸 비라에나를 만나고(p.43이하), 그녀는 팜필레의 마법을 조심하라는 의문의 말을 던지는데…

루키우스는 호기심 넘치고, 초자연적인 것에 관심이 많은 인물이다. 그는 팜필레의 마법이야기를 듣고 두려워하기는 커녕 흥미를 가진다. '루키우스, 지금이 기회야! 이제야 네가 그토록 갈망하던 기회가 왔단 말이야. 오랜 시간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이런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네 욕망을 마음껏 채울 수가 있게 되었어.'(p.47) 그는 밀로와 팜필레의 비밀에 조금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 하녀 포티스와의 사랑을 꿈꾼다. 제2장 '관능적인 포티스와의 사랑'은 바로 둘의 불타는 사랑의 진행양상인 것이다.

기회만 살피던 루키우스, 드디어 향유를 바르고 올뻬미로 변하는 팜필레의 모습을 목격(p.99)한다. 그는 직접 마법을 실험해 보고자 포티스에게 향유를 발라달라고 한다. 약간의 지식이 있는 포티스를 신뢰하고 과감하게 도전한 것. 그러나, 새는 커녕 입술이 늘어지고 털이 가득한 당나귀로 변해버리고 만다.(p.102참조) 탄식하며 자책하는 포티스의 변명을 들어보자. "난 빌어먹을 년이에요! 난 죽어야 돼요! 너무 긴장하고 당황해서 상자를 잘못 꺼내왔나 봐요. 사실 상자 두 개가 아주 똑같이 생겼거든요. (중략) 이 경우에 해독제는 가장 쉽게 구할 수 있거든요. 당신이 장미를 씹으면 당나귀에서 다시 루키우스가 될 거에요"(p.103) 장미꽃, 이젠 저것이 루키우스 아니 루키우스 당나귀의 유일한 희망이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당나귀가 된  루키우스의 험란한 모험기(?)다. 루키우스는 도적떼에게 끌려가 갖은 고초를 당한다. 이 부분에서 <황금당나귀>의 또다른 묘미 '쿠피도와 푸쉬케의 사랑이야기'가 등장한다는 것은 이미 언급했다. (자세한 내용은 직접 읽어보시길) 납치당한 아름다운 처녀 '카리테'의 이야기는 또하나의 독립적인 완성도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뜨거운 사랑과 결말, 과연 카리테의 운명은? 또한 당나귀로 변한 루키우스는 과연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그를 기다리고 있는 험란한 여정은?

<황금당나귀>는 '고전'의 의미를 다시금 느끼게 해준 '세계 고전문학의 신화'다. 고전중 이토록 흥미진진한 작품은 처음이다. 정말 재미있다. '죽기전에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란 문구가 왜이리 가슴이 와닿는지…수천년전 작품이 전해지고 전해져 이런 감동을 준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 경이롭다. <황금당나귀>, 최고의 책이다. 최고의 고전이다. 꼭 읽어 보시길.


* 앞부분에 8페이지에 걸쳐 올컬러로 그림이 수록되어 있다. 환상적인 이야기와 어울리는 멋진 그림이다.

* <황금당나귀>는 그리스ㆍ로마 신화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 따로 언급할까 생각도 했으나, 그리스ㆍ로마 신화에 대해 제대로 아는게 없는지라 포기했다. 이 코멘트로 만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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