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후라시-어둠은 한번도 잡히지 않았다 후라시를 켤 때마다 보란 듯이 불빛 그 바깥에 가 있었네...동그라미 안에만 비가 내리고 나는 간신히 외치기 시작했어 비 내리는 밤이 있다는 것은 아직 우리의 슬픔이 젊기 때문이다.....동그라미 안으로 쓰윽 들어온 손이 내 턱을 추켜올렸을 때 내 얼굴은 이미 깨져 있었다

[ ] 가을과 슬픔과 새 - 슬픔이 새였다는 사실을 바람이 알려주고 가면, 가을새들은 모두 죽었다. ....낙엽이 새였다....날아오르는 것과 떨어져내리는 것이 꼭 같은 모습으로 보여서, 슬픔에도 빨간 페인트가 튀는데....단풍의 빛깔은 태양 속으로 빨려든다, 태양에 환풍기를 달아놓은 것처럼...나의 몸이 어둠속으로 떨어지는 것과 함께 그래서 박쥐들이 검구나, 슬픔과 몸이 하나일 수 있다는 것

[ ] 목소리가 사라진 노래를 부르고 싶었지 - 서로 목소리를 뭉쳐 던지며 차가워, 아파도 좋겠다 목소리를 굴려 사람을 만들면, 그는 따뜻할까 차가울까....

[ ] 모래시계 - 잠은 어떻게 그 많은 모래를 다 옮겨왔을까? 멀리서부터 모래를 털며 걸어오는 사람을 보았다. 모래로 부서지는 이름을 보았다. ....누군가의 해변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잤던 잠을 또 잤다....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지 않아도 나는 돌아보았다

[ ] 그리고 날들 - 미안하다, 마음이 돌아오지 않아 나갈 수가 없다.....나의 입과 나의 목과 나의 배....라고 중얼거리며 미안하다, 나는 밥을 먹는다

[ ] 우리 모두의 마술 - 그런 풍경은 보이지 않는 풍경을 보여주는 풍경이라고 말할 수 있다...유리창은 계란 칸처럼 꼭 한알씩 태양을 담았다가 해가 지면 가로등 아래 깨뜨린다.....깨진 유리 속이면 사람은 한명으로도 군중을 만든다. 인간은 끝나지 않는다.

[ ] 절반만 말해진 거짓 - 나는 네 몸이 아프다 네가 내 몸을 앓듯이 그러니까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위로가 있어서....모든 예언은 절반만 말해졌다는 것 그리고 그 나머지를 실현하기 위하여 삶이 아프다는 것 이제 놀라지 않는다

[ ] 숨겨둔 말 - 비가 새는 지붕이 있다면, 물은 마모된 돌일지도 모른다. 그 돌에게 나는 발자국 소리를 들려주었다...어느날 하구에서 빗방울 하나 주워들었다. 아무도 내 발자국 소리를 꺼내가지 않았다.

[ ] 지나가나, 지나가지 않는 - 이 시간이면 모든 그림자들이 뚜벅뚜벅 동쪽으로 걸어가 한꺼번에 떨어져 죽습니다...목소리는 어떻구요. 투명한 나뭇잎처럼 바스라져 흩날리는 목소리에게도 내세가 있을까? 아, 메아리라면, 그들에게도 구원이 있겠지요.

[ ] 취이몽 - 세계의 뚫린 구멍이 내 생각은 아닐까?....우리가 갖지 못한 것은 날개이고 새가 갖지 못한 것은 날고 싶음입니다....생각처럼, 생각처럼....칼끝에서 돌 하나 붉은 심장으로 타오를 때,...어느날, 유리창이 깨지듯 잠이 깨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면, 오래전 날아온 돌멩이가 잡힌다....눈물은 금처럼 번져간다..

[ ] 사랑 - 내리는 비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싶습니다, 써놓은 한사람을 찾고 있다. 모두가 자신이 아니라고 하면 우리는 누구를 위해 모인 것일까

[ ] 우리라서 -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기억하지 않는 시간 속에서만 잘 지낼 수 있겠지만, 마지막으로 서로를 기억하는 사람 또한 우리라서, 아침이면 차창을 스쳐가는 나무들이 단 한번 죽음을 주인으로 모시고 밤처럼 꼭 감은 눈에서 떨어지는 이슬 한방울씩 받아주는 때가 온다.

[ ] 우리 - 우리는 있어서, ˝다시는 별을 쳐다보지 마˝ 그 말로 인해 다시 쳐다보는 밤하늘을 우리의 절망은 죽을 때까지 걷도록 선고받았다. 끝없이 별빛에 찔리며 일그러진 뒤에도 굴러가는 달처럼.

[ ] 송별회 - 어느날, 내 몸속의 잎들이 한꺼번에 지는 날이 있을 겁니다. 내 몸을 찢고 나온 슬픈 식사가 있을 겁니다...내 몸을 뒤춤에 아무렇게나 기워놓은 호주머니로 사용하지는 않겠습니다. 찌그러진 담뱃갑처럼 슬픔 따위를 구겨넣지는 않겠습니다.

[ ] 무서운 슬픔 - 그러나 연잎 뜨고 밤별 숨은 연못에서 갑자기 개구리 울음이 멈추는 이유, 뱀은 모르겠지. 순식간에 그 집 불이 꺼지는 이유

[ ] 카프카의 편지 - 인생은 씌어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모두를 공평하게 사랑하려고 부재하는 신에 관한 기록처럼 구겨지는 것이다

[ ] 나는 알고 있거든 - 가르쳐주마 나는 목숨을 끓여 슬픔을 정제하는 공장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거든....가르쳐주마 봉투를 찢었을 때 쏟아지던 모래의 내력과 후우 불면 흩어지는 활자들의 기원.....덕분에 나는 닫힌 공장 굴뚝의 긴 어둠을 막대처럼 뽑아 하루를 내리치며 폐광의 잠을 잔다....네 운명이 앞질러 되가져간 슬픔 덕분에 실직당해 몸 밖으로 쫓겨난 꿈 때문에 내가 일상이라는 죽음을 죽기까지 살게 될 테니

[ ] 흐린 방의 지도 - 골목은 간밤의 신열로부터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식탁에 흩어놓은 약봉지 같다 내 안에서 필사적으로 빠져나가려는 대답을 막기 위해 밥을 먹어야 했다....누군가 느낌을 담아가기 위해 사람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아무리 소리쳐도 꿈속까지 들리진 않는데 왜 꿈에서 속삭이면 꿈 밖까지 들릴까? 골목에서는 질문을 멈추게 하는 알약이 팔리지만 여기서 외로움을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더이상 나를 부르지 않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대답했다

[ ] 옆집 남자 - 사막 가운데서도 선인장은 물속에 잠겨 있다....아침엔 사막으로 물을 가져가다 가시가 돋아난 풀처럼...죽은 자의 심장을 내리치듯. 쾅쾅 안개를 두드리는, 울음은 저기 혹은 여기,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에 그가 살고 있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끝이 없어 나는 옆집 남자로 살고 있다.

[ ] 산책자 보고서 - 지붕을 뚫지 못해 빗방울은 대신하여 빗소리를 집 안으로 내려보낸다....나는 비의 느낌으로 숨어 있다....빗방울의 시간은 빗소리의 시간보다 더 멀리 있어서 빗소리의 시간은 나의 시간보다 더 멀리 있어서 나는 끓는 허기일 뿐....하루는 그 간격을 오가는 시간으로 더 먼 곳의 시간들을 지우고 있다.

[ ] 차갑고 어두운 - 태양은 연필 뒤에 꽂힌 지우개 같지만 문지르면 곧잘 호수를 찢어버리지...왜 생각 속은 늘 차갑고 어두운 것일까....호수 위를 뱅글뱅글 돌고 있는 돌멩이를 오랫동안 올려다보는 사람이 있을 것 같은 생각....안개 속에서 한걸음씩 사람이 나타나서 내 눈을 찌를 것만 같은데....생각 위에 글자를 쓸 때마다 금방 낙서가 된다

[ ] 자작나무 - 나는 돌 하나를 쥐고 있었다 언젠가 백발 마녀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을, 그러나 아무 소리도 없이 깨지는 하늘처럼 쏟아지거나 떨어지는 질문이거나...날아가는 돌에서 백발이 자라는 것을 보았다

[ ] 하늘에서 흰머리가 내리는군 - 아무리 단단하게 뭉쳐도 흔적 없이 사라지는 눈사람을 보면, 울 때마다 눈물이 조금씩 우리를 지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나는 언제나 뒤에 오는 것을 믿는다. 세상에 눈사람이 진실이라고 말하는 겨울이 있고 눈사람이 거짓이라고 말하는 봄이 있다면.....

[ ] 아무렇지도 않게 - 창밖에 밤의 수염처럼 비가 드리워져 있는 날이 있다. 어느 미용사가 지붕 위에 앉아 그 수염을 자르는 밤이 있다....그러니까 수염이 점점 짧아져 더는 자를 것이 없을 때 가을이 간다....창문은 아무렇지도 않게 당신을 쳐다보는 날이 있다.

[ ] 더 많거나 다른 - 열한시에 열한시를 만나기로 했다. ....열한시는 대답하지 않았다....비 맞는 햇살과 부서진 노래, 아름다움에 대해

[ ] 흰나비 - 흰나비는 이 세상 것 같지가 않다. 쫓아가는 아이는 꼭 넘어진다.

[ ] 나비 tatoo - 마침내 어떤 꿈도 남지 않은 새벽에 깨어나 만져보면 그대로 부서지는 날개, 가만히 혀를 대보면 맑게 흐른다.....나비의 흰 젖.

[ ] 스위치 - 물이 새는 화장실 스위치를 올리면 물소리가 멈춘다...언젠가 익사자의 주머니 속에 들어 있었을 돌. 나는 주머니 속에 돌을 집어넣고 가계부 목록을 쓴다 북국으로 가는 철새 그림자를 위한 항로 보수 공사에 든 비용 스위치를 내린다

볕뉘

0. 어제는 [사랑의 현상학]이란 책의 1장을 읽다 마저 읽지 못하고 잠을 청한다. 새벽에 일어나 마저 읽고, 늦은 아침 쪽잠을 잤다. 꿈을 꾸었다. 요즘 꿈에는 서늘함이 자주 다가선다. 꿈을 기억해내었지만 애써 기억하지 않는다. 보일러 스위치를 올렸다. 타이머 불빛이 비춘다. 온도 표지만 되어 다시 난방 스위치를 올렸다.

1. 생각은 늘 차갑고 어둡다. 한 번쯤은 따뜻해도 좋을 듯싶은데, 이렇게 차갑고 어두움을 내려놓는 글을 읽다. 그러고보면 마음이 참 따스해지기도 한다. 흘릴 눈물을 기를 수 있다니 말이다. 책을 읽다가 생각길을 가다보니 밤의 수염이 많이 자랐다. 아니 콧털도 자랐다. 길을 잃은 먼지가 콧사이로 다녀간 것이다. 그것도 자주. 아침 면도를 했다.

2. 나와 너는 다가서지 못한다. 그 사이에는 유리, 창. 비치는 나. 그 유리를 와장창 깨고 싶다. 그러나 돌같은 마음은 비처럼 내린다. 흐른다. 슬픔은 이 지상을 채우고도 남을 듯이 빗소리는 요란하다. 그렇게 펑펑 우는 사이 눈물을 보탠다.

3. 절망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내 마음이 닿지 않는 아주 가까운 등잔밑에서 늘 시작한다. 나의 절망의 틈을 채워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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