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을비가 재촉한다. 포도에 착근한 검붉은 낙엽들. 싱싱한 생선처럼 더욱 또렷해지는 가을나무들. 일터로 향하는 길. 라디오 주파수가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클래식도 어울릴 것 같은 빗방울소리들. 높아지는 볼륨. 하이든 교향곡 0 번....바이올린 리듬이 가슴박동과 공진한다. 매체와 담을 쌓은지도 꽤나 오래되었다. 오랜 가뭄처럼, 투박한 산행길에 날리는 흙먼지 같은 제모습들.
2. 산행꾼들과 계룡산 상신리에서 수정봉 - 금잔디고개, 상신리입구로 내려오는 코스. 너무나 편안한 복장으로 함께 했다. 한,두시간쯤으로 갔다와 식사를 하는 줄 알고 있었으나, 깔개와 깔판, 정성이 담긴 도시락까지 만반의 준비를 갖춘 그들이다. 전날 20k를 달려 마실삼아 몸도 풀 생각이었는데 어찌 분위기가 만만치 않다. 대장님의 완숙함이 없더라면 꽤나 고생하였을 것 같았는데, 적절한 휴식, 농담, 간이토론, 주제마다 사람마다 고개 하나씩 바뀌어, 맛 본 술의 종류만큼 달콤하고 향긋하다.
3. 그렇게 5시간의 산행을 마치고 돌아온 길, 막걸리 한잔과 고소한 두부 한모. 대전으로 돌아와 산행만큼의 뒤풀이다. 서서히 고개 하나씩 넘듯이 뒤풀이객들이 하나씩 모여 짙은 농과 색깔을 뿜어낸다. 당진에서 온 느릿한 말솜씨의 ㅅ. 해남을 거쳐 산행이 마친 뒤 훨씬 지난 시간에 온 ㅈ. 빠르고 거친 톤의 도목수. 사람마다 관계가 제각각이다. 정신 못차릴 듯. 웃고, 배꼽잡고, 격없는 조언....마치 짜고치는 고스톱처럼. 장단이 잘 맞는다.
4. 너무 재미를 잊고 산 듯 싶고, 멀리 떨어져 산 듯 싶다. 그 산행이 이어질 듯싶다. 뒤풀이도. 객적은 농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