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선 2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대단하다', '흥미진진하다'같은 뻔한 말은 하고 싶지 않다. <검은 선>은 저런 뻔하디 뻔한 말로 수식될 만한 책이 아니다. 매력적인 캐릭터, 생생한 이야기전개, 놀랍도록 치밀한 구성등 대작의 모든 것을 갖추었다. 한번 읽고 말 '그렇고 그런' 스릴러의 차원을 넘어선다. 자신 있게 말하겠다. <검은 선>은 내 평생 읽은 책중 손에 꼽을 만한 대작이다.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초반, '자크 르베르디', '마르크 뒤페라'의 이야기가 번갈아 이어진다. '자크 르베르디'. 한때 무호흡 잠수분야의 스타였지만 지금은 동남아를 전전하고 있다. <검은 선>의 시작은 동남아 대숲 오두막에서 끔찍한 시체와 함께 있다 지역 어부들에게 린치 위협을 당하는 그의 모습이다. 정황증거는 그의 살인행각을 확신케 하지만, 불안정한 정신상태과 범행부인, 기괴한 범행수법등은 여러 의혹을 남긴다. '마르크 뒤페라'. 잘 나가던 기자였지만 애인 '소피'의 죽음을 계기로 파파라치가 된다. '갈퀴손'이란 별명을 얻으며 파트너 벵상과 '최상급' 파파라치 대열에 선 마르크. 마르크가 '열대의 살인마'라 불리는 자크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이들의 접점은 탄생한다. 비극의 시작이라 할까?

잠깐 다른 것을 살펴보자.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죽음으로 내몬 파파라치의 무리한 취재경쟁 이야기(p.33이하)가 나온다. 핫이슈였던 이 사건이 파파라치로 활약하는 마르크, 벵상과 맞물려 전개된다는 점은 자체만으로 인상적이다. (스토리상으로 이 사건은 마르크와 벵상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계기가 된다.) 또한 아르헨티나 기아사건을 조작하는 기자가 등장(p.44이하)하는데, 이런 일련의 서술은 언론계에 대한 저자의 냉소와 비판의식을 표출한다. 실제 언론계에 몸담았던 저자이기에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자크, 마르크외에 모델 지망생 '하디자'가 등장한다. 어두운 가정사를 당당하게 이겨낸 아름다운 하디자. 한편, 자크에게 접근하려는 마르크는 '엘리자베트'라는 가명으로 자크에게 편지를 보낸다. 자크는 사진을 동봉할 것을 요구하고 마르크는 '하디자'의 사진을 엘리자베트의 사진이라며 보낸다. 이후 이야기는 까나라 교도소에 갇혀있는 '자크의 교도소 생활'-교도소의 악마 '라만 패거리', 교도소내 생활, 자크의 국선변호인 지미 왕팟 이야기등-과 '엘리자베트란 가상인물로 자크에게 접근하는 마르크'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특히 자크와 엘리자베트(마르크)가 주고 받는 편지는 독특한 매력이 넘친다.

자크는 말한다. "엘리자베트, 내가 겪은 일을 이해하고 싶다면, 길은 하나밖에 없어. 문자 그대로 내 인생 행로를 따라가는 게 유일한 방법이야. 동남아시아 어떤 곳, 북회귀선과 적도 사이에 또 하나의 선이 있어. 검은 선. 시체와 공포가 푯말처럼 이어져 있는 선."(p.245) 엘리자베트란 가상인물을 내세워 자크의 내면에 조금씩 접근해 가던 마르크는 자크의 말대로 검은 선을 찾아 동남아로 떠난다. 자크의 메시지를 따라 그의 행적을 쫒으며 동남아를 누비는 마르크, 이 부분은 이국적이고 인상적이다.

자크의 진면목을 알아가며 마르크는 여자를 사칭한 자신의 행각을 걱정하지만, 곧 사형에 처해질 수감자이라며 가볍게 넘어간다. 그는 살인자기가 조사한 내용을 책으로 내기로 한다. 제목은 '검은 피'. '검은 피'의 출간을 준비하는 마르크 뒤페라와 <검은 선>의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그리고 두 작품은 묘하게 비교된다. 주목해야 할 부분. 마르크의 '검은 피'는 호평을 받고 베스트셀러가 되지만,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바로 자크 르베르디가 탈옥한 것이다. 두려움에 떠는 마르크. 열대 살인마의 분노는 어떻게 폭발할 것인가? 마르크에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자크에게 쫒기는 마르크와 하디자의 모습은 그 어떤 공포소설, 영화보다 오싹하다. 또한 자크가 마르크에게 자신의 어린시절과 살인의 진실을 이야기하는 부분(p.292이하)은 지금까지 의문이었던 '모든 것'을 속시원하게 풀어준다. <검은 선>의 완벽한 완성도에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는 부분. 끝부분에 '기절할 뻔한' 반전이 있다. 정말 기절할 뻔 했다.  

<검은 선>, 완벽한 작품이다. 읽는내내 숨이 목 앞까지 차올랐을 정도로 긴박감 넘치고 흥미진진하다. 심해 100미터까지 내려간 무호흡 잠수선수처럼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극한'을 체험한 기분이다.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이런 경악할 만한 작가를 이제껏 몰랐던 자신이 한심하다.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읽어 보시라'는 말도 하지 않겠다. 마음대로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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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2008-03-26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주문했는데 재밌다니 다행입니다!!!+_+乃굿초이스~~음화화화화화화화화화화화화!!!!!!!!!

쥬베이 2008-03-26 23:52   좋아요 0 | URL
ㅋㅋㅋ시즈님^^ 이 책 정말 재밌어요~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작품 찾아보니 많더라고요.
그래서 우선 <돌의 집회> 샀답니다ㅋㅋ 다른것도 다 사고 싶어요
정말 마음에 드는 작가ㅋㅋㅋ

칼리 2008-03-27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다독하시는 분인것 같습니다. 제가 읽고 있는 책은 책갈피가 항상 그자리에 고정되어 페이지가 넘어가기 힘듭니다. 무어 그리 바쁜지... 덕분에 어부지리격으로 쥬베이님 서평보고 이런책도 있고 이런내용이구나...하고 얻어가기만 합니다. 감사할 따름^___^

쥬베이 2008-03-27 14:32   좋아요 0 | URL
ㅋㅋ제가 더 감사합니다^^ 제 서평이 도움이 된다니 영광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