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풍경이 역사를 바꾸었다 기이한 풍경이 오래 나의 정신을 점령했다 기이한 것들이 자라나 손발이 되었다 기이하고 기이한 풍경이 우리를 신비롭게 했다 거기서 우리는 문득 태어났다 (기이한 풍경들)

저렇게 많은 풍경의 독이 네 몸에 중금속처럼 쌓여 있다(풍경의 해부)
기차는 자꾸 터널을 지난다 반대편에서 누군가 수십 개의 내 얼굴을 바라본다/창밖엔 규정되지 않은 풍경들이 줄지어 서 있다.(터널)


군말 1. 기억의 행성에서 시인은 풍경을 중금속처럼 쌓여있는 독이라든가, 터널에 비친 기이한 자신의 낯설은 모습들을 보며 풍경으로 묘사한다. 이번 시집에도 어김없이 그 연장의 사유가 이어지는 듯싶다. 그 속에는 무엇인가 스스로 탈피시키는 어떤 것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수십 개의 내 얼굴...다른 풍경과 달라지는 모습으로 생각매듭이 자라는 것이다.


나의 삶을 살다가 또 다른 나의 삶으로 돌아오는 것은 치밀한 환상이 필요한 일/내가 죽기 전에 다른 나의 죽음을 목도해야 하는 일은 정교한 시간 배치가 필요한 일//오늘도 내 속에 적절히 숨어서 내가 ㅇㅏ닐 가능성을 엄밀하게 엿본다 (나의 다른 이름들)


군말 2. 몇몇 시인들에게 보이는 ‘다른 나‘에 대한 끊임없는 탐색 곁에는 죽음이 있다. 죽음과 삶. 죽음을 가정한다는 것이 삶을 끌어내는 견인차이지만, 그렇게 이분법으로 가르게 되면, 발라낸 개인만이 존재하게 된다. 하이데거 식으로 ‘세계-안(내)-존재’이기도 하지만, 사유는 거기에 그칠 수밖에 없다. 존재로서 개인에 멈춘다는 이야기다. 정작 ‘발라낸 나‘는 말하는 존재이고 끊임없이 너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이다. 나는 나로서만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죽음과 삶이라는 극단의 이분법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한다는 비교해보면 현실보다 건강한 물음을 던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형용모순이다. 좀더 생각과 사유를 확장해보자면 죽음과 삶의 휴전선을 무너뜨려야 한다. 나 속에 끊임없이 나-너가 있는 것처럼, 삶속에 죽음이 스며든 것이 좀더 현실을 냉정하고 현실감있게 보는 것이다. 시인의 말을 덧붙이자면, 풍경이 필요하고 치밀한 환상이 필요하고, 정교한 시간 ㅂㅐ치가 필요한 일이다. 풍경의 독이 스미는 것을 즐겨야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침묵지대는 툰트라지대처럼 추운가/낮게 가라앉은 빛들이 들끓는가/침묵은 규정될 수 있는가(침묵지대)


군말 3. 삶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 충만은 즐겁게도 고독으로 채워진다 한다. 몽테뉴와 방향을 달리한 루소는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이란 마지막 저서에서 그 기쁨을 노래한다. 식물에 대한 관심이 옅어지는 노년, 그는 자신의 늙음을 한탄한다. 그러나 더 나이가 들면서 열정이 불꽃처럼 다시 샘솟는 것을 느껴 식물에 대한 모든 것에 빠져지내게 된다. 의무감에서 해방되어 오로지 그 자체에 집중할 때, 그 고요에서 오는 충일감을 찬양한다. 그 지대를 거닐어 보지 못한 자 고독을 논하지 말자랄까. 시인의 건강에서 연유한 산사 생활이든, 개인의 여건에서 상황은 각기 다를지라도 꽃의 고요를 느끼지 못한다면, 아마 고독을 잃어버린 사람이자, 고독이 드리운 사랑의 그림자도 ㅇㅏ직 밟아보지 못해 낯선 것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토록 노란 높은 음에 도달하기 위해서라면 스스로를 조금 속일 필요가 있었던 것, 그는 노란 색을 완전히 장악했던 걸까 노란색의 심연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압생트가 ㅇㅏ니라 고독과 광기와 셈세함과 난폭함이 고루 필요했다. (압생트)

늘 걷던 길이 햇빛 때문에 달라 보이는 시간, 봄볕에 발을 헛디딥니다 햇빛 때문에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가 달라지다니요 꽃과 나무와 마음을 변화시키는 봄볕에 하릴없이 연편누독만 더합니다(봄의 묵서)

그저 감각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곳의 멈추었다 미끄러지는 모든 시간들을/순간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순간이 아무것도 아닌, 기이하고 아름답고 무서운 그런 풍경을(풍경의 귀환)

흰 꽃과 분홍을 마주 피워 올리며 나의 봄을 엿보려는 저 천리향의 미열은 봄눈에 좀 가라앉으려는지(천리향을 엿보다)

오늘 나는 와편의 좋은 습득자, 말라 검게 타 버린 묵은 매화 보고 돌아온 갈라진 마음을 수습하였다/습득으로 뜻하지 않게 수습까지 하게 된 참 장한 사연을 이러하다/오늘 수습된 마음을 습득하였다.(습득자)

군말 4. 시인의 오감이 느껴지는가, 소리를 음각하거나 양각하여 저기에 걸어놓는 모습이 보이는가 , 그리고 나의 다른 이름을 가진 풍경들...


다른 악기도 아니 루트를 연주하고 있나요//누군가에게 루트, 라고 말해/그의 심장을 터뜨리기 위해 (그 악기의 이름은)
물이 문을 막고 있다/물을 꺾어 버리려면 문을 확 열어야 한다/물을 물리치려면 물을 들여놓아야 한다/지붕의 붉은 색이 더 깊어졌다.(물에 갇힌 사람)
당신은 잘 지냅니다/복사꽃이 지는데 당신은 잘 지냅니다 봄날이 가는데 당신은 잘 지냅니다/아슬아슬 잘 지냅니다(봄, 양화소록)
당신의 소식이 더 이상 오지 않는 봄이 온다 해도 내게는 오래 간직한 낡은 마음이 있소 그것으로 족하오 낡은 마음은 봄에 다시 새로운 마음이 되오(구름의 서쪽)

부러진 뼈에 붉은 꽃이 얹혀 있다//붉은 꽃은 부러진 뼈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다(부러진 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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