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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나무정의 기판이 ㅣ 푸른도서관 34
강정님 지음 / 푸른책들 / 2009년 11월
평점 :
이 이야기는 작가 강정님이 전작인 <이삐 언니>를 세상에 내놓은 지 9년 만에 내 놓은 책으로 기판이 조부로부터 기판이 아버지인 남섭이 형제의 이야기, 기판이 엄마인 안골댁 이야기 그리고 작품의 주인공 기판이 이야기로 구성이 되어 있다.
기판이 몇 대 위만해도 사는데 그다지 부족함이 없었다. 기판이 조부가 어렸을 때 뱀에 물린 후유증에 다리를 절고 그것을 치료하기 위하여 애쓰다 가세가 기울기 시작 했고 조부가 사기를 당하고 거칠어질 때로 거칠어진 기판의 조부가 사기꾼을 찾아 나섰다가 기차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해 돌아가셨다. 이후 기판의 조모 정자동댁은 아들 셋을 데리고 남의 집 헛간으로 거처를 옮겨야만했다. 정섭, 남섭, 평섭 세 형제는 정자동댁을 중심으로 열심히 일을 했고 세 형제들도 각기 성가를 했다.
기판의 엄마인 안골댁은 결혼 해 신행에서 돌아 올 때 심한 눈보라로 남편과 헤어져 길을 잃고 헤매다가 혼자 시가로 들어왔다. 안골댁은 자기 몫으로 떨진 것을 절대로 남이 가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남의 것일지라도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은 반드시 가져야하는 사람이었다. 안골댁의 끝없는 욕심은 정자동댁을 병들게 했고, 우애 좋던 장섭, 남섭, 평섭 삼형제의 관계를 껄끄럽게 했고 남편과의 관계도 소원하게 했다. 안골댁이 행하는 행동들을 보면서 '허, 저 악업을 어찌 할고.....'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안골댁이 첫 딸을 낳고 치성 끝에 낳은 둘째딸이 홍역으로 죽고 난 후 기판이가 태어났다. 안골댁에게 있어 기판이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아들이었다. 기판에 대한 최상의 찬사를 아이 엄마에게 바치기를 강요하고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끝없는 노력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기 때문에 안골댁은 마침내 마을 사람들의 기피대상이 되었다.
안골댁은 기판이가 원하는 것이든 원하지 않는 것이든 기판이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했다. 안골댁의 과보호 속에 기판이는 유약했다. 안골댁은 기판이 노는 것에도 참견을 했고 그런 기판이를 친구들은 좋아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의 비위를 맞춰가면서 그들과 어울렸다. 친구들은 기판과 어울리기는 하되 자기들 기분대로 기판을 대했다. 안골댁은 기판이의 판단 이전에 판단을 내렸고 기판은 자기주장을 하지 않는 아이로 자랐다. 기판의 새 자전거를 두복이가 망가뜨린 일을 빌미로 두복이와 맞서면서 기판은 예전의 유약하고 순종적인 아이에서 벗어났다. 기판은 거칠어졌고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사람이 되어갔고 사람들이 기피하는 아이가 되었다. 결국 이웃 마을 여자들을 희롱하다 동네 청년들에게 잡혀 고초를 겪으면서 정신병이 들었다. 치료를 위하여 굿당으로 거소를 옮겼다가 광주로 흘러들어가면서 폭력조직과 관련을 맺었다. 패거리가 잡아온 송마담을 풀어 주게 되었는데 패거리들은 밤나무정까지 기판이를 쫓아왔고 기판이는 열여덟의 짧은 삶을 마쳤다.
기판의 조부, 기판이 아버지 형제들 이야기, 기판이 이야기 속에 시대상이 무리 없이 작품 속에 잘 녹아 있다. 기판이 엄마인 안골댁의 캐릭터가 워낙 강하기 때문에 작품이 기판이 이야기인지 안골댁의 이야기인지 분간이 안갈 정도다. 안골댁의 끝없는 욕심을 보면서, 안골댁의 넘치는 자식 사랑을 보면서 뭐든 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을 실감케 했다. 사람이 해야 할 사랑과 받아야 될 사랑은 한정이 되어 있고 그 사랑을 주는 것도 받는 것도 평생을 나눠 해야 하는데 기판이 평생 받아야 할 사랑을 안골댁이 짧은 기간에 집중해 주어 더 이상 받을 사랑이 없기에 결국 기판이 짧은 삶을 살게 한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한다. 안골댁의 넘치는 사랑, 일그러진 모성이 기판이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많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