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젠더전과 퓨리오숙의 탄생: 한국 여성들의 생존 문제다. 한국 여성의 노동 조건은 점점 열악해지고 있으며, 실질적인 경제권이 보장되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극심해진 여성 혐오 문화는 한국 사회의 강간 문화를 강화시키고 있다. 경제, 정치, 문화는 분리되지 않은 채로 여성의 삶의 조건을 형성하면서 생존을 위협한다. 105

[ ] 미국 대중 문화: 메리다와 마법의 숲 2012, 겨울왕국 2013, 말레피센트 2014, 헝거게임 시리즈 2013-2015, 주토피아 2016, 모아나 2016에서 새로운 여성의 재혀늬 만개 105

[ ] 매드맥스:분노의 도로 주인공인 퓨리오사.....갓숙이자 퓨리오숙인 그는 말한다. ˝여자들 웃음소리가 담장 밖을 넘어가야, 그게 사는 맛이지˝ 107

[ ] 가모장과 문명남에 대한 열광은 일면 ‘이성애 섹슈얼리티에 기반한 대중문화의 열풍‘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을 초과하는 것이 있다. 남성과 공존해야 하는 여성의 ‘생존 문제‘다. 2015년 한 언론에서 조사한 것처럼 ‘여혐혐‘을 추동하는 가장 큰 힘은 공포/두려움이었다. 그리고 그 공포는 범죄 공포, 결혼 공포 그리고 시선 공포의 세 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109

[ 1] ‘느낀다‘라는 전쟁: 느낀다라는 것 자체가 정치이자 일종의 전쟁인 것이다. 126 낡은 습관의 해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한 습관의 폐기는 새로운 습관의 창조와 결부되어야 한다. 습관은 우리가 기대고 있는 하나의 체제이며, 삶을 조직하고 유지하는 체제는 어느 공동체에나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습관의 해체는 무가 아닌, 새로운 것에 대한 지향이다. 체제의 구성과 유지를 둘러싼 적대의 형성을 정치라고 본다면, 그런 의미에서의 정치는 욕망 및 정동과 관련된 것일 수밖에 없다. ....같은 사건을 두고서 ‘여성 혐오 살인사건‘ 혹은 ‘묻지마 살인사건‘이라는 각기 다른 평을 하면서 각자 다른 감정을 느끼는 것은, 이 사회가 구성원을 길들여온 습관의 문제와 관련된다. 그런데 ‘페미니즘 리부트‘가 이 습관의 고리를 끊어내고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 장을 구성해내고 있다는 사실은 상당히 흥미롭다. 정동이 이데올로기적 매트릭스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지만, 거기에 균열을 낼 수 있는 가능성으로 논의될 수 있는 사례다.....여기서 베르그송의 ‘지속‘ 개념에 다시 주목해보자. 습관의 변용은, 인터넷이라는 버추얼에 흐르고 있던 순수기억으로서의 ‘페미니스트 버추얼(잠재성)‘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새로운 페미니스트 주체의 탄생에 큰 영향을 끼친 트위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페미니즘 학습과 의식화의 경험은 잠재적인 것으로 부유하고 있던 과거 논쟁의 기억이 특정한 계기들에 의해 표면으로 올라오는 것, 그런 일련의 지속 안에서 축적된 것이다. 127

[ 2] 미국 최초의 아프리카계 대통령 선출로 이어졌던 미국에서, 8년 후 소수자 혐오와 신자유주의적 천박함을 선거 전략으로 내세운 트럼프가 승리했다. 이런 현실로 미뤄본다면, 마모루가 야심차게 분석하고 있는 ‘정동의 힘‘은 일견 순진해 보인다. ‘강남역 10번 출구에 등장했던 ‘핑크 코끼리‘가 표상하는 것처럼, 부대낌, 정동, 오염은 어떤 의미에서도 당위적으로 ‘선‘만으로 정향되지 않는다. 마모루가 자신의 책에서 다루지 않았던 모멸과 혐오, 불행의 감각 등은 향후 좀더 폭넓게 탐색되어야 할 것이다. 133

[3 ] 여성 혐오에 기반한 남성들 간의 ‘평등‘이라는 도착적인 상상력, 마녀사냥이라는 여성 젠더에 대한 대대적인 거세 작업, 이를 바탕으로 했던 여성들의 ‘가정주부화‘ 과정. 이는 새롭게 등장한 정치경제 체제인 자본주의가 지금까지의 습관이었던 가부장제라는 강력한 지배 체제를 이용하면서 동시에 이에 복무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가부장제적 자본주의 혹은 자본주의적 가부장제라 할 수 있는 가부장체제가 등장했다. 이는 곧 자본주의의 시초 축적 과정이기도 했다. 마르크스가 규명했던 자본주의 시초 축적은 젠더 중립적이지 않은 과정이었던 셈이다. 137

[ 4] 신자유주의란 모든 것을 사유화하여 공유지를 박탈하고, 그렇게 공동체와 그 내부의 사회적 관계를 박살내서 강도 높은 노동 착취를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이다. 각자도생, 무한경쟁, 먹고사니즘의 등장은 이런 공유지 박탈의 원인이자 결과인 것이다. 1980-90년대에 새로운 영토로 등장해 사이버 공유지로 상상되었던 인터넷에서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점증한 것 역시 바로 이 시기였다. 서로가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동떨어진 섬이 되어버리는 단절의 공간. 이는 사이버 인클로저라 할 만하며, 이것이 강력한 타자화의 동학인 혐오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이런 흐름이 감정의 인클로저와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지금 목도할 수 있는 ‘온라인 지옥‘은 바로 이런 인클로저 현상의 연장선상에 있다. 137

볕뉘

0. 간헐적인 독서다. 사실은 의도가 있는 오독을 하고 있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 대신에 ‘사회운동‘이란 말로 대신한다.

1. 아이엠에프의 파고로 이어지는 일련의 정치경제의 흐름 속에 가장 약자인 여성들의 틈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세세한 결들을 잡아내는 것이 놀랍다. 여러 이론들의 결합도 그러하다.

2. 권력의 결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힘을 부리는 자의 언어가 아니라, 새로운 말을 찾아내고 표현한다는 것. 이것이 운동이나 활동의 결이 살려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말을 가지고 될 때만 표현이 가능하니 말이다.

3. 풀처럼 바람의 결을 느끼고 말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가슴과 마음을 울리는 새로운 말들로 하나하나 모두 새로이 무장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힘이 되는 모든 것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4. 오늘도 여전히 페미니즘 리부트의 단어를 오독한다. 오독해내야 한다. 늘 가진 자의 언어만 쓰는 세상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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