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조건을 만드는 데 참여하려는 욕망, 미래를 헤쳐 가거나 그저 살아남기보다는 함께 미래를 만들어 가려는 소망으로서 자유. 43

자유는 개별자로서가 아니라 유적 존재로서 갖는 역량이며, 아렌트의 정식에 바탕을 두면 자유는 다원성을 필요로 한다./권력의 부재가 아니라 권력의 민주화가 필요하다. 44

계급의 정치학은 경제적 재분배와 경제정의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계급 범주의 지도를 다시 그리기 위해 임금 수준을 조정하는 데 주력하는 정치학이다. 그에 반해 내가 들여다보고자 하는 일의 정치학은 공간에 대한, 일상의 시간에 대한 명령과 통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탐구하고, 우리가 함께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이 될 수 있을지의 조건을 빚어내는 데 직접 참여할 자유를 추구한다. 내가 “계급 결과의 정치학”이라 부르는 정치학이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에 각을 세우는 것을 핵심에 둔다면, 내가 구성하고자 ㅎㅏ는 일의 정치학은 자본주의 사회의 부자유에도 비판의 날을 들이민다. 45

노동자로서 겁에 질려 주춤주춤 걸어가던 노동자는 이제 앞장서서 활보한다. 마르크스가 묘사했던 자본가와 노동장(둘다 남자였던) 사이의 거래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제3의 인물이 이제 겁에 질려 뒤를 따른다. 두 손에 식료품과 아이, 기저귀를 들고서 47

페미니즘은 일의 가치를 묻기보다는 일의 조직화와 분배 방식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경향을 보여왔다/자율적 마르크스주의는 노동의 해방이 아니라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요구한다/마르크스 페미니즘 연구는 노동의 중요성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노동의 가치화에 이론을 제기하는 방법으로서 가사임금을 논한다./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착취당하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학자 하나를 인용해 말하자면 “잠재적으로 혁명적인” 노동자에게도 초점을 맞춘다./마르크스주의는 산업 프롤레타리아트가 그 족쇄 말고는 잃을 게 없기 때문만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창조할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혁명 ㄱㅖ급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 48,49

이렇게 일을 폭넓게 바라보면, 한때 반자본주의 정치학의 영역은 프롤레타리아트를 유일한 혁명 주체로 본 공장 중심의 정통 마르크스주의 산업 모델을 뛰어넘어 보다 포괄적인 장소와 주체들로 전환된다./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즈의 일에 ㄷㅐ한 연구가 생산 중심주의 성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한게가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일과의 관계 안에서 혁명의 가능성을 찾고 추구하는 데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는 것 역시 기능주의 논리에 경도된 것이라는 점에서 일부 한계가 있다. 50,51

이는 유토피아의 지평 안에서도 사유한다. 일이 착취와 지배, 저항의 장인 것만은 아니다. 일에서 우리는 종속된 지식, 저항의 주체성, 새롭게 발현하는 조직화 모델들을 기초로 대안을 창출할 수 있는 힘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53/ ㅁㅣ래에 도래할 모습을 창조하는 것을 자본주의에 맞선 운동의 명시적인 일부로 삼고 있으며, 이를 위한 혁신을 “혁명”dㅣ후에 올 먼 미래로 미루는 “유예의 정치”에 도전한다. 54

유토피아적 요구의 가치를 평가하려면, 그 구조적 효과와 담론적 효과 양쪽의 가능성과 한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보편적인 기본소득 보장은 모든 노동자의 대고용주 협상력을 높여 줄 것이다/임금 감축없는 주 30시간 근무제는 불안전 고용과 과중 노동의 문제를 일부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58,59

이 책이 관심을 둘 요구는 노동조건의 실질적인 개혁을 가져올 뿐 아니라 우리 삶에서 일이 갖는 지위에 대해 폭넓은 질문을 제기하며 ‘일에 종속되지 않는 삶‘에 대한 상상을 촉발하는 요구들이다. 다시 말해 종착점이라기보다는 방향등의 역할을 할 요구들이다. 59

우리가 일자리에 대한 만족도를 오로지 다른 일자리를 기준 삼아 따진다/ 현재 구성되어 있는 일하는 세계 자체를 다른 식으로 구성된 세계와 비교하는 방식으로 판단이 이루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62

어째서 일하고, 어디서 일하고, 누구와 일하고, 일할 때 무엇을 하고 얼마나 오래 일하는가가 모두 사회적 합의이고, 따라서 당연히 정치적 결정인 것이라면, 이러한 영역 중 더 많은 부분을 어떻게 해야 토론과 쟁투의 범위로 되찾아올 수 있을까? 일의 문제는 일이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독식한다는 데만 있지 않다. 문제는 일이 사회적, 정치척 상상을 장악하고 있다는 데까지 미친다. 63

볕뉘. 오랜만에 좋을 책을 읽는다. 삶과 일, 노동, 반노동, 탈노동을 버무려, 지금 우리가 어떤 사유를 하여야 하는지 날카롭게 짚어내고 있다. 모처럼 좋은 토론과 논쟁들로 번지면 싶다. 이 책이 있어 그래도 좋은 봄이 될 것 같다. 아쉽지만 기본 취지를 먼저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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