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장소의 혼과 장소감, 양자를 모두 훼손하는 사회적 정신적 과정들이 존재하며, 이것들이 지배하는 세계는 어떤 방식으로든 빈곤해진다고 변함없이 믿고 있다. 5 지리적 능력:이란 특정 장소에 존재하는 개인이며, 동시에 광범위한 환경적 사회적 힘으로 이루어진 네트워크의 한 부분으로 존재하는 우리가 삶의 직접성을 깨닫는 능력을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장소는 우리가 외부 세계를 내다보는 거점이기도 하다.7
[ ] 1. 장소의 경험과 개념의 범위를 보여 주기 위하여 공간과 장소의 관계를 고찰하는 것. 2. 장소 경험의 다양한 구성 요소와 강도를 탐구하였고, 사람들과 그들이 살아가고 경험하는 장소간에는 깊은 심리학적 연계가 있다는 주장 3. 장소의 정체성과 사람들이 장소에 대해 가지는 정체성의 본질에 대한 분석 4. 장소감과 장소에 대한 애착이 장소와 경관 만들기 속에서 드러나는 방식을 기술하는 것. 12 현상학은 직접 경험으로 이루어진 생활 세계의 현상을 출발점으로 하여, 주의 깊은 관찰과 기술이라는 엄밀한 방식으로 이러한 현상들을 밝히려는 철학 전통이다. 13


[ ] 장소와 지리학의 현상학적인 기초: 장소에 관한 지식은 지식을 연계하는 데 불가결한 고리가 된다....하이데거는 장소는 인간 실존이 외부와 맺는 유대를 드러내는 동시에 인간의 자유와 실재성의 깊이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인간을 위치시킨다. 25 공식적인 지리학은 인간의 본성을 반영하고 드러내며 세계에 대한 우리의 경험 속에 있는 질서와 의미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인간을 위한 거울이라고 했다. 31 지리란 무엇보다도 의미로 가득찬 세계를 심오하고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며 인간 실존의 기초 그 자체와 같은 것...지리학은 그의 실존을 실현하기 위한 한가지 수단으로 이해되어야 한다.32 메를로 퐁티, 세계는 지식보다 우선하는 것이며, 지식이란 항상 이 세계에 대한 언급이다. 모든 과학적 도식화는 이 세계와 관련된 추상적인 기호언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마치 우리가 지리라는 것이 무엇인지 학교에서 배우기 전에, 시골에서 숲이나 들판, 강에서 미리 배우는 것과 같다. 33 장소가 정말로 인간이 세계에 존재하는 데 근본적인 속성이라면, 또 개인이나 집단에게 있어 안정과 정체성의 원천이라면, 의미 있는 장소를 경험하고 창조하고 유지하는 방법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35


[ ] 공간과 장소: 무의식적이고 실용적인 경험 공간, 개별적인 인간들이 의식적으로 경험하는 지각 공간, 건축물 같은 ‘인공 공간‘, 추상적인 기하학적 공간 등으로 나눠볼 수 있다. 이중에서 ‘실존‘ 또는 ‘생활‘ 공간이 특히 중요하다. 40 한 사회가 공간에 대하여 무관심한 듯이 보이는 때에도 무의식적인 구조가 생기는 것이다. 41 지각공간 ˝우리는 감각만으로 공간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우리는 공간 안에서 살아가고, 공간 속에 우리의 인성을 투영하며, 공간에 감성의 끈으로 묶여 있다. 즉, 공간은 단순히 지각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인간의 삶이 이루어지는 곳이다.....‘대지로부터 생성된 공간‘이기도 하다....그것은 우리가 지표면의 물질적 친밀감에서 느끼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경험이며, 뿌리내림이기도 하고, 지리적 실체를 위한 일종의 토대이다. 44 기억 속의 장소와 현재 중요한 장소 둘다 본질적으로 보다 넓은 지각 공간의 구조 속에서 의미와 의도가 집중된 곳이다.....일상 세계는 문화의 세계이다. 시초부터, 생활 세계가 우리에게 의미의 우주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해석해야만 하는 의미의 틀이며, 오직 생활 세계 속에서의 우리의 행위를 통해서만 구성되는 의미의 상호관계들로 이루어진 틀이다. 47 실존공간, 인간은 자신의 의도를 지구 위에 새긴다. 48 이 실존 공간은 정교한 생각이나 사전 계획이 필요하지 않은 무의식적인 것이지만, 다양한 공간 요소들이 지닌 의미들로 완벽하게 구성된 맥락 속에서 경험되고 창조된다. 50 실존공간은 문화적으로 정의되기 때문에 다른 문화의 공간을 경험하기는 어렵다. 52 지리적 공간은 객관적이거나 중립적이지 않고, 사람들에 의해서 의미로 가득 차 있다. 다델은 지리적 공간이란 ˝본질적으로,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 어떤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성립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한다. 55 거주와 구축하기, 땅과 하늘, 그리고 신과 언젠가는 죽어야만 하는 인간의 융합이 완성되면, 지리적 공간은 본질적으로 신성해진다. 따라서 이 지리적 공간을 무의식적이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설계하고 건축하는, 문자가 없고 토속적인 문화의 공간과 동일시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신성하고 신화적인 지리를 마주하게 되는데, 세속적 지리와 반대되는, 사실상 유일한 진짜의 지리이다. 57 건축물에 대한 경험의 강도나 깊이가 똑같을 수 없다. 동시에 우리가 이런 경험들을 빈약한 것으로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은 여전히 그것들이 사람들의 의도, 희망, 두려움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58 계획공간은 직접 경험이나 상상력 있는 경험이 아니라 지도상의 질서나 토지 이용의 효율성과 관련된다. 65 인지 공간은 동질적인 공간이며 어느 곳에서나 어떤 방향에서나 같은 값을 갖는다. 67 잔느 허쉬는 공간을 선험적, 실용적, 사회적, 물리적, 수학적 공간으로 분류한다...슐츠는 실용 공간은 인간을 자연적, 생물적 환경과 결합시키며, 지각 공간은 한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에 필수적이며, 실존 공간은 인간을 사회적, 문화적 전체에 소속되게 하며, 인지 공간은 인간이 공간에 대해 사고할 수 있다는 의미이며, 논리 공간은...다른 공간들을 묘사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해준다고 한다. 70


[ ] 장소의 본질: 장소의 혼은 그 경관 속에 있다....한꺼번에 프랑스인을 절멸시키고 그 나라에 타타르인들을 살게 하더라도, 호기심, 착한 생활에 대한 연민, 열정적인 개인주의는 여전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장소안에 항상 있는 특성이다. 80 새로운 곳에서 처음 며칠을 시간이 젊다. 말하자면, 넓다랗고 거침없는 흐름이다....그리고 나서 ‘그 곳에 익숙해지게 되면‘ 점점 그 곳이 줄어들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85 고향에 대한 애착은 주로 개인이 그 곳의 물리적 환경과 맺는 관게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맺는 상호 작용과 관련이 있다. 85 장소는 경험적으로 쉽게 분리될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장소는 ‘공적‘이다. 장소는 상징과 의미를 공유하면서 경험을 함께 하고 관련을 맺음으로써 창조되고 알려지기 때문이다. 88 공식적인 공공 장소가 거대하고 기념비적일수록, 시민들의 사적 환경은 점점 더 왜소해지고, 시민들은 공식적인 환경에 점점 더 주눅들게 되는 경향이 있다. 90 카뮈 ˝수 백만 개의 눈이 이 경관을 전망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겐 그 경관이 하늘이 보여준 최초의 미소였다. 그것은 내 마음을 경관의 가장 심오한 의미속으로 데려갔다.˝ 이는 문자 그대로 장소애, 즉 강렬하게 개인적이고 심오하게 의미 있는 장소와의 만남이다. 93 인간은 누구나 다양한 뿌리를 가질 필요가 있다. 인간은 자신이 일부를 이루는 환경을 통해서 도덕적, 지적, 정신적 삶 전체를 영위해야만 한다. 94 장소는 자체의 특성과 그것이 당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의미 때문에 장소에 대한 진정한 책임과 존경이 존재한다. 실제로 어떤 장소에 대한 전적인 관심, 사람이 할 수 있는 어느 것 못지 않은 심오한 관심이 거기에 있다. 소중히 한다는 것은 실제로 ˝인간이 세계와 맺는 관계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95 집은 단순히 어쩌다 우연히 살게 된 가옥이 아니다. 그것은 어디에든 있는 것이거나 교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의미의 중심인 것이다. 97우리의 장소 경험, 특히 집에 대한 경험은 변증법적인 것이다. 즉, 벗어나고 싶은 욕망과 정착하고 싶은 욕구가 균형을 이룬다. 102 장소에는 우리의 의도, 태도, 목적과 경험이 모두 집중되어 있다...개인은 자신의 장소와 별개가 아니다. 그가 바로 장소이다. 104


[ ] 장소의 정체성: 정체성은 정태적이거나 변화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나 태도의 변동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정체성은 단일하고 획일적인 것이 아니고 여러가지 요소와 형태를 가진다. 109 장소의 의미는 인간의 의도와 경험을 속성으로 한다. 의미는 변화할 수 있으며, 한 대상에서 다른 대상으로 옮겨질 수 있다. 그리고 의미는 복합성, 모호성, 명확성 등 자신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113 물리적 환경, 인간 활동, 의미는 장소 정체성의 원재료이며, 그것들간의 변증법적 연계는 장소 정체성을 구조화하는 기본적인 관계다. 114 지표면의 다양한 장소들은 다양한 생명의 표출, 다양한 진동, 다양한 화학적 증발, 다양한 별들이 가진 다양한 자력을 가지고 있다. 장소의 정신은 위대하게도 실재하는 것이다. 115 내부에서 어떤 곳을 경험한다는 것은, 당신이 장소에 둘러싸여 그 일부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내부외부의 구분은 단순하지만 가장 기초적인 이원성으로, 우리의 생활 공간 경험에 기초가 되며 장소의 본질을 제공한다. 116 문턱이란 내부와 외부의 경계일 뿐 아니라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의 이동 가능성을 말해준다....외부와 내부는 서로 매우 밀접한 관계여서 언제 둘의 위치가 역전되고 대립하는 입장으로 바뀔지는 모르는 일이다. 117 시인, 화가, 음악가는 이 세계를 발견해 내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 안에서 태어난 것처럼 보인다. 123 보울딩은 이미지를 경험 태도 기억이나, 직접적 감각의 산물인 심리적 그림으로 정의했다. 129 화가들은 똑 같은 풍경을 그렸지만, 네 개의 그림은 완전히 달랐다. 그 예술가들의 개성이 다르듯이 서로 달랐다.˝ 마찬가지로 장소의 정체성은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의도 개성 상황에 따라 다양하다. 131 모든 욕구는 가장 먼저 사물과 사람을 주체 자신의 활동에 결합시키려 하는 것이다. 곧, 외부 세계를 이미 구축된 정신 구조로 ‘동화‘시키고, 그 다음에 이 구조를 미묘한 변화에 대한 함수로 재조정하는 것, 즉 외부 사물에 정신 구조를 ‘적응‘시키는 것이다. 그는 자아나 사물에 대한 지식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아와 사물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지식으로 시작된다고 주장한다. 135


[ ] 장소감과 참된 장소 만들기 : 장소의 지속에 대한 감성은 사람들이 현실감을 가지는데 필수적이다. 145 인간의 참된 삶이란...외부에 있는 것들을 주조하고 지배하는 독립된 힘이다. 곧 자기 주위의 모든 것을 음식이나 도구로 변환시키는 동화의 힘이다. 그리고 그것은....결코 판단 원칙으로서의 자율성을 내버리지 않는다. 거짓된 삶은 외부의 무게에 짓눌려서 그것들을 동화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이 주조되어 버리는 삶이다. 146 진정한 장소감이란 무엇보다도 내부에 있다는 느낌이며, 개인으로서 그리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나의 장소에 속해 있다는 느낌이다. 이 소속감은 곰곰히 생각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으로, 집이나 고향, 혹은 지역이나 국가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150 의식적인 장소감이란 ˝장소가 동물적인 생존 수준을 넘어서는 어떤 것으로서, 기쁨, 놀람, 경이로움, 공포 등을 전달해 줄 수 있으며, 그런 의사 소통에 식견을 가지고 경청하는 능력은 인생을 더욱 풍부하게 한다.˝ 151 무의식적인 장소감은 주로 전통적인 문제에 대한 전통적인 해법을 이용해서 풀어가는 무의식적인 설계 절차를 통해 표출된다. 그러므로 무의식적인 장소감은 한 문화의 물리적, 사회적, 미학적, 정신적 필요를 전체적으로 반영하는 장소를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고, 그 장소 안에서 그러한 모든 요소들은 서로 잘 적응하고 있다. 153 유럽에서 진정하게 만들어진 경관과 장소는 본질적으로 과거 수공업 문화의 유물이다. 156 진정성의 획득...그 차이는 당신이 직접 그림을 그리는 것과, 복제 그림을 얻어서 액자에 넣는 것과 같다. 157 장소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보통 오랜 시간에 걸쳐,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생활을 통해 형성되어야만 한다. 그들의 애정으로 장소에 스케일과 의미가 부여되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장소가 보존되어야 한다. 173


[ ] 장소의 상실: 무장소성 : 다양한 경관과 의미 있는 장소가 결핍된, 일종의 무장소의 지리가 나타날 가능성을 나타낸다. 또한 우리가 현재 무장소성의 힘에 지배당하고 있으며 장소감을 상실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177 무장소성이라는 것을 후기 산업 세계 어는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라고 단순화시키고, 더 나은 계획과 설계를 통해 이 무장소성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쉽지만, 그것은 잘못이다. 중요한 것은 무장소성이 일종의 태도이며, 이러한 태도가 점점 지배적인 현상이 됨에 따라 깊이 있는 장소감을 가지거나 장소를 진정하게 창출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179 비진정성이 진정성보다 하위 차원이 아니라 다른 차원일 뿐이라는 점이다. 180 이 비진정성의 세계에서는 예외적인 것이 항상 평균적인 것으로 평가절하돼 버린다. 180 사람이 자신의 문제를 인간적 관계라는 입장에 서서, 다시 말해서 자신의 운명, 욕구, 행복의 편에서 바라보느냐, 아니면 냉정하고 탐색적인 사고의 촉수로 문제들을 비인간적으로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느냐에 따라, 세상의 모든 차이들이 생겨난다....냉정하고 탐색적인 사고는 분명히 바로 그 초연함과 편협함 때문에 진정치 못하다...181 기술때문에 우리는 눈앞의 분주함, 사물에 대한 집착, 근시안적인 목표의 성취에만 매달리게 된다. 필연적으로 공공의 세계를 조작하는 기술자는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광범위한 사적인 구조를 보지 못하고,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지 못하게 된다.˝ 181 집을 짓는다거나 새로운 땅에 정착한다는 것은 아주 근본적인 일로서, 세계를 다시 세우는 것과 맞먹는다....주택이란 ˝거주를 위한 기계‘라고 말한 르 코르뷔제의 견해를 받아들여서 엘리아데는 ˝당신은 자전거나, 냉장고, 자동차를 바꾸듯이 당신이 거주하는 기계를 자주 바꿀 수 있다....이러한 집의 상호교환 가능성은 집의 중요성이 감소함으로써 가능해졌으며, 동시에 집의 의미 축소를 촉진하다. 185 그들이 마주치는 어떤 것도 그들을 과거나 미래로 데려가지 않으며, 그 자체를 넘어서는 생각을 이끌어 내는 것도 없다. 어떤 의향이나 관계도 가지지 않는다. 어떤 것에도 역사나 약속이 없다. 모든 것이 그냥 혼자 서 있으며, 장면이 자꾸 바뀌는 쇼처럼 번갈아 오고갈 뿐이고, 구경꾼은 그 자리에 그냥 남는다. 193 만족할만한 효율성 달성이 목표가 디는 한, 장소는 효율성에 침해되어 사실상 아주 부수적인 것이 되어 버린다. 개인이나 공동체의 생활과 가치보다 추상적, 경제적, 공공적 이익을 강조하는 접근의 편협성은 심각한 비진정성이다.....모든 과학적인 질문이 해답을 찾게 되더라도, 인간의 삶의 문제는 고스란히 손대지 못한 채 남는다. 196 매스컴 대중문화, 대기업, 중앙권력, 경제체제는 기술중심적 가치관과 연결되기 때문에 가시적 경험적으로 유사한 경관을 창조할 때나 현존하는 장소를 파괴할 때에 이것들이 서로 연계하고, 결합하며, 보완하는 중핵으로 기능한다는 점이다...이런 것들이 경관을 변화시키는 데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의미 있고 다양한 장소를 창조하고 유지하는 데는 거의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97 옛 길은 도시에서 출발해 다른 도시로 이끌어 준다. 새 길은 어디에서나 출발하지만, 아무 곳에도 도달하지 못한다. 198 관광은 동질화하는 힘이며 그 결과는 관광을 유발시킨 국지적, 지역적 경관의 파괴이다. 그리고 틀에 박힌 관광 건축물과 인공 경관, 가짜 장소로 대체되는 것이다. 203 단골이란 금박글씨나 간판때문이 아니라, ....상인들이 소비자의 백치 같은 행위보다, 자신의 진실과 근면을 더 신뢰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고, 또 얼마나 행복하고 현명해지겠는가 205 디즈니화의 추구는 현재의 우리 자신을, 우리의 행동이나, 사고, 상상력을 울타리에 가둔다. 이런 활동이 지배적이 되었으며, 공공영역이나 사적 영역 양쪽 모두를 지배하는 방식이 되었다. 216 미래적이고 혁신적인 것, 혹은 시대를 의식적으로 앞서가는 경관을 창조하는 것은, 기술의 표준화 원리에 기초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이는 진정으로 ‘국제적‘이면서 무장소적인 것이 된다. 미래화는 주목할만한 무장소의 형식이다. 221 서브토피아는 쇼핑 센터를 지나 네 번째 집에서 오른쪽으로 꺾은 다음, 다시 세 번째 집에서...왼쪽으로.... 223 장소감과 장소에 대한 애착은 중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감정이 없는 것이 경제적인 미덕이다...237


[ ] 오늘날의 경관경험: 과거의 장소가 좋았고 오늘날의 무장소는 나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장소들을 옛날식으로 만들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고정 관념은 너무나 단순하다. 경관은 삶의 미학적 배경만은 아니다. 그것은 문화적 태도와 활동을 표현하며 규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태도가 크게 변화하지 않는 한, 경관 역시 크게 변화할 수 없다. 250 낯선 길을 여행할 때, 새로운 도시를 방문할 때, 새 집을 살 때, 그리고 그냥 주위를 둘러볼 때도, 경관의 모습과 특징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우연한 관심이 절정 경험으로 완전히 변할 수도 있다. 251 절정 경험으로서 장소애는 우리에게 환희나 엑스타시, 공포나 절망, 주변 환경과의 일체감, 성취감 등의 느낌을 준다. 252...구소가 알프스의 경치는 정신을 고양시킨다고 주장하기 전에는, 여행가들은 무시무시한 이 산을 보지 않으려고 마차에 차양을 치곤했다....인공적이든 자연적이든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시각과 주목이 차별적이라는 점이다.. 새로운 경관은 새로운 신념, 미학, 기술 경제의 독특한 산물이자 표현이다. 253 농부가 볼 때 바위와 산들은 보기 흉하다. 경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그러나 산업화 시대의 인간은 기술적 수단을 이용하여 어디에서나 무엇이든지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은 모든 경험적 관계들이 의미 없어졌다는 것을 함축한다....앙리 르페브르는 경쟁적 자본주의가 도래하기 전인 19세기에는 빈곤과 억압의 한가운데서도 스타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아주 작은 물건에도 의미를 부여한 숙련 노동이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254 성찰의 경관은 공공경관이다. 공공의 소비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의미에서 이다. ..이 때 공공은 사실 일종의 환영인지도 모른다. ..공공의 경관은 사람들을 고양시키거나 침체시키지도 않고, 그렇다고 사람들을 도전하게 하지도 않으면서, 너무도 쉽게 수용된다. 또한 그것은 매우 유쾌하고 편안하다. 그것은 적절한 기능을 하다.. 이런 경관은 헌신을 강화하는 데 필요한 심오한 가치관과 도덕적 이상이 결여된 경관이다. 258 부조리한 경관: 카뮈는 아무 것도 가능하지 않고 모든 것이 이미 주어져 있다는 제한된 우주관을 받아들인다면, 그 우주로부터 힘을 끌어올 수 있고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각자가 현재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려는 욕구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이는 선호나 선택, 가치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는 수용의 삶을 위한 토대이다. 259 부조리한 경관은 다른 상품들처럼 가공되고 처리되고 장식될 수 있지만, 유머가 없고 지독하게 심각한 상품이다. 262 도시마다에 어느 정도 친숙감을 제공함으로써 이러한 무장소적인 가게와 서비스 체인, 건축물 덕분에 현대 생활의 특징인 고도의 이동성을 견뎌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동일성은 상이한 환경들을 접하는 우리들의 경험에 연속성을 부여해준다. 272 현대 사회의 경관은 합리성이란 신화, 이상적인 과거와 이상적인 미래라는 신화, 진보와 관용이라는 신화, 개인의 자유와 물질적 만족이라는 신화, 겨울에는 스위스처럼 여름에는 지중해처럼 이라는 신화, 북미 개척자들의 통나무집 신화를 표현하고 있다. 279 오늘날의 경관에 주입되어 있는 신화의 주요 특징은 단순함이다. 신화는 직접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의 이면을 보지 못하게 함으로서, 인간의 행동을 본질적으로 단순하게 하고, 모든 변증법을 제거시켜 버린다. 신화는 깊이가 없고, 완전히 열려진 세게이며, 자명한 것에만 빠져 있으며, 더없이 즐거운 명증성을 내세우기 때문에, 모순없는 세상을 만들어 낸다....신화에는 역사가 없다....소요하기만 하면 된다...신화는 모든 이질성을 동일성으로 환원시킨다. 281 현대 경관에 대한 경험이 모두 아무 가치가 없고 혐오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경관에 주목할 때 항상 험악한 냉소나 체념적인 기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현대 환경에도 즐겁고 매력적인 것이 많이 있다. 많은 건물과 개발이 극적이고 흥미롭다. ...일상성은 관료주의적 소비 사회의 함정일 수도 있지만, 편안함과 안전을 뜻하기도 한다...오늘날의 경관이 최근의 현상이기 때문에, 그 특징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든가 편리성과 효율성이 반드시 부조리와 무장소를 야기한다거나, 혹은 현대 경관에서는 매우 의미 깊은 장소들이 생겨날 전망이 없다고 믿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284

볕뉘.

0. 술은 좋은 술과 나쁜 술이 있는 것이 아니다. 좋은 술과 더 좋은 술이 있을 뿐이다.란 글귀를 보았다. 장소, 획일화되고 단순화된 부조리한 경관이 나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로 인한 우리의 일상이 부담없이 유지되는 것이기도 하다. 좋다 나쁘다로 문제를 치환시키면 나쁜 것을 좋게 만들면 문제는 해결된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다. 그저 부조리로 인식하게 되면, 미래를 쥐어짜내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지금에 최선을 다하게 된다. 보다 낫게하는 것에 시선의 변화가 필요하다. 선악이 아니다. 좋고 더 좋고의 문제다. 그래야 문제가 조금, 쓸데없이 지금을 미래에 덜 저당잡히게 되는 것은 아닐까?

1. 70년대초에 출판된 저자의 책은 철학자들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현상의 문제로 접근하면서 독특한 통찰을 불러 일으킨다. 부버, 루이스 멈퍼드, 기술에 대한 이해 등등 관심있는 사항들이 섞여있어 온전히 읽기 좋았다. 책날개에 있는 다른 책들도 관심이 가게 된다. 장소, 시간, 공간, 그리고 삶에 유효한 사유를 부드럽게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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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리부트 - 자라지 않은 아재

[ ] 어용시민의 탄생;포스트트루스 시대의 반지성주의 - 실제 일어난 일보다 개인적인 신념이나 감정이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력을 미치는 현상으로 2016년 옥스퍼드 사전은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팩트는 열띤 인정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수사일 뿐이다. 139-140

[ ] 사실을 가장한 감정과 신념이 지배하는 정치, 반권위주의가 아니라 하나의 권위를 거부하기 위해 또다른 권위에 기대는 습속, 김어준을 비롯해 대항 미디어로 평가되는 <나는꼼수다> 등의 팟캐스트들은 ‘포스트오소리티‘의 대표적인 얼굴이다. 151

[ ] 그 중심에서 한 시대를 이끌고 있었던 구루 김어준은 ‘무학의 통찰‘을 수시로 외쳤다....<나꼼수>가 반지성주의 및 음모론과 만나 일으켰던 시너지, 그 시너지의 효과,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지금 그들이 도달해 있는 위치는 비판적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음모론은 ‘당신이 모르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라는 자부심으로 이어진다. 이는 실제적인 근거가 빈약하고 일련의 환상에 기대고 있다는 점에서 나르시시즘적이다. 그런데 이 나르시시즘은 ‘나는 언제나 소수이면서 또한 소수자의 위치를 점한다. 그러므로 나는 정의롭고 옳다‘라는 자아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이런 피해자 서사와 만난 나르시시즘 안에서 ‘어용시민‘이 탄생한다. 152-153

[ ] 이들의 활동은 단수한 비지니스가 아니라 진심의 비지니스, 신념의 비지니스인 것이다. 난감함은 여기에 놓여 있는지도 모른다. 154/ 프레임 전쟁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전쟁의 핵심은 프레임만 있을 뿐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내용이 계속해서 사라지고 있다는 것, 결국 프레임만 남는다는 것은 포스트트루스의 정의 그 자체다. 155/진보와 어용과 지식인이 한자리에 설 수 있는 놀라운 광경은 반동적 반지성주의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다. 156

[ ] 괴물이라는 말로 느껴야 했던 죄책감과 수치심은, 다시 문재인이 집권했을 때, 그들은 이 복잡한 감정을 사유를 결여한 자긍심으로 뭉쳐냈다. 158/ 수치심을 모르는 이율배반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161

볕뉘

0. 선악의 서사가 잃을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지 않은가? 정치에만 기댄다는 어리석음은 어찌할 것인가? 비평이 필요한 지점이 여기가 아닐까? 당신은 어디쯤 서 있는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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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누스 푸디카

[ ] 녹 - 이파리로 가득한 숲속에서/나무는 얼굴이 어디일까 생각한다// 바람의 힘으로 사랑에서 떨어질 수 있다면//이파리들은/나무가 쥐고 있는 작은 칼/ 한 시절 사랑하다 지는 연인// 누군가 보자기가 되어/ 담을 수 없는 것을 담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일/ 떨어지기 위해 물방울이 시작하는 일// 두세해 전 얼었던 마음이/비로소 녹고//어디선가 ‘남쪽‘이라는 꽃이 필 것도 같은

[ ] 그의 시에서 인식의 주체는 이성이나 관념이 아니라, 기관과 감각이다. 귀가, 머리가 하지 못했던 일을 한다. 눈이, 볼 수 없다고 믿었던 것을 본다. 손이, 잡을 수 없거나 만질 수 없다고 여겨졌던 것을 커다란 획을 그으며 거머쥔다. 141

[ ] 박연준의 시는 이렇게 오로지 몸을 경우해서 당도할 모종의 상태, 가령 아물지 않은 채 존재하는 것, 잔존하는 끔찍한 것들이나 현존하지만 돌보지 않은 슬픔, 자주 울컥하거나, 간혹 울컥하게 만드는 순간과 순간의 정념들, 다소 식어버리거나 잠시 고조되거나 조금 뻗어나가거나 이내 흩어져버리는, 그러니까 움직이는 감정과 그 감정이 길을 낸 몸과 몸이 길을 내며 남겨놓은 정신-몸의 흔적들을 기록해낸다. 141

[ ] 시인은 스며드는 존재와 다르지 않다.....그래서 형체가 없는 저 어두운 것, 아픈 것, 깊이 파인 것과 그러한 곳에 고여 있는 정념을 불러내는 존재가 바로 시인이기 때문이다. 143

[ ] 박연준 시의 뛰어남은 시간이나 공간, 존재 등을 액체라는 유동성의 산물로 전환해내는 능력에서 자주 빚어진다. 145

[ ] ˝앓고 난 후 뒤늦게 대가리를 밀고 도착하는 감정˝은 그러니까 ‘실패하는 사랑‘이 아니라 ‘실패하는 실연‘을 말하는 데 바쳐진다. ˝버려도 돌아오는 나의 귀신들은/끝내 살아남은 것들˝(빈잔)은 사랑과의 관계에서는 차라리 역설이라고 해도 좋겠다. 152

[ ] 허기는, 에로티시즘의 에너지이자, ‘실연의 실패‘로 가득한 현실의 빈 잔, 현실의 구멍, 현실의 죽음이기도 할 것이다. 155

[ ] 외향적인 시선보다는 내면에서 차올라온 목소리가 한결 도드라지고, 하나의 중심으로 가지런히 수렴되는 이미지보다는 외부에서 걸어와 내면에서 폭발하면서 일시에 굳건한 자아와 통념을 붕괴시키며, 그 폐허의 자리에서 자신의 체럼과 감각을 독특한 시적 경험으로, 의미를 특수하게 조절하는 말의 찬란한 행렬과 낱말의 변주로 풀어낸다. 158

[ ] 몸이 쓴다. 기억이 쓴다. 감각이 쓴다. 몸-기억-감각이 고유한 시적 에끄리뛰르가 되어, 개인이라는 섬에서 탈출하여 또다른 타자의 섬에 발을 내딛고, 거기서 주관성의 주재자가 되어, 다시 살아나갈 힘을 얻는다.

0. 박연준 시집을 몇 권 사두고, 이 시집은 급히 취기를 담고 보았다. 말미 조재룡비평가의 글이라 주저하지 않고 보게 되었다.

1. 다시 만남이 예비되어 꼼꼼하게 보게 되지 않는 것이 실수일까? 그러면 어떻겠는가. 시와 비평이 잘 어우러져 좋다. 또 다른 시집을 꼼꼼이 볼 참이다.

2. 읽기가 서로 겹치는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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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레비나스 / 타인의 얼굴

1.

[ ] 아듀 - 신에게 맡긴다 233 데리다는 ˝아듀˝가 한정된 우리의 삶과 생각을 그 테두리를 넘어서는 무한으로, 잉여의 의미로 데려가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235

[ ] 레비나스의 타자 개념은 동일자와 대비되는 것이다. 그래서 레비나스의 타자는 곧 무한과 연결된다. 요컨대, 레비나스에게 무한은 우리가 지배할 수 있는 테두리 너머를, 우리의 지배에 대한 부정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타자는 우리의 지배 범위를 넘어서는 자이고, 그런 의미에서 무한한 자인 것이다. 236

[ 3 ] 레비나스는 죽음 자체나 죽음 저편을 주체적으로 탐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종류의 문제를 기각한다. 죽음 다음의 사태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일이고, 따라서 관심을 가져봐야 소용이 없다......레비나스의 출발점은 삶의 향유이고 반응이다. 삶이란 반응하고 응답하는 것이다. 그 삶 속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타자의 죽음이고 거기서 오는 의미이다.....응답-없음이란 타자의 죽음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습이다. 타자는 이런 무-응답의 상태를 피하기 위해 우리에게 호소한다. 우리는 그런 타자에게 응답해야 하는데, 이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238 죽음의 위협에 어쩔 수 없이 노출되어 있는 타자에게 내가 응답해야 함을, 내가 응답하지 않을 수 없음을 강하게 일깨우는 표현 239

[ ] 데리다가 초점으로 삼는 주제들을 보면 분명히 약자나 핍박받는 자들과 관련된 문제들을 다룬다. 그런 점에서 보면 반권력적이고 반지배적인 해체적 보편성을 내세운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레비나스는 이보다 더하다고 할 수 잇다. 지배 너머의 지평을, 정치 너머의 윤리를 앞세우니까요. 여기에 비해 데리다는 정치의 차원을 중요하게 다룬다. 레비나스 철학에서 정치는 윤리를 통해 극복해야 할 영역으로 취급된다. 또는 정의 문제와 관련해 부수적으로 다루어질 뿐이다. 242

[ 4 ] 제삼자의 출현은 양자관계가 아닌 삼자관계가, 따라서 비교와 계산의 관계가 성립함을 나타낸다. 그러니까 이것은 정치의 성립을 뜻한다....사실 삼자성이란 이렇게 대면관계가 보편적으로 확보될 수 있는 가능성을 뜻한다. 244 이상 아듀 레비나스

2.

[ ] 5장 책임과 대속적 주체: 존재와 다르게 또는 존재 사건 저편에: 현재 우리가 처한 삶의 상황에서 ˝내가 누구에게, 무엇에 책임이 있으며 어떤 상호 작용의 공동체 안에서 내가 내 자신인가?를 고려하는 것을 과제로 삼는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처한 상황과 대상, 일, 공동체, 도덕적 주체가 중요하다. 165 나의 책임과 존재 모험: 세계에 대한 의존성을 통해 나는 비로소 나의 독립성, 나의 자유를 확보한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나는 오직 내 안에서 나를 실현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169

[ ] 존재 유지 노력과 타인과의 관계: 히틀러와 독일 국가사회주의의 만행은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타인을 제거하고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존재 경향의 확대에 지나지 않는다고 레비나스는 본다. 170 전쟁은 존재 속에 지속하고자 하는 경향의 연장이라고 보고 있다. 171 계약에 의한 평화는 타인에 대한 존경이나 도덕법칙에 대한 순종에 근거하기보다 상대방에 대한 공포에 근거하고 있다. ...개인간의 평화이든 정치적 질서에 의한 평화이든 평화를 이성적인 계산에 의해 가능한 것으로 보는 입장을 레비나스는 전형적인 서구적 평화의 핵심으로 생각한다....다양한 것, 많은 것들을 그보다 상위 단계에 있는 일 또는 일자에 환원할 때 평화가 확보될 수 있다는 것이 그리스 사상이 평화문제에 접근하는 기본 모형이었다. 173 레비나스는 자기 중심적인 사회 모형에 근거한 정치는 ‘윤리가 결여된 정치‘라고 단언한다....자아 중심적 사회 모형은 ‘사회 주변부 사람들‘과 ‘힘없는 사람들‘에게 일정한 자리를 허락해주지 않는다. 개개인이 확보할 수 있는 힘을 바탕으로 타인에 대해서 자신의 존재를 나타낸다면 힘없는 자, 가지지 못한 자, 신체적으로 능력을 잃은 자는 상대적으로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175 영원한 평화를 모색하기 위해 인간과 세계, 나와 타인, 진리와 정의, 자유와 책임의 관계를 바르게 설정해야 한다. 176

[ 2 ] 타인의 얼굴: 나의 자기 중심적인 이기적 삶을 타인에 대해 책임지며 타인과 함께 타인을 위해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삶으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이 가능성을 레비나스는 나의 존재 유지, 나의 내면성에서 찾지 않고 나의 바깥, 나의 존재와는 전혀 다른 차원, 다시 말해 나와 타인 사이에 일어나는 ‘윤리적 사건‘을 통해 찾아낸다.176 타인은 한마디로 유일하며 독특하다. 177 ˝맥락 없는 의미화요˝ ˝전체성의 깨뜨림˝이다. 타인은 단적으로 나에게 ˝낯선 이˝이다. 177 사물을 벗겨냄으로, 지평 안에서, 어떤 맥락 안에서, 일정한 형식을 갖춘 가운데 드러난다. 하지만 그 자체로, 스스로 자신을 보여주는 의미, 어떤 무엇과의 지시 관계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 스스로 지시하는 가운데 드러나는 의미, 자기 자신 외에 어떤 다른 것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의미, 자기 자신 외에 어떤 다른 것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의미, 자기 자신에 의존하면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의미, 나의 주도권과 나의 권력과는 완전히 독립해 있는 의미, 어떠한 형식에도, 어떠한 맥락에도, 어떠한 ˝의미부여˝에도 앞선 ‘지평‘없는 의미를 레비나스는 타인의 얼굴에서 찾는다. 178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것으로 우리에게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존재, 우리의 세계 안에서는 어떠한 지시체도 찾을 수 없는 ‘외재적 존재의 현시‘를 레비나스는 한마디로 ‘얼굴‘이라고 부른다. 179 언제나 ‘처음 온 사람‘이다. 179 얼굴의 시선과 마주칠 때 나는 회피할 수 없는 얼굴을 경험한다. 시선은 나를 ‘놀라게‘ 하며 나에게 ‘상처‘를 준다. 180 나는 이 ‘계시‘에 직면해서 그것을 수용하는 자로, 순종하는 자로 설 뿐 스스로 기획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나의 기대와 예측을 벗어난 가르침을 주는 스승과 주인으로 타인은 나에게 말 건네 옴을 통해 다가온다....그것은 ˝너는 살인하지 말지어다˝라는 명령이다. 181 ˝나그네와 과부와 고아˝이다. ..그 자체의 존재는 세계 안에서 하나의 비참이다.˝...비천함에 처한 타인이 나에게 간청으로 호소해올 대, 그 호소로 인해 나의 자유가 문제시될 때, 이때 비로소 윤리적 관계가 등장한다. 181 ˝윤리는 자유가 자기를 정당화하는 대신 스스로 자신이 자의적이며 폭력적임을 느낄 때 시작한다.˝...레비나스는 타인이 나를 정죄하고 사로잡음을 ˝끝까지‘ ‘따라와‘ 괴롭힌다는 뜻으로 ‘핍박‘이라고 부른다....응답을 요구하는 타인의 부름에 내가 ‘응답할 때,‘ 나를 ‘응답할 수 있는‘ 존재로 세울 때 나는 비로소 ‘응답하는 자‘로서 ‘책임적 존재‘ 또는 윤리적 주체로 탄생한다. 182 ˝여기 내가 있습니다˝는 레비나스에 따르면 모든 객관적인 서술에 앞서, 내용과 정보를 지닌 어떤 소통이라도 그 이전에 전제하는 ‘첫 언어‘이다. 183 저는 뒤에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이것이 언어의 시작이라고 보는 것이다. 184

[ ] ‘타인에 의한, 타인에 대한 책임‘과 대속의 의미: 윤리적 불면...‘타인에 의한, 타인에 대한 책임‘이라 이름 짓는다.....타인은 나에게 문자 그대로 ˝혼을 불어넣어주며˝ 나에게 ˝영을 집어넣어˝준다. 타인은 나의 호흡이며, 나의 혼이며 나의 영이다...타자가 내 안에 ‘혼을 불어넣음‘은 타자가 내 몸으로 육화되어 타인의 고통을 위해 나를 내어줄 수 있도록 노출시킨다. 185 대속은 타자에 의해 책임적 존재로 지정받은 내가 타자를 ‘위한‘ 책임적 존재로 세워지는 모습이다...대속은 문자 그대로 ‘자리 바꿔 세움 받음‘이다. 186

[ ] 대속적 책임의 실현과 비움의 주체: 응답, 환대 또는 책임은 ‘줌‘이고 ‘자신을 희생함‘이다. ˝주는 것, 즉 타자를 위한 존재란 자신의 입에서 빵을 꺼내어 자기는 굶주리면서 타인의 허기를 채워주는 것이다.˝ 189 나의 집과 나의 소유, 나의 지식을 타인을 섬기는 수단으로 사용하라는 것이 타인의 얼굴이 나에게 호소하는 윤리적 요구이다. 궁핍 가운데 있는 이웃을 그저 공감이나 연민으로, 나의 소유를 내어놓지 않고 빈손으로 대하는 것은 공허하다. 191

[ ] 제삼자와 책임: 정의와 국가 제도 : 정치의 드라마....지속적 혁명..틀의 파괴가 필요하다. ..체제와 영역 바깥에서 체제의 경직성을 경고하고 인간 개개인의 인격의 독특성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곧 정치와 윤리의 결합을 가능하게 해준다고 레비나스는 보고 있다. 195 개인의 양심만이 이성 자체의 올바른 기능에서 유래한 폭력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자아만이 위계질서와 행정 체제의 순작동으로 생긴 타인의 ‘숨은 눈물‘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공무원) 196

[1 ] 응답으로서의 윤리학: ˝윤리적이란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윤리적이어야 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윤리적일 수 있는가˝ 이 세 가지 물음은 윤리는 언제나 행위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윤리에서 ‘존재‘를 강조한다고 해도 행위와 무관한 존재는 윤리에 관한 철학적 논의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 그런데 행위는 언제나 행위를 실행하는 행위자의 행위이다. 197 응답자로서의 인간 198 니버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라고 묻지 않고 ˝현재는 무엇이 진행되고 있는가?˝라고 묻는다. 이것은 곧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으며 나에게 반응을 요구하고 사회적 연대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내가 어떤 존재로 설 것인가하는 것이 니버 윤리학의 관심임을 말해준다. 199 이상 레비나스의 철학 타인의 얼굴 5장에서

볕뉘

0. 주변을 서성이고 있다. 그의 저작으로 들어가지 않고 사숙하는 이의 글이나 해설들을 살펴본다. 가벼운 뉘앙스의 차이가 해석의 차이로 이어진다. 그 사실을 유념하고 있다. 베르그손의 시간, 직관의 의미가 받아들여도 설명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처럼, 개념을 한 몫에 깨닫게 해주는 언어가 없다. 아니 우리의 상식들이 그 단어의 다른 의미에 갇혀있어 벗어나기가 힘든 것인지도 모른다. 조심스럽다. 그래서 더 서성인다. 책들 사이 편린들을 들추어보고 있다. 여기저기.

1. 다음에 읽어줄 이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미 책앓는 이가 되어버린 자의 슬픔을 책친구와 나누어본다. 굳이 슬픔이라고 하지말고 기쁨은 없는가하고 말머리를 돌려보자고 했다. 좋아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죽을 때쯤 겪는 왜 사는가의 질문지를 일찍 받아 괴롭기도 하다. 그 답답증의 출구를 모색해보기로 했다. 나는 누구인가 너는 누구인가 요즘 그런 질문을 안고 사는 사람들은 극히 희소하다. 거의 없다. 그러니 안으로의 나를 채우는 것에도 무심하며, 밖으로 향해 있는 나의 상황과 넓은 정황에도 관심이 없다. 오로지 손에 잡히는 것밖에라고 하면 지나친 것일까? 그래 미처 해주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 책 앓이를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여러 농도가 차곡차곡 진해져 가는 것이라고, 어떠한 용도로 쓰일지는 모르지만, 목적이나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는 만남처럼 제대로 된 길을 가는 것이라고 해두자고 ...일단은...

2. 밑줄이 많이 처 둔 부분은 그 만큼 낯이 설다는 것 같다. 옮겨 적으며 어제 육근종암에 걸려 다리를 절단한 청년의 삶을 끝까지 본 어제 상황이 생각났다. 아파 너무 아파 아픔을 끝내고 싶은 것, 아픔과 싸울 여력이 없어져 스러지는 것이 죽음이라면, 그 맛을 본 청년의 고통이 어른거렸다. 거기에서 시작하는 그의 삶. 얼마나 많은 슬픔이 다가설까..그래서 그 질긴 아픔과 비교해낼 것이겠지. 그저 마음씀이라는 것밖에 할 수 없음.

3. 얼마나 깊이 얼마나 다르게 얼마나 멀리 레비나스를 읽을지 모르겠다. 서성이다가 그를 읽는 것이겠지. 읽다가 슬프다가 힘을내다가 하는 것이겠지. 괴로움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것이겠지...두 손에 쥔 것을 놓겠지...그리고 아마 다른 것을 잡게 되겠지. 책을 읽는 것은, 책을 앓는 것은 그런 것이라고 위안 받을 친구가 있으면 됐지. 그냥 가보는 것이라고....위험한 독서란 이런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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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라시-어둠은 한번도 잡히지 않았다 후라시를 켤 때마다 보란 듯이 불빛 그 바깥에 가 있었네...동그라미 안에만 비가 내리고 나는 간신히 외치기 시작했어 비 내리는 밤이 있다는 것은 아직 우리의 슬픔이 젊기 때문이다.....동그라미 안으로 쓰윽 들어온 손이 내 턱을 추켜올렸을 때 내 얼굴은 이미 깨져 있었다

[ ] 가을과 슬픔과 새 - 슬픔이 새였다는 사실을 바람이 알려주고 가면, 가을새들은 모두 죽었다. ....낙엽이 새였다....날아오르는 것과 떨어져내리는 것이 꼭 같은 모습으로 보여서, 슬픔에도 빨간 페인트가 튀는데....단풍의 빛깔은 태양 속으로 빨려든다, 태양에 환풍기를 달아놓은 것처럼...나의 몸이 어둠속으로 떨어지는 것과 함께 그래서 박쥐들이 검구나, 슬픔과 몸이 하나일 수 있다는 것

[ ] 목소리가 사라진 노래를 부르고 싶었지 - 서로 목소리를 뭉쳐 던지며 차가워, 아파도 좋겠다 목소리를 굴려 사람을 만들면, 그는 따뜻할까 차가울까....

[ ] 모래시계 - 잠은 어떻게 그 많은 모래를 다 옮겨왔을까? 멀리서부터 모래를 털며 걸어오는 사람을 보았다. 모래로 부서지는 이름을 보았다. ....누군가의 해변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잤던 잠을 또 잤다....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지 않아도 나는 돌아보았다

[ ] 그리고 날들 - 미안하다, 마음이 돌아오지 않아 나갈 수가 없다.....나의 입과 나의 목과 나의 배....라고 중얼거리며 미안하다, 나는 밥을 먹는다

[ ] 우리 모두의 마술 - 그런 풍경은 보이지 않는 풍경을 보여주는 풍경이라고 말할 수 있다...유리창은 계란 칸처럼 꼭 한알씩 태양을 담았다가 해가 지면 가로등 아래 깨뜨린다.....깨진 유리 속이면 사람은 한명으로도 군중을 만든다. 인간은 끝나지 않는다.

[ ] 절반만 말해진 거짓 - 나는 네 몸이 아프다 네가 내 몸을 앓듯이 그러니까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위로가 있어서....모든 예언은 절반만 말해졌다는 것 그리고 그 나머지를 실현하기 위하여 삶이 아프다는 것 이제 놀라지 않는다

[ ] 숨겨둔 말 - 비가 새는 지붕이 있다면, 물은 마모된 돌일지도 모른다. 그 돌에게 나는 발자국 소리를 들려주었다...어느날 하구에서 빗방울 하나 주워들었다. 아무도 내 발자국 소리를 꺼내가지 않았다.

[ ] 지나가나, 지나가지 않는 - 이 시간이면 모든 그림자들이 뚜벅뚜벅 동쪽으로 걸어가 한꺼번에 떨어져 죽습니다...목소리는 어떻구요. 투명한 나뭇잎처럼 바스라져 흩날리는 목소리에게도 내세가 있을까? 아, 메아리라면, 그들에게도 구원이 있겠지요.

[ ] 취이몽 - 세계의 뚫린 구멍이 내 생각은 아닐까?....우리가 갖지 못한 것은 날개이고 새가 갖지 못한 것은 날고 싶음입니다....생각처럼, 생각처럼....칼끝에서 돌 하나 붉은 심장으로 타오를 때,...어느날, 유리창이 깨지듯 잠이 깨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면, 오래전 날아온 돌멩이가 잡힌다....눈물은 금처럼 번져간다..

[ ] 사랑 - 내리는 비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싶습니다, 써놓은 한사람을 찾고 있다. 모두가 자신이 아니라고 하면 우리는 누구를 위해 모인 것일까

[ ] 우리라서 -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기억하지 않는 시간 속에서만 잘 지낼 수 있겠지만, 마지막으로 서로를 기억하는 사람 또한 우리라서, 아침이면 차창을 스쳐가는 나무들이 단 한번 죽음을 주인으로 모시고 밤처럼 꼭 감은 눈에서 떨어지는 이슬 한방울씩 받아주는 때가 온다.

[ ] 우리 - 우리는 있어서, ˝다시는 별을 쳐다보지 마˝ 그 말로 인해 다시 쳐다보는 밤하늘을 우리의 절망은 죽을 때까지 걷도록 선고받았다. 끝없이 별빛에 찔리며 일그러진 뒤에도 굴러가는 달처럼.

[ ] 송별회 - 어느날, 내 몸속의 잎들이 한꺼번에 지는 날이 있을 겁니다. 내 몸을 찢고 나온 슬픈 식사가 있을 겁니다...내 몸을 뒤춤에 아무렇게나 기워놓은 호주머니로 사용하지는 않겠습니다. 찌그러진 담뱃갑처럼 슬픔 따위를 구겨넣지는 않겠습니다.

[ ] 무서운 슬픔 - 그러나 연잎 뜨고 밤별 숨은 연못에서 갑자기 개구리 울음이 멈추는 이유, 뱀은 모르겠지. 순식간에 그 집 불이 꺼지는 이유

[ ] 카프카의 편지 - 인생은 씌어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모두를 공평하게 사랑하려고 부재하는 신에 관한 기록처럼 구겨지는 것이다

[ ] 나는 알고 있거든 - 가르쳐주마 나는 목숨을 끓여 슬픔을 정제하는 공장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거든....가르쳐주마 봉투를 찢었을 때 쏟아지던 모래의 내력과 후우 불면 흩어지는 활자들의 기원.....덕분에 나는 닫힌 공장 굴뚝의 긴 어둠을 막대처럼 뽑아 하루를 내리치며 폐광의 잠을 잔다....네 운명이 앞질러 되가져간 슬픔 덕분에 실직당해 몸 밖으로 쫓겨난 꿈 때문에 내가 일상이라는 죽음을 죽기까지 살게 될 테니

[ ] 흐린 방의 지도 - 골목은 간밤의 신열로부터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식탁에 흩어놓은 약봉지 같다 내 안에서 필사적으로 빠져나가려는 대답을 막기 위해 밥을 먹어야 했다....누군가 느낌을 담아가기 위해 사람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아무리 소리쳐도 꿈속까지 들리진 않는데 왜 꿈에서 속삭이면 꿈 밖까지 들릴까? 골목에서는 질문을 멈추게 하는 알약이 팔리지만 여기서 외로움을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더이상 나를 부르지 않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대답했다

[ ] 옆집 남자 - 사막 가운데서도 선인장은 물속에 잠겨 있다....아침엔 사막으로 물을 가져가다 가시가 돋아난 풀처럼...죽은 자의 심장을 내리치듯. 쾅쾅 안개를 두드리는, 울음은 저기 혹은 여기,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에 그가 살고 있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끝이 없어 나는 옆집 남자로 살고 있다.

[ ] 산책자 보고서 - 지붕을 뚫지 못해 빗방울은 대신하여 빗소리를 집 안으로 내려보낸다....나는 비의 느낌으로 숨어 있다....빗방울의 시간은 빗소리의 시간보다 더 멀리 있어서 빗소리의 시간은 나의 시간보다 더 멀리 있어서 나는 끓는 허기일 뿐....하루는 그 간격을 오가는 시간으로 더 먼 곳의 시간들을 지우고 있다.

[ ] 차갑고 어두운 - 태양은 연필 뒤에 꽂힌 지우개 같지만 문지르면 곧잘 호수를 찢어버리지...왜 생각 속은 늘 차갑고 어두운 것일까....호수 위를 뱅글뱅글 돌고 있는 돌멩이를 오랫동안 올려다보는 사람이 있을 것 같은 생각....안개 속에서 한걸음씩 사람이 나타나서 내 눈을 찌를 것만 같은데....생각 위에 글자를 쓸 때마다 금방 낙서가 된다

[ ] 자작나무 - 나는 돌 하나를 쥐고 있었다 언젠가 백발 마녀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을, 그러나 아무 소리도 없이 깨지는 하늘처럼 쏟아지거나 떨어지는 질문이거나...날아가는 돌에서 백발이 자라는 것을 보았다

[ ] 하늘에서 흰머리가 내리는군 - 아무리 단단하게 뭉쳐도 흔적 없이 사라지는 눈사람을 보면, 울 때마다 눈물이 조금씩 우리를 지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나는 언제나 뒤에 오는 것을 믿는다. 세상에 눈사람이 진실이라고 말하는 겨울이 있고 눈사람이 거짓이라고 말하는 봄이 있다면.....

[ ] 아무렇지도 않게 - 창밖에 밤의 수염처럼 비가 드리워져 있는 날이 있다. 어느 미용사가 지붕 위에 앉아 그 수염을 자르는 밤이 있다....그러니까 수염이 점점 짧아져 더는 자를 것이 없을 때 가을이 간다....창문은 아무렇지도 않게 당신을 쳐다보는 날이 있다.

[ ] 더 많거나 다른 - 열한시에 열한시를 만나기로 했다. ....열한시는 대답하지 않았다....비 맞는 햇살과 부서진 노래, 아름다움에 대해

[ ] 흰나비 - 흰나비는 이 세상 것 같지가 않다. 쫓아가는 아이는 꼭 넘어진다.

[ ] 나비 tatoo - 마침내 어떤 꿈도 남지 않은 새벽에 깨어나 만져보면 그대로 부서지는 날개, 가만히 혀를 대보면 맑게 흐른다.....나비의 흰 젖.

[ ] 스위치 - 물이 새는 화장실 스위치를 올리면 물소리가 멈춘다...언젠가 익사자의 주머니 속에 들어 있었을 돌. 나는 주머니 속에 돌을 집어넣고 가계부 목록을 쓴다 북국으로 가는 철새 그림자를 위한 항로 보수 공사에 든 비용 스위치를 내린다

볕뉘

0. 어제는 [사랑의 현상학]이란 책의 1장을 읽다 마저 읽지 못하고 잠을 청한다. 새벽에 일어나 마저 읽고, 늦은 아침 쪽잠을 잤다. 꿈을 꾸었다. 요즘 꿈에는 서늘함이 자주 다가선다. 꿈을 기억해내었지만 애써 기억하지 않는다. 보일러 스위치를 올렸다. 타이머 불빛이 비춘다. 온도 표지만 되어 다시 난방 스위치를 올렸다.

1. 생각은 늘 차갑고 어둡다. 한 번쯤은 따뜻해도 좋을 듯싶은데, 이렇게 차갑고 어두움을 내려놓는 글을 읽다. 그러고보면 마음이 참 따스해지기도 한다. 흘릴 눈물을 기를 수 있다니 말이다. 책을 읽다가 생각길을 가다보니 밤의 수염이 많이 자랐다. 아니 콧털도 자랐다. 길을 잃은 먼지가 콧사이로 다녀간 것이다. 그것도 자주. 아침 면도를 했다.

2. 나와 너는 다가서지 못한다. 그 사이에는 유리, 창. 비치는 나. 그 유리를 와장창 깨고 싶다. 그러나 돌같은 마음은 비처럼 내린다. 흐른다. 슬픔은 이 지상을 채우고도 남을 듯이 빗소리는 요란하다. 그렇게 펑펑 우는 사이 눈물을 보탠다.

3. 절망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내 마음이 닿지 않는 아주 가까운 등잔밑에서 늘 시작한다. 나의 절망의 틈을 채워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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