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은 나에게 무조건 필요한 겁니다. 나를 살게 하고, 나에게 살아 있는 세계와의 연결을 유지시켜주는 수단이니까요. 그 세계를 느끼지 못하면 단 한글자도 쓸 수가 없고, 단 한 줄의 시나 산문도 내 입에서 흘러나오지 못할 겁니다. 산책을 못하면 나는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고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내 일도 무너져버릴 겁니다. 339

멋진 산책 길에는 형상, 살아 있는 시, 마법, 그리고 온갖 아름다운 자연물들이, 비록 작은 존재들이라고 해도 꿈틀거리며 차고 넘치는 것이 보통이죠./만약 어머니 같고 아버지 같고 아이들 같은 눈부신 자연이 선함과 아름다움의 원천으로 매번 신선한 자극이 되어주지 못한다면, 시인은 얼마나 비참하고 빈한한 신세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지 말입니다/산책자는 그 어떤 경우에도 감정에 겨운 나르시시즘이나 너무 민감하게 상처받는 성향을 지녀서는 안 됩니다. 340, 341

산책자는 사물을 오직 바라보고 응시하는 행위 속에서 자신을 잊을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과 자신의 비탄, 자신의 욕구와 결핍, 자신의 모든 궁핍을, 산책자는 마치 용감하고 투철하고 헌신적이며 모드 자질이 입증된 군인이 전쟁터에서 그러듯이, 전부 무시하고 개의치 않고 잊어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매 순간 그는 동정과 공감과 감동의 감정을 느낄 줄 알아야 ㅎㅏ고, 바라건대 그것을 느낍니다./산책자에게는 갖가지 아름답고 미묘한 산책의 사색들이 신비하고도 비밀스럽게 따라붙게 되는데, 그래서 신중한 걸음을 부지런히 옮기던 중에 갑자기 그 자리에 멈추어 가만히 귀를 ㄱㅣ울일 수밖에 없으며, 자꾸만 이상한 기분이 들면서 유령에게 사로잡힌 듯이 마법에 홀린 듯이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갑자기 땅속으로 꺼져들어가는 듯한, ㅁㅣ혹과 혼란에 빠진 사색가의 눈이자 시인의 눈앞에 거대한 심연이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342, 343

우리가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 우리를 이해하고 사랑한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이 아니라 어떤 다른 존재였으며, 또한 바로 그렇게 때문에 비로소 진정으로 나 자신이었다. 349

하나의 기쁨은 또 다른 기쁨을 불러들였으며, 부드럽고 친숙한 대기에서는 유쾌함이 두둥실 떠다녔고 즐거움을 억지로 참는 듯한 떨림이 느껴졌다. 350

올바른 태도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남들에게 엄격한 만큼 우리 자신에게도 엄격해야만 하고, 우리 자신의 행위에 관대하고 너그럽듯이 남들의 행위도 마찬가지로 너그럽고 관대하게 평가해야만 한다. 356

볕뉘.

0. 친구가 읽어주었다. ‘....음악도 없이 나는 유쾌하였다. 나는 시간에 현혹당하는 듯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하듯이 시간에 말을 걸었고, 시간도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고 생각했다. 시간에 얼굴이 있는 듯 한참을 쳐다보았고, 시간 또한 묘하게 다정한 눈동자로 나를 말없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첫 장의 ˝시인˝의 한 대목이다. 낭독하는 사이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봄을 마주하는 모습들이 떠올랐다. 그래..그렇지 맞아....추임새가 트이는 명문이었다.

1. 한 친구에게 책을 추천해주길 권했고, 그 책들 사이를 거닐다, 어느 서재를 갔고, 그 서재에서 발저를 또 만났다. 책을 주문을 했고, 발저의 민음사 판본과 지금 이 책 가운데 어떤 것을 원하느냐는 말에 민음사보다 더 많은 산문이 있다는 이 것을 골랐다.

2. 주말의 여정이 깊어 피곤이 몰려와 일찍 잠을 청하다보니 자정에 말뚱해져 이 책이 손에 잡혔다. 산책을 마저 읽다가 기어이 밑줄을 그을 수밖에 없었다. 시간에 말을 거는 방법도, 남과 나에게 말거는 태도도, 우리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법도 서로 나눌 것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헤세도 카프카도 벤야민도 사랑했던 작가 사교에는 미숙했지만, 산책과 삶을 대하는 모습은 경이롭고 따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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