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죽음 그리고 시간


[ ] 죽음이 확실함일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하지 않으며, 또 죽음이 무화의 의미를 가진다는 것도 확실하지 않다. 죽음과 나의 관계는 또한 타자의 죽음에 대한 앎에서 오는 감정적이거나 지적인 반향으로 만들어진다.....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예감되는 죽음과의 관계, 죽음이 우리의 삶에 자국을 남기는 방식, 우리가 살아 나가는 시간의 지속에 죽음이 가하는 충격, 시간 속으로의 죽음의 침입은 여전히 앎과 동화될 수 있는가? 21

[ ] 죽음은 죽음의 경험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것은 타인의 죽음으로부터 오는 의미, 타인의 죽음이라는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에게 관계하는 것으로부터 오는 의미다. 22

[ ] 인간의 삶은 ‘가리는 것‘, ‘옷입는 것‘이며, 동시에 ‘벌거벗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삶은 일종의 ‘엮임‘이기 때문이다. 23

[ ] 자신을 표현하는 어떤 이는 나와 다른 자, 나와 구분되는 자다. 그는 내게 무관하지 - 않은 존재로, 나를 지탱하는 자로 자신을 표현한다....그 어떤 이는 곧바로 생물학적 과정 너머에 있는 자이며, 어떤 이로서 나와 엮여 있는 자이다. 24

[ ] 데카르트가 조종실 속에 있는 항해사의 이미지에 반대해서 실체화한 것, 라이프니츠가 모나드로 설정한 것, 플라톤이 이데아들을 관조하는 영혼으로 놓은 것, 스피노자가 사유의 양태로 생각한 것, 이 모든 것이 현상학적으로는 얼굴로 기술된다....그래서 여기서는 존재하느냐 또는 존재하지-않느냐 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가, 그러한 질문에 앞선 문제가 제기된다. 24

[ ] 타자의 죽음으로서의 죽음은 자아로서의 나의 동일성에 영향을 미친다. 타자의 죽음이 의미를 지니는 것은 그것이 동일자와 단절하는 가운데서며, 나의 자아 속의 동일자와 단절하는 가운데서다. 26

[ ] 죽음을 어떤 무규정성의 물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될까? 즉 주어진 것들에서 출발하는 문제로 설정된다고 할 수 없는 그런 무규정성의 물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될까? 죽음이란 되돌아오지 않는 떠남, 주어진 자료 없는 질문, 순수한 물음표인 셈이다. 28

[ ] 죽음에 의한 정감은 정감성이고 수동성이며 척도를 벗어나는 정감, 현존하지-않는 자에 의해 현존하는 자가 가지는 정감이다...죽음과 맺는 관계는 모든 경험에 앞선 것으로, 존재나 무에 대한 비전이 아니다. 지향성은 인간적인 것의 비밀이 아니다. 인간의 존재는 코나투스가 아니라 탈이해관심이며 작별 인사다. 29

[ ] 죽음의 예-외 속에서 죽음과 맺는 관계는 순수하게 감정적인 관계다. 그것은 한 감정으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지만, 그 감정은 어떤 앞선 앎이 우리의 감성과 지성에 반향함으로써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죽음의 예-외 속에서 죽음과 맺는 관계는 미지의 것 속에서의 감정이고, 운동이고, 불안정이다. 31

[ ] 시간은 존재의 제한이 아니라 무한과 맺는 존재의 관계다 죽음은 무화가 아니라 질문이다. 무한과의 관계 즉 시간이 생산되는 데 필수적인 질문이다. 34

[ ] 언어가 죽음이라 부르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옮겨질 수 있는 사건성이기도 할 것이다. 이 옮김은 기계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자아-자신의 얽힘 또는 뒤얽힘에 속하는 것이며, 나의 고유한 지속의 선을 절단하는 것, 또는 이러한 선에 매듭을 만드는 것이다. 마치 내가 지속하는 그 시간이 어떤 길이만큼 끌리는 것처럼. 34

[ ] 자아 - 또는 나의 독특성 안의 나 -는 그 개념을 빠져나가는 누군가이다. 자아는 책임 가운데 타인에 응답함으로써만 자신의 유일성 속에서 나타난다. 이때의 책임은 결코 회피할 수 없는 것이며, 나는 그 책임으로부터 결코 면제될 수 없다. 자아는 자신의 대체 불가능성으로 이뤄지는 자기-자신의 동일성이다. 즉 자아는 모든 빚 너머의 의무이며, 그래서 어떠한 떠맡음도 그 수동성을 부인할 수 없는 인내다. 36

볕뉘.

0. 설거지, 가을꽃을 담은 2리터 생수병으로 꽃화분을 만들고, 청소한 뒤 마실이다. 동네 천장이 아주 높고, 그 높이까지 책장이 있는 카페다. 조심스레 읽다.

1. 그는 너무도 쉽게 하이데거의 존재를 넘는다. 죽음이라는 것도. 생명에 갇힌 순수지속으로서 시간에도 균열을 내버린다. 나라는 것이 너와 다른 ‘고ㅓㅅ‘에 빚지고 있음을 말한다.

2. 가까운 지인의 죽음으로 그 말없는 자의 부름에 곤혹스러웠다. 명절 만난 지인은 그 의례를 밟지 못해 아직 그 그물에서 있는 듯 싶었다. 일사와 하는 일, 하고싶은 일이 겹쳤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여실히 겪고 있는 셈인 것이다.그래서 이리로 끌려온 것인지, 생명과 삶의 충만성에 돌다리를 건너다 이렇게 덥썩 물린 것이다. 다음 징검다리로 건너 뛰어야 할지, 아니면 밟아야할지 모르겠다. 물이 흘러 잠긴 징검다리...신발이 젖든....생략하고 뛰다보면 온몸이 젖을 수도 있는 그런 디딤돌이다.

3. 이렇게 간편하게 코나투스의 쓸모를 버리는 것을 보라. 그의 바둑판이란 19*19칸이 아니라 곁에 하나 더 있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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