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당나귀] 서평단 알림
황금당나귀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매직하우스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솔직하게 말하면, <황금당나귀>가 부담스러웠다. '세계 고전문학의 신화', '죽기전 반드시 읽어야 할 책'등의 현란한 수식어에 완전히 기가 죽었고, 로마시대 작품이라 따분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하지만 저 모든 것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위 수식어는 절대 허황된 과장이 아니다. 혹시나 이 작품을 읽기전 나와 같은 '부담감'에 망설이는 분이 있다면, 앞 10페이지만 읽어 보시길.  내내 감탄하고 읽던 <황금당나귀>, '내 인생 최고의 책'중 하나라고 자신있게 말하겠다.

일단, 구성을 살펴보자. 총 11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은 독립된 단편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완성도가 대단하다. 이 책 소개에 이런 말이 있다. '액자소설의 전형으로 피라케스크소설이라는 문학 장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품'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지만 읽다보니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됐다. 제1장 '마녀 메로에의 이야기'는 아에기니움 출신 식품도매업자 '아리스토 메네스'가 화자인 루키우스에게 들려준 이야기다. 즉, 이야기 밖에 현재의 아리스토 메네스와 화자가 있고, 이야기속에 마녀 메로에, 소크라테스, 과거의 아리스토 메네스가 있는 것. 또한 제5장 '쿠피도와 푸쉬케의 사랑'이야기는 도적떼에게 납치당한 처녀(카리테)를 달래기 위해 노파가 들려준 것(p.136-204)이다. 따라서 쿠피도와 푸쉬케의 사랑이야기는 <황금당나귀>속에 숨어 있는 독립된 작품으로 볼 수도 있다. 이처럼 <황금당나귀>에는 다양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액자소설의 형식으로 숨어 있다. 마치 초호화 만찬을 즐기는 듯한 느낌.

그렇다면 '11개의 장이 따로따로 놀지는 않을까'라는 걱정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황금당나귀>의 놀라운 점 중 하나는 바로 저것이다. 화자 '루키우스'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탄탄하고 이를 중심으로 다양한 이야기가 꼬리를 문다. 이런 탁월한 이야기전개력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황금당나귀>의 핵심사건은 화자 '루키우스'가 당나귀로 변하는 것이다. 진행양상을 살펴보자. 다메아스의 편지를 가지고 '밀로'를 찾아가는 루키우스, 밀로가家는 밀로와 부인 '팜필레', 하녀 '포티스'로 구성되어 있으며 밀로는 대단한 수전노로 이름난 인물이다. 어쨌든 루키우스는 밀로가家에서 머문다. 시장을 거닐다 자기를 받아낸 비라에나를 만나고(p.43이하), 그녀는 팜필레의 마법을 조심하라는 의문의 말을 던지는데…

루키우스는 호기심 넘치고, 초자연적인 것에 관심이 많은 인물이다. 그는 팜필레의 마법이야기를 듣고 두려워하기는 커녕 흥미를 가진다. '루키우스, 지금이 기회야! 이제야 네가 그토록 갈망하던 기회가 왔단 말이야. 오랜 시간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이런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네 욕망을 마음껏 채울 수가 있게 되었어.'(p.47) 그는 밀로와 팜필레의 비밀에 조금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 하녀 포티스와의 사랑을 꿈꾼다. 제2장 '관능적인 포티스와의 사랑'은 바로 둘의 불타는 사랑의 진행양상인 것이다.

기회만 살피던 루키우스, 드디어 향유를 바르고 올뻬미로 변하는 팜필레의 모습을 목격(p.99)한다. 그는 직접 마법을 실험해 보고자 포티스에게 향유를 발라달라고 한다. 약간의 지식이 있는 포티스를 신뢰하고 과감하게 도전한 것. 그러나, 새는 커녕 입술이 늘어지고 털이 가득한 당나귀로 변해버리고 만다.(p.102참조) 탄식하며 자책하는 포티스의 변명을 들어보자. "난 빌어먹을 년이에요! 난 죽어야 돼요! 너무 긴장하고 당황해서 상자를 잘못 꺼내왔나 봐요. 사실 상자 두 개가 아주 똑같이 생겼거든요. (중략) 이 경우에 해독제는 가장 쉽게 구할 수 있거든요. 당신이 장미를 씹으면 당나귀에서 다시 루키우스가 될 거에요"(p.103) 장미꽃, 이젠 저것이 루키우스 아니 루키우스 당나귀의 유일한 희망이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당나귀가 된  루키우스의 험란한 모험기(?)다. 루키우스는 도적떼에게 끌려가 갖은 고초를 당한다. 이 부분에서 <황금당나귀>의 또다른 묘미 '쿠피도와 푸쉬케의 사랑이야기'가 등장한다는 것은 이미 언급했다. (자세한 내용은 직접 읽어보시길) 납치당한 아름다운 처녀 '카리테'의 이야기는 또하나의 독립적인 완성도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뜨거운 사랑과 결말, 과연 카리테의 운명은? 또한 당나귀로 변한 루키우스는 과연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그를 기다리고 있는 험란한 여정은?

<황금당나귀>는 '고전'의 의미를 다시금 느끼게 해준 '세계 고전문학의 신화'다. 고전중 이토록 흥미진진한 작품은 처음이다. 정말 재미있다. '죽기전에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란 문구가 왜이리 가슴이 와닿는지…수천년전 작품이 전해지고 전해져 이런 감동을 준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 경이롭다. <황금당나귀>, 최고의 책이다. 최고의 고전이다. 꼭 읽어 보시길.


* 앞부분에 8페이지에 걸쳐 올컬러로 그림이 수록되어 있다. 환상적인 이야기와 어울리는 멋진 그림이다.

* <황금당나귀>는 그리스ㆍ로마 신화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 따로 언급할까 생각도 했으나, 그리스ㆍ로마 신화에 대해 제대로 아는게 없는지라 포기했다. 이 코멘트로 만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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