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물거품 - 칼릴 지브란

[ ] 우리는 단지 아름다움을 찾아내기 위해서 살아갑니다/그 밖의 모든 것은/기다림의 한 형태일 뿐입니다 44
[ 1] 모든 남자는 두 사람의 여인을 사랑합니다/그 하나는 그의 상상이 탄생시킨 여인이며/또 다른 하나는 미처 태어나지 않은 여인입니다. 45
[2 ] 우리 모두는 감옥에 갇힌 죄수들입니다/하나, 우리 중 몇 사람은 창이 달린 감방에 있습니다./다른 이들은 그렇지 아니한 때 65
[3 ] 진실로 /타인이란 다른 몸뚱아리에 담긴/가장 민감한 자기 자신입니다. 67
[4 ] 이 세상에서의 최고의 미덕은/어쩌면 다른 세상에서는 최하의 것일지도 모릅니다. 73
[5 ] 죽음은 막 태어난 아기에게보다/나이 든 사람들에게/더 가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생명 역시 그러합니다. 75
[ 6 ] 진실로 그대가 솔직하게 털어놓고자 한다면/아름답게 솔직하십시오 76
[7 ] 비록 명백한 것들이라도 누군가가 간결하게/표현해 내기 전에는 결코 이해할 수 없습니다. 77
[ ] 석탄에 대한 시간의 정의가 다이아몬드라면/아마도 조개에 대한 바다의 정의는 진주일 것입니다. 77
[ ] 나는 여행가, 항해자,/매일 내 영혼 안에 감추어져 있는/새로운 땅을 발견합니다. 80
[ ] 불화가 두 마음 사이를 잇는/가장 빠른 지름길일지도 모릅니다. 80
[8 ] 아름다움은 더욱 밝게 빛납니다/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의 눈동자 속에서보다/그것을 갈망하고 있는 사람의 가슴속에서 89
[ ] 그대가 배움의 삶, 그 끝에 이르렀을 때/그대는 느낌의 삶, 그 시작에 닿은 것입니다. 91
[ ] 오늘날 우리의 슬픈 일들 중에서도/가장 큰 슬픔은/간직했던 어제의 기쁨을/기억 속에 떠올리는 것입니다. 93
[ ] 미움이란 죽은 시체와 같은 것입니다./그대들 중/스스로 무덤이 되고 싶은 사람이 그 누구입니까? 103
[ 9 ] 그대는 젊음과 지식을 동시에 지닐 수 없습니다./젊음은 너무 바빠 앎에 이르지 못하고/지식 또한 너무 바빠/삶을 추구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104
[ ] 뿌리는 화려한 명성을 거부하는/ 한 떨기 꽃입니다. 105
[ ] 아무도 상처 입지 않을 거짓말:˝그의 마음의 집이 그의 사상을 담기에는 너무나 작아, 그는 더 넓은 공간을 찾아 떠나야 해˝ 106
[10 ] 사람들에게 빈손을 내밀었으나/아무것도 얻지 못하였다면 참으로 비참한 일입니다/그러나 내가 가득 찬 손을 내밀었음에도/아무도 받는 이가 없다면/그것은 절망입니다. 108
[11 ] 성경에 미처 기록되지 못한/우리 형제 예수의 세 가지 기적이 있습니다/그 첫째는 그도 그대와 같은 인간이라는 것/둘째는 그에게 유머 감각이 있었다는 것/셋째는 비록 핍박을 받을 때라도/ 자신이 승리자임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111
[12 ] 언어 표현 속에 가두어 둔/모든 생각을/나는 나의 몸짓을 통해/해방시켜 주어야만 합니다. 112

볕뉘

[1]. 사랑이란 스스로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상상과 태어나지 않은 사이에 두는 과정을 통해 달라지는 것일지도..여인을 연인으로 바꾸어야할지도
[2]. 서경식 선생은 자신의 위치를 지하의 감옥이 아니라 지하 감옥에서 손이 닿지 않는 창문 하나를 보고 있는 자신을 상정한다. 그래도 창문으로 얼핏설핏 비치는 그림자같은 풍경에 무척 위안을 얻는다고 한다. 루쉰의 쇠감옥이 아니라서 좋다. 고흐의 몸짓도 창문으로 비치는 그림자이고, 무수한 책들도 그러하며, 질문자들의 형편이 낮은 질문을 감싸서 답변하는 그 모습은 무척 아름답게 느껴졌다. 책과 현실의 만남의 차이라고 할까.
[3]. 레비나스는 스승 후설과 하이데거가 보지 못한 타자를 보았다. 너를....나에게 모든 물음을 집중시켜 헤어나지 못하는 선배철학자들에게서 타인에게서 사유하는 근본적인 방법을 다시 시작하였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4]. 사회적 위치와 처지에 따라 쓰는 언어가 다르다는 것은 여성과 남성의 연애 기억이 전혀 다른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사회적 처지는 그 상황을 달리 기억한다. 가진자-남성-가부장-권력 중심이 만들어낸 언어들은 폐기되어야 한다. 그러니 세상은 가지지 못한자들의 언어로 한번도 말해본 적이 없다. 그러니 지금 이 세상의 최고라는 것들은 다른 세상의 최하라고 가정하는 편이 빠르다. 말이 적확해지고 새로 생겨야 한다. 세상은 그렇게 해야 겨우 만들어지는 것일지도
[5] 죽음에는 선후배가 없다지만, 생명도 그러하다. 삶을 발견하는 것도 나이차가 있는 것이 아니다. 윌트 휘드먼 같기도, 다소 오글거리는 칼릴지브란은 비혼자ㅗ 48세에 유명을 달리했다. 화가이자 시인이자 폭넓은 독서와 사유자인 그는 죽음에 갇혀 그것을 전제로 노래한 이가 아니다. 탄생과 삶의 지복을 출발점으로 삼은 것 같다.
[6.7] 아름답게 솔직할 것...솔직하다는 것을 곁에서 받아들이는 일은 무척이나 부담스럽고 힘든 일이다. 거의 작품이 되었을 때나 그 슬픔들은 온전히 나의 마음으로 들어와 공명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11]. 종교생활을 하는 이에게 꼭 묻고 싶은 질문이다. 외울 수 있을지 모르지만...
[12]. 배움의 삶과 느낌의 삶은 다른 것이라고, 삶에도 끓는 점이 있는 것이라고....

0. 지인이 권한 영화를 보고, 출간 소식에 본 책이다. 아포리즘이기보다는 시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예언자를 쓴 뒤 2년뒤에 쓴 것인 듯...오글거림을 떠나 삶을 뒤집어서 사유하고 싶은 분들이라면 권해보고도 싶다. 존재론에 찌들어 헤어나지 못한다면 ...한 번 더......어제는 인간실격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다. 도련님의 시대로 지칭되는 20세기 초반의 엘리트 지식인들은 근대를 앓았다. 아니 자아를 앓았다고 해야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근대를 제대로 앓지 못했다. 100년이 훌쩍 넘었지만 세상은 자아를 앓지 않는다. ‘나‘를 질문하지 않는다. 하물며 ‘너‘는.....그래서 늘 유아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하는지도 모른다. 격변의 시대 ‘제대로 된 인간‘에 대해 서로 아름답고 솔직하게 논의해보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시대의 통증을 제대로 앓아야만 그래도 다음 세상은 그것을 뿌리삼아 꽃이라도 피워볼 것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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