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모션
사토 다카코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수채화풍 표지, 깔끔한 양장, <슬로모션>은 예쁘고 사랑스런 책이다. 혹시 더럽혀질까 읽는내내 소중하고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겼다.

사토 다카코하면 떠오르는 작품은 제4회 서점대상 수상작인 <한순간 바람이 되어라>다. 젊음의 열정과 도전, 우정을 상쾌하게 그려냈던 <한순간 바람이 되어라>…두 작품은 고교생이 비중있게 등장한다는 점, 전반적인 주제의식이 유사하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뭔가 다르다. <슬로모션>은 등장인물의 미묘한 내면심리를 극적으로 그려낸다. 고교생 '치사'가 바라보는 오빠와 가족, 학급내 역학관계와 친구 오이카와. <한순간 바람이 되어라>의 엔터테인먼트성(이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을 덜어내고 작가의 내면과 좀 더 가까운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왜 <슬로모션>이 사토 다카코의 초기 대표작으로 불리는지 이해된다.

화자는 고교 1학년 '가키모토 치사'다. 사춘기소녀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기에 '치사'의 미묘한 내면(그리고 치사가 바라보는 다른 인물들의 내면까지)을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다. 치사를 화자로 내세운 구성은 효과적. 치사에겐 사고만 치는 골칫덩이 오빠가 있다. 22살의 가키모토 잇페이. 그는 오토바이를 타다 사고를 당하고 재활을 게을리해 약간 다리를 전다. 치사와 잇페이는 배다른 남매다. (잇페이는 전처의 소생이고, 치사는 새엄마의 소생.) 그럼에도 잇페이는 피가 섞인 아버지와 견원지간이고 피가 섞이지 않은 새엄마와는 잘 지낸다. 미묘한 가족관계.

요시카와 도리코의 <굿모에비앙>과 비교해보고 싶다. 분명 두 작품은 '다른 느낌'이지만, 비교해 볼만한 요소가 충분하다. 먼저, 두 소설은 시점이 유사하다. <굿모에비앙>은 15세소녀 하쓰키의 시점이다. 하쓰키는 날라리 엄마 아키, 날건달 야구의 틈바구니에서 톡톡 쏘는 매력을 발산한다. <슬로모션>의 치사 역시 15세소녀인데다 톡톡 쏘는(^^) 매력을 갖고 있다. (특히 오빠 잇페이를 상대하는 부분) 하쓰키와 치사를 살짝 다른 작품속으로 보낸다 할지라도 큰 문제는 없을 정도다. 또한 미묘한 가족관계도 유사하다. <굿모에비앙>은 싱글맘 아키와 아키의 애인(?)인 야구, <슬로모션>은 새엄마와 배다른 남매.

제목인 '슬로모션'으로 행동하는 소녀를 이야기할 차례다. 치사와 같은 반이고 같은 수영부인 '오이카와 슈코'. 오이카와는 뭐든 느릿느릿 행동한다. 치사의 말을 들어보자. "오이카와는 같은 반 아이다. VIP급 별종. (중략) 마치 머리가 모자란 것처럼 말이 없고 동작도 굼뜨다. (중략) 결정판은 수영이다. (중략) 오로지 평영만 하는데, 그것도 개구리는 둘째 치고 거북이한테도 질 것 같은 속도다. 느리다!"(p.24,25) 오이카와를 바라보는 치사의 시선을 기억해 두자. 벌레보는 듯한 치사의 시선은 점점 변화한다. 주목할 부분.

'오이카와'와 치사의 오빠 '잇페이'는 운명적으로 만난다. 아니다. 다소 황당하게 만나다. 사진찍는게 취미인 잇페이는 치사의 학교로 찾아와 여고생들을 찍는다. 원래 목적은 치사의 친구인 레이코를 찍는 것이었지만, 사고뭉치답게 여기저기 돌아친다. 그러다 한 소녀를 피사체 삼아 사진을 찍어댄다. 그 소녀는 바로 오이카와. "뭐…죠? 왜 찍는 거죠? 뭡니까?" 천천히 그러나 당당하게 말하는 오이카와. "아무것도 아냐. 그냥 취미야. 안 돼?" 이 녀석 역시 능글맞다.  "찍지 마세요"(p.58) 누가 알았던가? 이게 사랑의 시작임을.

오이카와를 둘러싼 소문, 뭐든 느린 슬로모션. 아이들은 오이카와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날라리 레이코를 중심으로 오이카와를 괴롭히고, 치사는 고민한다. 이런 괴롭힘내지 학창시절 친구관계와 관련된 부분은 상당히 생생하고 공감이 갔다. (치사의 내면갈등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와타야 리사의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을 읽은 분이라면 연관해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한편,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잇페이는 집을 나가고 오이카와와 동거를 시작한다. 이어지는 이들의 사랑. 사고로 한쪽 다리를 저는 잇페이와 뭐든 느릿느릿한 오이카와, 굉장히 잘 어울리는 한쌍이다. 이들이 발을 맞추어 계단을 올라가는 장면은 둘의 사랑을 극적으로 보여준다.(p.144참조)

그럼 왜 오이카와는 슬로모션일까? 왜 뭐든 느릿느릿할까? 오이카와가 직접 말하는 이유를 듣고 공감했다. 나야말로 슬로모션이 필요한 인간이기에. "아빠 사건(아빠가 도박을 하다 사람을 찌른 사건을 말함)이 일어났을 때, 나도 언젠가 사람 하나쯤은 죽일지 모른다고 생각했어. 욱할 때, 옆에 칼이나 쇠파이프 같은 거라도 있으면, 위험하다고 생각했어. 진짜 그렇게 생각했어." "그래서, 그래서, 절대로 화를 내지 않기로 했어. 모든 걸 다 천천히 하기로 했어. 걷는 것도, 말하는 것도, 테크노 로봇처럼 되면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어."(p.126) 그랬구나. 오이카와의 슬로모션엔 저런 아픔과 각오가 숨겨져 있던 것이다.

오이카와와 잇페이의 사랑, 오이카와와 치사의 우정, 어떤 결말을 맞을지? <슬로모션>, 분량은 얼마되지 않지만 품고 있는 감동과 재미는 대단하다. <한순간 바람이 되어라>와 필적하는 가치를 가진 작품이라 생각한다. 거기다 보석같은 표지와 장정까지…소중한 이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은 책, 바로 <슬로모션>이다. 꼭 읽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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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zydevil 2008-04-14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쥬베이님 뭡니까! 치사를 만나보고 싶어집니다!!...ㅠㅜ

쥬베이 2008-04-15 11:01   좋아요 0 | URL
헉스 댓글을 이제 봤어요ㅋㅋㅋ
lazy devil님도 재미있게 읽으실거 같은 작품이에요^^
 
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나가미네'였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딸을 성폭행한 인간쓰레기가 눈 앞에 있다면 어떻게 했을까? 아마 나가미네처럼 했을 것이다. 이성? 법? 자기 딸을 무참하게 강간하고 죽여버린 쓰레기 앞에서 저런건 무의미하다. 칼로 찌르고 시체를 난도질하는 나가미네의 행동에 난 박수를 보냈다. 좀 더 잔인하게 죽이지 못한걸 아쉬워하는 나가미네의 마음에 공감했다. 인간 쓰레기 강간마에게 살해당한 딸, 아버지의 분노, 과연 무엇이 정의고 무엇이 불의란 말인가?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귀여운 여고생 에마. 친구들과 불꽃놀이를 구경하러 갔다 돌아오는 길에 강간마 아쓰야, 가이지, 마코토에게 강간 살해당한다. 아버지 나가미네는 삶의 전부인 에마가 늦도록 들어오지 않자 경찰에 신고한다. 소중한 딸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안타까운 마음.

수사는 진행된다. 강간마들이 사용한 차량이 단서로 부각되고 차를 운전했던 마코토는 갈등한다. (차 역시 마코토 아버지의 차) 사실, 마코토는 아쓰야, 가이지가 무서워 납치행각에 발을 걸쳤을 뿐이었다. 당시에도 때마침 걸려온 아버지의 전화덕분에 강간, 살해전 패거리에서 벗어났었다. 고민끝에 마코토는 진실을 털어놓기로 결심하고, 강간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데…. (이 부분은 이야기끝부분 '가벼운 반전'과 관련 있다.)

정체불명의 정보제공자에게 딸을 죽인 범인이 아쓰야와 가이지임을 알게 된 나가미네. 장난전화가 아닐까, 어떻게 자기 전화번호를 알았을까, 의심도 하지만 같이 제공된 아쓰야의 주소로 찾아가 보기로 한다. 아쓰야의 아파트에 간 나가미네는 보고만다. 강간마들이 찍은 추악한 비디오를. 영상엔 마약에 취해 강간당하는 에마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나가미네의 심정이 이해되는가? 딸을 노리개 삼고 죽여버린 이들의 모습을 본 아버지의 심정, 성노리개가 된 딸의 나체를 본 아버지의 심정,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중요한 사건이 벌어진다. 분노하던 나가미네 앞에 아쓰야가 모습을 나타낸 것. 나가미네는 망설임없이 강간마를 살해한다. 시체를 난자하고 성기를 도려낸다. 그는 생각한다. '살아 있을 때 이렇게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남자가 성기가 잃어버리는 것은 죽기보다 괴로운 일이다. 녀석은 지금까지 그것을 이용해 많은 여자를 유린하며 성욕을 채우는 데서 삶의 즐거움을 느꼈으리라. 왜 숨이 끊어지기 전에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p.105) 이로서 강간마에 대한 아버지의 복수극은 막을 올렸다. 나가미네는 죽기직전 아쓰야에게 얻어낸 '팬션, 나가노, 도망쳤어'라는 단서를 토대로 남은 강간마 가이지를 추격한다.

딸을 강간살해한 강간마들에 대한 아버지의 복수극은 여론을 들끓게 하고, 피해자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는 '소년법의 문제점'이 부각된다. 나가미네는 말한다. "오히려 법은 범죄자를 구해준다. 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갱생할 기회를 주고, 증오하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범죄자를 숨겨준다. 그것을 형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더구나 그 기간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짧다. 한 사람의 인생을 빼앗았음에도 불구하고 범죄자는 인생을 빼앗기지 않는다. 더구나 미성년자의 경우, 어쩌면 교도소에도 가지 않을지 모른다."라고. 미성년자들의 범죄가 급격히 늘고 있는 우리도 깊게 생각해야 할 문제다. 형사 미성년자란 이유로 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 피해자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가이지를 쫒는 나가미네, 가이지와 나가미네를 쫒는 경찰, 나가미네는 수사일선에 장문의 편지를 보낸다. 소년법의 한계때문에 가이지를 직접 처단할 것이며, 복수를 완성하는 즉시 자수하겠다는 내용의 편지.(p.172이하) (솔직히 편지를 읽으며 눈시울이 붉거졌다.) 나가미네는 가이지를 쫒는 과정에서 '팬션 크레센토'의 와카코에게 큰 도움을 받는다. 나가미네에게 마음을 열고 돕는 와카코의 내면을 살피는 것도 또하나의 묘미다. 과연 나카미네는 가이지를 찾을 수 있을까? 딸 에마의 복수를 할 수 있을까? 읽어 보시길.

<방황하는 칼날>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또하나의 명작'이다. '무엇을 써도 명작을 만들어 내는 작가'란 수식은 미야베 미유키 것이지만, 왠지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붙여주고 싶다. 그의 작품은 어느 것이나 일정 수준이상의 완성도를 보장한다. 이 작품은 5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분량이지만, 속도감있는 전개와 놀라운 가독성때문에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방황하는 칼날>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탄생시킨, 사회파 추리소설의 걸작이다.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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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 2008-03-27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의 책은 "백야행"과 "용의자 X의 헌신"을 읽었보았습니다. 미미 여사와 또 다른 면은 추리소설이지만 매우 "서정적이다"라는 느낌이었네요. 흔히 사회파 추리소설은 그 성격덕분에 잔혹함과 섬뜩함이 동시에 공존하는 것 같습니다. 인간의 어두운 면을 가감없이 표현한다는 것에 일본 추리소설의 특징인것 같네요. 사견이지만...
"오히려 법은 범죄자를 구해준다..." 라는 부분은 제가 가끔보는 미드인 "성범죄전담반 SVU"라는 수사물에서도 흥미롭게 다뤄지곤 해서 시청하다가도 울컥 할때가 있습니다.^^
죄가 있으면 처벌을 받아야 함에도 오히려 법이 가해자를 구제해 주기도 한다는 모순...

쥬베이 2008-03-27 14:35   좋아요 0 | URL
맞아요. 히가시노 게이고는 약간 서정적이죠
<사명과 영혼의 경계>, <용의자 X의 헌신>, <붉은 손가락>, 그리고 이 작품. 전부 유사한 흐름이에요. 감정을 강하게 뒤흔들죠. 약간 매너리즘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작품완성도는 대단합니다. <백야행>, 대단하죠?? 저도 무척 인상깊게 읽었는데....다른 작품도 읽어보세요^^
 
검은 선 2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대단하다', '흥미진진하다'같은 뻔한 말은 하고 싶지 않다. <검은 선>은 저런 뻔하디 뻔한 말로 수식될 만한 책이 아니다. 매력적인 캐릭터, 생생한 이야기전개, 놀랍도록 치밀한 구성등 대작의 모든 것을 갖추었다. 한번 읽고 말 '그렇고 그런' 스릴러의 차원을 넘어선다. 자신 있게 말하겠다. <검은 선>은 내 평생 읽은 책중 손에 꼽을 만한 대작이다.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초반, '자크 르베르디', '마르크 뒤페라'의 이야기가 번갈아 이어진다. '자크 르베르디'. 한때 무호흡 잠수분야의 스타였지만 지금은 동남아를 전전하고 있다. <검은 선>의 시작은 동남아 대숲 오두막에서 끔찍한 시체와 함께 있다 지역 어부들에게 린치 위협을 당하는 그의 모습이다. 정황증거는 그의 살인행각을 확신케 하지만, 불안정한 정신상태과 범행부인, 기괴한 범행수법등은 여러 의혹을 남긴다. '마르크 뒤페라'. 잘 나가던 기자였지만 애인 '소피'의 죽음을 계기로 파파라치가 된다. '갈퀴손'이란 별명을 얻으며 파트너 벵상과 '최상급' 파파라치 대열에 선 마르크. 마르크가 '열대의 살인마'라 불리는 자크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이들의 접점은 탄생한다. 비극의 시작이라 할까?

잠깐 다른 것을 살펴보자.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죽음으로 내몬 파파라치의 무리한 취재경쟁 이야기(p.33이하)가 나온다. 핫이슈였던 이 사건이 파파라치로 활약하는 마르크, 벵상과 맞물려 전개된다는 점은 자체만으로 인상적이다. (스토리상으로 이 사건은 마르크와 벵상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계기가 된다.) 또한 아르헨티나 기아사건을 조작하는 기자가 등장(p.44이하)하는데, 이런 일련의 서술은 언론계에 대한 저자의 냉소와 비판의식을 표출한다. 실제 언론계에 몸담았던 저자이기에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자크, 마르크외에 모델 지망생 '하디자'가 등장한다. 어두운 가정사를 당당하게 이겨낸 아름다운 하디자. 한편, 자크에게 접근하려는 마르크는 '엘리자베트'라는 가명으로 자크에게 편지를 보낸다. 자크는 사진을 동봉할 것을 요구하고 마르크는 '하디자'의 사진을 엘리자베트의 사진이라며 보낸다. 이후 이야기는 까나라 교도소에 갇혀있는 '자크의 교도소 생활'-교도소의 악마 '라만 패거리', 교도소내 생활, 자크의 국선변호인 지미 왕팟 이야기등-과 '엘리자베트란 가상인물로 자크에게 접근하는 마르크'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특히 자크와 엘리자베트(마르크)가 주고 받는 편지는 독특한 매력이 넘친다.

자크는 말한다. "엘리자베트, 내가 겪은 일을 이해하고 싶다면, 길은 하나밖에 없어. 문자 그대로 내 인생 행로를 따라가는 게 유일한 방법이야. 동남아시아 어떤 곳, 북회귀선과 적도 사이에 또 하나의 선이 있어. 검은 선. 시체와 공포가 푯말처럼 이어져 있는 선."(p.245) 엘리자베트란 가상인물을 내세워 자크의 내면에 조금씩 접근해 가던 마르크는 자크의 말대로 검은 선을 찾아 동남아로 떠난다. 자크의 메시지를 따라 그의 행적을 쫒으며 동남아를 누비는 마르크, 이 부분은 이국적이고 인상적이다.

자크의 진면목을 알아가며 마르크는 여자를 사칭한 자신의 행각을 걱정하지만, 곧 사형에 처해질 수감자이라며 가볍게 넘어간다. 그는 살인자기가 조사한 내용을 책으로 내기로 한다. 제목은 '검은 피'. '검은 피'의 출간을 준비하는 마르크 뒤페라와 <검은 선>의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그리고 두 작품은 묘하게 비교된다. 주목해야 할 부분. 마르크의 '검은 피'는 호평을 받고 베스트셀러가 되지만,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바로 자크 르베르디가 탈옥한 것이다. 두려움에 떠는 마르크. 열대 살인마의 분노는 어떻게 폭발할 것인가? 마르크에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자크에게 쫒기는 마르크와 하디자의 모습은 그 어떤 공포소설, 영화보다 오싹하다. 또한 자크가 마르크에게 자신의 어린시절과 살인의 진실을 이야기하는 부분(p.292이하)은 지금까지 의문이었던 '모든 것'을 속시원하게 풀어준다. <검은 선>의 완벽한 완성도에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는 부분. 끝부분에 '기절할 뻔한' 반전이 있다. 정말 기절할 뻔 했다.  

<검은 선>, 완벽한 작품이다. 읽는내내 숨이 목 앞까지 차올랐을 정도로 긴박감 넘치고 흥미진진하다. 심해 100미터까지 내려간 무호흡 잠수선수처럼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극한'을 체험한 기분이다.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이런 경악할 만한 작가를 이제껏 몰랐던 자신이 한심하다.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읽어 보시라'는 말도 하지 않겠다. 마음대로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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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2008-03-26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주문했는데 재밌다니 다행입니다!!!+_+乃굿초이스~~음화화화화화화화화화화화화!!!!!!!!!

쥬베이 2008-03-26 23:52   좋아요 0 | URL
ㅋㅋㅋ시즈님^^ 이 책 정말 재밌어요~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작품 찾아보니 많더라고요.
그래서 우선 <돌의 집회> 샀답니다ㅋㅋ 다른것도 다 사고 싶어요
정말 마음에 드는 작가ㅋㅋㅋ

칼리 2008-03-27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다독하시는 분인것 같습니다. 제가 읽고 있는 책은 책갈피가 항상 그자리에 고정되어 페이지가 넘어가기 힘듭니다. 무어 그리 바쁜지... 덕분에 어부지리격으로 쥬베이님 서평보고 이런책도 있고 이런내용이구나...하고 얻어가기만 합니다. 감사할 따름^___^

쥬베이 2008-03-27 14:32   좋아요 0 | URL
ㅋㅋ제가 더 감사합니다^^ 제 서평이 도움이 된다니 영광이에요^^
 
신화의 숲에서 사랑을 만나다 - 신화 속에 감추어진 기이한 사랑의 이야기들
최복현 지음 / 이른아침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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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숲에서 사랑을 만나다>는 그리스, 로마신화를 '사랑'을 주제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그리스, 로마신화에 대한 기본지식이 있다면 좋겠지만, 모른다 하더라도 문제는 없다. 사랑이란 보편적 주제를 다루는데다, 단편소설 같이 에피소드별로 구성되어 있어,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자, 이제 이들이 펼쳐가는 사랑이야기에 몸을 던져보자.

앞부분에 그리스 로마신화와 관련된 그림이 무려 30페이지나 실려 있다. 그것도 컬러로. 상당히 인상적이며, 이 책의 가치를 한차원 높혀줬다. 다 읽고 나서 다시 그림을 살펴보니, 그림의 수록순서는 목차와 일치한다. 본문을 읽다 앞부분 그림을 참조하는 것도 좋을 듯. 목차는 '제우스와 에우로페', '데메테르와 포세이돈'처럼 사랑의 주인공인 신들의 이름이다. 총 19개 챕터인데 중복출현(?)하는 신들이 꽤 된다. 대표적인 것이 난봉꾼 제우스다.

제우스는 페니키아 왕 아게노르의 딸 '에우로페'에게 반한다. 꾀를 낸 제우스는 아름다운 황소로 변신해 에우로페가 자주 찾는 바닷가에 간다. 황금빛 털로 뒤덮인 황소를 본 에우로페는 호기심에 먼저 다가가 황소의 등을 어루만졌다.(p.42참조) 황소 제우스는 에우로페가 등에 올라타자 크레타 섬으로 도망친다. 결국, 크레타 섬에서 사랑을 나누는 제우스와 에우로페. 그러나 제우스가 누구던가, 그리스 로마신 중 최고의 바람둥이 아니던가. 또다른 상대를 찾아 떠나버린 제우스.

제우스가 눈독들인 다음 여인은 니크테우스의 딸 '안티오페'. 제우스는 이번엔 염소의 모습을 한 반인반수의 괴물, 사티로스로 변신해 안티오페를 유혹한다. 정을 통하는 제우스와 안티오페. 제우스는 역시 천하의(천상의?) 난봉꾼이었다. 아버지의 분노를 산 안티오페를 구하기는 커녕, 아내 헤라의 눈치만 보며 그녀를 잊는다. 한편, 안티오페는 에포페우스와 인연을 맺고, 에포페우스는 장인과 싸우는 지경에 이른다. 이어지는 안티오페를 학대하는 디르케이야기, 복수하는 안티오페의 아들 암피온, 제토스, 이들의 죽음등.

좀 잠잠한가 싶던 제우스 이야기는 끝부분에 또 나온다. 호수에서 목욕하던 세멜레에게 반한 제우스는 그녀의 집으로 찾아간다.(p.202참조) 의외로 담담하게 제우스를 맡은 세멜레는 놀랍게도 에우로페의 조카였다. 세멜레는 제우스와의 만남을 운명으로 여기고 사랑을 나눈다. 그러나 이는 비극의 시작이었다. 제우스의 아내 헤라가 이들의 만남을 눈치챈 것. 결국, 헤라의 꾐에 빠져 세멜레는 죽고, 제우스는 애정의 결실인 아기를 자기 허벅지에 넣어 살린다. 이 아기는 바로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 디오니소스의 이야기는 다음 챕터에서 이어진다.

<신화의 숲에서 사랑을 만나다>, 흥미로운 책이다. 사랑을 주제로 접근한 그리스 로마 신화를읽고 싶다면 꼭 읽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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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방울의 피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
엘리에트 아베카시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일곱 방울의 피>는 엘리에트 아베카시스의 데뷔작 <쿰란>의 시공간을 더욱 확대한 '후속편'격인 책이다. <쿰란>의 주인공인 아리 코헨, 제인 로저스는 이 소설에서도 대활약한다. 그래서 등장인물간 미묘한 관계내지 일부 사건은 <쿰란>을 참조해야만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소설 자체도 종교적 깊이가 상당하기 때문에 약간의 사전지식이 필요하다. 시급했던 건 '쿰란', '사해 두루마리', '에세네인'등의 개념파악. 다행히도 앞에 올컬러 사진, 뒤에 '용어해설'이 실려있어 큰 도움이 됐다.

돌 제단 위에서 목이 베이고 불태워진 시체가 발견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피해자는 '구리 두루마리'를 연구하던 피터 에릭슨 교수. 희생제의를 연상시키는 살인수법에 수사책임자 쉬몬은 '학자인 동시에 병사인' '아리'의 도움을 구한다. 과연 '아리'는 누구인가?

아리 코헨, 그는 '에세네 파'란 비밀 종파에 귀의한 필사생으로 쿰란이라 불리는 가파른 절벽에서 금욕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에세네인들에게 메시아로 지명된 아리. 그의 아버지 다윗 코헨 역시 에세네인이었지만 이스라엘의 성립과 함께 동굴을 떠났다. 아무튼 이들은 사건현장을 향하고 히로인 '제인 로저스'를 만난다. 한때 아리가 뜨겁게 사랑했던 여인 제인. 아리는 제인에 대한 사랑과 에세네인으로서의 역할 사이에서 갈등하지만, 결국 사건해결을 위해 에세네인들을 떠난다.

이어지는 내용은 코헨 부자와 제인 로저스의 사건 해결과정이다. 피해자 에릭슨 교수에 대한 정보도 속속 밝혀진다. 그는 프리메이슨이었으며, 탐사대는 구리 두루마리에 언급된 보물을 찾기 위한 구실이었다. 한편, 아리와 제인의 눈앞에서 에릭슨의 딸 루스 로즈버그일가는 살해 당한다.(p.120) 충격에 빠지는 아리, 제인. 구리 두루마리의 비밀은? 에릭슨 교수는 무얼 하려고 했던걸까? 그리고 사건의 배후는? 주목할 건, '누가 범인인지'보다 종교적으로 뒤엉킨 일련의 의문들, '두루마리의 비밀'내지 '성전보물의 행방'이 더욱 관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종교적인 분위기는 '성전기사단'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더욱 심화된다. 아리와 제인은 사건해결을 위해 '은 두루마리'를 읽고, 은 두루마리의 내용은 다른 필체로 소개(p.224이하)된다. 은 두루마리 속 '성전기사 아드헤마르'이야기는 그 자체가 독립된 작품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흥미진진하며, 당시의 사회상내지 종교적 분위기를 한껏 드러낸다. 아드헤마르가 아리 코헨의 모습과 묘하게 오버랩되는 것도 주목할 부분.

마지막에 <쿰란>과 이 소설을 아우르는 반전이 있다. 이것이 쿰란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마지막 부족>에서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하다. <일곱 방울의 피>는 종교적인 분위기 가득한 신비한 스릴러다. 사해 두루마리, 에세네인등 저자의 방대한 종교적 지식에 감탄했고, 이야기의 흥미진진함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일곱 방울의 피>, 쉽게 접할 수 없는 대단히 매력적인 소설이다. 꼭 한번 읽어 보시길.

 

* <일곱 방울의 피>은 아리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 읽는내내 독특하단 느낌을 받은건 단지 종교적, 신화적 소재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 쌩뚱맞게 이런 생각을 했다. 김탁환의 '백탑파 시리즈'와 이 작품은 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 전혀 접점이 없어 보이지만, 역사나 종교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점이 상당히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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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 2008-03-22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보기 위해서는 전작인 "쿰란"을 먼저 보면 좋을것 같네요. 종교적인 분위기의 스릴러라면 "다빈치 코드" 와 같은 혹은 비슷한 선상에 있는 작품인지 궁금해 지네요. 저는 다빈치 코드를 읽고 한동안 책에서 언급된 종교적인 서술때문에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과연 그럴수가?" "과연 그럴리가?" "어떻게?" 이런식으로 의문부호를 잔뜩 달아가며 말이죠...^___^

쥬베이 2008-03-22 18:33   좋아요 0 | URL
네^^ <쿰란>이 2권이라 약간 부담이 되지만 먼저 읽으면 좋을듯 해요~
하지만 뭐 이 작품부터 읽어도 큰무리는 없답니다^^
음...<다빈치코드>하고는 약간 달라요. '종교적인 서술'이 다빈치코드에서 양념정도였다면, 이 작품에서는 도리어 메인요리같은 느낌. 좀 더 종교적 깊이가 있어요. 그러다보니, 읽을당시엔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읽고 나면 더 뿌듯해 진답니다^^

Apple 2008-03-22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이런 책도 있었군요..^^리뷰보니 기대가 됩니다~

쥬베이 2008-03-23 22:05   좋아요 0 | URL
종교,역사쪽으로 파고드는 작품이라, 안 맞을 수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