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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잔혹의 세계사 - 인간의 잔인한 본성에 관한 에피소드 172
기류 미사오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세계사를 심도있게 살펴보거나, 머리 아픈 얘기를 늘어놓는 게 목적이 아니다. <사랑과 잔혹의 세계사>는 세계사 속, 기묘하고 잔혹한 에피소드를 맛깔스럽게 엮은 책이다. 대개 한 두페이지 정도의 짧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쉽고,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에 읽는 것보다는 짜투리 시간에 몇 꼭지씩 읽어 나가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소개된 에피소드는 무려 172가지다. 자칫 산만할 수도 있지만, 소주제별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제4장 '불가사의하게 살아간 사람들'에서는 '독, 죽음, 민간요법, 인육, 유행 등'의 소주제가 있고, 소주제별로 관련 에피소드가 실려 있는 식이다.
'잔혹'이란 단어가 무색하지 않은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초반부터 이어진다. '처형'의 장엔 유방 도려내기, 온 몸의 구멍 꿰매 죽이기, 화형, 꼬챙이형 같은 끔찍한 형이 등장한다. 온 몸의 구멍을 꿰매 죽인다니, 정말 충격이다. 이야기는 13세기 몽골로 거슬러 올라간다. 권력자의 비호아래 영향력을 행사하던 '파티마'란 무녀가 있었는데, 권력 변동기에 밀려나 사형에 처해진다. 사형집행인은 먼저 '양쪽 눈꺼풀과 입을 꿰매고, 양쪽 귀는 접어서 꿰맸다. 또한 항문과 질까지 꿰매 대소변도 볼 수 없게 만들었다.'(p.48참조) 결국 그 상태에서 죽임을 당하는 파티마. 잔혹하기로 따지만 꼬챙이형도 엄청나지만, 어느 정도 알려진 드라큘라의 모델인 루마니아 백작 이야기라 따로 언급하진 않겠다.
잔혹함을 즐기며(?) 뜻밖의 세계사 지식까지 얻을 수 있다. 단두대를 의미하는 프랑스어, 기요틴의 유래가 나온다.(p.70) 기요틴은 파리대학 해부학 교수이자 정치가인 '조제프 기요탱'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칼이나 도끼로 참수했을 때, 한 번에 잘리지 않아서 사형수가 고통에 빠지는 것을 본 기요탱이 단두대의 사용을 제안했기 때문에. 또한 중세 유럽에 마녀사냥이 성행했던 이유(p.80)도 나온다. 진짜 이유는 마녀로 몰린 이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서였다. 저자는 신성로마제국에서 마녀의 재산몰수를 금지하자 마녀적발이 급격히 감소한 것을 그 증거로 든다.
중간 중간 사진이나 그림이 실려 있다. 이는 이야기의 단조로움을 제거하고 신뢰감을 높혀 준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진 하나를 꼽겠다. 바로 '엘리스 리델'(p.240)의 사진. 사진 속 소녀는 꽃이 만발한 화단에서 예쁜 원피스를 입고 있다. 굉장히 예쁘지만 표정은 싸늘하다. 계속 보면 왠지 오싹하기까지 하다. 이 소녀를 위해 '루이스 캐럴'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썼다. 저자는 루이스 캐럴을 둘러싼 의혹을 제기한다. 어떤 의혹일까? 정말 놀라웠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달리 보였음.
혹시 '피 튀는 끔찍한 이야기만 잔뜩 있는 거 아냐?'하실 수도 있지만 그렇진 않다. 이형(난쟁이나 몸이 두 개인 여자 등)여자를 좋아했다는 중국 현종 이야기(p.153), 종을 만드는 아버지를 위해 희생한 딸 이야기(p.155) 같이 기괴하거나 감동적인 에피소드도 있다. 다소 황당하고 쓴웃음 짓게 하는 것도 있다. 처녀성을 확인하는 기상천외(?)한 방법(p.181)이 그것인데, 스폐인에선 결혼 다음 날 손님들에게 핏자국을 보여주며 "처녀였어요!"라고 외쳤다고 하니…참.
<사랑과 잔혹의 세계사>, 놀랍고 충격적이며 재미까지 있다. 한여름, 공포물에 열광하듯 잔혹함 뒤에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나 할까. 기류 미사오의 진가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