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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마지막 의식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엮음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언 맥큐언, 그의 이름은 어깨 넘어로 들어왔지만, 작품은 <첫사랑, 마지막 의식>이 처음이다. 사실, 제목만 듣고 연애소설내지 성장소설인 줄 알았다. 첫사랑의 애틋함과 상처, 성장을 다룬 그런 작품말이다. (이언 맥큐언의 작품세계에 대해 무지했던 나)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강간, 섹스, 살인, 아동추행등 충격적인 소재, 소설 전체를 지배하는 몽환적인 분위기, 페이지를 넘겨가며 내가 느낀 충격을 짐작할 수 있겠는가?
<첫사랑, 마지막 의식>은 8편에 단편이 수록된 단편집이다. 이언 맥큐언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입장이기에 장편보다는 단편집이 부담없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단편은 [입체기하학], [나비]이다.
[입체기하학] 화자는 증조부가 남긴 마흔 다섯권의 일기를 읽어가며 내용을 반추하는 인물이다. 이후 화자의 시각으로 제시되는 증조부와 친구 M의 이야기, 현실의 화자와 그의 부인 메이지 이야기가 뒤섞여 전개된다. 화자와 메이지의 관계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는데, 이들 부부사이가 무너지기 시작한 결정적 사건은 '캡틴 니콜스의 페니스'와 관련 있다. 증조부가 경매를 통해 얻은 특수처리된 '캡틴 니콜스의 페니스'를 메이지가 다툼끝에 깨버린 것.(p.22이하)
전체적으로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이는 스코틀랜드 수학자 데이비드 헌터의 '표면없는 평면'이론에서 절정에 달한다. 세미나에 참석했던 유력학자들은 그를 사기꾼 취급하지만, 데이비드 헌터는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증거로 사람들을 놀래킨다. 다시 현실의 화자, 그는 이 이론을 적용해 보기로 하고 부인과 거짓된 화해를 하는데…
[나비] 가장 인상적이었던 단편이다. 운하에서 시체로 발견된 소녀, 그녀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것은 바로 화자다. 그에게 쏟아지는 의심의 시선들, 하지만 그는 담담하다. 담담하게 무료한 내면을 드러낸다. 소녀와 그와의 관계는 의외로 그의 입을 통해 밝혀진다. "아저씨한테 꽃냄새가 나요."(p.103)라며 말을 거는 소녀, 발랄한 소녀에게 화자는 플라스틱 인형과 아이스크림을 사주고…이전엔 알 수 없던 감정을 느낀다. 나비를 보여준다며 소녀를 점점 으슥한 곳으로 데리고 가는 화자, 사건의 진실을 밝혀진다.
소녀에게 느끼는 화자의 이상한-변태적이라고 해야 할까?-감정이 너무나 담담하게 서술된다. 그렇기에 화자의 비도덕적인 행각보다, 소녀를 대하는 화자의 미묘한 감정변화에 집중하게 된다. 대단히 충격적인 작품.
<첫사랑, 마지막 의식>을 통해 이언 맥큐언의 놀라운 작품세계를 접했다. 충격적인 소재와 흥미진진함, 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처음 이언 맥큐언의 작품을 접하는 독자라면 이 작품부터 읽으시길 권한다. 한편 한편 뛰어난 완성도를 보장한다. '무시무시한 작가다'라는 평, 그에 대한 어떤 수식보다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정말 그는 '무시무시한 작가'다. 꼭 읽어 보시길. 강력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