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를 그리고 싶다. 연두에서부터 깊은 푸르름까지 그려내고 싶다. 파도를 골라서 어떤 것이 마음에 들까 염두에 둔다. 거칠게 치는 파도는 자꾸 보니 왜인지 도식적인 느낌이 들어 제외한다. 무엇을 그릴까? 움직임이 조금 거세면 좋을 듯한데, 역동성과 파랑의 경계를 확장해놓은 사진들은 없을까 싶다. 자다가 깨다가 핀에 알람을 연신 챙겨본다. 그래 이게 조금은 낫겠지 싶다. 샘은 그림보다 사진을 추천했다. 그림은 추상적이기에 의도를 나타내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말이다. 그러다가 불쑥 시작을 한다. 전 작품의 블루의 경험을 살리면, 전 보다는 빨리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여기면서 거친 파랑을 칠한다. 바탕은 여러 블루를 섞으면서 생각보다 수월한 듯 싶다. 흰 여백은 남겨둔 채 거칠게 칠하는데 색감이 그런대로 살아난다. 주제를 잡고 색감과 디테일을 살려 그리려는데, 예기치 못한 정교함이 앞을 막는다. 색감도 동선도 예민해지지 않으면 주제를 제대로 묘사할 수 없다. 물결 안의 색을 상정하고 칠하고 물줄기를 올린다. 쉬워보이던 주제는 그야말로 오리무중이다. 물줄기도, 흰 물결들도 나이프를 써서 두껍게 올려도 느낌이 살아나질 않는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움직임들 사이의 변화를 눈치채기가 힘들다. 이어진 듯 끊어지는 물줄기는 꽃과 같은 묘사와 다르다는 것을 모르고 무턱대고 덤빈 셈이다. 화폭을 대할 때마다 몇 가지 수를 생각해두지만 의도를 벗어난다. 물기가 섞이면 마르자 마자 의도한 색을 벗어나 있다. 위쪽의 물보라도 구름의 결을 그리듯 따라올리지만 주제와 명도가 겹쳐 부드럽게 숨을 죽여야 했다. 가운데 부분의 물결과 색을 칠하려는데 붓의 종류와 물기에 실패한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면으로도 그리지 못한 셈이다. 희미한 물결들과 거스르는 물결들을 표현하는 방법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움직임 전체로 파악하려는 연습이 부족함이 그대로 드러났고, 수작업을 해서 조금 살아나지만, 앞 뒤의 입체감이 부족함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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