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예술에 대한 개념이 시대의 변화만큼 확장되고 변했다는 것이다. 몸은 5층짜리 백화점의 60년대의 예술개념에 사로 잡혀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 현실은 최고층 빌딩이 여기저기 세워지는 만큼이나 바뀌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그는 몸도 마음도 변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예술의 다른 면들을 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런 변화를 읽기 전에 뇌단층 촬영이 가능한 1990년대의 뇌과학과 마음과의 관계를 먼저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 ] 식물이 뿌리로 영양분으로 흡수해서 생장하는 것이라면, 동물은 뇌를 사용해서 생명력을 유지해가는 개체로 보아야 할 것이다. 뇌는 외부의 변화를 내면화하는 운동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다음 운동을 예측하는데 원활하도록 진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표현되고 이어진다고 봐야 한다. 사람의 뇌는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본디 파충류, 포유류, 인류의 삼부의 뇌를 모두 가지고 있다. 파충류가 가지고 있는 식욕,성욕, 수면욕, 공격욕를 바탕으로 해서 情을 감정하는 기억을 갖는 포유류의 뇌, 그리고 지각을 갖고 정교한 행동과 생각을 설계하는 인류의 뇌의 삼부뇌로 되어 있다. 감각은 특수감각 (시각 75% 청각 20% 후각 3% 미각 2%)과 체성감각, 그리고 내장감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 ] 뇌는 좌우뇌의 경계를 가르는 뇌량과 보고, 느끼고, 움직이는 지각과 행동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몸과 마음, 말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어느 하나의 기능이 떨어진다면 다른 것도 동시에 활력을 잃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뇌섬엽은 공감에 깊이 관여하고, 배내측전전두엽이 감정과 감각을 연결하고, 통합지각영역이 있어 분화와 결합을 잘 이어주고 있다.
[ ] 산업화 시대나 자본주의 사회가 정해진 것을 발전시키는 좌반구위주의 뇌활용에 집착했다면, 르네상스 시기나 고대 그리스는 좌우뇌의 균형을 추구했다고 볼 수 있다. 우뇌에서 좌뇌, 그리고 좌우뇌의 통합 활용과 같이 21세기는 새로운 균형을 요구한다고 볼 수 있다.
[ ] 바람직한 예술은 이러한 통합적인 능력을 응용해서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 ] 감각적 시각에서 지각적 시각으로: 시각위주의 표현과 과도함으로 표출된 예술은 편향되어 대중과 올바로 소통할 수 있다고 볼 수 없다. 작가주의 영향나, 진정한 예술을 요구하는 아도르노의 부정의 미학,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상황주의 등이 예술의 삶되기를 요구했지만 이 역시 20세기의 시각예술중심적인 실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 ] 지각생태학: 제임스 깁슨은 시각중심의 순수지각 개념과 달리, ˝자연적인 시각은 바닥에 의해 지지되는 몸에 지탱한 머리 속에 있는 눈에 기반하고 있으며, 뇌는 하나의 완전한 시각적 시스템의 단지 하나의 중심 기관일 뿐이라고 제안한다.˝ 감각이 고정된 것이라면 지각은 살아있는 것으로 외부환경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그물망처럼 움직이는 생명으로 관점을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시선은 고정될 수 없으며 8-12 Hz로 끊임없이 움직이며 사물을 느끼고 본다. 스냅사진이나 렌즈구경의 고정된 시각이 아니라 주위를 살피는 감싸안는 시각, 걷거나 움직이면서 보는 이동하는 시각이 대부분이고 정부가 풍부하다고 볼 수 있다. 생명학이 내부구조를 다룬다는 점에서 외부환경과 생명체의 관계를 다루는 생태학과 다르다고 봐야 한다.
[ ] 생명체는 먹고살기위해서 외부에서 주어주는 환경을 어포던스 affordance(자연이 주는 혜택이자 선물)로 만들어 왔다. 그래서 생명은 그리 단순하게 해석할 것이 아니라 환경과 불가분하게 뿌리내리면서 지각하고 있고, 자기-의식은 인지적인 앎만이 아니라 비인지적인 유형의 앎, 즉 허구, 환상, 꿈, 매혹 등을 포함해서 본능적으로 살아내는 것이다.
3.
[ ] 살아 있는 사람의 시각적 지각은 눈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몸에 달린 머리에 있는 눈으로 이루어진다. 이 때문에 시각적 지각이 발견하는 어포던스는 눈만이 아니라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몸과 머리의 움직임과 그 움직임들의 자유로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에 의한 자연적, 사회적 생태계의 파괴와 인위적 어포던스의 독점적 집적은 대다수 사람들과 생명체들의 지속 가능한 삶의 기회를 위혀바고 제한하고 손상시키고 있다....이와 같은 자연 생태학적, 사회 생태착적 위기와 직면한 시각예술의 과제는 무엇일까?
[ ] 깁슨에 의하면 그림의 기능은 어떤 대상의 재현이나 복사가 아니라, 작가가 주목했고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고려한 것(상상한 것)을 보존하는 것이다....외부 변화에 저항하며 지속적으로 긍정적인 어포던스를 제공하는 것을 시각화하는 것이 좋은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 ] 불변하는 생태학적 환경의 배치는 기하학적으로 텅 빈 공간이 아니라 수많은 시각적 앵글들이 포개진 장소들의 배치이다. 이렇게 많은 앵극을 지닌 장소들의 포개짐이 있는 것은 하나의 환경적 배치 속에 수많은 생명체들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동네 뒷산의 작은 숲 속의 계곡 경사면의 단일한 배치 속에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새들과 곤충들과 다람쥐의 시각적 앵글들과 그들의 보금자리가 포개져 있다. 하늘에 퍼져 있는 <감싸는 빛>의 광학적 배열은 태양의 이동에 따라 변화하면서 숲의 전체 지형과 그 속에 위치한 나무들의 배치에 끊임없이 바뀌는 음영들을 만들어내지만, 그런 변화는 무작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숲의 배치의 불변적인 것과 상관하여 일정한 패턴을 이루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 ] 숲 안에 거주하는 생명체들에게 따뜻함과 시원함을 교대로 제공하면서 다양한 어포던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렇게 다채로운 시각적 경험을 얻기 위해서는 실제로 숲의 굴곡진 지형을 거닐면서 머리를 돌려 가며 다양한 앵글로 나무들의 다양한 배치를 둘러 보아야 한다. 동영상으로 이어지는 영화는 이런 시각적 경험을 잘 포착해줄 수 있는 데 반해, 사진이나 그림은 그런 경험들의 한 단면만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영화의 쇼트들은 계속 흘러가다 끝이 나기 때문에 기억하기 어려운데 반해, 그림이나 사진은 - 불변적인 것과 가변적인 것의 상호작용의 특정한 패턴을 포착하려고 노력하는 한에서- 그 특정한 패턴 자체를 고정된 형태로 시각화하여 한 눈에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장점이 있다.....어느 경우든 하나의 배치 속에 겹쳐지고 포개진 앵글과 장소들의 역동적인 생명감을 포착하여 시각화할 수 있는가의 여부가 문제락 할 수 있다....현대미술의 흐름은 자본의 순환법칙과 유사하게 물리적 시각 physical vision > 자연적 시각 natural vision > 더 큰 물리적 시각 pv+ pv증가분)이라는 순환 법칙에 의해 작가와 관객 모두의 자연적 시각을 소외시켜 왔다고 할 수 있다.
[ ] 위 표의 종축은 여러 이미지들이 무관하게 순차적인 단계를 의미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들뢰즈는 정동과 행동과 관계가 일어날 때마다 정동의 지각, 행동의 지각, 관계의 지각이 동시에 수반되기 때문에, <지각-이미지>는 다른 종류의 <운동-이미지>들로 확장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지각-이미지>는 단순히 운동-이미지의 분화의 출발점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나머지 5 가지 이미지들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지각-이미지>는 다른 모든 이미지들이 그 속에 <포개져> 있는 보금자리와 같은 것이다.지각-이미지는 이미 정동의 지각, 충동의 지각, 행동의 지각, 반성의 지각이자 관계의 지각이라는 주장은 지각 자체가 이미 행동이며,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어떤 어포던스를 발견하고 줍는 행위라는 깁슨의 주장과 일치하는 셈이다.
[ ] 21세기 예술의 과제: 생산기구의 변혁시킨다는 것은 대립들 중의 하나를 뛰어넘는 것이다. 극복되어야 할 제약은 문자와 영상의 대립, 기술과 내용의 대립, 작가과 관객의 대립, 연주회와 청중의 대립과 같은 장벽들이다. 장르적 벽을 넘어 사진에 제목을 붙일 줄 아는 기술적 능력, 음악적 기술과 문학적 기술의 협력 등이 필요하다. 생산자로서 작가의 정치적 진보의 기초는 지적인 생산과정의 여러 전문적 제약과 대립들을 극복할 수 있는 기술적 진보이다.......작금의 현실은 좌우뇌 분리환자가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 ] 예술은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이다 :
이상 심광현(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이론과 교수, 미학/문화연구)의 마음의 과학과 예술: 지각의 생태학과 이행기 예술의 새로운 과제 강연에서
볕뉘
0. 생각길은 이리저리 만나게 될 것이다. 인근 미술관에 갔다가 매주 세미나가 있다는 걸 확인해두었다. 미학이론에 천착하던 심교수님의 강연을 듣다.
1. 찾아서 들은 강연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쉽게 설명해주어 흐름과 하고자 하는 논지를 알기는 어렵지 않았다. WHO가 2020년 우울증*치매의 비율이 20%에 달할 것이라고 한단다. 생산성을 떨어뜨리려면 적을 부상시켜 다른 병사의 움직임을 통제하는 것이다라고, 경제활동인구가 치매환자와 함께 현격하게 줄게된다는 설명을 한다. 물론 이런 판에 박힌 설명을 좋아하진 않는다. 위축시켜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관철시키는 것도 미적이지 않다.
2. 많은 부분 동의한다. 그 생각길로 접어드는 방법도 여러갈래일 것이다. 좀더 멋지고 통쾌한 쪽으로 가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