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리와 색

가을밤은 맑고 깊어서 방 안에 연못 물 얇아지는 소리가 다 들어앉는다.(가을밤)
마른 연못에 물이 들어차고 연못에 벚나무와 느티나무의 검은 가지와 잎과 흐린 하늘 몇 쪽과 빗방울들이 만드는 둥근 징소리의 무늬들 가득하다/비 오는 날 숲의 모든 소리는 물소리 뒤에 숨는다.(소리의 거처)
고요하다와 쟁쟁하다/소리에도 빛과 어둠이 있다는 걸, 그늘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물소리는 몸의 실핏줄을 통과해 다른 음색과 리듬으로 미묘하게 바뀐다(물소리에 관한 소고)
토마토의 속이 붉은 속이 미세하게/나뭇잎처럼 흘러내린다/차가운 심장이 파랗게 엎드리고 있는/토마코는 싱싱하다/푸른 씨를 가득 물고 조용히 뛰고 있다....///우듬지의 나뭇잎들이 꺾일 듯 휘어진다/수만 결의 바람이 뒤집히며 일제히 파닥인다/비스듬히 썰린 채 흘러내리는 과육들,/토마토는 부드럽게 상한다(오후의 세계)
초록의 여러 층위를 발견하게 되면서 몸은 느리게 회복되었고 탐구가 게을러지면 다시 아팠다/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꺼내어도 새로운 다른 초록이 나오는//눈을 감고 색의 채도나 명도가 아닌 초록의 극세한 소리로 분별해야 한다는 것(초록을 말하다)
보라빛 꽃들, 삶의 바깥으로 한번 슬쩍 나가보라고 권하는 보랏빛 꽃들이 사방 천지에 가득한 한여름 숲(여름 숲)
모든 상처는 왜 내상이 되고 마는 걸까 붉은색과 검은색의 심연이 죽음이거나 비애인 것은 얼룩 때문이다//커다란 얼룩 때문에 내 몸은 천천히 어두워지고 있다/나도 한때 다른 색의 상처를 가졌던 적이 있다 (얼룩)
오랜 격정으로 숲이 대낮에도 어둠을 불러들이곤 했다는 걸 당신은 알지 못하리라//어둠으로 회오리치는 붉은 숲은,(어두워지는 숲)
그들의 이마를 어루만지니 열꽃이 살며시 번졌습니다.//저 고요한 분홍이, 숲의 물소리를 낮추고 있었다는 걸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어요 그 분홍빛 아래서 당신은 또 한나절 나를 견뎠겠습니다.(분홍을 기리다)

2.

(천장을 바라보는 자는)내가 보았던 것은 하늘의 우물이라고 말할 수밖에//천장을 보며 보냈던 시간들은 우물이 말라가는 시간과 같아

3. 몸

초록의 여러 층위를 발견하게 되면서 몸은 느리게 회복되었고(초록을 말하다)
내 몸속 세포의 흐름이 저 물소리의 우주적 운율과 다르지 않아 또 몸에 귀 기울여야겠구나/이젠 몸을 떠나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알 수 있겠나 묻지 않는다(물소리에 관한 소고)
이 시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오랜 철학적 물음에 마침내 해답을 얻는다//이곳의 원인은 저곳에 있다는 새로운 이론은 하루가 지나자 낡아버리고//어딘가 다른 곳에서 나에 대한 참고 문헌이 완성디고 있다는 느낌이//몸에 대한 편견 없이 어떻게 인간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는 물음은 너무 오래되었으므로(어딘가 다른 곳에서)
너에게 너무 가까이도 멀리도 가지 않으려고/헛되이 나는, 이 먼 곳까지 왔다(헛되이 나는)
저렇게 많은 풍경이 너를 거쳤다/저렇게 많은 풍경의 독이/네 몸에 중금속처럼 쌓여 있다(풍경의 해부)
몸과 마음이 모퉁이를 세게 돌다 부딪쳐 머리가 깨어지는 사고가 난 자리를 잘 살펴보세요/오늘도 포근하고 단정한 잠자리와 슬픔이 소량 필요합니다(송과선, 잠)
수식득격, 란이 아닌 사람의 어떤 마음도 이와 같다 할 수 있을까 야윌수록 높아지고 깊어지는 무엇이 있을까격//걷고 또 걷고 누르고 누르면 독필이 된다 (야위다)
욕망을 삶의 방식으로 치환하고/공을 색의 방식으로 변환한다/맹목의 감각으로 퇴화되어가는/신성함이다/늘 반목하는 눈이다(맹목의 감각)

4. 그리고 꽃과 흑백

인간은 반복되는 존재다, 라고 말해도 겸손을 위장할 수 있을까 어느 생에선가 내가 살아낸 적 있는 삶을 당신이 지금 왜 똑같이 살아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가장 무서운 형벌은 반복을 반복하는 것 (흑백)
매화초우도, 탐매행....

볕뉘.

0. 이렇게 밑줄들을 옮긴 뒤, 신형철작가의 논문수준의 해설을 본다. 꽃을 탐하는 나로서는 동지를 만난 듯 기쁘기도 하지만, 세세한 결 속의 음과 색을 헤아리는 경지까지 가지는 못했다. 시를 함께나누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숲으로 한발짝 옮기게 해주는 시집이라고 한다. 나이가 들지 않아 꽃도 풍경도 들어오지 않기도 하겠지만, 비단 나이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런 꽃 봄을 꼭 볼 수 있는 나날이 몇 해나 될 것이란 말인가.

1. 시집을 읽으면서 나는 니체보다 스피노자에 가깝게 귀기울여 본다. 영혼과 정신, 신체를 나누는 것에 극명하게 반대했던 렌즈 제조공 스피노자. 영혼과 몸을 데카르트가 분리한 연유로 과학을 얻고 무수한 사실들을 얻을 수 있었지만, 마음과 영혼의 거처를 편안히 하는 몸, 삶은 여전히 그 거처를 잃고 반복될 뿐이다.

2. 기쁨과 슬픔, 기쁨으로 생겨나는 욕망이 슬픔으로 생겨나는 욕망보다 훨씬 강하다라고 스피노자는 말한다. 침묵할 수 있는 역량이 말할 수 있는 역량과 동일하다면 삶은 훨씬 풍부했을 것이라고도...목적인은 원인과 결과를 혼돈하여 제대로 된 삶, 기쁨조차 누릴줄 모른다고 한다.

3. 초록의 새로운 색과 소리를 찾는 기쁨은 어디로 연유하는 것일까. 아픔으로 시작하거나 외로움으로 나아가거나 적요로 출발하는지도 모르겠다. 고통만이 아니라 어떤 숭고함이나 작열하는 흰빛으로 문득 다가서는 것일지도 모른다. 침묵으로 확장되거나 연장되는 신체의 배치가 다양한 이미지들을 만들어낸다. 정신은 이렇게 신체로 이어지는 여러갈래 길이다. 그 깊이는 늘 만나면서 큰 울림들을 만들어낸다. 더 이상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 기쁨은 그렇게 연유하는 것이다.

4. 길. 길은 어쩌면 물위에 난 수많은 길들인지도 모른다. 바람이 만들어내는 길들. 길은 어디에나 있다. 길은 어디에도 있다. 안의 길과 밖의 길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높아지고 깊어진다. 야위워간다. 걷고 또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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