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 신용목
내가 죽은 자의 이름을 써도 되겠습니까? 그가 죽었으니 내가 그의 이름을 가져도 되겠습니까? 오늘 또 하나의 이름을 얻었으니
나의 이름은 갈수록 늘어나서, 머잖아 죽음의 장부를 다 가지고
나는 천국과 지옥으로 불릴 수도 있겠습니까?
저기
공원에서 비를 맞는 여자의 입술에서 그의 이름이 지워지면, 기도도 길을 잃고
바닥에서 씻기는 꽃잎처럼 그러나 당신의 구두에 붙어 몇발짝을 옮겨가고 ......
나는 떨어지는 모든 꽃잎에게 대답하겠습니다.
마침내 죽음의 수집가,
슬픔이
젖은 마을을 다 돌고도 주인을 찾지 못해 나에게 와 잠을 청하면,
찬물이 담긴 주전자와
마른 수건 하나,
나는 삐걱거리는 몸의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목소리로 물을 수 있습니다.
더 필요한 게 있습니까?
그러나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달라고 할까봐.
꽃 핀 정원에 울려퍼지다 그대로 멈춰버린 합창처럼, 현관의 검은 우산에서
어깨에서.....빗물처럼
뚝뚝,
낮은 처마와 창문과 내미는 손
위에서
망각의 맥을 짚으며
또,
보고 싶다고......보고 싶다고......
울까봐.
ㄱ러면 나는 멀리 불 꺼진 시간을 가리켜 그의 이름을 등불처럼 건네주고,
텅 빈 장부 속에
혼자 남을까봐. 주인 몰래 내어준 빈방에 물 내리는 소리처럼 떠 있는
구름이라는 물의 영혼, 내 몸속에서 자라는 천둥과 번개를 사실로 만들며
네 이름을 훔치기 위해
아무래도 죽음은 나에게 눈을 심었나보다, 네 이름을 가져간 돌이 비를 맞는다.
귀를 달았나보다, 돌 위에서 네 이름을 읽는 비처럼,
내가
천국과 지옥을 섞으며 젖어도 되겠습니까?
저기
공원을 떠나는 여자의 붉은 입술처럼, 죽음을 두드리는 모든 꽃잎이 나에게 기도를 전하는......
여기서도
인생이 가능하다면, 오직 부르는 순간에 비가 그치고 무지개가 뜨는 것처럼
사랑이 가능하다면,
죽은 자에게 나의 이름을 주어도 되겠습니까? 그가 죽었으니 그를 내 이름으로 불러도 되겠습니까?
볕뉘
0. 쪽빛 하늘, 흰 뭉게구름...햇살을 투명하다못해 콕콕 찌르듯 날카롭다. 그늘. 명암의 대조만큼 바람이 분다. 그늘에 서서 밝음에서 어두움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안는다. 팔을 벌렸다. 손가락 사이로 바람은 빠져나가며 손바닥 안에 소용돌이를 만들어 간지럽다. 눈이 감겼다. 나는 구월 작열하는 태양아래, 그늘에 서성거리며 손가락의 실핏줄에 집중했다.
1. 바닷가 그늘바람을 헤아리다가 강연자료를 읽어냈고, 시간이 남아 시집을 펼쳤다. 그만 이 시를 읽었고 마음이 시큰거려 어쩌지 못했다. 아리고 비릿하다. 아니 마음이 찰랑거려 눈의 물, 수위가 눈가까지 찰 듯했다.
2. 죽음의 장부에 이름을 쓴다. 사랑이 가능하다면 그 죽은 자에게 나의 이름을 주어도 되겠습니까? 그가 죽었으니 내 이름으로 불러도 되겠습니까? 내 이름으로 그 위에 써도 되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