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바흐친

1.

[ ] 이것이냐 저것이냐는 식의 질문과 답변은 서로 꼬리를 물고 도는 영원한 순환을 면하지 못할 성싶다. 바흐친 사유의 핵심은 혼성과 혼류를 유심히 관찰하고 그것을 삶의 생성으로 끌어들이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혼성과 혼류, 그리고 생성은 상대주의나 불가지론 같은 게 아니며, 항상 특정한 맥락 속에서 가동되는 삶의 실재이다. 14

[ ] 바흐친이 구사하는 개념과 논리가 통상적인 아카데미의 규준 안에 놓여 있다 할지라도, 그의 사유는 이 모든 것들을 뒤섞고 재배치하며 ‘다른‘ 방식으로 전용함으로써 새로운 질문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요컨대 어떻게 사용하는가, 곧 용법만이 문제다. 사유의 스타일이 문제인 것이다. 472 그는 능수능란한 소피스트 철학자였다...이런 신비주의는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는 기독교적 신앙에 대항하고, 형이상학 및 모든 상식에 대한 도전을 뜻한다. 481 서구에서 널리 회자된 소위 ‘분열된 사상가‘의 이미지를 거절하고, 바흐친의 사유를 하나의 전체로서 조감하는 일이야말로 이후 연구의 생산적 향방을 결정짓는 관건이 된다는 것이다. ‘관여의 사회적 존재론‘.바흐친은 단자적인 문화의 성립 가능성을 애초부터 부정했다. 모든 역사적 문화적 현상들은 본래적으로 시공간적인, 후기의 용어를 빌린다면 ‘크로노토프‘적인 조건들에 의해 구성되는 산물인 까닭이다. 이로써 바흐친의 사유는 근대적 분과 체제를 극복하는 유일하고 강력한 돌파구로 상정된다. 484 구체적인 체계성, 자율적인 관여, 참여적 자율성 486 모든 사유는 맥락 의존적이다....자아 이외의 존재, 타자라는 조건을 인정하는 것. 유아론에 대항하는 바흐친의 사유틀이 바로 외부성이다. 항상 나의 바깥에-있음이 그것이다. 488 바위를 깎고 모래톱을 형성하는 물의 능력은 다양한 속도와 압력을 만들어 내는 환경의 차이, 그 조건에 달려 있다. 바흐친은 사유의 물길을 만드는 조건의 한 이름인 셈이다. 494 그에기 민중이 근대사회의 인민, 계급, 대중과는 다른 역사성 위에 놓여 있으며, 비근대적이며 반근대적인 힘으로서 표현되었던 것은 (역사 외부적이거나 비역사적인, 심지어 반역사적인 조망을 함축한다) 이러한 맥락이다. 이러한 역사 외부의 역사, 혹은 비역사나 반역사로서의 역사를 실재로서의 역사라 불러도 좋을까? 상징화를 비껴가는 힘으로서의 시간, 비공식적 시간의 흐름이자 민중적 삶이 지속되는 비공식적 영토가 바로 실재로서의 역사이고, 문화인 셈이다. 반문화를 문화와 역설적으로 일치시키고, 문화를 가동시키는 원천으로 보았던 이유도 그와 다르지 않다. 496 작품은 그 속에서 종종 자기 시대에서보다 더욱 강렬하고 충만한 삶을 영위하게 된다...498 존재의 본질이 아니라 실존의 조건이 진정 문제적이다 499 모든 이데올로기적 생산물은 그 자체가 현실의 일부분을 이룰뿐만 아니라, 또한 그러한 여타의 현상들과는 달리 이데올로기적 산물의 외부에 존재하는 현실을 반영하고 굴절시킨다. 500 현재하는 모든 문화적 양식은 특정한 시공간적 조건에서 발현되어 현실화된 잠재성이다....잠재성의 장을 바흐친은 ‘거대한 시간‘이라고 명명했다. 502

[ ] 동력학이라는, 힘의 운동에 대한 사유만이 이러한 주제들을 담아내고 촉지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506 창조적 이해는 아무것도 망각하지 않는다. 이해를 위해 중요한 것은 이해자가 창조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대상과의 관계에 있어서 시간과 공간과 문화 속에 놓인 이해자의 외부성을 확보하는 일이다.....하나의 의미는 낯선 다른 의미와 마주치고 접촉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깊이를 드러내게 된다. 그리고 이 사이에서 의미와 문화의 폐쇄성과 일면성을 극복하는 대화와 같은 것이 발생하는 것이다. 508 이상 민중과 그로테스트의 문화정치학 부제 미하일 바흐친과 생성의 사유에서

2.

[ ] 예술은 미학적인 목적을 위해서 감각적이거나 지적인 것을 인간적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율리시즈]는 한 인간이 인간 세계를 관찰한 후 그것을 ‘인간적으로 처리‘한 결과물이다. 13 울프가 ‘수많은 인상들‘과 ‘반짝이는 후광‘을 인상주의로 묘사할 수 있었다면 조이스는 사소한 삶의 경험에서 의미를 포착하는 인식의 순간을 꼼꼼한 문체로 추적함으로써 세속성의 미학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 삶의 물리적 리듬을 억압하고 인간과 세계를 단일한 추상적 원리나 체계로 환원시키는 전체주의, 권위주의에 대한 그의 거부감과 맥을 같이 한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스티븐이 벗어나고자 하는 역사 국가 종교는 예술가로 하여금 현실 속의 인간의 삶을 있는 그대로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며, ˝우리를 그토록 불행하게 만드는 엄청난 말˝을 통해 인간을 단일한 이데올로기로 묶어두려 한다. 20 초월적 지혜, 종교의 권위, 귀족 등 특정 사회 계층의 관점이 아닌, 남녀를 포함한 모든 계층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 경험을 통해 세계를 보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인물에 대한 작가 시점의 우월성을 주장하지 않았다. 인물을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대했으며 그들의 인간적 한계를 인정했던 것이다. 21

[ ] 현대의 모더니즘으로 이어지면서 인간을 추상화, 규격화시키고 체계 속으로 흡수하여 단일한 시각과 목소리만을 강요하는 전체주의적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 속에서 개별성을 가지는 존재로서 비록 추상적인 가치를 추구하고 체계를 통해 사고한다 하더라도, 삶의 의미는 언제나 인간에게 주어진 삶의 장인 혀실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인간의 삶은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22 관찰자 자신은 자신의 이미지를 볼 수 없다....타인은 ‘나‘의 외부에 존재함으로써 ‘나‘에 대한 전체적 이미지를 조망하고 ‘나‘를 ‘완결‘시킨다....만남과 대화는 하나의 의미 있는 ‘사건‘이 된다. 그런데 이 ‘사건‘은 시공상의 독특함을 가지므로 결코 추상적 체계로 환원될 수 없는 고유의 가치를 지닌다. 24

[ ] 바흐친의 세계는 미완의 인간들이 만들어 내는 대화와 ‘사건‘들의 공간이고, 그 어느 인간이나 ‘사건‘도 다른 것에 절대적 우위를 점할 수 없는, 그러므로 끊임없이 상호 침투와 수용이 이루어지는 ‘완결‘되지 않은 공간이며 미래와 변화에 대해 열려 있는 장소이다. 25 바흐친의 말은 자의식과 타의식이 만나는 장소이다. 인간의 구체적인 말 속에는 타인에 대한 의식, 즉 ‘곁눈질‘이 내포되어 있기 마련이며 따라서 말 소에 드러나는 타인의 존재는, 구체적인 인간의 말은 언제나 대화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26 바흐친이 자신의 언어 이론은 ˝초언어학˝이라 칭한 것은 그것이 구조주의 언어학이 다루지 못하는, 구체적인 현실에서 차지하는 인간의 위치와 그 특수성을 다룰 수 있기 때문이었다. 27 그의 말은 닫힌 체계와 단일한 원리만을 주장하는 독단주의를 거부하고 인간과 삶의 본질적 가치를 주장하는 살아 있는 외침이다. 27 이상 조이스와 바흐친 부제 스타일과 미학의 만남에서

3.

[ ] 고독하다는 것은 다 말하거나 드러내지 못한 나만의 무엇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드러내고 나누고 모든 것을 함께 할 수 있다면 고독이 어디에 존재하겠는가. 인간 존재의 고독함이란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말해도 또 남는 자신만의 무엇이 존재하는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잉여의 자아, 혹은 자의식을 가지고 있는 고독한 인간이야말로 타인과의 대화와 소통을 절실히 요구한다. 모든 것을 다 드러내고 그리하여 더 이상 남은 잉여의 자의식이 없는 인간에게(혹은 그렇게 믿는 자에게) 대화와 소통은 도대체가 불필요한 것이거나 형식적 장치, 혹은 수다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고독한 자야말로 진정한 인간이란 말 아닌가. 대화와 소통은 바로 그 고독한 인간에게 가장 절실할 것이다. 11 미하일 바흐친과 폴리포니야에서

볕뉘.

0. 절판이 된 것들이 있지만 읽어보니 어느 정도 독서욕을 충족시킬 수 있을 것 같다. 드문드문 읽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책들 사이 큰 문턱이 없는 듯싶다.

1. 최진석은 러시아의 최신 바흐친 연구동향을 이야기하면서 철학자나 사상가로서 읽을 필요가 있다고 한다. 공감한다. 책방에서 책을 읽다가 말미 페미니즘??도서 신간들이 눈에 띄여서 구입하고 애슐리 마델의 [LGBT+첫걸음]이 손에 잡혀 읽었다.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이 아니라 성적/로맨틱/젠더 정체성으로 나뉘며 무수한 스펙트럼(색조견표)으로 나누는 성과 새로운 말들을 발견해낸 것이 들어왔다.

2. 어떻게 섞이고 어떻게 사유를 비틀어갈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러가지가 혼입되었다는 점. 생각들이 서로 소용돌이 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일상의 소소한 사건들이 과격하게 읽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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