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왜 청년들이 월 40만 원짜리 방에 사는 주제?에 커피 한잔에 6,000~7,000원 하는 예쁜 카페에 죽치고 있는지 충분히 이해한다. 쾌적한 공간에 머무르고자 하는 욕구는 자연스럽다. 예쁜 집을 가질 수 없는 청년들은 그 욕구를 잘 꾸며진 카페에서 채운다. 상경한 청년(19~29세)들은 평균적으로 보증금 1,395만원에 월세 46만 원짜리 집에 산다...왜 이들은 쾌적한 공간에서 누리는 잠깐의 여유마저도 분수에 맞지 않는 소비로 비난 받아야 하나?

[ ] 이력서에 적힌 취미들은 화려하지만, 그중 태반은 앞서 말한 가성비 좋은 취미들로 여가를 보내거나 ‘시체놀이‘라고 적어도 무방할 것이다. 대신 기업에서 직원들에게 ‘취미 할 권리‘를 보장하는 날을 꿈꾼다. 나에겐 그게 요가였지만 그것이 무엇이 됐든, 우리는 업무에서 단절된 상태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하루 한 시간 이상 몰두할 권리가 있다.

[ ] ‘신상을 안까고 모이는 2030‘: 요즘 젊은이들이 학벌, 나이, 직장, 사는 곳 등의 정보를 드러내지 않고, 모임 주제에 따라 취미나 정체성, 생각 등을 나누는 데 초점을 맞추는 모임을 선호한다는 것....한 독서모임의 회원들은 모임을 시작한 지 두 달이 넘었지만 서로 몇 살인지, 어디에 사는지, 어떤 학교나 회사에 다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나이 차이가 띠동갑 이상이어도 ‘00님‘이라 부르며 서로 존중해주는 게 이들끼리의 암묵적인 규칙이다.

[ ] 지금의 대한민국을 사는 청년은 세대로 묶이기 전에 현재의 사회구조로 인한 고된 경험에 공감하고 대안적 삶을 끊임없이 찾아 헤매는 ‘고민의 공동체‘에 가깝다.

[ ] 윗세대가 굶는 데서 벗어나 충실하게 물질적 부를 늘려가는 데서 삶의 의미를 찾았다면, 현재 젊은 세대는 ‘어떻게 행복한 삶을 살 것인가?‘ 하는 고급 욕구를 지닌 세대다. 그 욕구를 사회 분위기가 받아주지 못하니 서른이 넘어서도 방황한다.

[ ] 청년 세대는 촛불을 통해 거의 처음으로 정치에 깊게 관여하는 경험을 했다....‘삼포세대‘라는 말이 대변하듯, 지금의 20~30대는 수동적이고 불쌍한 존재, 시대를 이끌기에는 주체성이 한참 부족한 세대로 인식됐었다. 산업화 세대나 민주화 세대처럼 역사의 주체로 기록되지 않을 거라는 자조가 팽배한다....무릇 연애나 취업이 ‘다른 친구들을 제치고 나는 누린다는‘ 죄책감이 된 세대다. 희망차고 도전적인 ‘청춘‘이라는 말 대신 ‘이번 생은 망했다‘는 체념의 정서가 지배적인 젊음, ‘돈 없는 부모를 탓하라‘느 또래 청년의 비아냥이, 이들을 광장으로 모이게끔 불을 지폈으리라.

[ ] 이것은 청년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문제라고, 당신 역시 당사자가 될 수 있는 사회 일반의 문제라고. 그러니까 동정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출발은 청년세대에 대한 깊은 공감에서 시작될 것이라고 믿는다.


볕뉘

0. 한 열흘 전, 한밭 벗들과 위의 ‘신상을 안까고 모이는 모임‘류의 이야기를 나누다. 친구는 조한혜정교수가 윗세대가 좀더 상황을 구조적으로 본다고 말을 보탠다.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많이 변했다. 무척이나 말이다. 거꾸로 그 말은 구조에 집착하거나 일상에만 관심을 둔다는 말로 읽힐 수도 있다. 묶어두려고 둘수록 20대후반은 치고올라오는 20대초반이나 10대후반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혀를 내두를지도 모른다. 세대를 핑계삼아 해설하는 것은 자신에게 붙어있는 관성을 애써서 흔들지 않으려는 ‘꼰대‘정신의 발로 일 것이다. 움직임의 방향에 관심을 두는 것, 이미 움직인 것들에 대해서는 자신의 생각을 탈각해야 할 것이다.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1. 몇몇 20대초반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나눌 기회들이 종종 있다. 지금까지 부모님들이 원하는대로 살아왔는데, 이제와서 또 딴소리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얘기해주지 않는 부모세대의 얄궂음, 자신의 가족만 챙기는 심리 밖은 논의에서 벗어나기 일쑤다. 20대 후반인 저자의 말 역시 그러하다. 정규직으로 어렵게 입사를 했는데, 그 때부터 정작 어떻게 살아야지 하는 고민에 다시 휩싸이게 된다고 말이다. 나이가 많든 적든, 우리는 정면 승부해야 되는 질문을 회피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2. 20대 연구원으로 생활을 고려하는 졸업학기 공대여학생은, 남성주류의 꼰대밭을 어찌 헤쳐나가며 살아야하는지 걱정을 안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도 무수한 남초 꼰대지뢰밭의 일상의 경험에 녹초가 되어버렸다.

3. 부모세대는 아마 그럴 것이다. 아직도 최저임금이 인상하듯이 평균적인 삶이 질과 양으로 달라졌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한다. 물리적으로 허한다고 하더라도 심리적인 저지선이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소비해보고 선택해본 세대라고 자식세대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좀더 쾌적하고 편안함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당신들과 다른 점이 없다는 것이다. 그 점을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같다는 점을 깨우쳐야 하는지도 모른다.


4. ‘어떻게 행복한 삶을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나이에 따라 유예되는 것이 아니다. 늦으면 늦을수록 서로 꼰대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논의는 불꽃이 튀도록 정면승부할 수록 어쩌면 세대도 나이도 세상과 사회라는 괴물을 순치하는데 도움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5, 자다 일어나보니 어느 새 나는 ‘꼰대‘라는 벌레가 되어있었다.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고 피하기만 하는 것이다. 세상은 수십차례 객토를 했음에도 골동품이 되려는 이들로 차고 넘친다. 그 깃발을 들고 있는 이 역시 ‘나‘였다.

6. 지난 토요일 다시 모임을 마치고 늦은 점심을 같이하다. 20대초반의 한 친구의 가까운 꿈이 집을 짓는 것이라는데 놀랐다. 윗세대가 로망처럼 갖거나 전재산을 털어 만드는 일을 대단치 않게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함께 해나는 것, 그녀에게 이미 많은 집짓는 기술을 갖고 있고, 일과 삶의 매듭을 꾸려가는 것들이 몸에 배여있는 것 같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길을 걷는 모습이 경이롭기도 하다. 왜 그렇게들 살지 못할까....마음을 건네다오....저 편에....서로...세상은 열려지기도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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