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히는 자동차화된 가속도의 무익성을 주장하며 자전거를 그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의 저작은 모두 '타율적 관리' 사회에 대한 '자율적 공생' 사회의 대응이라는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있다. 이 책 역시 타율화된 학교제도의 폐지를 주장한 <학교 없는 사회>, 관료화된(타율화된) 병원제도가 만들어낸 병원(病原)에 대해 다룬 <병원이 병을 만든다>처럼 자율화된 인간을 지향하는 그의 사상이 녹아 있다.
이 책에서 이반 일리히는 최적의 1인당 에너지 소비량에 대해 논의하고 있으며 그 한도를 정치적으로 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 책에서 일리히는 산업의 근본적 독점으로부터의 해방은 최적교통의 옹호를 기초로 한 정치과정에 사람들이 참가한 경우에 처음으로 가능하게 된다는 결론을 끌어내고 있다(by 책소개)
* 감각의 박물학님의 "거대기술에서 적정기술로"와 세석평전님의 "'속도'는 억제되어야 한다" 리뷰도 읽어보샴.
뱀발.
지난 휴가길 운전하는 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차가 말 몇마리나 될까? 알고보니 150마리가 훨씬 넘는다. 그것을 끌고 짧은 기간, 그 더위에 작열하는 열을 내며 질주하고 있었던 거였다. 그렇게 생각하다. 조금은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고 - 식구들에게 발설하진 않았지만 - 지나친 에너지 소진에 시선이 가자 낭패감마저 들게 된다. 물론 식구들도 주변 사람들도 잘 놀다와서 무슨 망발이냐 할 것이다.
옛날, 자전거를 끌고 다니던 사람이 드물 무렵 자전거를 타고 한 2년 출퇴근을 했던 것 같다. 눈이 와서 30분이면 가던 길을 시간 반이나 걸려 지각하던 후일담이나, 펑크에 난감하던 일까지 지난 날을 별로 세세히 기억하지 못하는 나에게도 기억의 흔적을 선명하게 해 주었다. 번번히 통행로가 턱이 지거나 에둘러 돌아가던 지난 날에 비해 여러모로 나아진 것은 확실하지만... 그리고 그 자전거타기 덕에 '감속의 즐거움'이란 주제로 토론회에도 참가하는 영광?을 누렸다. 하지만 잊혀졌다. 자전거가 나에게 준 것은 인식만큼이나 활용코자한 용도만큼이나 불편을 핑계로 그 애물단지를 지인에게 이전하는 것으로 마감했다.
서울을 닮아가는 대전, 점점 더 일터에서 멀어지고 있는 사람들, 그 출퇴근길은 매쾌한 오염공기만큼이나 졸음과 질병과 세상의 부대낌, 시련을 준다. 서서히 지옥철이란 명목으로 돈을 퍼붓고, 점점 느려지는 출퇴근길, 점점 위협을 받는 도보형 - 자전거형 인간.
환경이나 생태-에너지만의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 저자의 노력은 무척 본질적이다. 누가 10년전에 이 책이 나오지도 않았겠지만, 그 책을 권했으면, 아마 읽지도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짧은 행간들에 무척이나 큰 전지구적? 고심이 들어있다. <학교>만 보았을 때, <병원>을 보았을 때, <노동>, 그리고 이책 <에너지와 공정성>을 읽으며 고통스럽다.
더위를 핑계로 더 많은 에어콘과 더 많은 냉동고와 더 많은 차량운행과.... 그리고 그 덕에 얼마나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인지? 얼마나 많은 속재미와 건강을 헐 값에 팔고 있는지? 전력이 부족해 생존권마저 위협당하고 있는 아픔은 고사하더라도... ... 지나친 사치에 중독된 것은 아닐까? 너무 겉재미에 중독된 것은 아닐까? 그 중독에 제대로 된 정책이나 연구결과물들을 나올까? 점점 비만해가는 사회란 에스컬레이터에 그냥 편승해있는 것은 아닐까?
이 무더운 여름, 관점의 전환을 시도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좀더 신선한 가을을 맞기 위해서 말이다.

도서관에서 빌어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