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밖의 전복의 서

0.

[ ] ˝우주란 한 권의 책으로, 한 장 한 장이 매일이다. 네가 그곳에서 읽는 것이란 한 장의 빛이요 - 각성이요 - 그리고 어둠이요 - 잠이요, -여명과 망각의 단어다.˝ 사막은 결코 책을 갖지 못한다. 14

[1 ] 제 안의로의 입장, 그것이 곧 전복의 발견이다. 일지 15

1.

[ ] ˝내게는 못난 제자들밖에 없습니다. 나를 흉내 내려 하면서 나를 왜곡하고, 나와 닮았다고 믿으며 제 신뢰를 깎아내립니다.˝...˝나는 질문하고자 나의 삶을 사용하였기에, 내게는 어떠한 제자도 없기 때문입니다.˝...˝매듭으로, 다른 매듭을 만들어낼 수는 없겠으나, 반면, 어떤 줄로든, 그것으로 매듭지을 수는 있다. 모든 매듭은, 그러므로, 유일하다. 전복의 질문 19,20
[ ] 사유는 집착 없이 존재한다. 사유는 만남으로 살고 고독으로 죽는다. 20
[ ] 눈이 먼 자가 시선을, 귀가 먼 자가 언어를 간직하고 있다. - 그들은 각각, 보이지 않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을 위탁받은 자들이다. 21
[1 ] 생각은 공허를 짓뜯는 섬광이다. 망각은 한순간 생각의 공간이다. 우리가 망각으로부터 지켜내는 혼잡한 추억이란, 이 경우, 새로운 공간 덕에 생각을 되찾는 장본인이요, 또 열정적으로 생각을 자신의 과거와 미래에 충돌시키려는 자이니, 최종적으로 후견을 받는 상태에 놓이는 책임은 저 자신에게 있다. 22
[ ] 모든 생각에는 저마다의 기쁨과 상처가 있다./생각은 생각의 반응들에만 주의할 따름이다. 25

2.

[ 1] ˝책의 상속자인 우리, 건네받은 약간의 어둠과 약간의 밝음만이 우리의 전 재산일 따름이다. 아! 우리의 모든 단어가 오직 어둠의 창조요, 우리를 파헤치는 결핍의 형상들이라니.˝ 무한의 작은 한계 30
[ ] 공허를, 무를, 여백을 인정하기. 우리가 창조하는 것은 모두 우리 뒤에 있다. 33
[ ] 가능만을 물을 수 있다. 불능은 그 자체가 질문이다./질문은 어둠이다. 답은, 간결한 맑음이다. 34

3.

[ ] 전복적인 책이란 어쩌면, 드러내는 책이리라. 공격받은 생각이 남긴 흔적에 머무르며, 지면에 대한 단어의 전복과 단어에 대한 지면의 전복을 뒤섞는 책인 것이다. 지면, 단어와 여백의 전복의 장소 37

4.

[1 ] ˝죽이는 것은 죽음이 아니다. 우리가, 매 순간, 죽음을 위해 죽이고 있다.˝ 시간의 바깥, 책의 꿈 40
[2 ] ˝책을 쓰면서 너는 단어의 모습만이 아니라, 네가 경계 짓는 한순간 네 삶의 모습 또한 만들어낸다.˝ 43
[ 3 ] 고독의 끝은 글을 위한 고독한 모험의 전주곡이다./고독과 글에는 따라서 우리가 펜을 쥐고 나아갈 흔들리는 경계가 있으리라. 우리로 인해, 우리 덕에 인식되는 경계가. 고독, 문체의 공간 45/작가는 여전히 작품이라는 건물의 건축가이자 벽돌공이며, 지칠 줄 모르는 장인이다. 46
[ 4 ] 책을 쓰려면, 아마도 여기 우리가 책에서 얻은 직감에 지나지 않을 계획에 간접적으로나마 참여했어야 하며, 그 직감으로부터야 비로소 책은 기술된다. 48
[ ] 책은 220쪽으로 이루어진 평면의 고독이오. 한쪽이 다른 한쪽 아래 놓여 있소. 첫 장이 정상이고 끝 장이 그 기저라오. 문체의 도정이 이러하오. 49
[ ] ˝나를 궁금케 하는 것은, 애초에 어떻게 내가 가장 높이 위치한, 맨 첫 장에 이르렀느냐는 점이오.˝ 50


[ ] 거룩한 책이란 오직 말에 부합하며, 말 자체일 뿐으로, 시간을 벗어남과 동시에 시간 속에 정박해 있다. 재현 금지 67


[ 5 ] 새로운 질문의 책은...줄곧 자신의 불확실한 외양 뒤로 숨다가, 제 차례가 오면, 제 모두를 걸고 질문을 되던진다. 닮음의 책 79

5.

[ ] ˝생각은 우주를 뒤덮는 두터운 너울을 벗겨내서는 우리가 알아차리기도 힘든 가벼운 것으로 갈음한다. 우리는 세계를 오직 이 너울의 투명함을 통해서만 인지한다.˝ 생각, 단어를 통한 존재의 창조와 파괴 84
[ ] 사유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제 길들을 트도록 허가하는 일이리라. 85
[ ] 생각은 생각된 것 - 제 끓어오르는 과거가 - 그리고 생각되지 않은 것 - 제 문제적 장래가 - 한데 얽혀 형성되었다. 평범하거나 구분되는 매듭이다. 86
[ ] 장미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혀, 감탄한 몸짓으로, 우리는 장미의 삶을 앗아간다. 쓰기란 자신에게 이러한 몸짓을 새로 되풀이하는 일이다. 우리 안에서 죽는 것은 우리와 함께 죽을 수밖에 없다. 책이란 그저 이 모든 죽음을 알리는 일상의 부고일 따름이다. 88

6.

[ ] 열쇠란 모름지기 자물쇠를 작동시키고자 고안되었으며, 그리하여 우리의 시선에서 사라지는 것을 목적한다. 열쇠-말, 생각을 통한 존재의 창조와 파괴 89
[ ] 열쇠-말이란, 그 단어를 포함하고 있는 텍스트 속 모든 단어가, 서로 동조하고 그토록 나지막이 발음하여 누고도 듣지 못하는 단어다. 비의적인 통과의 단어, 그 뒤로 책이 서 있다.˝ 90
[ ] 열쇠란 분명 결핍이리라. 그리고 이 결핍은, 책 속에서, 스스로 까마득한 부재를 담고 있는 몇몇 어휘를 통하여 드러나고야 만다. 결핍의 무한 속의 결핍이다. 91
[ ] 상상은 아마도 제 기원들의 무게를 줄인 어떤 생각인지도 모른다. 92

7.

[ ] 열여섯 개는 삶의 질문이요, 열여섯 개는 죽음의 질문이다. 기원으로서의 부재, 혹은 인내하는 최후의 질문 93
[ ] 가까이서 우리를 건드리는 것만이 우리를 전념케 한다. 고독 속에서, 우리는 그것을 마주하고자 한다. 95
[ ] 정체성은 얼굴에 대한 파악이라기보다는 그것에 대한 정복이다. 96

8.

[ ] 죽음을, 공허를, 무를, 전무를 사유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것들의 무수한 은유를 사유할 수는 있다. 그것은 생각할 길 없는 것의 윤곽을 그리는 방식이다. 모래 103
[ ] ˝쓰기는 침묵과 맞서 나아간 침묵의 행위다. 죽음과 맞선 죽음이 처음으로 행하는 긍정적 행위다.˝/˝내가 여전히 말할 수 있는 것 너머. 읽기는 네 몫이다. 소멸이 내 몫이듯. 불청객들.˝ 107
[ ] 글이 우리를 참여시킨다. 우리가 글을 쓰는 것은 아마도, 자신을 내빼기 위해서이리라. 그러한 내뺌이 우리에게는 그저 끝까지 참여를 시키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라는 것은 알지도 못한 채. ..끝까지, 즉 시작된 참여가 자신의 끝에 다다라, 하나의 새로운 모습의 참여로 우리 앞에 나타날 때까지. 108
[ ] 여전히 읽을 여지가 있다는 것이 바로 글의 유일한 생존 기회다. 110
[ ] 그는 타자를 발견했다. 그는 일찍이 알았다. 이 타자로 인하여 자신이 스러질 것임을.....이 안에서 살아간다. 언제나 저 너머에서 죽는다. 하지만 경계란 마음의 일이다. 115
[ ] ˝생각하는 자는 노련한 어부다. 그는 생각할 길 없는 것의 바다에서 빛나는 생각들을 끄집어낸다. 미끼를 문 생각, 하늘의 푸름과 바다의 푸름 사이, 들뜬 순간, 경직되어, 외계의 것으로, 땅 위에 놓이기 전.˝ 117
[ ] 상처받지 않은 상처는 없다. 120

볕뉘.

0. 이동하는 길에 릴케의 두이노 비가를 건네들었다. 읽다보니 생각지 않은 느낌이 흘러들었다. 십년동안 짓고, 오년동안 번역하고.....

1. 그 책을 선물했다. 그리고 내려와 그 책과 번역자의 번역서 두권을 건네들었다. 위의 예상 밖의 전복의 서와 폴 발레리의 테스트 씨다. 번역자와 짧은 만남이 있었다. 시낭송 모임 속에서 앙리미쇼에 대한 인상과 그림들. 그 보다는 삶의 강렬함에 대한 공감이었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보들레르와 말라르메....릴케....열정적인 삶들이 더 문을 열어제끼는 듯하다. 평생 70편의 시를 쓰고 쓰고 다시 쓰는 일이거나, 십년동안 비가를 짓기위해 자신을 허무는 일이거나, 존경하는 스승을 만나자 마자 작품을 갈갈이 찢겨버린 그 ...노력...어쩌면 폄훼되고 있는 순수예술이라는 발자욱들을 우리는 너무 쉽게 평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2. 이 책은 글자 그대로 ‘전복‘의 서이다. 책과 생각, 사유, 상상 그리고 삶, 작품에 대한 이야기다. 릴케의 두이노 비가가 열고개의 비가가 아니듯이...그들의 작품 사이에 호흡하는 영 혼은 강열하다. 칼끝으로 삶을 열어 제끼는 모습들도 말이다. 말 한마디, 단어 하나 하나 예사롭지 않다. 그 단어의 소멸과 죽음을 익히 알기에 온몸의 호흡으로 생각 한톨을 옮겨심는다. 씨앗.

3. 주의는 뒤의 미련한 자들이 붙이는 일이다. 초현실주의라는 꼬리표를 아무렇게나 붙이고 지워버리는 일도, 순수예술이라는 장소와 시대를 엇나가 붙인 뒤 잊어버리는 일도 무척 얄팍하다. 그래서 그들의 삶과 그 그림자들을 들여다보는 일이 중요하다. 이렇게 생각이라는 낚시에 걸려나오는 미끼 생각들, 그리고 그것을 덥썩 무는 사유들... 어쩌면 책들로 다가서는 것이 아니라 책 속의 책....그 책 속의 책으로 꼬리를 물며 걸려 올라오는 것인지도....책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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