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별

너무 멀리 있어 이름을 알 수 없는 별처럼(교실에서)
딱딱하고 캄캄한 하늘이/술병에 부딪혀 깨지며 쏟아졌다
별은 없었다/그녀도 없었다/이글거리는 나의 눈동자 속으로/유리조각이 산산이 쏟아져내렸다.(거인족)
쇠창살에 밤하늘 별들이 비친다/구름 사이로 나를 내려다보는 어머니/부드러운 빛의 슬픈 손가락이 내 입술을 어루만진다.(유괴)
하늘에 사는 물고기/아가미 열릴 때마다/별 떨어집니다,떨어지는 것은/날카롭습니다
한 여자 맞습니다/흰 목덜미가 길고 붉게/잘렸습니다.
목에 베인 그 여자, 아가미 얻었습니다/부레 가득히 공기를 채워/밤하늘 위로 떠오릅니다
또 한 사람 맞습니다/별에 맞아 죽습니다. (별은 물고기)


볕뉘 1. 그녀의 모두 시는 ‘모두 사라졌다‘로 시작한다. 그녀에게 별이 무척 멀리있는 것이거나, 희미하게 비치는 것이거나 없는 것이다. 그것이 있다고 한다면, 손목을 자르거나 목을 잘라서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별은 물고기이고 별에 맞아 죽어야 아가미를 얻고, 아가미가 열릴 때에서야 별이 유리조각처럼 산산히 내 안으로 쏟아져내리는 것이다. 그래서야 얻는 무엇이다.

(2). 시간

시간의 부드러운 염산 방울이/똑, 똑, 떨어져내렸다(커다란 창고가 있는 집)
그것이 만들어낸/이전 시들과/이번 시 사이의 고요한 거리
그 위로/시간이 눈처럼 자꾸 내렸다/아무것도 하얗게 덮지 않고 흩어져버렸다(이전 시들과 이번 시들 사이의 고요한 거리)
스물아홉 살의 아침이었다 우지끈 부서지는/소리, 잠이 오지 않았다 충혈된 입에서 벌어진 눈에서/시간이 질질 흘렀다(야간노동자)
내 손가락을 쓰는 일이 머리를 쓰는 일보다 중요하기 때문. 내 손가락 내 몸에서 가장 멀리 뻗어나와 있다.....
가지는 물을 빨아들이지도 못하고 나무를 지탱하지도 않는다. 빗방울 떨어진다. 그래도 나는 쓴다. 내게서 제일 멀리 나와 있다. 손가락 끝에서 시간의 잎들이 피어난다.(긴손가락의 시)

볕뉘 2. 그 황폐함을 그래도 살리는 것은 시간이다. 눈처럼 자꾸내리는 시간이거나 부드러운 염산 방물처럼 무쇠가된 사람을 녹이기도 한다. 무엇인가 조금씩 드러내는 시간들. 시간의 실루엣은 어제를 품어 안기를 바란다. 어느 즐거운 저녁, 미래는 과거라 불리고, 그때 우리는 돌아서서 자신의 ‘청춘‘(2부)을 본다.

3. 교실(안), 정육점 (안), 쇠창살 (안), 도시, 딱딱하고 캄캄한 하늘, 캄캄한 터널, 자본주의

4. (바깥) 풍경 - 벌레, 악어, 눈, 나무, 달팽이 대장, 마더구즈, 밀주, 포도송이

(5). 어제 – 오늘 혼자 부르는 노래는 지겹다/그러므로 나는 오늘을 명명한다, 베껴 쓰기의 시간이 돌아왔다고/플라톤을 베낀다 마르크스를 베낀다 국가와 혁명을 베낀다/무엇을 할 것인가를 베낀다

6. 일곱 개의 단어 (사전) - 봄, 슬픔, 자본주의, 문학, 시인의 독백, 혁명, 시

(7). 페인트
봄이 왔다 – 사내가 초록 페인트 통을 엎지른다/나는 붉은색이 없다/손목을 잘라야겠다.
차들이 과속으로 달리는 도로 속으로 들어가니까/노란색 페인트통을 들고/자신이 지나갈 건널목을 멋대로 그리면서(무신론자)

볕뉘 3. 그녀의 시에서는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풍경이 많다. 연무도시나 도시로 형상화되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밖을 보는 바깥 풍경은 잔혹하기만 하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다. 베버의 쇠창살이거나 루쉰의 쇠감옥이거나 프랜시스 베이컨의 풍경처럼 도축한 정육과 살점, 피가 흥건한다. 뒤통수를 너무 맞아 납작해진 악어가 되거나, 끊임없이 화기에 녹아내리는 눈이거나, 누이에 어 여기도 벌레가 있네 하는 벌레가 된다. 밥풀나무이거나 친구들은 몽글몽글 햇빛에 구워진 빵처럼 말라가는 모습을 봐야하는 달팽이 대장이거나 목을 따이면서 죽어가는 노동자의 눈동자를 봐야 하는 거위가 지천이다.

볕뉘 4. 슬픔에 못이기는 그녀가 겨우 ‘라고 쓴다‘의 괄호 안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마음 끝에 맺힌 물방울들이 모인 저 첨탑끝에 매달린 포도송이를 보며, 저 떨어져내린 포도송이를 보며 라고 쓴다. ‘이곳에서 일어난 일을 잊지 않겠다라고 쓴다. 보라빛 젖은 안개로 쓴다. ‘ 시인의 일곱 개의 단어 사전 속엔, 자본주의와 슬픔과 문학과 시와 시인의 독백과 혁명, 그리고 봄이 있다. 어느 하나 허투르지 않는 사전의 일곱 개의 단어가 있다. 손목을 잘라내어서 꽃을 피워야 하고, 성큼성큼 지나갈 건널목을 그려야 할 페인트 통이 있다.

나는 하나의 밀알로 썩어
세상의 모든 바람이 취기로 몰려오는
한 방울의 향기
아득한 밀주

아무런 후일담도 준비하지 않는

볕뉘 5. 한달여 시의 집과 함께 했다. 이제서야 겨우 사전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었다. 물만두님의 좋은 시인으로 거듭나기 바란다는 당부도 봤다. 어제를, 복기를 뼈아프게 하는 자만이 미래를 품을 자유를 갖는다는 말과 많은 진통과 아픔을 공유할 수 있어 좋았다. 어설픈 시 읽기에서도 조금 빠져나가는 듯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