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해콩님의 "[동무와 연인 3] - 고고한 '학'과 불같은 '물소'/김영민"

 

동무는 동지도 친구도 아니다. 동무는 동무(同無)! 오히려 서로간의 차이가 만드는 서늘함의 긴장으로 이드거니 걷는다. 공유된 이데올로기 아래 히틀러나 스탈린의 수염 같이 가지런히 정돈된 길을 행진하는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길 없는 길’을 걸으며, 잠시만 한눈을 팔면 머-얼-리 몸을 끄-을-며 달아나 그림자조차 감추어버리는 관계다. 그것은 일찍이 짐멜(G. Simmel)만이 거의 유일하게, 그러나 다소 흐릿하게 파악한 ‘신뢰’의 관계다: ‘기분’과 ‘감정이입’의 차원을 벗어난다는 점에서 그것은 친구가 아니며, ‘뜻(이념)중심주의적 결집’이 아니라는 점에서 동지도 아니다.

'친구'마저 굶주리는 시대는 아닌가요? 격이 없다는 그 감정이 살아있는 관계마저 세상의 혼탁함에 휩쓸려 점점 혼자 남게 되는 것은 아닌가요? '살아지는' 세상살이는 글쓴이가 말하듯 '동지''동무'란 말을 더욱 낯설게 하는 것 같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주변의 지인과 관계를 헛갈려하고 혼동되어 제대로 된 표현을 쓰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친한 지인들과 삶을 공유하고 나누는 관계를  '가까운 친구'들이란 식으로 남에게 이야기하던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낫고 함께 공유하였으면 하는 것을 두고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라고 섞갈리게 말한 것 같군요.

 글쓴이의 표현이 적절하다고 느끼면서도, '동무'라는 표현이 맘 속에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글 가운데 용어가 품고 있는 까다로움때문입니다.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고 있음' '끊임없는 무게중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 '머무르지 않고 제 색깔을 갖춰야 하는' 등등 요건들로 선뜻 몸은 내켜하지 않는군요.

 그래서 한번 되돌아봅니다. 남에게 '동무'가 되고 있는가?  세상살이를 회피하거나 돌아가거나 떠밀려가는 것은 아닌지? 그냥 부담없는 친구로만 남기만 바라려는 욕심만 있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달라지고 변해가는 모습들을 못잡아내는 것은 아닌지? 하고 말입니다.

 어쩌면 제대로 하지 못해, '동무'를 잃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동무'들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힘들고 부담스러워 손쉽게 '친구'들만 자리하길 바라는 것은 아닌가?란 주제넘은 생각까지 말입니다.

 '동무'란 말엔 '동지'와 달리 일상성이 담겨있겠죠.  서로들 '동무'에 굶주린 세상은 없을까요? 세파에 떠밀어 살아남을 궁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뜻만 잔뜩담아 일상은 없고 '동지'만 요구하고 모으려고 안달하는 것이 아니라,

  글쓴이가 이야기 하는 긴장-공유-차이-일상이 녹아 있는, 사람들 관계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글쓴이의 뜻을 왜곡하면 '동지'에 중독되거나 '친구'의 관계만을 원하거나 ..... 주제넘고 정도를 넘어선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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