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국 광고 풍경 # 1. 시월의 마지막 밤은.. 


 

 

 

 

 

 

 

 

 

 

 

 

일정보다 왼쪽 위 국화 5g 소낙비 소리 2g 낙엽향, 바람소리..막걸리 향...에 더 관심가는 것은 어인일인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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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녀)들이
    from 木筆 2009-11-01 20:16 
    꼭꼭접은 바람, 다가설수록 커지는 낙엽소리, 시계태엽처럼 꽉죄여진 도시음, 안개같은 섬내음, 11월에 내릴 가을비 한점에 섞인 달빛들을 밀물처럼 싣고 와   슬픔하나, 눈물한점, 별빛하나, 설레임한점, 홍시처럼 달린 시월 마지막날, 가슴 속으로 스며드는 섹스폰 소리, 아직 바다에는 걸리지 않은 하루남은 보름달. 아쉬움한점. 달빛둘. 아픔한점. 단풍하나.&
 
 
 

[한국의 자생란],[다도],[우리옛도자기] - 번잡하지 않게 요점을 짚을 수 있다. 한번 보지 말고 세번쯤 본다면 [어느 미술사가의 편지], 솔-강우방예술론 [예술의 역사] 폴 콕스, [여성예술가] 클라시커 50, 케테 콜비츠 [윌리엄모리스 평전],박홍규

 다른 책은 가볍게 보고 콜비츠가 여성이란 사실을 이제서야 알게되고, 강우방과 박홍규의 모리스평전에 빠져 내내 빠르게 달렸다. 시간은 이리 빨리 내달리는지. 캔맥주 한잔. 잠잘 시간도 달려오고... ...목포의 달은 더 밝고.. 

리뷰에서 다음말을 따오고 내일 마저 하고픈 이야기를 잇자. 


모리스는 흔히 보는 천재도 지도자도 위인도 아니었다. 그는 도리어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사회적으로 모두 실패했다. 그림에 재주가 없어 화가가 되는 것을 포기했고, 아름다운 모델이었던 아내가 자기 친구인 화가를 사랑함을 알면서도 평생을 함께 고통 속에서 살았으며, 사회주의를 꿈꾸고 그것을 위해 싸웠으나 그것은 결코 이룩되지 못했다. 그는 ‘삶을 예술처럼, 세상을 예술처럼’ 만드는 것이 인류의 과제라고 생각했으나 그것을 위한 어떤 체계적인 이론도 남기지 못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나는 그를 사랑한다. 내가 그를 특별히 존경하는 이유는, 그가 실패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오히려 위대한 실패자다. 그는 평생 ‘내가 할 수 있다면’ 이라는 수줍고 소박한 희망과 꿈으로 살았으며 한평생 그것을 간직했고 그 꿈과 희망을 이루고자 열심히 노력했다.

1.

시인에겐 어느 대학나왔느냐고 묻지 않는다. 이처럼 불필요한 수식어가 없이 미술사가로 불리길 바라는 강우방님은 최근 연구원을 만들고  지칠줄 모르는 연구를 하고 있다. 불교에도 관심이 많아 금강경을 틈나는대로 보고, 단청은 물론 기와, 무늬에 해석의 깊이를 더하는 결실을 보고 있다. 건축역사학회는 물론 언어로 다다르지 못한 조형언어인 무늬의 발전과 역사가 필요해 무늬학회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그가 말한 추체험의 방식에 의한 고증으로 얻은 깨달음은 연구의 또 다른 방법으로 인식과 연구의 확장을 상당한 정도로 높여준다. 몸의 흔적을 연구의 한 잣대로 밀고나가는 것은 요즘 보기드문 일인 것 같다. 그가 누누이 주장했던 시선과 관점을 엇갈림과 녹임의 방식인 추체험으로 깨달아야 한다고 한다. 그의 관심은 백제,신라, 고구려만 아니라 동북아 저기 그리이스 로마로 이어져 있다.

건축만이 아니라 조형언어에 대한 관심은 아시아에 형성된 불교 무늬 해석과 단청 연구에 대한 폭발적 관심과 연결고리에 대한 앎과 확신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그 앎과 우리민족의 우수성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 단락의 지층은 어떤지 설명은 되지 않지만 앎의 진도와 연결망에 대한 확신은 과도하게 여겨진다. 그 상관관계가 설명되지 않는 한, 역시 똑 같은 출발을 했다고 여길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 앎의 연결에 대한 깨달음. 깨달음의 시원을 가린다는 일이 똑같이 다른 곳의 관점으로 비교한 연유에 시비를 가릴 수 있는 일은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앎과 깨달음에 대한 딴지가 아니라 그 깊숙한 시원에 대한 의구심. 또 한번의 방법론이 필요하지 않나하는 의심이다. 동이민족, 과도한 집중과 확신이 간간히 주장되기때문이다.

맥락에 대한 인식도 형편없고, 어떻게 보존되어야 하는지 시각도 없는 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한 쪽집게 같은 지적으로 제도권에서 몹시 시기하는 인물이 되어 있는 모양이다. 대전의 남간정사도 그러하며 몸으로 느끼는 그에게 결과만 집착하고 공부하지 않는 공무원이 성에 찰 일이 있겠는가만, 경주박물관장과 교수직을 마치고 지칠 줄 모르는 작업을 하고 있는 흔적을 보노라면 노익장이 따로 없는 것 같다. 이어 나온 삶의 흔적을 보며 많은 것은 배운다.

2.

무늬와 장식에 대한 관심은 이어 읽은 모리스의 실내장식으로 이어진다. 대자본가의 아들인 모리스가 추구한 예술은(절반만 읽다. 나머지 반에 마음이 잔뜩 가있지만...) 생활에 철저히 묻어있길 지향한다. 자본의 위력을 과시하는 건축과 장식이 아니라 장삼이사가 누릴 수 있는 생활과 연루된 예술을 지향한다. 그것도 철저히. 아직 되짚기를 하지 못하지만 이런 태도와 자세는 비단 예술만이 아니다. 일상의 하나하나, 철학....모든 경계를 넘어서 삶을 예술로 이을 것을 요구하는 듯하다. 아직 이야기하기 서툴지만 관심을 증폭시킬 화두가 늘 될 수밖에 없는 인물이란 선입견이 든다. 선입견인지 한참 모자라는 견해인지는 좀더 두고 볼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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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의 강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좋아하면 /두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한 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주고/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마종기가 문학평론가 김현을 생각하면 쓴 시라고 한다. 책을 넘기다 있어 옮긴다. 

뱀발. 만약 너를 만나,ㄴ,ㄹ다면 이런 마음뿐. 허투루 지내고 싶지 않은게지. 네가 우수마발이든 상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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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파괴, 소통 그리고 분서입문

 

 지난 토요일 얼떨결에 나온 재미와 소통에 대한 꼭지의 기억이 선명치 못하고, 기우뚱한 균형의 내력도 관점이 다른 듯하다. 그래서 다시 되짚어보는데, 끌여오는 책이 [진보를 연찬하다]와 생활상의 맥락을 한눈으로 보게해주는 양장본이다. 북하우스의 HISTORY와 조르쥬디뷰의 역사는 조금 평면적인 느낌이어서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다 싶다. 견줘서 나에겐 편하다.  

1. 재미를 휴머니티와 동등한 가치를 둔다.[책을 봅시다란 프로그램 시리즈의 김영희 피디의 강연 주제란다. 혹 재미의 가치나 타 가치와 연결에 대해 의심하거나, 무딘 모임은 강연을 들어보길 권면한다.]  계몽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의 아이들과 경향들은 재미없는 경향에 저항하는 것뿐이다. 위에서 아래로 퍼부어지기만 하는 일방적인 계몽에 등을 돌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쌍방향의 계몽. 그게 바로 재미의 정체가 아닐까? 소통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소통과 통합이 아닌 연대를 원한다면 필수항목으로 말한다. 사람냄새가 물씬 풍기는 재미가 계몽과 소통과 연대가 아니라 한몸이란 사실을 주지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증오의 힘에 편승해서 지위재로 누려왔던 과거가 아니라, 겸손재가 아이들이 세대가 요구하는 것이다란다. 

2. 더러운 '민주주의'도 좋아해야 한다. ;진보는 낡은 것을 허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짓는 것이다. 새로운 인간 없이는 새로운 진보가 실현되기 어렵다. 우파는 힘을 과장하기 쉽고, 좌파는 부끄러움을 과장하기 쉽다. (우리의 수구꼴통이 아니다) 그래서 우파는 힘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된다라고 하고, 좌파는 부끄러움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된다고 한다. 우파는 위악으로 흐르기 쉽고, 좌파는 위선으로 치장하기 쉽다. 문제는 선한 일을 하려다 보면 선한 척하게 된다. 그런데 그것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옆에 눈빛 마주치기를 피하고 있는, 행동이 소박하면 봐줄만 할 것이다. 말과 행동 사이에 어느 정도 기우뚱한 균형이 잡히는 셈이라 한다.  그런데 이것을 우습게 보일 수도 있는데, 그것은 말과 행동을 기우뚱하게 맞추기 위해서는 어중간할지 모른다고 비판할 지 모르지만 정작 하는 사람은 새파란 칼날에 베일 때의 싸한 아픔의 연속이라는 몸의 고통에 마음을 주어야 한다. 아마 그것이 말과 행동의 방향을 보는 눈. 말을 보는 것이 아니라 행위를 함께 봐서 몸의 영역이 겨우 보이게 될지 모른다. 한번 해보면 안다. 콧방귀끼는 짓들이 얼마나 아픈지 말이다. 그래야 아픔의 공감대가 서로 열린다. 어쨌거나 우리는 개도국 보통인간으로 살아 세속화와 상품화에 당분간 벗어나기 힘들다. 그러니 현실을 인정하란 소리냐구 되묻지는 마라. 

3. 익산 희망연대 홈페이지를 찾아보았다. 장수 좋은 마을 멍덕골은 찾아보지 못했다. 장수 번안이 메모해놓은 것의 전부다. 연찬하는 방식은 토론의 한방법으로 상대방을 논리적으로 설득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각자가 가지고 있는 더알거나 깨우치는 방향으로 가는 것으로 읽혔다. 강독회에 논어연찬...이란 방법이 언듯 보인다. 얼개에는 큰 불만이 없지만 그물이 너무 큰 것이 아닐까 드문드문 공백이 많아 보인다.(전적인 개인소견) 그러다가 모임 생각을 해본다. 모임이란 것이 어쩔 수 없이 마음이 모아지고 돌아가는 하나하나 조바심날 때는 모임이 벼려져 그 마음의 행위로 진행이 되는 것 같다. 문제는 그다지 시간에 대해 열려있지 않기에 그 시간에 대한 피로도를 생각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 시간단위가 5년이 될 수도 10년, 그 이상이 될 수도 있겠지만 피로의 축적은 결코 바람직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열심과 모임 한끝에 모여진 마음들로 끌고 나갈 수는 있지만 축적된 피로의 회복은 헌신이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헌신과 열정이 가장 약한 것은 시간이다. 햇빛에 바래듯 너무 쉽게 색이 얕아질 수 있다.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뢰하게. -  거두며 강준만님의 글이 생각난다.  연고주의나 인정투쟁의 방향전환을 말한다. 공공적 연대주의인데 지역을 더 공공연히 말하고(물론 서울 수도권 경기가 아니다) 더 출세한 사람을 따라잡자는 인정투쟁이 아니라 누가 더 기부를 많이 하고, 더 자원봉사를 많이 하고, 더 공익활동을 많이하는가? 학교들이 지역들이 더 더 인정받기 위해 학연지연혈연을 들먹였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우파든 좌파든 해보고 얘기해봐라. 아마 싸한 아픔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겨우 개나 걸의 공간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그래 몸좌빨이라고 할까? 머리좌빨이 아니라...가슴으로 조금이라도 중심이동을 해볼까? 

3. [-려고하거나], [-하는]에 대해선 그래도 동선의 궤적을 나무라지 않는 것 같다. 모임이 사람들이 모른다고, 몰라서 이렇게 한다고 하지만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로방향에 대해 마음이 곤두서있다는 점이다. 그 곤두섬과 기우뚱한 방향이 모임을 바로 세우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그 방향성의 물리적인 피로도는 어떨까? 몇몇의 좌불안에서 예민하게 시작한 동선이 서서히 속력도 방향의 움직임도 줄어든다면 말이다. 문제는 그 피로도의 누적에 대해 의외로 무심한 것은 아닐까? 움직이는 한 모임은 서지 않는다. 문제는 과부하이다. 과잉의 방향이나 사명감은 어깨위에 하나하나씩 무거워지는 돌멩이의 무게다. 휴식도 동선도 과하거나 부족한 움직임도 경계가 필요한 것일게다.

[진보를 연찬하다]에 일정부분 동의1)하지만, 그 그물이 고기를 잡기에 너무 느슨하고 넓고 크다. 숭숭 다니는 고기를 잡을 길이 없다. 그물을 튼튼히 하는 일이라면 헌신에 동의하지만 세목 세세목은 현실의 켜가 많이 뭉뚱그려져 있는 것 같다
. 09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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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과 샛별의 변주  콕!--

뱀발. 서재에 다녀오다. 두툼한 책 두권을 넣어오는데 달과 별이 알맞은 거리를 두고 빛난다. 그렇게 오는 내내 번갈아 보고나니 너-나를 한참 빗대어본다. 눈물한점. 향기한점. 꽃한점. 파르란 애기거미 하나. 꿀도 흐르고 말이다. 그렇게 정신없을 무렵 산이 다가서고 구름이 다가선다. 저편이 남겨두고 마음만 잰 걸음이다. 음력 구월하고도 10일이다. 어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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