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조금(쿡 cook해요)--
1. 중간존재 - 대대로 계속되는 이 개혁은 개인적으로 본다면 두려운 것이리라. 하지만....민족의 역사에서 보면 이것은 아주 짧은 시간일 뿐이다.--사물의 변화과정에는 얼마간 중간 존재가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동물과 식물 사이, 척추동물과 무척추동물 사이에도 모두 중간존재가 있다. 진화의 사슬에서 모든 것은 중간 존재라고까지 얘기할 수 있다.--세상만사 모든 만물이 하늘이 맡긴 중간 존재라는 책임을 다하고 있을 분이므로 어둠과 광명 사이에 끼인, 심지어 아직 절반이나 어두운 그림자로 덮여 있는 나는 고뇌할 필요도,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다. 희생을 떠맡아야만 하는 필연성을 논증하면, 앞서 스스로에게 지녔던 불만은 사라질 수 있지 않은가?
--루쉰은 자신이 분명히 미래에 속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 즉 자기는 미래가 요구하는 기준에 부합하지 않을지도 모르며 그곳으로부터 거절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선비는 만민의 우두머리나 지식인은 사회의 양심이라는 것 모두 스스로 높다 여기며, 높다란 곳에서 아래를 굽어보는 듯한 태도이다. ..혁명의 시대에는 언제나 낯빛이 창백하고 누렇게 뜬 문학가가 많다. 거대하게 밀려오는 새로운 물결을 향해 돌진하는 문학가들은 늘 그랬듯이 끝내 파도에 묻혀 사라지거나 상처를 입는다..
루쉰은 이렇게 여기진 않았을까? 미래, 자기자신, 지식인, 문학, 지금 이 모든 것들을 진흙에 짓이겨서 온통 너저분하고 새까맣게 만들어 놓았다. 세상은 캄캄한 어둠이고, 사회는 원체 험악한 곳이므로 이런 세상과 사회에 몸을 담고 있는 이상, 고통과 고생은 피할 수 없는 일이리라고. 149-152
어둠이 나를 삼켜 버릴 수도, 광명이 나를 사라지게 할 수도 있다....마침내 빛과 어둠 사이에서 방황하며, 해질녘이 되었는지 새벽녘이 밝아 오는지 나는 알 수 없다. [광인일기] 끝부분.
2.
어떤 시골 여인이 목사에게 고달팠던 반평생을 일일이 늘어놓으며 도움을 청했습니다. 목사는 다 들은 다음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참으십시오. 하나님께선 당신이 살아서는 고달파도 죽어서는 반드시 복을 받도록 하셨습니다." 사실 옛날이고 지금이고 성현이나 철학자, 학자들의 말씀이 이보다 고상하고 현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얘기하는 '미래'란 것도, 바로 목사가 말한 '죽은 뒤'가 아니겠는지요.
'미래는 반드시 행복하리라'는 견해. --지금 거대한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하지만 거대함이라는 말은, 거대함에서 생명을 얻는다는 얘기만은 아니며, 거대함에서 죽음이 생겨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사랑을 위해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이 거대한 시대를 위해 생명을 잃었다. 그들은 유쾌함과 만족감으로, 그리고 겉보기에만 좋은 시끌벅적한 사건으로, 관련자들과 방관자들에게 바쳐졌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중압감을 주었다. 이 중압감이 제거되는 그때는 죽음이 아니라 삶이다. 이것이야말로 거대한 시대이다.
3.
비관에서 허무로 생각을 옮겨 가는 일은, 정신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중국 문인들의 자연스런 본능으로 수천 년 동안 이미 형성된 터였다. 이성과 두뇌가 끌어 준다 할 것도 없이, 무의식적으로 이런 이동을 완성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얼마나 격렬한 반전통의 몸짓을 벌였건 간에 일단 비관의 정서로 빠지고 나면 무의식적으로 허무를 향해 구해 달라고 애원하였다.
4.
내 비난은 사회의 여러 가지 어둠에 대한 것이었지 국민당만 상대로 한 것은 아니었네. 이 어둠의 근원은 멀게는 일이천 년 전에, 또 몇백 년 몇십 년 전에도 있었던 것이며, 국민당이 집권한 뒤에도 그 뿌리를 근절하지 못한 것뿐이라네. 지금 내 입을 열지 못하게 하다니, 도합 몇천 년에 걸친 모든 어둠을 그자들은 은폐해 버리기로 작정한 것 같구만...
지금은 누군가 무슨 일을 하기만(35년 6월) 하면, 꼭 다른 누군가가 대단한 이론을 들어가며 비난을 퍼붓습니다. 예를 들면 '목판화의 최종 목적과 가치'를 물은 일이 바로 그러합니다....사람은 진화라는 긴 밧줄의 한 고리이고, 목판화와 다른 예술도 그렇게 각자 이 긴 밧줄 위에서 고리의 의무를 다하며, 분투하고 정진하며 아름답게 만드는 인간의 여러 행동을 돕고 있습니다. 목판화, 삶, 우주의 최후는 어떠할까요? 지금은 아직 여기에 대답할 수 있는 자가 없습니다. 아마도 영원일지도, 혹은 죽음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우리는 혹은 죽음일지도 모른다는 이유 때문에 그만둘 수는 없습니다. 마치 우리가 분명히 죽을 존재임을 알면서도, 밥은 먹으려 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지금 나는 무산계급 문학운동을 지도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있고, 내 몇몇 젊은 벗들은 내가 무산계급 작가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아직도 굽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정말 무산계급 작가인 양 꾸며대는 일은 정말 유치하고 가소롭기 짝이 없습니다. 내뿌리는 농촌과 농민, 그리고 학자의 생활 속에 내려진 것입니다. 또한 중국의 청년 지식인들이 노동자와 농민의 생활, 희망과 고통 등의 체험 없이 무산계급의 문학을 창작할 수 있으리라고도 믿지 않습니다.
머리 속에는 온갖 구세대의 잔재를 담고 있으면서도, 고의로 그걸 숨기고는 연기하듯 자기를 가리키며 '오직 나만이 무산계급니다.'라고 말하지 말라
나더러 나 자신을 얘기하라면, 몰락한 선비, 다만 좀 새로운 사상을 지녔다뿐이라고 하겠다.
5.
앞에 길이 없음을 분명히 알면서도 비틀거리며 들판으로 돌진하는 나그네. 결국은 텅 빈 싸움터에서 늙어 갈 터이지만 그래도 변함없이 칼을 드는 전사, 인간을 소생케 할지도 혹은 멸종시킬지도 모르는 그 반역의 용사, 이 모두는 한가지 유형이다. 바로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기는 정신, 절망에 대한 반항을 표현한다.
6.
가장 무서운 건 무엇보다도 앞에선 '네' 하면서 뒤에선 '아니오'하는 소위 '전우'라는 자들인데....내 후방을 방어하기 위해 나는 비스듬히 서 있어야만 하기 때문에 적을 정면으로 대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앞뒤를 다 살피는 일은 유달리 힘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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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발.
1. 출장으로 올라오는 길 마저 보다. 오래된 책이긴 한데 맥락을 이어주어 이해하기가 수월한 것 같다. 동생의 삶(홍위병의 박해를 받아 죽음)과 부인의 삶도 보태어져 있다. 부인은 노신 유고를 정리하고 루쉰문집을 편집하는 등 업적 정리 발굴에 공헌을 하였다고 한다. 아들을 데리고 1948년 공산당이 통치하는 해방구로 들어갔고, 한국전쟁때 위문사절단으로 한반도를 방문하고 전국 부녀자연합회 부주석을 역임하는 등 사회활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다고 한다.
2. 말년 공산당, 좌련활동 등의 상황과 이전 단편집, 처한 상황들을 번갈아 보여줘 읽기가 쉽다. 접힌 곳처럼 몇가지가 그를 이해하는데 길잡이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변화의 지점에 대한 시선에 눈여겨 보다.
3. 어릴 때 삼미서당 및 글공부를 중시여기는 집안이라 왠만한 고서는 물론, 종류에 불문하고 책들이 있었다 하면 동화꾸미는 일, 탕구지의 자세한 그림을 모두 베끼거나, 화첩을 본떠 그렸다고 한다. 말년 송말명말 등에 대한 책들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4. 원제는 신노신전인데 검색하다보니 최근 상하권으로 노신평전이 나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