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요리, 연주, 손님맞이, 세 가지 모두가 완벽함은 거의 동일했다. 수단의 간결성, 절제 그리고 매력. 그녀는 양념이 꼭 필요하지 않은 요리에 양념을 넣는 것, 페달을 과도하게 밟아 부자연스럽게 연주하는 것, ˝손님을 맞이하면서˝ 완벽하게 자연스러운 태도에서 벗어나 지나치게 자기 얘기를 하는 것을 끔찍이 싫어했다. 26
[ ] 어린 시절의 매혹적인 독서들은, 그 독서들이 우리 안에 남기는 것은 무엇보다 우리가 독서를 한 장소와 날의 이미지다. 나는 그 독서들의 마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그 독서들이 내게 말해준 것이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 독서들이 차례로 내게 안겨준 기억들 자체가, 독자에게 꽃핀 에움길에서 늑장 부리며 ‘독서‘라고 불리는 독특한 심리적 행위를 머릿속에서 창조하도록 충분한 힘을 안겨, 그 행위 안에서 이제 내가 제시할 몇몇 성찰이 따를 수 있게 해주지 않았을까 48
[ ] 본질적으로 책과 친구가 다른 점은 그 둘이 지닌 위대한 지혜가 아니라 우리가 그 둘과 소통하는 방식에 있다. 독서는 대화와 달리 우리 각자가 다른 생각을 전달받아 혼자 남은 채, 다시 말해 고독 속에서 지적 역량을 즐기는 것인 데 반해, 대화는 고독을 즉각 물리치고 줄곧 영감을 받으면서 정신의 풍성한 작업을 이어가는 것이다. 52
[ ] 작가들은 우리에게 보여주는 각 그림 속에 나머지 세상과 다른 경이로운 풍경을 가볍게 살짝만 담는데, 우리는 그들이 그 풍경 한가운데로 우리를 들어가게 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유행 지난 꽃들이 자라는 제일란트 정원˝으로, ˝토끼풀과 쑥˝ 향기 물씬 풍기는 길로, 당신들이 책에서 말해주지는 않았지만 이런 곳들보다 더 아름다우리라 여겨지는 모든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주세요˝하고 말하고 싶어진다. 59
[ 1 ] 독서는 정신적 삶의 문턱에 있다. 독서는 우리를 정신적 삶으로 안내할 수는 있지만 그 삶을 이루지는 않는다. 61
[ 2 ]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그 정신 안에서 되살려야 할 그런 창조적 활동은 고독 밖에서는 일어날 수 없다...가장 수준 높은 대화도, 가장 절박한 조언도 고독하지 않은 이에게 아무 소용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런 대화나 조언이 그 독창적인 활동을 직접 창출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개입이다. 다른 사람에게서 와 우리 내면 깊숙이 작용하는 개입, 다른 정신으로부터 오지만 고독 속에서 맞이하는 충동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바로 이것이 독서의 정의이고, 오직 독서에만 적용되는 개념이다. 그러니까 그런 정신에 이로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수행이 독서다. 기하학자들의 표현대로 ˝증명 끝˝이다. 64
[ ] 독서가 마법의 열쇠로 우리가 들어갈 수 없었던 우리 내면의 문을 열어주는 독려자로 남는다면 우리 삶에서 그것이 수행하는 역할은 건강하다. 반대로 독서가 우리를 정신이 사적인 삶에 눈뜨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을 대체하려 한다면 위험해진다. 66
[ ] 책에 대한 기호는 지성보다 조금 아래에서, 그러나 같은 줄기에서 지성과 함께 자라는 것 같고, 모든 열정이 그 대상을 둘러싸는 일에 대한 편애를 동반하듯이 책과 관계를 맺고 책이 없어도 여전히 책에 말을 건다. 따라서 가장 위대한 작가들은 생각과 직접 소통하지 않는 시간에도 책과의 교류를 즐긴다. 게다가 책들이 쓰인 건 무엇보다 그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가? 책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감춰진 수천 가지 아름다움을 그들에게 드러내지 않는가? 74
[ 3 ] 독서는 하나의 우정이다. 그러나 적어도 진지한 우정이다. 독서가 죽은 이를, 부재한 이를 상대한다는 사실이 독서에 사심 없는 무언가를, 거의 감동적인 무언가를 부여한다. 게다가 독서는 다른 우정들을 추하게 만드는 모든 것을 벗어버린 우정이다....우리가 그들 곁을 떠나고 나서도 우정을 망가뜨릴 이런 생각들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내가 요령이 부족했던 건 아닐까? 내가 마음에 들었을까? 다른 사람을 만나느라 나를 잊으면 어떡하지? 우정의 이 모든 흔들림은 독서라는 순수하고 고요한 우정의 문턱에서 소멸된다. 공손함도 필요 없다. 78-80
[ 4 ] 책에 대한 기호가 지성과 함께 커진다면, 우리가 보았듯이 그 위험은 지성과 함께 감소한다. 독창적인 정신은 독서를 자신의 개인적 활동에 종속시킬 줄 안다. 그에게 독서는 그저 가장 고결한, 무엇보다 가장 고상한 소일거리일 뿐이다. 독서와 지식이 정싱의 ‘우아한 예절‘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감성과 지성의 힘을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서만, 우리의 정신적 삶의 깊이에서만 기를 수 있다. 그러나 정신의 ‘태도‘ 교육이 이루어지는 건 다른 정신들과의 접촉 안에서, 다시 말해 독서 속에서다. 85
[ ] 사실은 수 세기 멀리 떨어져 있지만 일종의 환상이 겨우 몇 발짝 떨어진 것처럼 보게 하는 사물들의 조금은 비현실적인 색채를 띠고 현재 속에 친근하게 솟아오는 과거. 그것이 어쩌면 너무 직접적으로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내며 말을 걸어와 우리의 정신은 땅에 묻혀버린 시간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을 보고 놀랄 때처럼 달뜬다. 그래도 과거는 우리 가운데, 스치고 만질 만큼 가까이서 햇살 아래 꼼작 않고 서 있다. 96 독서에 관하여. 프루스트
볕뉘
0. 이른 잠. 새벽인 줄 알았으나, 아직 자정을 넘기지 못한다. 다시 들 잠도 아니어서 책상 위에 펼쳐져 있던 나머지 쪽을 읽었다. 콩브레 마지막 쪽을 덮었다. 세시 반. 고프던 배는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 잠을 청했다.
1. 프루스트의 독서, 독서에 관하여는 스완네 집 쪽으로 1 권에 나오는 대목이 많이 겹쳤다. 가끔씩 책을 왜 읽느냐는 걱정어린 시선들에 앞서 이렇게 되물어야 겠다. 당신은 왜 책을 읽지 않느냐고... ...
2. ㅇ가 벗의 추모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여 ㄷ시에 갔다. ㅅ치킨은 장소를 맞은 편으로 옮겼고, 치킨과 닭내장탕에 소맥을 번갈아 마시며 오랜만에 이야기를 섞는다. 마음의 탈상을 한 지가 오래라 그렇게 추모사업이라 이름을 칭하고 정례적으로 하는 것은 의미가 있을까. 늘 죽음은 도처이고, 책을 본다는 것도 늘 죽은 이들의 말을 여기에 당도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표시날 필요도 없고 목적과 기한을 두는 것들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오히려 혹시 과정의 결들을 살린다면, 그 시행에 앞서 준비하는 여러 결들을 나누고 어루만질 수 있다면 좋겠다. 고 이야기를 건넸다. 그러나 사실은 너무나 간만의 만남이고 오래의 일이라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넘친 연유다.
3. 프루스트는 독서와 대화의 차이가 소통방법의 차이라고 한다. 하나는 고독과 맞서고 또 하나는 고독을 물리치고 줄곧 영감을 받는 자리라고 말한다. 독서를 왜하느냐는 질문에는 고독의 신발을 신어보라고 마음을 건넨다. 신고나면 어디든지, 책숲으로 난 길 어디든지 갈 수 있다고.....과거를 바로 곁에 세울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말이다. 그러면에서 바흐친은 사건과 대화의 알맞은 주자이다.
4. ㅈ와 몇 달동안의 독서이력을 나누어본다. 우연히 겹치는 책들과 대화에 걸리는 작가들이 얻어 걸렸다. 진리는 찾을 수 없고, 책에서 진리를 찾지 말아야 한다. 모두 다르게 읽고 나누는 풍요로의 독서. 시각이 아니라 피부의 감각과 오감이 넘실거리는 풍요의 고독과 사건의로서 만남을 서로 나누어줄 시간을 잘 가꾸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