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이 왕의 전설
라우라 가예고 가르시아 지음, 권미선 옮김 / 평사리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왈리드 입븐 우이르 왕자는 축복받은 왕자였다.
잘 생긴 외모, 뛰어난 능력, 언젠가는 권력까지도 가질 수 있는 킨다 왕자라는 신분.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 그는 모든 것을 다 가져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우이르 왕자에게는 하나의 꿈이 있었다. 킨다 왕국에서 최고의 시인으로 인정을 받은 뒤 언젠가는 유카쓰에서 열리는 시 경연대회에 참가해서 최고 시인이라는 칭송을 받는 것이었다.
왕자는 킨다 왕국에서최고의 시인이 되고 유카쓰에서 열리는 시 경연 대회의 초고 시인도 무난히 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킨다 왕국 최고 시인의 자리를 두고 치른 시 경연 대회에서 우이르 왕자는 양탄자를 짜는 가난한 노인에게 킨다 왕국의 최고 시인자리를 내 주어야만 했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우이르 왕자는 킨다 왕국에 자신보다 시를 더 잘 짓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려웠다.
킨다 왕국의 최고 시인 된 노인은 고향으로 돌아가 평범하게 살고 싶어 했지만 왕실사고라는 직책을 만들어 왕실에 붙잡아 두었다. 우이르 왕자는 노인에게 서고를 정리할 것이며 세상의 모든 역사가 담긴 양탄자를 한 장 짜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 사이에 우이르 왕자는 왈리드 왕이 되었다.  문맹이었던 노인은 글을 배웠고 불가능해 보이는 서고를 정리했고, 혼신의 힘을 기우려 한 장의 양탄자를 짜고 과로로 죽었다.
양탄자를 본 순간 왈리드 왕은 자신이 순전히 질투심 하나로 커다란 영혼이 깃든 육신을 망가트렸다. 아랍 최고의 예술가를, 어쩌면 전 세계 최고의 예술가를 죽였다는 것을 알았다.  왈리드 왕은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들었고 죄책감과 후회에 시달리게 되었다. 번창했던 왕국도 쇠퇴했다. 그리고 왈리드는 사람을 혹하게 하고 사람을 망가트리는 마력을 지닌 물건이기 때문에 왕실 깊숙이 숨겨두었던 양탄자마저 도둑을 맞았다. 한때 왕이었던 왈리드는 자신을 숨기고 떠돌이 왕 말리크가 되어 양탄자를 찾아 떠돌면서 자신을 찾는 내용을 담고 있는 <떠돌이 왕의 전설>을 통하여 내가 알게 된 사실은

우선, 우이르 왕자는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최고 시인의 명예를 얻기를 원했다.
자기가 킨다 왕국의 최고의 시인인 줄 알았는데 하잘 것 없는 촌부에게 최고의 시인의 자리를 내 주게 되자 자존심에 상처를 입어 견디기 힘들어 했다. 그래서 억지를 부렸고 그 결과 모든 것을 다 잃는 것을 보면서 인간의 교만과 세상에 최고는 반드시 나여야만 한다는 오만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게 되었다.

둘, 
미래는 하나의 미래가 아니라, 수많은 가능성에 따라 수시로 변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양탄자 위에 펼쳐진 미래는 수도 없이 많은, 서로 다른 길이 얽혀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각각의 길이 다른 장소와 연결되어 있어도 인간 개개인은 자기가 어느 길을 가야할지, 뒤로 물러나야 할지, 아니면 자기 스스로 자기 길을 개척해 가야할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운명의 힘보다 그때그때 인간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결정하는 결과에 따라 미래가 바뀔 수 있음을 암시한다. -245쪽 역자후기 중에서 -

는 말을 보면서  순간의 선택이지만 그 선택이 현재의 나를 이끌 것이고 미래의 어떤 자리에 날 가져다 놓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자신을 바로 보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되겠다는 생각이듬과 동시에 모든 일에 보다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패러독스 1
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 / 여름언덕 / 200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지 않는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의 책장을 덮으면서 다니엘 페나크의 <소설처럼>이란 책이 생각났다. 다니엘 페나크는 <소설처럼>에서 독자의 10가지 권리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건너뛰며 읽을 권리’,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군데군데 골라 읽을 권리’를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건너뛰며 읽고, 골라가며 읽고, 끝까지 다 읽지 않은 책을 과연 읽었다고 말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한동안은 고민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정보 중에서 필요한 정보만을 선택하고 흡수함에는 어쩔 수 없이 책들을 건너뛰고 읽고, 군데군데 골라가며 읽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읽은 책에 대하여 누군가와 이야기할 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에는 ‘책을 온전하게 읽은 독자도 책의 모든 것을 기억하는 자는 드물다’는 대목에서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또 ‘읽지 않았다고 주눅들 필요가 없으며  읽지 않은 책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고 이야기 하는 대목에서는 크게 공감을 했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하여 주눅 들거나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 까닭은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진실보다는 자기의 진실이 더 중요하다. 교양 있는 사람으로 보여야한다는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면 읽지 않는 책에 대하여 말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 자신이 약간은 뻔뻔스러울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책을 읽지 않고도 담론에 충분히 끼어들 수 있다는 대목을 보면서는 책을 중심으로 한 담론을 되돌아 봤다. 책을 읽지 않고 왔다면서도 책을 읽은 사람보다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용하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그 사람들의 행동에 의아심을 가지면서도 그 뻔뻔함이 부러웠었는데 읽지 않은 책을 중심에 놓고도 이야기 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알 것 같다.

책을 중심으로 한 담론에 텍스트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텍스트는 텍스트로만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텍스트는 의견 교환이란 과정을 거친다. 책이란 텍스트에 대한 존중으로 수정 불가한 것이라면 의미는 없다. 책이란 텍스트는 읽을 때마다(읽는 사람마다)발췌 되고  수정되고 꾸며지는 것이란  사실을 인지해야한다. 발췌되고, 수정되고, 꾸며지면서 누군가에 의하여 2차, 3차의 창작물이 되기도 한다. 제2, 제3의 창작물을 읽은 사람이 원래의 텍스트를 읽지 않았다고 원래 텍스트를 읽은 사람과 이야기하기에 무리는 없다. 담론의 현장에서 책은 텍스트적 의미보다는 관계를 위한 도구적 역할의 의미를 갖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차피 모든 책을 다 읽을 수 없고 담론의 현장에서조차 책이 텍스트로서의 의미보다는 관계적인 의미가 크다면 읽지 않은 책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것에 대하여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다면 좀 더 뻔뻔스럽기로 했다.

---------------------- 이 책은 리더스 가이드의 이벤트 도서입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왕의 투쟁 - 조선의 왕, 그 고독한 정치투쟁의 권력자
함규진 지음 / 페이퍼로드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지상파 방송에서 방영되는 역사 드라마를 놓고 대선과 총선을 염두에 둔 제작이라는 말을 들었다. 왜 이산(정조 대왕)이고 왜 세종대왕인가를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드라마를 보면서 <왕의 투쟁>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왕의 투쟁>에는 네 명의 군주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조선의 모든 표준을 이룩한 세종이다. 세종이 진흥한 문치주의의 한계와 모순을 넘어보려고 했던 연산군, 세종이 세운 친명사대, 여진배척r의 대외 전략에 변화의 필요성을 느낀 광해군, 세조이 세운 국정 운영방식의 한계를 절감하고 극복하려 애쓴 정조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태종은 다음 보위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했다. 정복으로 영토 확장을 꾀할 것인가 아님 내실을 다질 것인가. 그 결과 태종은 호방한 무인의 기질을 가진 왕세자 양녕대군을 폐하고 셋째인 세종을 택하여 조선의 안정과 내실을 꾀하고자 했다.

세종은 지극히 문인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재위하는 동안 일반적인 행정업무는 재상들에게 대폭 위임을 하고 세종 자신은 혁신적인 업무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혁신적인 업무의 실무자들은 대부분 낮은 직급의 젊은 관료다. 재주는 있으나 관료체제에서 도태되기 쉬운 사람들이 저를 알아봐주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당연하다.

일반 행정을 재상에게 위임하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프로젝트형 혁신 업무를 추진해 조선의 표준을 만들어 온 세종이지만 태종의 집권과 자신이 보위를 잇기까지의 신산함을 너무 잘 알고 있음인지 세종은 외교적면에서는 소극적이고 안전주의를 택하는 면을 보이고 있다고 저자는 안타까워하고 있다. 끊임없이 벌어지는 양녕의 기행에 세종은 지쳐갔다. 사랑하는 소헌왕후의 죽음으로 세종은 상심이 컸다. 늙은 몸에 찾아오는 병마를 세종도 어쩔 수 없었다.

세종이 마련한 표준위에서 조선의 왕들은 나라를 다스려야만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세종이 만들어 놓은 표준은 되레 많은 군주들이 나라를 통치하는데 발목을 잡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신권의 비대로 군주가 어떤 일을 결정하고 실행하고 자하면 신하들은 “아니 되옵니다.” “불가 하옵니다.” 라는 반대에 봉착하게 되었다. 신하들의 눈치를 보는 군주. 부왕인 성종 역시 신하들의 눈치를 보면서 절절매는 것을 보며 자란 연산군은 자신이 보위에 오르면 절대로 그렇게는 안 되게 하겠노라 다짐을 했는지도 모른다.

세종이 만들어 놓은 성리학적 틀 속에서 군주들이 운신할 수 있는 폭은 아주 좁았다. 보위에 오른 연산은 운신의 폭을 넓히고 싶어 했다. 신하들은 걸핏하면 “불가하옵니다.”를 외쳤다. 연산이 선택했던 운신의 폭을 넓히고 절대 군주로 가기위하여 선택한 길은 ‘역모’라는 굴레였다. 평소에 당당하게 “아니 되옵니다.” “불가 하옵니다.” 외쳤던 신료들도 역모라는 말 앞에서는 자기에게 불똥이 튈까 몸조심을 하는 것을 보면서 연산은 깨달았다. 신권을 억누를 방법을. 끊임없는 역모에 대한 고변으로 연산의 시대는 피의 시대였다. 신하들의 입을 막는 데는 성공을 했는지도 모르지만 누구도 믿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어 놓았다. 세계의 역사를 볼 때 진정한 폭군은 변명을 하지 않는다. 연산이 사람들을 역모로 몰아갈 때 연산은 늘 적당한 구실을 댔다. 연산은 집요했고 끊임없이 사람들을 의심했다. 그 의심 속에 연산은 자기의 편을 만들어 놓지 못했다. 연산은 외로웠다. 연산은 향락에 빠졌고 집권층의 낭만은 서민층의 곤란을 가져왔다. 연산의 퇴출은 자명한 것이었다.

광해군은 쑥밭이 된 국가를 다시 일으킬 막중한 역사적 책임을 띠고 옥좌에 앉았다. 오랜 전란과 당쟁으로 광해가 선택 할 수 있는 것은 안전제일주의였다. 살아남는 것 자체가 중요했던 시대를 살아온 광해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저자 함규진씨는 우리 역사에서 새롭게 조망 받고 있는 광해의 외교정책 또한 단순히 광해의 안전제일주의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광해의 지나친 안전주의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광해군을 믿고 따르게 하는 리더쉽이 많이 부족했다. 확실하게 내편이 되어 줄 사람에게 지도자는 확실하게 자신의 뒷배로서의 믿음을 주지 못하면 그 지도자를 믿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보면서 이승만과 박정희와 전두환을 떠 올리게 되었다.

한 나라, 한 조직의 가장 윗자리에 올라간 사람이라면 푸념으로 스스로를 위로해서는 안 된다. 지도자의 길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가시밭길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옿다고 믿는 길을 묵묵히 걸어가면서 “나를 믿어라.”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만을 역사는 위대한 지도자로 기록 한다.(195쪽)는 말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정조는 지어진 조선이라는 집을 수리해야만 하는 운명의 지도자였다. 보위에 오르면서 했던 일성‘나는 사도 세자의 아들이다.“ 는 말은 신하들을 긴장하게 하였다. 정조는 명분을 내세워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을 방조한 일당들을 숙청하기 시작하였다. 연산군의 일을 통하여 신료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은 반격을 받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정조는 강경책과 유화책을 병행하여 죄인을 살려두되 ‘살아남은 죄인’들을 여봐란 듯이 방치하는 수법을 썼다. 조정의 사람들로 하여금 경각심을 잊지 않도록 365일 비상을 걸어두었다.

정조는 왕의 고유 권한인 인사권을 이용하여 신료들이 결집하는 것을 막았다고 한다. 정조의 인사는 가히 회전문인사라고 할 정도로 인사인동이 잦았다.

정조가 택하였던 탕평책은 신료들의 결속을 방지하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군주 자신에게는 ‘측근이 없는 고독한 정치’를 의미한다. 007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한밤중에 궁을 나와 귀양 간 동생을 만나고자 했던 것을 보면  그 외로움을 짐작 할만하다.

조선왕이 마땅히 해야 할 네 가지 노릇

첫째, 성학에 힘쓰며 수신에 전념할 것,

둘째, 개인적인 취미와 오락을 멀리하며 사치에 빠지지 말 것.

셋째, 군자를 가까이 하고 소인을 멀리할 것

넷째, 언로를 열고 신하들의 간언을 용납할 것 (263~271쪽)

을 보면서 임금노릇 참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이되 군왕이기에 인간이길 포기하라는 말처럼 비춰졌다. 리더의 자리가 주어진다고 덥석 맡을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도 했다. 어떤 지도자를 얻느냐에 따라 국가와 국민의 운명이 크게 달라진다. 지도자의 자리에 선 사람이 어떻게 주어진 환경에 한편 적응하고 다른 한편 극복하며, 경쟁자들을 제어하고, 협력자들을 찾아내서,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고 자신에게 기대하는 모든 이들의 꿈을 이루어줄 수 있는지, 그에 필요한 원칙과 기법도 별다를 것이 없다. 얼마 전 우리는 대통령을 뽑았다. 저마다 자신이 정말 잘 할 수 있다고, 자기가 대안이라고 했었다. 역대 지도자들도 그렇게 말하며 그 자리를 차지했었다. 과연 지도자 자리를 탐하는 사람들 ‘조선왕이 마땅히 해야 할 네 가지 노릇’을 알고 있기나 한 건지, 과연 국민들의 공복으로서 국민들이 기대하는 바를 어떻게 만족 시켜 줄지 고민을 했는지 묻고 싶다.   

                --- 이 책은 리더스 가이드의 이벤트 도서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분홍바늘꽃 카르페디엠 15
질 페이턴 월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글자 없는 그림책 <왜?>를 보면 전쟁은 인간들의 이기심에서 출발을 한다. 처음부터 누구나 공감 할 커다란 명분이 있었던 전쟁은 거의 없다. 개인, 국가의 이기심에서 출발한 전쟁은 누구에게도 진정한 승리를 가져다주지 못한다. 전쟁을 치르는 동안 수많은 인간들이 죽어야만 했고 인간들이 애써 이룩해 놓은 많은 문명들은 거의 대부분 파괴가 되었다. 한마디로 말해 아직도 포탄의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폐허 위에 인간들의 삶의 둥지를 다시금 틀어야만 하는 것이다.

<분홍바늘꽃>도 나치에 의하여 런던 대 공습이 이루어지던 시기를 다룬 작품이다. 어른들에 의하여 빌과 줄리는 각각 피난길에 올랐지만 이런저런 사정들로 런던으로 다시 돌아왔다. 매일 공습을 알리는 호각소리는 울리고 포탄이 터지는 소리, 건물들이 불타는 모습은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다. 언제 어디서든지 죽을 수 있다는 현실 속에서 살아가야하는 것은 어른이나 아이나 쉬운 일이 아니다. 파멸과 죽음이 바로 곁에 있는 상황 속에서 열다섯 살 빌과 열세 살 줄리는 각각 파괴의 현장을 돌아보면서 먹을 것을 찾아다니던 중에 만났다. 불안한 현실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간다. 외로움은 불안을 가중시켰는데 혼자가 아니라는 것은 현실은 변함이 없을지라도 느끼는 그대로를 누군가 나눌 수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외롭지 않다는 것은 단순하게 외롭지 않음이 아니라 웃을 수 있는 여유며 희망이다.

여유가 생기고 희망이 생김으로 그들은 주변을 더 정확하게 바라 볼 수 있고 살아야 한다는 의지를 불태울 수 있었다. 빌은 줄리를 위하여, 줄리는 빌을 어떻게든 살 방도를 강구해야만했다. 위험지구 폐허더미 속에 둥지를 틀고 낡은 수레를 발견하여 고쳐 이제 단순히 배급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꾸려가려고 시도를 하던 어느 날 집 앞에 버려진 아이를 발견한다. 스스로도 건사하기 힘들지만 둘은 아이를 거둬들여 자신들의 둥지로 데리고 왔다. 아픈 아이가 먹을 우유를 구하기 위하여 빌이 외출했다 돌아와 보니 줄리와 아이가 있었던 자신들의 둥지는 흔적조차 없이 무너져 버렸다.

이전엔 사람들에게 들켜 자신들이 또 강제로 피난을 가게 될까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기피했지만 빌은 미친 듯이 사람들의 도움을 구했다. 빌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더 무너진 폐허더미에 줄리와 아이가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몰래 튼 둥지인지라 아무도 빌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빌은 필사적이었다. 결국 무너진 더미 속에서 줄리와 아이는 구조가 되었다. 병원으로 옮겨진 줄리는 부모님에게 연락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관계는 더 이상 연결이 되지 않았다.

공습이 한창인 런던 시내에서 빌과 줄리의 눈을 통하여 나는 전쟁 속에서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가하는 모습을 주의 깊게 보게 되었다. 전쟁 속에서도 주인공 빌과 줄리는 호기심 왕성한 아이들 모습이었다. 무서움에 벌벌 떨며 움츠려 있는 모습이 아니라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며 나름대로 즐겁게 보낸다. 남의 배급표를 이용하여 주린 배를 채우지만 그것이 정당하다고는 생각지 않으면서도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현실을 앞에 두고도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전쟁은 살인과 약탈, 무질서를 동반한다고 알려졌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런 모습은 볼 수 없다. 빌과 줄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나름대로 질서를 유지 하려고 노력했고 다른 사람들을 도우려 노력을 한다. 비록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인간들의 참 모습을 잃지 않는 것이 이 작품의 미덕이다. 일어난 전쟁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런던 사람들의 모습에서 절망을 넘어선 희망을 보게 되었다.

-------------------  이 책은 리더스 가이드 이벤트 도서입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늘의 계절> 서평단 알림
그늘의 계절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요코야마 히데오의 <<그늘의 계절>>에는 표제작인 <그늘의 계절>을 시작으로, <땅의 소리>, <검은 선>, <가방>작품이 실려있다. 네 개의 작품은 인간들의 가장 원초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그늘의 계절>에서는 사회적으로 느껴지는 인간과는 또 다른 인간의 내면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보여 지고 있고

<땅의 소리>는 조직 내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인간들의 몸부림을 보게 되었다.  나 역시 그 위치에서는 별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우울 하게 한 작품이다.

<검은 선>은 조직 내에 만연한 편견과 부당한 강요를 따를 수밖에 없는 직장인에 대한 비애를 가장 잘 다룬 작품이다. ‘부당한 요구인줄은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자신을 합리화 해 보려고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내면의 소리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한편으로 다른 사람의 희생으로 자신의 유익을 구하려는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된 작품이었다.

<가방>을 읽은 뒤 처음 떠오른 생각은 ‘야합’이란 말이었다. ‘야합’은 구린내가 많이 풍기는 말이다. 구림 두 사람들이 서로의 목적을 위하여 취하는 행동에 애꿎은 사람이 다치는 것을 보면서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누군가는 말을 할지도 모르지만 화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작품을 읽으면서 생소한 일본 경찰서의 조직명에 조금은 편하지 않았다. 작품은 비교적 잘 읽혔고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세상을 잘 몰 수 있었고 작가의 군더더기 없는 필체가 맘에 들었다. 네 작품에서 내 마음에 가장 남는 것은 <검은 선>이었다.

 

------------- 이 책은 알라딘의 서평도서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