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나 해러웨이

빛낱말: 공의존관계, 실매듭으로서 삶, 상황적 지식, 겸손한 목격자, 사이보그, 질병과 죽음

[ ] 믹소트리카 파라독사(Mixotricha paradoxa) 흰개미의 장 속에 서식하며 상호의존적인 다섯 종류의 박테리아가 공생하는 생물체로서, 흰개미가 먹은 나무 조각을 소화시켜 흰개미에게 영양을 제공하는 기능을 한다. 중요한 것은 숙주라 불리는 믹소트리카 파라독사와 여기에 기생하는 박테리아들이 서로 독립해서는 살지 못하는 공의존관계라는 사실이다. 95

[ ] 해러웨이는 자신의 ‘가르치는 일‘을 ‘실뜨기의 놀이 경험의 구현‘으로 설명한다. 생활 속에서,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연속적으로 맞물려지는 매듭들 속에 연루되는 경험이다...새로운 시간과 교차하는 만남에 계속 귀 기울이고 그들과 엮이며 생산하는 한, 그들과 함께 있는 한 106

[ ] 서양과학의 전반이 남성적 원칙에 기초하고 있음을 비판한다. 서구 인본주의 즉 이성중심주의는 정신과 육체를 이분화해 이성과 정신을 ‘남성적 원칙‘의 기초로, 감성과 육체를 ‘여성적 원칙‘의 기초로 삼았고 후자를 비이성적인 것, 문화활동에 저해가 되는 것으로 금기시해왔다. 107

[ 1 ] 상황적 지식: 서구 과학의 이런 남성중심주의를 ˝죽은 백인 유럽 남성들 dead white european males˝이라는 표현으로 풍자하고..이것이 ‘객관적 지식‘의 전제가 되었다로 폭로한다. ‘상황적 지식‘이라는 개념은 모든 사람(그룹)의 비전이 그 사람(그룹)의 시시각각 변하는 정체성에 의해서 구성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부분적일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자연의 실재는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구성‘되는 것이며, 좋은 과학과 나쁜 과학은 구별할 수 있고, 이를 구별하기 위해서는 자연현상의 물질적 분석과 이를 둘러싼 문화적 분석이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고 말한다. 108

[ 2 ] 겸손한 목격자: 상황적 지식이란, 겸손한 목격자의 지식이다. ‘목격‘이란 보는 것이고, 증언하는 것이며, 서서 공공연하게 자신이 보고 기술한 바를 해명하는 것이며, 자신이 보고 기술한 바에 심적으로 상처받는 것이기 때문이다...목격하는 사람들은 모두 죽어야 하는 존재들이고, 틀리기 쉬우며, 무의식적인, 부정적인 욕구들과 두려움들로 가득 찬 사람들이다.......겸손한 목격자는 상황적 지식에 몰두할 수 있는 사람이다. 겸손한 목격자는 자신의 영향력, 권력 한계를 인식한다....이때 겸손은 자기 소모적인 낮춤이나 무능력을 모르는 척하는 것이 아니다. 겸손은 오히려 하나의 특정한 재주인데, 그것은 자신이 처한 위치와 목격 상황이 그 자체로 어떤 유산이자 복합적 구성물임을 인정하면서 이러한 위치성을 주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109

[ ] 여성주의의 지향이 소위 ‘정상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쟁취하는 데 머무르는 한, 여성주의적 성찰은 가부장제의 반담론에 불과하게 된다. 111

[3 ] 사이보그: 사이보그는 무엇이 자연이고 무엇이 비자연적 인공인지 질문을 던지는 존재다. 사이보그는 동물과 기계의 합동적 혈연관계를 주장하고 본질적 정체성을 부인한다...111.. 정말 ‘여성‘으로 자연스럽게 묶일 그러한 본질과 범주가 존재하는가?..젠더, 인종, 계급같은 단일한 정체성은 가부장제, 모순된 사회 현실들이라는 끔찍한 역사적 경험에 의해 우리에게 강요된 성취다.....사이보그에게 묶임이 있다면 이주노동자와 같은 존재라는 사실, 아웃사이더라는 사실일 것이다...페미니스트들은 인간중심주의를 무너뜨리려 노력하고 이 붕괴를 포용해야 한다. 사이보그를 페미니즘의 중요한 성찰로 가져갈 때, 가부장제가 뿌리리박은 불평들을 무너뜨릴 수 있고, 이질적인 것들의 연결과 접합이라는 자산을 얻을 수 있다.....112,113

[ ] 새로운 생산: 이원론의 설화를 전복하고 시작되는 새로운 신화는 이제 타락 이전 순수의 시절을 다루지 않는다. 이것은 ‘새로운 생산‘을 여는 신화다...생성과 소멸로, 다신 생산으로 가득 찬 이 세계에서 살아가기를 지향한다...사이보고는 부활을 원하지 않고, 총체성보다는 우리의 경계를 구성하고 다시 해체하는 친밀한 경험 속에서 재생을 희망한다...사이보그의 말은 이교도의 말이자, 이질적이고 다양한 각기 다른 언어로, 복수적으로 복합적으로 다중적으로 말하는 말들이다. 113

[4 ] 질병은 관계다.: 우리가 직면한 사실은 인간은 역사 속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며, 우리가 병들고 노쇠하는 존재, 생명의 한계를 지닌 존재라는 것이다...˝죽음의 긍정이 절대적인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을 찬미한다는 의미에서의 긍정이 아니라, 솔직히 말해서, 죽어야 할 운명이 아니라며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의미에서 그렇다.˝...고장은 임무를 성취하기 위해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유대관계를 드러낸다....질병의 위협은 건강의 주요 구성요소들 중 하나다. 115 질병을 관계 맺음으로 이해했을 때, 면역체계는 몸속에서 중요한 세포 체계 간의 의사소통 공간으로 작동한다. 세포 간에도 서로를 인식하고 관계 맺는 소통이 이루어진다. 질병은 관계의 문제이고, 관계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맺어지느냐에 따라 서로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117 질병과 싸운다라는 표현 자체의 정치 은유가 문제다.

볕뉘

0. 묵혀 두고 읽지 못한 책인데, 다시 눈에 들어온다. 다른 인물을 모두 읽거나 파고 있는분들이기도 한데, 이 분이 생소해서 펼쳐보았다. 출판 번역된 책은 네 다섯권 정도..그 책들을 살핀 것이다.

1. 건강이 생의 주요한 척도가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삶은 죽지 않으려고 한다는 데 문제가 심각하다. 죽음과 질병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만이 예외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 사회와 닮고, 각박한 세상의 복제품임을 증명해내고 있다. 질병에는 죽음을 스며들어 있다. 그런면에서 정상과 비정상을 구별해내고 정상만을 탐하는 사회에 다른 시야와 시선을 가질 수 없다. 죽음과 체념을 통해 그 관계들을 다시 생각해내는 지혜를 통해 삶은 더 성숙해질 수 있다. 나도 병들고 나도 죽기 때문이다. 그 모든 관계들은 삶의 그물에서 출렁이고 서로 매듭으로 맺어지며 살아가야 한다. 서로의 마음과 몸의 시선과 시야 속에 녹아들어야 더 자유롭고 넓은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2. 질병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부족하였는데 이렇게 상기시켜주니 다행이다 싶다. 거기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 만남들의 출발점을 공유할 수 없음이 늘 안타까웠다.

3. 강박처럼 총체성에 잡혀 있었던 것은 아닌가?이원론과 이분법을 녹아내리게 하는 방편으로 좀더 깊은 읽기를 해보아야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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