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은 바닥에 떨어져야만 위로 솟구쳐 튀어 오른다
[ ] 유미적 평화주의자 164
[ 1 ] 왜 뱀은 구르는 수레바퀴 밑에서 자기 머리를 집어넣어 말벌과 함께 죽어버렸는가? 말벌이 뱀의 머리 위에 앉아 침으로 계속 쏘아댔으므로 뱀은 아파서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복수할 방법이 없었으므로 뱀은 구르는 수레바퀴 밑에 자기 머리를 집어넣어 말벌과 함께 죽어버렸다 / 뱀과 말벌의 관계는 나와 문학과의 관계 현실과의 관계 나를 괴롭히고 고민하게 만드는 그 모든 것들과의 관계와도 같다./그러나 나는 죽음이 두려워 현실이라는 거대한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서글픈 존재이다./과연 나는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적을 깨부숴버릴 수 있을까 과연 나는 말벌과 함께 죽는 뱀의 우렁찬 용기를 가질 수 있을까. 서시
[ ] 엄밀히 말해 모든 인간은 이성이라는 권위에 복종하는 대가로 문명생활이라는 팁을 받아먹고 살아가는 마조히스틱한 체질의 노에라고 할 수 있다. 129
[ ] 남에게 베풀고 나서 느끼는 행복감은 건방진 시혜의식과 우월감에서 나오는 만족감일 뿐이지 진짜 행복감은 아니다. 129
[ 2 ] 친구에게 우정을 쏟아 그에게 한없는 은혜를 베풀면, 그 친구는 반드시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 왜냐하면 은혜를 입는 동안 계속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다. 130
[ ] 나는 이성을 통해 육체를 콘트롤하기보다는 육체를 통해 이성을 콘크롤하는 편이 훨씬 더 효과적일 뿐더러, 그런 방법에 의해서만 몸과 마음의 균등한 행복이 이루어질 수 있고 운명의 극복 또한 가능해진다고 믿는다. 132
[ ] ‘일할 땐 확실히 일하고, 놀 땐 확실히 논다‘는 사고방식을 자유주의 정신에 따른 최선의 생활관으로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 133
[ ] 진리는 오히려 폭력, 권력, 도그마가 되기 쉽다....오히려 ‘자유‘가 우리를 진리케 한다. 134
[ ] 이성에서 오는 즐거움이 맑은 유리처럼 투명한 것이라면, 감성에서 오는 즐거움은 반투명의 유리처럼 환상적인 것이다. 올바른 이성은 ‘각성‘을 주고 독창적 감성은 ‘황홀‘을 준다. 135
[ ] 일탈본능이 적절한 대리배설의 통로를 찾게 되면, 오히려 인간의 정서를 안정시키고 인간의 ‘창조적 에너지‘를 보다 넓게 확충시킨다....일탈적인 내용으로 된 꿈을 우리가 ‘시원한 길몽‘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36
[ ] 빵에 대한 통제가 물리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다면 섹스에 대한 통제는 인간이 정신을 지배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종교, 도덕, 윤리 등 각종 사회 규범들의 가장 밑바닥에는 섹스에 대한 금기와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에 대한 구별이 있다. 143
[ ] 현재의 욕구에 정직하되 ‘길게 보고‘ 살며 ‘두고 보자‘ 정신으로 나가야 한다. ‘두고 보자‘ 정신은 절대로 복수의 정신이 아니다. 시류를 초월해 주변의 유행사조에 연연해 하지 않고 시대를 앞서가는 정신이 바로 ‘두고 보자‘ 정신이요. 천진난만한 솔직성과 직관력을 지닌 천재의 정신인 것이다. 161
[ ] 우유부단한 것이 확고한 신념보다 낫다. 적어도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는 않는다. 164
[ ] 세계는 지금 ‘문명‘과 ‘반문명‘이 혼재된 상태에 놓여 있다. 168
[3 ] 편의주의는 원시와 과학, 지성과 본능이 합리성의 토대 위에서 공존할 수 있다는 믿음이 바로 편의주의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편의주의는 ‘융통성에 바탕을 둔 적극적 개인주의‘라고 할 수 있다. 173
[ ] 약육강식으로 점철되는 생존경쟁이 장인 이 세상에서, 남에게 진심 어린 위로의 말을 건네줄 인간은 아무도 없다....이것은 부모 자식 간이나 형제자매 간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자기를 위로해주길 바라서는 안 된다. 180
[ 4] 더욱이 자신의 ‘사랑 문제‘에 대한 고민 따위에 대해 타인에게 위로나 조언을 구한다는 것은 진짜 바보짓이다. 181
[ ] ‘허무‘와 ‘퇴폐‘가 없는 삶이란 사실 위선적인 삶이 아닐까? 181
[ ] 주역에서는 ‘시중의 도‘를 중요시 한다. ‘변화는 때의 흐름과 함께 있다‘는 뜻이다. 변화하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다. 183
[ ] 행복한 운명은 인내와 절제에 있는 게 아니라 관능적 열정과 순진한 떼쓰기에 있다. 왜냐하면 운명은 야하기 때문이다. 운명은 솔직하기 때문이다. 운명은 우리의 육체적 본성이 갖고 있는 솔직한 욕구에 따라 정직한 기계처럼 움직인다. 185
[ ] 중국 순자 사상의 골자는 ‘제천론‘이다..인간이 천명에 순응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오히려 천명에 대항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187
[ 5] 정신은 금욕주의적인데 육체는 쾌락주의적 방향타를 가지고 있을 때, 그러한 양가감정은 그 사람의 심신을 이원적으로 분리시켜 황폐화시키는 것이다. 191
[ 6 ] 내가 강조하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이중적 의식구조는 위험하다는 것이다. 개인의 본능적 욕구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것을 자유롭게 담론화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짜 도덕이 이루어진다. 참된 도덕이란 ‘솔직성‘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191
[ ] 진정한 행복은 운명과의 싸움을 통해 얻어지는 드라마틱하고 긴장감 넘치는 ‘재미‘로부터 온다. 193
[ ] 참된 지성이란 무엇보다도 ‘현재 상황에 대한 솔직한 느낌‘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당위적 논리‘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다. 194
[7 ] 다원주의적 가치관과 개방적 사고는 바로 ‘자유‘와 ‘야함‘ 두 개념에서 나온다. 195
[ ] 내가 주역을 40년 넘게 공부한 이유는, 그것이 운명론적 결정론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다는 점에 있다..일 년 신수같은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 닥친 절체절명의 난사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199
[8 ] 지금은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돼도 괜찮은 시대가 아니라 소수의 돌출된 창의성을 위해 다수가 너그러워져야 하는 시대이다.
이상 마광수의 뇌구조에서
볕뉘.
0. 가수가 수전증이 있고, 연주중에 그것을 의식하면 듣는 이가 전부 수전증에 걸리는 듯하다. 그냥 있네 하면 나만 그렇다. 체념은 자신을 아는 깨달음에 가깝다. 고독을 제대로 느끼려면 사랑을 희망하지 말아야 한다. 이래도 외롭고 저래도 외롭고, 완전한 사랑같은 없다고 절망하는 편이 훨씬 낫다.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그대로 들여다볼 줄 아는 혜안은 희망이나 대리 만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가지고 있는 것을 손에 놓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것이 고독이든, 체험이든, 병마로 인한 고통이든...그랬을 때에서야 자신을 있게 하는 것들에 대한 제대로 된 사유도 같이 자랄 수 있을 것 같다.
1. 그의 철학관이나 문학관을 눈여겨보다. 그러고나니 그는 빌헬름 라이히와 몹시 닮아있다. 왜 대중들이 권위주의에 물들은 갑옷을 입게 되는가?라는 질문이 화두이다. 그리고 강신주를 닮았다. 지독한 개인주의자이다. 양주의 내몸의 털 하나가 소중하다고 말이다. 솔직함이 가장 큰 무기이자 힘이라는 사실도 그의 몸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이다.
2. 윤수종, 강신주, 마광수....등의 꾸밈없는 토론들도 가정해보면 좋을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섹스관이나 마초적인 여성관들도 솔직하게 드러내었다. 다름을 인정한다면 그 관점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닐 것이다. 종교는 아편이다라고 당당히 말하고, 권위주의체제에 대해 본능적으로 경기를 일으키는 그러한 인물들이 너무도 없다는 것을 한편 생각해본다면 훨씬 그 폭을 넓힐 수도 있을 것이다.
3. 그의 서시, 뱀과 말벌, 수레바퀴로 뱀인 자신을 몰아가는 그 모습은 ......글 가운데 나오는 죽음은 모두 개죽음이며, 동물과 죽음도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그의 아포리즘을 통해서도 간간히 노출된다. 하지만 그가 얼마나 자신의 관점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는지가 여지없이 읽힌다. 그의 책에 눈길 한번 주지 않은 것이 아쉽다. 어쩌면 토론회나 강의 기회를 갖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1...8의 메모들이 무척이나 정제된 그의 노력이란 사실도....그의 삶이 배여나온다. 서시. 윤동주의 서시가 아니라 마광수의 서시. 다시 읽혀야될지도 모른다.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그 변화의 방향을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명복을 빈다.
4. 그런 면에서 보면 아래 [개인주의자 선언]은 훨씬 밋밋한 버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